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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시모음
2015년 04월 17일 21시 46분  조회:5026  추천:2  작성자: 죽림

심훈.jpg

심훈(沈熏, 1901년 9월 12일 ~ 1936년 9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소설가작가언론인영화인으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경기도 과천군 출생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호는 해풍(海風)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심삼준(沈三俊), 심삼보(沈三保)이다. 주요 저서로는 《상록수》등이 있다. 또한 1926년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했다.[1]

 

 

생애

사후

    1949년에 시집 《그 날이 오면》, 1952년에 《심훈집》 7권과 1996년에 《심훈 전집》 3권을 출간
  •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는 일본 제국의 검열로 중단돼 미완성 작품으로 남음
  • 2005년 7월 서울 경기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기로 결정
  • 심훈가의 장손인 심천보 씨가 심훈 선생 관련 유품 등 가문유물 414점을 당진시에 2013년 7월 16일 기증. 당진시에서는 2014년 3월, 심훈기념관을 준공하였다. [2]

가족 및 친척 관계

    증조부 : 심의붕(沈宜朋)
  • 증조모 : 연안 이씨
  • 증조모 : 전주 이씨
  • 증조모 : 탐진 최씨
      조부 : 심정택(沈鼎澤)
  • 조모 : 광주 안씨
      아버지 : 심상정(沈相涏)
  • 어머니 : 해평 윤씨
      첫째형 : 심우섭(沈友燮)
  • 둘째형 : 심명섭(沈明燮)
  • 여동생 : 심원섭(沈元燮), 기계인 유원식에게 출가
  • 본부인 : 전주 이씨, 이해영
      장남 : 심재건(沈載健)
  • 차남 : 심재광(沈載光)
  • 삼남 : 심재호(沈載昊) - 미국 거주
  • 후부인 : 죽산 안씨, 안정옥

인간 관계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 소설가 현진건(玄鎭健) 등과 함께 문우(文友) 관계를 맺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 이범석(李範奭),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 박헌영(朴憲永)과는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이기도 했다.[1]

학력

주요 작품

《영원의 미소》
상록수
《직녀성》
《그 날이 오면》
《먼동이 틀 때》
《동방의 애인》
《불사조》
《기남의 모험》
《새벗》
《오월의 비상》
《황공의 최후》
《뻐꾹새가 운다》



 

심훈의 좋은 시모음

 

 

가배절(嘉排節)

 

팔이 곱지 않았으니 더덩실 춤을 못 추며

다리 못 펴 병신 아니니 가로 세로 뛰진들 못 하랴

벼 이삭은 고개 숙여 벌판에 금물결이 일고

달빛은 초갓집 용마루를 어루만지는 이 밤에-

뒷동산 솔잎 따서 송편을 찌고

아랫목에 신청주 익어선 밥풀이 동동

내 고향의 추석도 그 옛날엔 풍성했다네

비렁뱅이도 한가위엔 배를 두드렸다네

 

기쁨에 넘쳐 동네방네 모여드는 그날이 오면 기저귀로 고깔 쓰고 무등 서지 않으리

쓰레받기로 꽹가리 치며 미쳐나지 않으리

오오, 명절이 그립구나! 단 하루의 경절(慶節)이 가지고 싶구나!

 

 

거리의 봄

 

지난 겨울 눈밤에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늙은 거지가

쓰레기통 곁에 살아 앉았네

허리를 펴며 먼 산을 바라보는 저 눈초리

우묵하게 들어간 그 눈동자 속에도

봄이 비치는구나 봄빛이 떠도는구나

원망스러워도 정든 고토에 찾아드는 봄을

한번이라도 전 눈으로 더 보고 싶어서

무쇠도 얼어붙은, 그 치운 겨울에 이빨을 앙물고 살아왔구나

죽지만 않으면 팔다리 뻗어 볼 시절이 올 것을

점쳐 아는 늙은 거지여 그대는 이 땅의 선지자로다

 

사랑하는 젊은 벗이여

그대의 눈에 미지근한 눈물을 거두라

그대의 가슴을 헤치고 헛된 탄식의 뿌리를 뽑아버리라

저 늙은 거지도 기를 쓰고 살아 왔거늘

그 봄도 우리의 봄도, 눈앞에 오고야 말 것을

아아, 어찌하여 그대들은 믿지 않는가?

