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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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두팔을 펼치면 날개인것을 (조광명)
2017년 08월 19일 09시 29분  조회:179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단편소설
 

두팔을 펼치면 날개인것을


조광명

1.

검사를 받는 내내 안해는 멀쩡했다. 오히려 일 바쁜 사람에게 도움은 못 주고 페만 끼친다고 미안해했다. 그런 안해를 보며 홍은 또 한번 참 헛갈렸다. 괜히 멀쩡한 안해를 억지로 데리고 병원에 온건 아닌지 안해에게 약간 미안해지려 했다. 그러나 분명 안해의 증상은 더 심각해지고있었다.

어제 퇴근해 집에 들어섰을 때 홍은 현관에 놓인 신발장의 문들이 다 열려있고 그 안이 텅 비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묻지 않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신발장에서 부패한 냄새가 난다고,신발장안에 곰팡이들이 꼈다고 안해가 신발장 문들을 다 활짝 열어놨을것이고 신발장안의 신발들은 안해에 의해 다 버려졌을것이다.

-이젠 신발들이군. 도대체 다음번엔 어떤것들이 버려질가?
이젠 버려질것도 별로 없을것 같은 가장집물이였다. 그러나 몰랐다. 안해의 민감한 코에 의해서 언제 어느것들에게서 부패의 냄새가 감지되여 버려질것인지.


안해가 두통을 호소해온건 약 일년전부터였다.

홍이 이 도시에 와서 꾸린 작은 피혁제품제조업체에 함께 출근하며 제품의 출고전 품질관리를 꼼꼼히 체크해주던 안해는 일년전부터 갑자기 두통을 호소해오기 시작했다.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라서 본드사용은 필수적일수밖에 없었고 홍은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접착제를 다 국가 환경보호부문의 인증을 받은 환경보호제품으로만 구매해서 사용하고있었다. 뿐만아니라 생산라인작업실은 하루 24시간 환기시스템을 가동시키고있어서 실내작업하는 현장 작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그런냄새 같은건 전혀 맡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장근무하는 직원 그 누구도 본드냄새가 불편하다고 불만 같은것을 제출해온적이 없었다. 국가 표준 미달의 불량접착제를 사용해서 직원들의 건강에 해가 가게 할수는 없다는것이 오너로서의 홍의 기업경영륜리 최저기준이였고 안해 역시 이 몇년 동안 공장 현장라인에서 거의 직원들과 동고동락하고 지내면서도 한번도 불쾌한
본드냄새가 맡아진다고 이마를 찡그려 표현해온적이 없었다.

그러던 안해가 언제부턴가 본드냄새가 싫다고 이마를 찡그리기 시작했고 그런 증상은 어느날 두통으로 이어졌다.
-공장 울안에만 들어서도 본드냄새가 너무 강해서 숨이 콱콱 막혀요.
-태양혈이 팽창해 터질것 같이 툭툭 뛰고 뒤통수가 땡길 지경이예요.
-아 또 두통이 와요…
안해는 신경질적으로 공장의 모든 창문들을 활활 열어제꼈다. 그러고도 두통이 풀리지 않고 더 심해지자 공장과 가까운 공단내 약방에 가서 진통제를 사왔다.
-당신 본드품질 철저히 체크해봤어요?
언제부턴가 안해는 품질체크에 너무 민감해져있었다. 아무리 품질관리에 신경을 쓴다고해도 그러나 회사에 생기는 사고의 대부분은 품질문제때문에 생겼다.

원부자재 구매에서부터 완제품 출고에 이르기까지 사람손을 수십번도 넘게 거쳐야 하는 생산과정 어느 환절에서 구멍이 생기면 그건 곧장 제품의 하자로 이어졌고 그건 곧 완제품 페기로 이어져야만 했다. 공장으로서는 대단한 손실이 아닐수가 없었다. 생산과정중에 그 문제를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완제품으로 나와서 포장작업전에 진행되는 마지막 인스팩션단계에서 품질문제가 발견되면 그건 정말 환장할노릇이였다. 그러나 홍에게 경제적손실 같은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였다. 제품납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바이어로부터 쏟아지는 책망과 클레임, 그보다도 신용상실이 더 큰 문제였다.


제품 페기로 인한 경제적손실은 품질관리를 책임진 안해에게 그대로 스트레스로 이어지는것 같았고 안해는 그때마다 공장이 받아안는 손실때문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괜히 신경이 예민해지군 했다.


QC라인을 책임지고있는 안해로서는 그 모든 스트레스를 다 자기 책임으로 받아안고 삭여내는것 같았다. 손실때문에 가슴 졸이고 그 손실을 미연에 발견해서 차단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런 안해가 생단단계의 품질관리뿐 아니라 원부자재 구매에도 신경이예민해져있음을 홍은 잘 리해할수 있었다.


