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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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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꿈을 품고…
2013년 06월 20일 09시 04분  조회:1604  추천:0  작성자: 김재진
소설 “여울치는 복밀하”의 창작에 관하여
 
 
사람이란 누구라 할것 없이 아름다운 꿈을 품고 산다. 꿈이 있기에 리상과 포부가 있고 노력과 분투가 있으며 힘이 있게된다. “꿈(梦想)을 굳게 가지라, 일단 그꿈이 소실된다면 생명은 날개 부러진 새가 되여 다시는 날아옐 수 없으리라.” 이는 미국 시인 슈스(休斯)가 쓴 시의 한구절이다. 그렇다, 꿈이 없다면 사유가 없는 동물과 같고 움직이는 송장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비록 이세상에 꿈을 이룩하는 사람은 적다지만 결과 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떻게 하면 몽상을 현실로 되게 할 것인가? 기회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나는 인생의 막바지에 닿은 오늘에야 심절히 느끼게 되였다. 기회가 왔음에도 잡지 않고 놓친다면 꿈은 환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회란 머리만 있고 꼬리는 없다. 하기에 그머리가 보이면 무조건 안고 뒹굴어야지 꼬리를 잡으려 기다린다면 놓치고 만다.”는 명언을 한 TV드라마에서 들었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기가 일수이다. 
나는 소시적부터 꿈도 많았었다. 어릴 때엔 큰 누님(김 선녀; 연변텔레비죤 방송국에서 사업했음) 의 영향을 받아 작가의 꿈을 꾸며 밤 새워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문화혁명” 때 공부의 기회를 빼았긴 후 사회 환경의 지배로 정치가의 야심을 품고 “9차 당대회”의 대표로 되리라는 꿈까지 꾸며 <모 택동 선집>, <맑스 엥겔스 선집>, <레닌 선집>등 많은 저작들을 읽고 또 읽었다.
부대에선 “학습활용 적극분자”라는 칭호를 줄 달고 있었고 화평년대에 보기드문 3등공을 부대 양돈장에서 세웠다. 복원 한 후 점차 정치란 나같이 어진 놈이 해먹을 것이 못됨을 알게 되였고 공장에서 일하는 때인지라 기계공정학을 전공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여 기계 교과서를 읽었고 참고서와 잡지들을 많이 읽었으며 조작공으로부터 기술간부로 되였다. 각항 공작과 기술혁신에 성적을 쌓아 장려, 상장도 많이 탔으며 “선진 공작자”, “우수 공산당원”과 같은 이름이 떠날줄 몰랐다. 허지만 품은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국가 기술간부직을 버리고 자유인이 되려 할 때 마침 주정부에서 일하던 동생이 전국 특허 신산품 전시 회의에서 항목 하나를 사가지고 정부문을 나와 나를 불렀다. 그때로부터 20년간 우리 형제는 대련에서 식품공장, 연길에서 가스레인즈 공장등 여러차례 작은 공장을 꾸리고 새산품을 개척하며 신고를 몰부었다.  
도리켜보면 억울한 일도 많았다. 우리들이 개발한 해산물 신산품 기술을 일본에서 훔쳐다가 전자동 기계를 만들어 중국에 팔아 먹으니 설비가 락후한 우리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고 우리가 연구하여 특허권까지 얻은 가스레인즈 기술도 북경의 큰 공장이 훔쳐다 우리시장을 빼앗아버리니 우리는 미찌고 나앉아야만했다. 새로운 항목을 연구 성공하여서는 남의 좋은 노릇만 하다보니 꿈은 부서지고 나이만 60을 넘겼다.
돈을 벌어 가문의 신세도 고치고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우며 사회에 공헌도 해보고 싶었었는데, 연변대학 정문앞에 공중 인행도를 만들어 교정과 학생 아파트를 직접 련결하여 학생들의 안전과 편리를 도모하리라 계획 하였었는데, 대련 어디엔가엔 연대 휴양소도 하나 세우고 고향 사람들을 위하리라 생각 했었는데 꿈은 이루어 지질 않았다.