 

 

고독

 

진종일 앓아누워 다녀간 것들 손꼽아 보자니

창살을 걸어간 햇발과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

두 손길 펴서 가슴에 얹은 채 임종 때를 생각해보다

 

그림자하고 단 둘이서만 지내는 살림이어늘

천장이 울리도록 그의 이름은 불렀는고

쥐라도 들을세라 혼자서 얼굴 붉히네

 

밤 깊어 첩첩이 닫힌 덧문 밖에 그 무엇이 뒤설레는고

미닫이 열어젖히자 굴러드느니 낙엽 한 잎새

머리맡에 어루만져 재우나 바시락거리며 잠은 안 자네

 

값없는 눈물 흘리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맹세했던고

울음을 씹어서 웃음으로 삼키기도 한 버릇 되었으련만

밤중이면 이불 속에서 그 울음을 깨물어 죽이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오면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나의 강산이여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오똑 솟았다가 굽이쳐 달리는 그 산 줄기 네 품에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소나무 감송감송 목멱의 등어리는

젖 물고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허리와 같고 삼각산은 적의 앞에 뽑아든 칼끝처럼 한번만 찌르면 먹장구름이 쏟아질 듯이

아직도 네 기상이 늠름하구나

 

에워싼 것이 바다로되 물결이 성내지 않고 샘과 시내로 가늘게 수놓았건만 그 물이 맑고 그 바다 푸르러서

한 모금 마시면 한 백년이나 수를 할 듯 퐁퐁퐁 솟아서는 넘쳐 넘쳐 흐르는구나

 

할아버지 주무시는 저 산기슭에

할미꽃이 졸고 뻐꾹새는 울어예네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도 돌아만 가면 저 언덕 우에 편안히 묻어 드리고

그 발치에 나도 누워 깊은 설움 잊으오리다

 

바가지 쪽 걸머지고 집 떠난 형제

거칠은 벌판에 강냉이 이삭을 줍는 자매여

부디부디 백골이나마 이 흙 속에 돌아와 묻히소서

오오 바라다볼수록 아름다운 나의 강산이여

 

 

눈 밤

 

소리 없이 내리는 눈, 한 치, 두 치 마당 가득 쌓이는 밤엔

생각이 길어서 한 자외다. 한 길이외다.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편지나 써서 온 세상에 뿌렸으면 합니다.

 

 

독백

 

사랑하는 벗이여

슬픈 빛 감추기란 매맞기보다도 어렵소이다

온갖 설움을 꿀꺽꿀꺽 참아 넘기고

낮에는 히히 허허 실없는 체 하건만

쥐죽은 듯한 깊은 밤은 사나이의 통곡장이외다

 

사랑하는 벗이여

분한 일 참기란 생목숨 끊기보다도 힘드오이다

적덩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가슴의 불길을

분화구와 같이 하늘로 뿜어내지도 못하고

청춘의 염통을 알콜에나 짓담그려는

이 놈의 등어리에 채찍이라도 얹어 주소서

 

사랑하는 그대여

조상에게 그저 받은 뼈와 살이어늘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알몸 뿐이어늘

그것이 아까워 놈들 앞에 절하고 무릎을 꿇는

나는 샤일록보다도 더 인색한 놈이외다

쌀 삶은 것 먹을 줄이나 아니 그 이름이 사람이외다

 

 

동우(冬雨)

 

저 비가 줄기줄기 눈물일진데

세어 보면 천만 줄기나 되엄즉허이

단 한 줄기 내 눈물엔 배게만 젖지만

그 많은 눈물비엔 사태가 나지 않으랴

남산인들 삼각산인들 허물어지지 않으랴

야반에 기적 소리!

고기에 주린 맹수의 으르렁대는 소리냐

저력 있는 그 소리에 주춧돌이 움직이니

구들장 밑에서 지진이나 터지지 않으려는가?

 

하늘과 땅이 맞붙어서 맷돌질이나 하기를

빌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건만

단 한 길 솟지도 못하는 가엾은 이 몸이여

달리다 뛰면 바다인들 못 건너리만

걸음발 타는 동안에 그 비가 너무나 차구나

 

 

마음의 낙인

 

마음 한복판에 속 깊이 찍혀진 낙인을

몇 줄기 더운 눈물로 지어 보려 하는가

칼끝으로 도려낸들 하나도 아닌 상처가 가시어질 것인가

죽음은 홍소(哄笑)한다. 머리맡에 쭈구리고 앉아서

자살한 사람의 시집을 어루만지다 밤은 깊어서

추녀 끝의 풍경소리 내 상여 머리에 요령이 흔들리는 듯

혼백은 시꺼먼 바다 속에 잠겨 자맥질하고

허무히 그림자 악어의 입을 벌리고 등어리에 소름을 끼얹는다

 

쓰라린 기억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앞길은

행복이란 도깨비가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꿈속에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어릿광대들

개미 때처럼 뒤를 따라 쳇바퀴를 돌고 도는 걸

 

캄풀 주사 한 대로 절맥되는 목숨을 이어 보듯이

젊은이여 연애의 한 찰나에 목을 매달려하는가?