-우리 회사 초창기때부터 수많은 본드업체들중선정해서 그냥 꾸준히 납품 받아오던 업체야. 몇년사이 품질이 업그레이드되면 됐지.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본드문제로 상품검사에 걸리거나 세관검사에 걸린적이 없잖아? 본드문제로 바이어들로부터 클레임당한적도 한번도 없고 말야. 당신도 몇년 동안 본드냄새 싫다는 이야기 전혀 없다가 요즘 와서 왜 갑자기 그래? 당신의 후각 어느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긴게 아니야? 한번 큰 병원에가서 검사해봐.

그러나 안해는 그냥 참으며 스스로 약방에서 구매한 진통제로 뻗쳤고 더 날카로와진 신경으로 품질관리에 더 철저히 림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 두통증상이 심해져 오바이트로 이어지던 날 홍은 안해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에서는 온 하루 모든 최신 첨단설비를 다 사용해가며 이런저런 검사를 수도 없이 해대더니 결론은 아무 증상도 발견되는것이 없다는것이였다.


정상이라니 다행이였다. 병원 1층에서부터 6층까지 몇번이나 오르내리며 대기해 줄을 서고, 피를 뽑고, 소변을 검사하고, 처음 보는 최첨단 설비들앞에 서거나 그 설비들밑에 누워서 검사를 받으라 기진맥진해진 안해는 그러나 정상이라는 검사결과에 오히려 의아해했다. 그 정상이라는 결과를 이상한것이라고 했다. 심한 두통을 못 이겨 눈알이 빠질 정도로 오바이트할 정도인데 정상이라니… 홍도 병원의 검진결과가 믿어지지 않았다. 정상인 사람이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본드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교수라고 진찰비도 다른 의사들에 비하여 몇배 넘는 특진비로 받는 담당의사는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홍에게 간단히 한마디 했다.


-본드냄새에 민감하다면 환자를 출근시키지 말고 집에서 쉬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각종 의료기기들의 검사결과가 프린트된 종이 여러장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난 의사는 심드렁한 어조로 모든게 정상이라는 안해를 환자라고 칭하며 집에서 쉬라고 권고해왔다.


홍은 그날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안해의 요구를 무시하고 차를 병원에서 직접 집으로 몰고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며칠동안 홍은 아침마다 함께 집문을 나서려는 안해를 억지로 윽박질러 집에 떼여놓느라 언성을 높여야 했다. 집에만 돌아오면 멀쩡해지는 안해는 심심해 견딜수가 없다며 부득부득 공장으로 다시 나가겠다 했으나 홍은 제발 집에서 쉬며 사람속 덜 태워달라고 어르고 달랬다.

안해는 마지못해 홍의 말을 따랐고 홍은 안해가 담당하던 인스팩션 업무를 QC라인에 몇년간 근무한 녀성직원에게 맡겨 잘 처리해나가고있었다.그리고 안해는 가정주부로서의 배역에 충실하려 애썼고 홍은 안해가 일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본드냄새를 맡지 않으면 두통의 시달림에서 벗어날수 있을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였다. 안해는 본드냄새뿐이 아닌, 모든 냄새에 민감해져가고있었다.


1년사이 여러차례 발작한 안해의 냄새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그때마다 표현되는 안해의 과격한 행동은 안해를 완전 낯선 사람으로 만들군 했고 그런 안해의 모습은 마침 그때마다 공장에 터지는 여러가지 사고들로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홍의 마음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만들고있었다.


홍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듯 그 큰 신발장안에 달랑 자기의 신발만 넣고 거실로 향했다. 안해는 주방에서 한창 료리중이였다. 낮시간사이 신발장과의 전투를 벌였을것임에도 아무 일도 없은듯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있다가 들어서는 남편을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보내왔다.

안해의 이마에 질끈 동여져있는 머플러를 보며 홍은 오늘도 안해가 심한 두통을 앓았음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은 안해, 안해는 웬간한 두통은 홀로 진통제를 먹고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스스로 그 고통의 고비를 잘 넘겨주고있었다.

남편의 저녁퇴근시간에 맞춰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남편을 챙겨주는 안해의 사랑은 변치않고있었다. 홍은 웃는 얼굴로 안해와 눈길을 마주치고 지친 몸을 그대로 쏘파에 던졌다.

그리고 오늘아침 홍은 잠간 공장에 들려 하루 생산일정을 체크해 포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안해를 달래서 차에 앉혔다. 작은 두통이니까 괜찮다고, 잘만 치료하면 금방 나을거라고 위안하며 병원을 찾아 전번에 했던 검사들을 다시한번 쭈욱 받도록 했다.


여러가지 선진의료장비들을 리용해 진행한 검사결과는 역시 정상이였다.
정상이지만 두통이 있다니까 꾸준히 사용해보라며 의사가 다시 처방해준 신경안정제와 두통치료제 등 약을 병원 1층 약방에서 잔뜩 구매한후 안해를 집에 다시 데려다주고나니 벌써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2.


홍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차를 돌려 소방행정서비스기관으로 달렸다. 혹시 회의에 늦어지면 또 어떤 불리익을 당할지 알수 없어서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차를 달려 참가한 기업소방안전교육 회의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싱겁게 끝났다.곧이어 전번 소방안전검사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체들의 벌금납부가 이어졌다.