대련에서 공장을 운영 할 때 십여만원이란 적은 투자로 일년 사이에 몇천만원이란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만났었건만 우리는 투자금이 없어 그것을 놓쳐버렸다. 우리두형제는 공정기술 능력은 갖추어졌다지만 기업경영 능력이 너무나도 차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고 한생에 한번밖에 없는 그기회를 놓지지 말아야 했다는것도 인제야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가끔 “아버지 어머님의 꿈은 무엇이셨을까?”하는 생각도 가져보군 한다. 아버지는 아름다운 꿈을 품으시고 18세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가셨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타향길에 오르신 것일것이다.
“제진아, 내 등거리 자상히 보거라…”
1985년도, 한달에 한번씩 나는 병환에 계시는 부친님을 모시고 내가 근무하는 공장 모욕탕에 가 등거리를 밀어드렸다. 마음씨 착한 모욕탕 아줌마와 공장 경비원 아저씨 부부는 시끄러워 할 대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세상 효자요!”를 부르며 칭찬 해주고 편리를 마련 해주곤 하였다. 한번은 내가 아버지의 등을 천천히 밀고 있는데 “자상히 보라”고 하시지 않겠는가?
“뭘 보라고 그럽니까? 아버지.”
“칠성별이 보이지 않느냐? 등거리에 검은 짐 말이여.”
나는 이리저리 자세히 찾아보았다. 오른쪽 어깨뒤로 검은기미 몇개 박혀있었다. 분명히 그 모양도 수자도 칠성별은 아니였다. 허지만 부친님은 친눈으로 등거리를 보실 수 없으니 그렇게 한생을 속힘 속에서 살아오셨다.
“예, 이제 보니 칠성별이네요! 정말 희귀합니다. 아버진 보실 수도 없으신데 어떻게 칠성별이 있는지 아셨습니까?”
뇌혈전으로 어린애 지력으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실망케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그의 등거리 빈자리에 손가락을 찍어가며 일곱개를 헤여드리고 눈물을 훔쳤다.
“그누구하구도 말 말거라 잉? 큰 일 난다, 큰 일 나…”
일본 동경, 어느하루 벨트 배달 후 물품 값을 받아가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한 백발로인이 아버지 앞에서 걸음을 뚝 멈추었다. “젊은이 날 따라오게.”하니 아버지는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큰 거리를 지나고 작은 골목을 에돌아 한참을 가 작은 찻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미닫이를 닫고 로인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고 로인이 시키는대로 윗통을 벗고 돌아앉았다.
“바로 너로구나! 로승은 바다 건너 먼디서 너를 구하러 왔느니라. 넌 등거리에 칠성별을 지고 났으니 하늘이 내려보낸 사자(使者)이다. 하늘의 뜻을 절대 루설하지 말라(天机不可泄漏), 루설 하면 천벌을 받는다. 부모 처자한테도 알려선 안된다. 나라가 알면 즉각 목을 칠것이여, 감추고 시기(时机)를 꼭 기다려야 하느니라…”
아버지께서는 늙은 도사한테 사례금을 많이 냈을 것만은 사실이다. 일생을 망쳐준 협잡군 원쑤임을 모르고 구명은인으로 여겼을테니깐. 한평생 볼 수도 없고 누구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칠성별”이라는 무거운 보짐을 짊어지고 사시려니 내심적 고통이 막심하셨을 것이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시기”를 기다리시려니 희망도 크셨을테지. 헌데 처자한테도 말 말라는 “천기”를 왜 나한테 말씀 하셨을까? 병마에 시달리시다 못해 희망을 잃으시고 “칠성별”의 진가라도 알고싶으셔서? 아니면 그제라도 그 멍에 벗어버리고 싶으셔서였는지도 모른다. “칠성별” 등에지고 살아오신 아버지의 한많은 타향살이…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2007년 여름, 나는 전렬선 비대증이라는 병으로 다리가 찜빵처럼 부나고 소변이 말을 듣지 않아 어려운 기업을 동생 혼자에게 맏겨두고 집에 들어앉게 되였다.