혈관을 토막토막 끊으면 불이라도 붙을 성 싶어도

불 꺼져 재만 남은 화로를 헤집는 마음이여!

 

모든 것이 모래밭 위의 소꿉장난이나 아닌 줄 알았더면

앞장을 서서 놈들과 걷고 틀어나 볼 것을

길거리로 달려 나가 실컷 분풀이나 할 것을

아아 지금엔 희멀건 허공만이 내 눈앞에 틔어 있을 뿐

 

 

만가(輓歌)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수의(壽衣)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뻑이는데

동지들은 헐벗던 알몸이 추울 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 준다

 

(이하 6행은 일본 총독부의 검열로 잘려져 나감)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봄비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이루시네

 

 

조선은 술을 먹인다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입을 벌리고 독한 술잔으로 들이붓는다

 

그네들의 마음은 화장터의 새벽과 같이 쓸쓸하고

그네들의 생활은 해수욕장의 가을처럼 공허하여

그 마음 그 생활에서 순간이라도 떠나고저 술을 마신다

아편 대신으로 죽음 대신으로 알코올을 삼킨다

 

가는 곳마다 양조장이요 골목마다 색주가다

카페의 의자를 부시고 술잔을 깨뜨리는 사나이가

피를 아끼지 않는 조선의 테러리스트요

파출소 문 앞에 오줌을 갈기는 주정꾼이

이 땅의 가장 용감한 반역자란 말이냐?

그렇다면 전봇대를 붙잡고 통곡하는 친구는

이 바닥의 비분을 독차지한 지사로구나

 

아아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뜻이 굳지 못한 청춘들의 골을 녹이려 한다

생나무에 알코올을 끼얹어 태워버리려 한다.

 

 

토막생각

 

날마다 불러가는 아내의 배

낳은 날부터 돈 들 것 꼽아 보다가

손가락 못 편 채로 잠이 들었데

뱃속에 꼬물거리는 조그만 생명

‘네 대에나 기를 펴고 잘 살아라!’

한 마디 축복밖에 선사할 게 없구나

 

‘아버지’ 소리를 내 어찌 들으리

나이 30에 해 놓은 것 없고

물려줄 것이라곤 ‘선인(鮮人) 밖에 없구나

 

급사의 봉투 속이 부럽던

월급날도 다시는 안 올 성싶다

그나마 실직하고 스무 닷새 날

 

전등 끊어가던 날 밤 촛불 밑에서

나어린 아내 눈물지며 하는 말

‘시골 가 삽시다. 두더지처럼 흙이나 파먹게요.’

 

오관으로 스며드는 봄

가을바람인 듯 몸서리쳐진다

조선 팔도 어느 구석에 봄이 왔느냐

 

불 꺼진 화로 헤집어

담배 꼬토리를 찾아내듯이

식어버린 정열을 더듬어 보는 봄 저녁

 

옥중에 처자 잃고

길거리로 미쳐간 머리 긴 친구

밤마다 백화점 기웃거리며 휘파람 부네

 

선술 한 잔 내라는 걸

주머니 뒤집어 털어 보이고

돌아서니 카페의 붉고 푸른 물

 

그만하면 신경도 죽었으련만

알뜰한 신문만 펴들면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네

 

몇 백 년이나 묵어 구멍 뚫린 고목에도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엄이 돋네

뿌리마다 썩지 않은 줄이야 파보지 않은들 모르리

 

 

통곡(痛哭)

 

큰 길에 넘치는 백의의 물결 속에서 울음소리 일어난다

총검이 번뜩이고 군병의 말발굽소리 소란한 곳에

분격한 무리는 몰리며 짓밟히며

땅에 엎디어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

땅을 두드리며 또 하늘을 우러러

외치는 소리 느껴 우는 소리 구소(九所)에 사모친다

 

검은 ‘댕기’ 드린 소녀여

눈송이 같이 소복 입은 소년이여

그 무엇이 너희의 작은 가슴을

안타깝게 설움에 떨게 하더냐

그 뉘라서 저다지도 뜨거운 눈물을

어여쁜 너희의 두 눈으로 짜내라 하더냐?

 

가지마다 신록(新綠)의 아지랑이가 되어 오르고

종달새 시내를 따르는 즐거운 봄날에

어찌하여 너희는 벌써 기쁨의 노래를 잊어버렸는가?

천진한 너희의 행복마저 차마 어떤 사람이 빼앗아 가던가?

 

할아버지여! 할머니여!

오직 무덤 속의 안식 밖에 희망이 끊긴 노인네요!