소방안전 교육은 명색을 위한 허울일뿐이고 진짜 목적은 “소방안전 블랙리스트”기업들로부터 벌금을 거두기 위한 회의임을 홍은 잘 알고있었다. 그 벌금을 내기 위해서 달려온것이였다. 회의에 불참하거나 지각해서는 절대 안되고 그리고 반드시 업주가 참가해야 하고 반드시 현금으로 벌금을 내야 한다고 못박은 회의통지였다.

며칠전 검사때 받은 4만원 벌금고지서와 함께 요구대로 현금으로 들고온 4만원을 돈다발 네뭉치로 내고 받은 령수증에는 벌금액이라는 항목 대신 기업소방안전전문가초청교육비 및 안전설비 종합세트비용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회계장부처리조차도 불가능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한장일뿐이였다.

회의장 좌석수로 어림짐작해도 오늘 회의에 참석한 업체수가 500여개는 될것 같았다.
20여분 회의에 2000여만원의 수입이 생기는셈이였다. 20여명 직원을 거느리고 날마다 피터지게 일하는 소형기업의 10년 매출액의 합계로도 감히 넘보지 못할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리윤액으로 따지려면 몇십년에도 이루지 못할 “순수 마진”이였다.
-토비같은 놈들…
속으로 이런 욕이 나갔으나 행정부문 갑앞에 을의 신세인 소형업체 사장인 홍은 그 욕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어쩜 행정부서들은 이번의 화재같은 사고들이 기업에 더 자주 발생하기를 바라는것인지도 몰랐다. 그 사고들마다가 행정부서들의 공공연한 기업갈취에 명분과 “합리성”을 부과해줄것이기때문이였다. 그리고 행정부서들은 자기들이 정한 관리규정을 따르지 않고 어기는 기업이 더 많기를 원하는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야 벌금을 때릴수 있으니까. 수입창출이 되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행정부문들이 수입창출단위로 변색되여 운영될 때 그 행정부문들의 감독과 령도를 받아야 하는 기업들이 허리를 펼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썩은 행정은 건강한 기업의 기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참 뜻하지 않게 당한 봉변이였다.
홍이 안해를 데리고 병원에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이닥친 소방안전검사였고 생산라인 관리자가 변명 같은것도 못해보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채 덜컥 받아안은 벌금고지서였다.


며칠전 홍의 공장이 위치한 공단과 10여키로 떨어진 공단의 한 공장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고 그 화재로 당직 근무중이던 직원 한명이 질식사당하는 사고가 터졌다. 그 소식은 이튿날로 주변 공장들로 쫙 퍼졌고 홍은 그때 속으로 대충 짐작했었다. 또 소방안전검사가 대대적으로 한번 진행되겠군.


그러나 홍은 별로 걱정될것이 없었다. 생산기업 공장건물 소방안전규정에 따른 소방안전시스템을 홍의 공장은 이미 다 갖추어놓고있었던것이다. 구정후 년초에 진행된 년례 소방안전검사에서도 아무 탈 없이 패스되였길래 걱정할게 없었다.


그날 그 검사팀을 맞이했던 관리자에 의하면 벌금의 리유가 공장에 비치한 소방장치가 이미 로후해져서 소방기능을 잃은것이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관리자가 올 구정후 새로 구매해서 비치한 장비들이라며 회계에게 가서 구매령수증까지 찾아다


보여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자기들의 검사를 경과하지 않은, 그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의 제품을 사사로이 구매해서 비치했길래 소방안전에 큰 우환이 있다는게 리유였다. 검사는 5분도 되지 않아서 끝났고 무작정 벌금고지서가 발급되였다.


무조건 벌금을 안기기로 작정하고 진행하는 불의습격식의 검사에서 기업이 피해갈 방법은 아무데도 없었다. 우에서 정한 각종 규제와 규정에 따라 업체들이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놓고있어도 그 열가지 규정외 림시로 벌금을 안길수 있는 리유를 백가지라도 더 만들어낼수 있는게 검사관들의 직업능력과 권한이였다.
-수업료 한번 또 멋있게 왕창 냈군. 이번달도 또 장부가 아주 마이너스로 가겠군…
또 한달 애끓이면서 뼈빠지게 일해서 거꾸로 밑지는 사업을 하고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속으로 허구피 웃고 차에 올랐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며 홍은 참고참았던 한마디를 드디여 뱉아냈다.


-에잇, 거지같은 놈들.
온 하루 거의 자리를 비운 공장에도 빨리 돌아가봐야 했고 홀로 집에 있는 안해도 걱정이 되였다.

3.


이번에 새로 뽑은 디자인으로 만든 샘플은 기대처럼 그 프레임의 옆선이 탄탄하게 나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디자이너와 샘플실 직원을 불러 원인을 분석하고있는데 전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에 뜬 전화번호가 안해의 전화번호임이 확인되는 순간 홍은 느닷없이 꿈틀해나는 가슴속의 당황함 같은것을 느껴야 했다.