나는 마작판이나 낚시터 같은 곳에서 조금 남은 여생을 허송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여 활동하지 않으면 몸에 해롭다는 안해의 꾸지람을 귀등으로 하고 밤낮 없이 컴퓨터에 마주앉아 있었다, 어릴 때의 취미와 욕망을 되살려 글 짓기를 다시 해보는 것이였다. 나는 글 짓기에 푹 빠져버렸다. 혼자 웃고 혼자 울면서 글을 썼다. 여섯달간의  품을 들여 “장편소설” 60여만자를 써냈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스스로 소설이라 부르지만 남들 보기엔 너무나도 형편 없는 글이라는것을 나는 잘 안다. 졸작일지라도 부모가 자기의 못난 자식을 사랑하듯 누구나 자기의 작품을 아끼는 법이다. 졸작에도 작자의 사랑과 원한이 찍혔고 희망과 분투를 그렸으며 희노애락을 담았다. 하기에 작자는 졸작일지라도 부끄러움을 참으며 기대만을 품는다.
나의 소설 “여울치는 복밀하”는 ( 원 제목은 촌부의 사랑 )한 산골녀성 방 화의 사랑을 묘사하였다. 그녀는 개혁개방의 동풍을 타고 남하하여 천륙백만원을 벌고 북방 고향에 돌아가 기업가로 되여 산골 마을을 건설하며 고향 농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였다. 남방에 와 돈 버는 사이,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 사업을 벌리는 과정에 그녀가 자기를 잃고 인간사회에 사랑을 몰붓는 이야기를 썼다. 그녀가 번 돈이 작자가 벌고싶었던 돈이고 그녀가 벌린 사업들과 몰부은 사랑들이 작자가 하고싶었던 일들이다. 양돈장, 양로원, 휴가촌, 호텔, 골프장등과 같은 항목들… 작자는 자기가 이룩하지 못한 꿈들을 소설속의 주인공에게 맡겨 진행시키고 이룩시킨다. 뿐만 아니라 소설이 성공되여 출판되고 독자에게까지 전달 된다면 그것은 미지의 힘이 되고 방향판이 될 수 있어 더욱 많은 주인공—“작자의 대리인”을 낳고 사회에 무한한 사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시여, 꿈을품고 기회를 잡으시라, 성공은 당신에게 속한다!
온 가보총리는 제16기 인대회 정부 공작보고에서 “북방의 한가한 로동력이 남방의 일부 성시에 와 일종 무체력로동에 종사하여 상당한 원시자금을 벌어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점으로 면을 이끌며 당지의 경제를 발전 시켜야한다.” 고 말하였다. 소설중의 주인공이 걸은 길은 생각밖으로 온 가보총리의 지시에 완전히 부합되였다. 허지만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대학도 못다닌 산골의 한개 보통 녀성이 어떻게 그런 큰 일들을 할 수 있겠는가”고 의문을 제기하고 “3~4 년이란 짧은 시간에 천 륙백만원을 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통적 관념으로 사물을 보고 분석하며 결론 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자본신이 반전통적 새관념이 수립되여 그러한 주인공을 설치한것은 아니다. 작자본신이 가고싶던 대학에 가지 못했기에 반전통적인 주인공을 내세웠다. 인류사회에 사랑을 바침에는 학벌이나 직위나 빈부나 성별 구분이 없다는 것을 작자는 독자들께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천 륙백만원이라는 원시자금을 수입함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학벌이나 직위가 필요한것이 아니라 기회를 만나야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기회란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났다가는 가뭇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하기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미처 고려 할 사이도 없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고는 돌아서서 지나간 기회를 바라보며 후회한다.  해질 무렵 비가 멎고 구름 사이로 해살이 비친다. 해빛이 검은 구름을 뭉게뭉게  불 태우니 하늘 전체가 불바다이다. 해가 산 뒤에 지기전에 저 붉은 파도 속에 뛰여들어 자맥질이라도 치고 싶다. 하면 차겁게 찢어졌던 령혼은 화염속에 녹았다 굳어지고 영생불멸 하리라. 몸과 마음이 다 찌그러진 나에게도 궂은 날은 가고 해가 비칠줄을, 심금을 잡아치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찾아올줄은 정녕 몰랐으니 흥분된 가슴을 달랠길이 없다. “아리랑주간” 편집부에 뜨거운 감사를 드리는바이다.
나는 보다 많은 “방 화”가 이세상에 태여나고 곳곳에서 참된 사랑이 꽃피는 그날을 그려본다.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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