조팝에 주름잡힌 얼굴은 누르렀고 세고(世苦)에 등은 굽었거늘

창자를 쥐어짜며 애통하시는 양은 차마 뵙기 어렵소이다

 

그치시지요 그만 눈물을 거두시지요

당신네의 쇠잔한 자골이나마 편안히 묻히고저 하던 이 땅은

남의 호미가 샅샅이 파헤친 지 이미 오래거늘

지금에 피나게 우신들 한번 간 옛날이

다시 돌아올 줄 아십니까?

 

해마다 봄마다 새 주인은

인정전(仁政殿) 벚꽃 그늘에 잔치를 베풀고

이화(梨花)- 이 휘장은 낡은 수레에 붙어

티끌만 날리는 폐허를 굴러다녀도

일후(日後)란 뉘 있어 길이 설워나 하련마는

 

오오 쫓겨 가는 무리여

쓰러져 버린 한날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라!

덧없는 인생 죽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어니

한 사람의 돌아오지 못함을 굳이 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오오 그러나

철천(徹天)의 한을 품은 청상(靑孀)의 설움이로되

이웃집 제단조차 무너져 하소연할 곳 없으니

목메쳐 울고저 하나 눈물마저 말라붙은

억색(抑塞)한 가슴을 이 한날에 두드리며 울자!

이마로 흙을 비비며 눈으로 피를 뿜으며

 

 

풀밭에 누워서

 

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 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리까

 

바라면 바라볼수록

천리만리 생각이 아득하여

구름장을 타고 같이 떠도는 내 마음은

애달픈 심란스럽기 비길 데 없소이다

오늘도 만주벌에서 몇 천 명이나 우리 동포가

놈들에게 쫓겨나 모진 악형가지 당하고

몇 십 명씩 묶여서 총을 맞고 거꾸러졌다는 소식!

거짓말이외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말 같사외다

고국의 하늘은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무심하거늘

같은 하늘 밑에서 그런 비극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언땅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상팔자지요

철창 속에서라도 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이 명랑한 햇발을 쬐어 볼 수나 있지 않습니까?

 

논두렁 버티고 선 허자비처럼

찢어진 옷 걸치고 남의 농사에 손톱발톱 달리다가

풍년 든 벌판에서 총을 맞고 그 흙에 피를 흘리다니

 

미쳐날 듯이 심란한 마음 걷잡을 길 없어서

다시금 우러르니 높고 맑고 새파란 가을하늘이외다

분한 생각 내뿜으면 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 듯 하외다

 

 

한강의 달밤

 

은하수가 흘러 나리는 듯 쏟아지는 달빛이

잉어의 비늘처럼 물결 위에 뛰노는 여름밤에

나와 보트를 같이 탄 세 사람의 여성이 있었다

 

으늑한 포플라 그늘에 뱃머리를 대고

손길을 마주 잡고서 꿈속같이 사랑을 속삭이려면

달도 부끄럼을 타는 듯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렸었다

 

물결도 잠자는 백사장에 찍혀진 발자국은

어느 곳에 끝이 나려는 두 줄기 레일이던가

몇 번이나 두 몸이 한 덩이로 뭉쳤었던가

 

아아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모든 것이 꿈이외다

초저녁 꾸다가 버린 꿈보다도 허무하고

기억조차 저 물결 같이 흐르고 말려 한다

 

그 중에 가장 어여쁘던 패성의 계집아이는

돈 있는 놈에게 속아서 못된 병까지 옮아

피를 토하다가 청춘을 북망산에 파묻었다

 

‘당신 아니면 죽겠어요’ 하던 또 한 사람은

배 맞았던 사나이와 벌어진 틈에 나를 끼워서

얕은 꾀로 이용하고는 발꿈치를 돌렸다

 

마지막 동혈(同穴)의 굳은 맹세로 지내오던 목소리 고운 여자는

‘집 한 간도 없는 당신과는 살 수 없어요’라고

일전(一錢) 오리(五里) 엽서 한 장을 던지더니 남의 첩이 되었다

 

그들은 달콤한 것만 핥아가는 꿀벌과 같이

내 마음의 순진과 정열을 다투어 빨아가고

물안개처럼 내 품에서 감돌다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밤도 그 강변에 그 물결이 노닐고 그 달이 밝다

하염없이 좀 썰려 꺼풀만 남은 청춘의 그림자를

길로 솟은 포플라 그늘이 가로 세로 비질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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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저항시인 - 심훈 2015-04-17 0 3712
409 심훈 시모음 2015-04-17 2 5026
408 <등산> 시모음 2015-04-17 0 5114
407 <동그라미> 시모음 2015-04-17 0 3608
406 <자연> 시모음 2015-04-17 0 3776
405 <하루살이> 시모음 2015-04-17 0 3523
404 <흙> 시모음 2015-04-17 0 3509
403 <새> 시모음 2015-04-17 0 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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