홍은 미팅중이던 두 직원을 퇴근하라고 내보내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당신 빨리 집으로 오세요.
안해는 다짜고짜 홍의 귀가를 호소해왔다.
-응? 왜? 집에 무슨 일 있어?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사실 홍의 물음은 당신에게 무슨 일 있어? 였다. 애써 태연하게 물었지만 이미 홍의 가슴은 후두둑 뛰고있었다. 어투로 이미 홍은 안해가 또 발작했음을 알수 있었다. 이번엔 또 어떤것에서 자극을 받고 발작한것일가.


전번 신발장 사건후 안해가 거의 한달동안 두통을 호소해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였다.
그런데 좀 마음의 탕개를 늦추려고 하는데 또 걸려온 안해의 전화. 홍은 느닷없이 가슴이 꽉 막혀오는것 같았다.


-아, 미쳐, 이 냄새… 온 집안에 곰팽이냄새가 골똑 찼어요… 음식 썩는 냄새… 당신 들어올 때 슈퍼에 들려 세척제랑 소독수 사오는거 잊지 마세요.
-뭔 소리야, 당신… 또 두통이 와?
-머리가 터질것 같아요…


홍은 정신없이 차를 집으로 몰았고 안해가 사오라는 세척제와 소독수 사러 슈퍼에 들릴사이 없이 차를 주차하기 바쁘게 직접 집으로 올라가는 엘레베터에 몸을 실었다.


출입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 홍에게 안겨온건 너무나 뜻밖의 광경이였다.
안해는 주방에서 랭장고 문을 활짝 열고 그 안을 향해 선풍기를 돌리고있었다. 이미 랭장고안은 아무 음식물도 담겨있지 않은채 깨끗이 정리되여 새것처럼 닦여져있었다.


머리에 질끈 머플러를 동여맨 안해는 들어서는 홍을 보자 더욱 신경질적으로 선풍기를 랭장고앞으로 더 당겨 세워놓았다.


-온 집안에 썩는 냄새예요. 집이 다 썩고있어요…
안해는 못 찾고있던 분노의 표출구를 마침내 찾은듯 씩씩대고있었다.


막 투우장에 뛰여들려고 하는 투우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무것도 없는 랭장고안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정말이지 안해의 눈에는 뻘건 피발이 서있었다.
얼마나 두통이 심했으면 저렇게 안구 모세혈관까지 다 터졌을가…


홍은 그런 안해가 안스러워 안해를 품에 안아주고팠으나 독살스런 안해의 눈빛때문에 아무 행동도 감히 할수가 없었다.
-당신 이 선풍기 거꾸로 들고 랭장고 아래쪽 칸을 말리세요. 말려야 냄새가 빠져요…
안해는 홍의 손에 선풍기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싱크대우에 설치된 붙박이문을 열고 그안의 그릇들을 들어내렸다.
-그릇들에도 다 곰팡이가 끼였어요. 곰팡이냄새가 심하게 나요.


안해는 싱크대 수조에 물을 넘치도록 받아 그 물에 세척제를 아낌없이 섞었다. 내려놓은 그릇들을 그 물에 넣고 행주로 빡빡 문대여 씻기 시작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홍은 거의 망연자실 상태로 멍하니 안해가 하는 짓을 바라보기만해야 했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지를 빨리 판단하느라 안해가 넘겨준 선풍기옆에 멍때리고 서있었다.


안해는 홍에게 꽥 소리질렀다.
-당신 멍해서 뭘해요? 선풍기 거꾸로 들고 랭장고 아래칸을 말리라 했잖아요?
홍은 안해에게 조심히 물었다.
-당신 괜찮아?
-괜찮게 생겼어요? 집이 다 썩어나가는 판인데…


안해는 홍더러 주방에서 나가라고 지시했다. 씻던 그릇들을 활팽개치고 자신이 직접 선풍기를 거꾸로 들고 섰다. 선풍기 팬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랭장고아래칸을 향해 바람을 날렸다.

-다 썩고있어, 세상이 다 썩고있어… 모든게 다 부패하게 썩어가고있어…
안해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중얼거렸다.


홍은 안해의 몸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결전에 나선 투사의 모습이면 지금 선풍기를 거꾸로 든 안해의 저 결사적인 자세보다 더 전투적인 자세일가. 자칫 더 건드려선 안될 폭발 직전의 기운앞에 홍은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당신 뭐해요? 거실 바닥을 물걸레질이라도 하지… 바닥이 다 썩고있잖아요? 바닥 썩는 냄새 안 맡아져요?


거실바닥은 타일로 되여있었다.
홍은 차라리 집문을 박차고 나가고싶어졌다.
그날 밤 안해는 홍의 품에 안겨 울었다. 집이 썩고있는것 같다고. 옷장에서도 곰팽이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난다고… 옷장도 썩고있어서 래일 새거로 바꿔야 할것같다고… 온 집안에 풍기는 부패의 냄새때문에 미칠것 같다고… 세상이 다 썩고있다고… 썩고있는 세상이 무섭다고…

홍은 안해를 달랬다. 당신이 너무 민감해서 그렇다고. 며칠전 홍이 퇴근길에 사온 2.5리터짜리 식용유도 안해는 개봉하자마자 사용도 하지 않고 내다 버리라 하였다. 식당에서 사용하고 버린 기름을 다시 사용해 만든 띠꺼우유地沟油라고. 신선하고 달콤한 땅콩기름냄새가 아닌 썩은 냄새가 난다고 홍더러 내다버리라고 했다. 홍은 안해의 말을 무시할수 없어서 개봉한채 한방울도 사용하지 않은 기름통을 그대로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버리기 아쉬워 쓰레기통에 던져넣기전에 기름통 아구리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홍의 코에는 고소한 기름냄새만 가슴 뻐근하게 맡아졌다. 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금 산 기름을 통채로 버리고 다시 슈퍼에 가서 제일 비싼 올리브유를 사와야 했다. 안해는 그 기름도 백프로 순도 높은건 아니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지못해 사용하는듯 료리에 조금씩만 넣었다.


홍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해주며 안해에게 냄새에 너무 민감하면 이 세상을 살기 힘들다고 이야기해줬다. 가짜가 살판치고 불량품이 활개치는 세상에 당신 혼자만 너무 정품 코를 가져서 그렇다고… 그러면서 홍은 자기 코도 어쩜 안해의 코에 비하면 짝퉁코인지 모르겠다며 안해더러 홍 자기의 코 냄새를 맡아봐달라고 했다. 짝퉁코 냄새가 맡아지냐고… 그렇게 억지로 안해의 코에 자기 코를 대고 코끼리 맞대고 킁킁대며 안해의 입에 입맞추는데 성공했다. 드디여 안해의 울음이 멈추고 안해가 홍의 몸에 팔을 둘러왔을 때 홍은 참으로 오랜만에 안해의 옷을 벗겼고 그렇게 몸을 불태우던 중간중간 홍은 안해가 자기 몸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는 느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안해는 남편인 내 몸에서도 부패의 냄새를 맡고있는걸가?

그리고 그날 사랑놀음이 끝난후 안해의 샤워시간은 이전에 비해 배나 길게 이어졌다. 홍은 사랑뒤의 나른함보다도 몇배 더 심한 비애 같은것을 느끼며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었다. 부패의 냄새가 나는 남편과 한이불 덮고 잔다는것이 안해에게는 얼마나 큰 고역일가…

4.


캔톤페어 전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볐다. 전시회에 출품한 업체들과 세계 각지에서 메이드인차이나의 새로운 제품 정보를 찾아 모여온 무역회사와 바이어들로 전시장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상업 정보의 각축장이였다.


홍은 비록 이번 전시회에 부스를 임대해서 출품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자체브랜드를 런칭해 이런 국제급 전시회에 출품해서 전세계 바이어들을 상대로 무역을 해보아야지 하는 꿈이 있었다. 그보다도 당장은 중국 각지의 우수업체들이 참가하는 이런 대형 박람회에서 가죽제품의 세계적인 패션흐름 트랜드를 읽기 위해 어제부터 오늘 이틀째 공장 모든 업무를 관리자들에게 맡기고 이렇게 파주 캔톤페어 컨벤션센터에 몸을 담고있었다.


점심이 지나도록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전시장을 돌며 구경하다가 더는 걷기가 힘들어서 잠간 전시장 한쪽 코너에 마련된 커피숍에 앉아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전화가 울렸다.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회사에 일이 생겼을 때 관리자들 선에서 해결할수 있는 일은 될수록 관리자들이 방법을 강구해서 해결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온터라 이렇게 홍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공장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는 꼭 관리자들 차원에서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공장에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무슨 문제가 생겼지?
은근히 걱정되였으나 홍은 차분한 어조로 전화를 받았다.
재무담당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래일이 가죽원단 업체들의 결제일인데 회사 계좌의 잔금이 얼마 안된다는 내용이였다.
-오늘이 H무역회사에서 전번달 수입해간 물량에 대해 결재해줄 날이잖아? 그 금액이면 원단값 충분히 결제해주고도 더러 남을건데.
-H무역에 어제 이미 결제청구서를 넣었고 오늘 결제독촉 전화도 했습니다. 그런데 H무역도 해외바이어로부터 받은 신용장에 문제가 생겨서 은행결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리유로 이번달은 결제해줄수가 없다는 답변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이변이였다. 홍은 갑자기 뒤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에 전화기를 손에 든채 눈을 감고 목을 좌우로 둬번 움직였다. 그러나 머리속은 쉬지 않고 빨리 회전시키고있었다.


이런 경우를 처음 접하는건 아니였다.
생산업체에 항상 필요한건 류동자금이였다. 아무리 많이 생산하고 아무리 많이 출고하고 아무리 많이 수출해도 그것이 현금으로 빨리 이어져 회전되지 않으면 공장은 돌아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홍은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회사 계좌에 현금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있었다. 그런데 어제 직원들에게 월급을 발급하고 오늘 아까 전시에 새로 나온 새로운 자동화 설비 몇대를 구매하며 예약금으로 몇만원을 걸어놓는바람에 당장 회사 계좌가 거의 바닥나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오늘이 H무역의 회계결제일이여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일이였다.
열심히 만든 제품이 출고와 함께 현금으로 바꿔지는 경우는 없었다. 오더를 발주해오는 회사마다 다 결제조건이 있어서 짧아서 한달, 길게는 석달만에야 출고제품에 대한 결제가 이루어지는것이 업계의 불문률이였다. 그 결제일대로 결제가 이루어지면 그나마 다행이였다. H무역은 지금까지 한번도 결제일을 미룬적이 없이 꾸준히 좋은 합작관계를 이어오던 업체였다.


그런 업체가 난색을 표시해올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때문일것이였다. 믿어줘야만 하고 기다려줘야만 했다.


홍은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K패션은?
K패션은 근년래 국내 패션업계에서 두각을 내밀기 시작해 거족적인 발전을 자랑하는 대형업체로 향항증시 상장 준비중이라는 소문도 업계에 나돌고있었다. 홍의 회사는 업계에서는 아무 이름도 없는 작은 업체이지만, 그래서 아직 자체 브랜드 제품을 런칭할 정도는 못되지만 언젠가 자기의 브랜드로 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싶은 꿈을 가지고 품질관리를 꾸준히 해오고있었다. 그런 덕분에 작년부터는 국내 1선도시 일류백화점에만 백여개의 자체매장을 가지고있는 K패션으로부터 OEM 생산요청이 와서 그 오더를 받아 납품해오고있었다.


- K패션은 갑자기 국세국에서 세무조사가 들어와서 모든 은행업무가 다 동결되였답니다.
-뭐?


홍은 저도 몰래 목소리톤이 높아지는걸 어쩔수 없었다. 홍의 공장 생산량의 절반은 K패션에 납품되고있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 알아주는 일류기업인 대신 결제조건은 까다로워서 납품후 3개월을 결제일로 정해놓고있었다. 대형회사의 갑질이면 갑질일수도 있었지만 그런 대형업체들의 오더발주에 의뢰할수 밖에 없는 소형생산업체로서는 그 결제조건을 따라줄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석달치 결제액이면 소형제조기업인 홍의 공장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적지 않은 금액이였다.


-언제 발생한 일이야?
-국세국에서 며칠전에 K패션 총부 재무부에 갑자기 들이닥쳤대요. 그리고 곧바로 은행업무 동결처분이 내려졌고요…
그래도 믿겨지지 않아서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확실한거야?
-K패션 총부
재무부가 지금 야단도 아니랍니다. 재무부 총경리 리명박리사가 세무국에 조사받으러 불려가서 며칠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있다는 이야기도 우리 회사 결제담당인 박근혜양으로부터 직접 확인받은 내용입니다.
-음… 좀 심각하군…


혹시 향항증시 상장을 위한 기업정보공개내용을 작성하면서 전체 그룹 재무구조에 대한 회계조작이 있었을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기업정보공개내용을 거짓으로 부풀리는건 증시 상장을 노리는 회사마다 거의 진행하는 사전작업중의 한가지 “관행”임을 홍 역시 얻어들은 상식으로 알고있었다.

혹시 웃선을 잘못 찾았나? 증시 상장을 밀어줄 배경인물을 잘못 잡으면 저렇게 재수없이 세무조사에 걸려들수도 있는것이였다.


아무쪼록 K패션이 이번 위기를 잘 넘겨야 할건데… 홍은 K패션에 관한 더 불길한 소식이 더는 들려오지 않기를 바라며 저도 몰래 새여나오는 한숨을 느꼈다.


머리속에 떠올릴수 있는 업체들의 리스트를 재빨리 회전시켰다. 그러나 결제 프로세스에 갑자기 생긴 구멍을 메워줄 업체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찾아야 했다. 결제를 제때에 해주지 못해서 원단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여서는 절대 안되였다.


전화기를 다시 귀가에 대고 역시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상황을 알겠으니까 회계로서도 다른 대안이 있나 잘 검토해보고, 나도 될수록이면 빨리 회사로 들어가도록 할게.
홍은 샌드위치와 커피잔을 손에 든채 박람회장을 빠져나왔다. 차를 원단시장쪽으로 향했다.
원단시장행은 원래 오늘 스케줄에 계획 없던것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지켜오던 원단구매금액 결제시간을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뒤로 미룰수 밖에 없었다. 그건 자칫 원단공급상들에게 신용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수도 있는것이였고 원단공급업체앞에 신용을 잃는다는건 공장운영을 하지 말라는것과 같은 결과로 이어질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당연히 래일 회계가 원단공급업체들마다에 전화를 해서 량해를 구하고 결제일을 뒤로 미뤄달라고 사정해보겠지만 그러나 상황을 이미 보고받은 이상 사장인 자기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홍은 결단내렸다. 전화상으로가 아닌, 직접 방문으로 매장마다를 일일이 찾아서 돌며 량해를 구하고 원단의 지속적인 공급을 요청해야만 하는 상황이였다.


5.
이번엔 바퀴벌레였다.
아까 전화에서 안해는 홍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침실 옷장안에 바퀴벌레가 숨어있는것 같아요.
다행히 두통을 호소해오는것이 아니여서 약간 안도의 숨이 나가기는 했으나 그러나 홍은 안해의 목소리에서 두통을 호소해올 때보다도 더 큰 불길함을 감지해야만 했다. 가슴을 와당탕 치고 올리받치는 순간적인 고통의 관통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아무 일 아니라는듯 껄껄껄 웃음을 전화에 쏟아부어넣었다.
-아 그럼 사람 사는 집에 바퀴벌레 한두마리 함께 사는것도 정상이지… 그놈들도 사람 사는 집이니까 찾아들지 사람 없는 빈집이면 찾아들겠어? 그놈들도 좋은 사람의 따스한 인정이 그리웠던 모양이지 뭐. 당신 좋은 사람이잖아…
아빠트 엘레베터앞 복도에서도 그리고 주방에서도 바퀴벌레는 심심찮게 발견되군 했다.


아열대지방의 무더운 기후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쉽게 부패하게 했고 그래서 이 도시에서 바퀴벌레와 쥐를 발견하는건 일상 다반사였다.

안해도 집 주방에 가끔 바퀴벌레가 출몰하고있는걸 언녕부터 알고있었다. 바퀴벌레가 발견될 때마다 녀성 특유의 호들갑을 떨며 징그럽다고 진저리치군 했던 안해였다. 그런 안해가 꼭 마치 오늘 처음 바퀴벌레의 존재를 발견한듯 전화까지 해오는건 냄새에 과민반응을 보여오던 것 못지 않게 홍에게 미리 불안한 긴장감을 던져왔다.


-여보, 롱담할 때가 아니라니깐요. 정말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살고있는것 같단 말이예요.
당신 휴대폰을 귀 가까이 대고 잘 들어봐요. 사락사락하는 소리 들리지 않아요? 바퀴벌레가 옷장안에서 옷을 갉아먹는 소리라니깐요…

홍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숨이 컥 막히는것을 느꼈다. 다리맥이 풀리며 그 자리에 물앉고싶어졌다. 그러나 홍은 용케도 잘 버텼다.


-알았어. 나 화과산에 가서 손오공한테서 금방망이 얻어서 돌아갈테니까 당신은 아무짓 하지 말고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있어요. 나 저녁에 가서 금방망이 휘둘러서 그놈들 다 잡아서 납작하게 두드려줄테니까…


홍은 그렇게 롱담으로 안해를 달랬다. 그러나 가슴은 숨을 들이쉴수 없게 답답했다. 좁은 공간의 엘레베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전비상구 층계를 찾아 걸어내리는데 층계가 휘청휘청 하늘로 들리는것 같아서 벽을 짚고 한참 서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저녁에 집에 도착했을 때 안해는 멀쩡했다. 이미 저녁 밥상을 다 준비해놓고 방긋 웃으며 홍을 맞이했다.


그러나 안해에게 가방을 넘기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문을 연 홍은 경악하고말았다. 옷장에는 옷이 한벌도 걸려있지 않았다. 옷장안은 텅 비여있었다.
돌아보는 홍에게 뒤에 따라섰던 안해가 조용히 한마디 던져왔다.


-옷에 바퀴벌레들이 알을 너무 쓸어놔서 아까 다 내다버렸어요. 그리고 바퀴벌레 약을 사다 놨어요.
옷장안을 다시 들여다보니 과연 옷장안 바닥에는 가루약 같은것이 한층 뿌려져있었다. 고개를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바닥 모서리로 약가루가 쭈욱 선을 그으며 뿌려져있었다.


홍은 갑자기 가슴이 꺽 막혀오는 통증을 다시한번 느꼈다. 오늘만 해도 두번째였다. 그러나 이번 통증은 아까 가죽도매시장에서 느꼈던 통증보다도 훨씬 더 강한것이였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나며 어지럼증이 왔다. 이대로 쓰러지고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속을 스쳤다.

안돼. 쓰러져선 안돼. 무너져선 안돼. 하늘이 무너져도 넌 버텨야 돼.
홍은 자신에게 웨치며 팔을 뻗어 옷장에 기대여 섰다.
-당신 괜찮아요?
안해도 홍에게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급히 물어왔다.
-아, 괜찮아. 나 좀 시원한 물…
-얼음정수기도 버렸어요. 그 안에 바퀴벌레들이 둥지 틀고있어서요…
홍은 갑자기 안해를 그대로 안고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여내리고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너무 섬뜩한 충동에 스스로도 놀라며 홍은 아래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입속에 흘러드는 그 피비린내 나는것을 꿀꺽 삼키고서야 홍은 숨을 내쉴수가 있었다.
-잘했어. 밥 먹자…
홍은 웃으며 안해와 함께 식탁에 마주앉았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오늘밤, 오늘밤만 무사해라.


정말이지 래일은 안해를 데리고 정신과병원에 다녀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홍은 이러다가 내가 오늘밤 먼저 미쳐버리고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안해는 온 밤 자지 않았다. 남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심으로 왼손엔 손전등을 켜들고 오른손엔 스프레이 살충제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비추며 바퀴벌레사냥에 나섰다.


그런 안해를 말리지도 못하고 누워서 바라보며 홍 역시 온 밤 거의 실면했고 새벽에 잠간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홍은 침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혼곤히 잠들어있는 안해를 차마 깨울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만 무사해라, 오늘 하루만 무사해라…

6.
홍은 그렇게 빌며 조용히 집문을 나섰다.
비가 내리고있었다. 아열대기후라 여름 우기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스콜처럼 비가 쏟아지군 했다. 그러나 이미 초겨울에 들어선 건조기때 내리는 아침비는 뼈속까지 오싹하도록 차거운것이였다. 다행히 크게 내리지 않아 홍은 가방안에 항상 넣고 다니는 우산도 펼치지 않은채 주차장까지 걸어서 갔다.


차에 오르기전 홍은 차옆에 서서 비에 씻겨 시원해진 겨울의 아침공기를 몇모금 더 심호흡해 들이마셨다.
-그래, 괜찮을거야. 좋아질거야.
그랬다. 괜찮아져야 했다. 좋아져야 했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이렇게 아득바득하는것이 아니던가.


차에 시동을 건 홍은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카오디오를 켰다.
홍이 운전할 때 즐겨 듣는 뮤직전문방송채널에서는 미국 가수 스팅(Sting)이 부른 노래 프레절(Fragile)이 흘러나오고있었다.

Fragile
연약한

If blood will flow when fresh and steel are one
날카로운 쇠붙이에 살이 부딪쳐 흘린 피

Drying in the color of the evening sun
저녁의 태양 빛과 함께 굳어진다면

Tomorrow's rain will wash the stains away
래일의 비가 그 피의 얼룩을 지워주겠죠

But something in our minds will always stay
그러나 언제나 우리 맘속에 머물러있는 그 무엇

Perhaps this final act was meant
아마도 그 마지막 행위는

To clinch a lifetime's argument
우리 한평생의 론쟁을 끝내려는것이겠죠.

That nothing comes from violence and nothing ever could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고

For all those born beneath an angry star
불운을 타고난 모든것들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깨우쳐주죠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계속해서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쉼없이 비는 속삭이리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쉼없이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계속해서 비는 말하겠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트럼펫과 첼로와 기타가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선률에 실려 흘러나오는 보컬 스팅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그 뜻깊은 가사로 더욱 홍의 가슴을 후줄근히 적셔주었다. 홍은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걸 느껴야 했다. 억지로 눈을 슴벅이며 좌우로 흔들리는 와이퍼사이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래, 연약해선 안되였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둘러싸인 세상에 인간은 정말이지 너무나 연약한 존재였다. 저렇게 알수 없는 리유로 언제부터인가 무너져가고있는 안해와 그리고 그 안해옆에 강한 남자로 서있어주기에 너무 힘이 부쳐가는 요즘… 더 연약해져서는 안되였다.
홍은 량볼에 힘주어 어금이를 꽉 악물었다.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계속해서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쉼없이 비는 속삭이리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쉼없이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계속해서 비는 말하겠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눈앞 멀리 도로변에 새로 일떠서는 56층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홍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그래,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다 이겨내고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그 고층건물 20층에는 홍과 안해가 이 도시에 와서 지금까지 분투해서 쌓아온 결과물이 300평방메터
 면적의 사무공간으로 확보되여있었다. 날마다 치솟는 제조원가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제조업만으로는 더 버티기 힘들었다.

중국도 이제는 제조업이 갈 때까지 간 시점이였다. 이젠 제조업에서 벗어나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홍과 안해는 합의를 보았다. 홍은 그냥 제품제조를 책임지고 공장운영을 이끌어가고 안해는 사무실을 따로 내고 온라인상거래 부서를 새로 구성해서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직접 온라인에서 판매하는데 도전해보기로 했다. 만들기만 해서는 기업을 살려나가기가 점점 힘들었다. 팔줄 알아야 했다. 시장에서 팔줄 아는자가 살아남을수 있는자였다.

그래서 홍은 재작년부터 지하철역을 옆에 끼고 새로이 일떠서기 시작하는 오피스텔 고층건물을 눈여겨보다가 작년 년말 과감히 투자했다. 지금까지 공장을 경영하면서 모아온 돈을 탈탈 털어 선불금을 내고 십년 은행 할부 조건으로 300평방메터의 공간을 분양받았다. 그 건물이 한달전에 업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인계되였고 홍은 그 즉시로 사무실 인테리어에 들어갔다. 인테리어회사에 맡겼지만 그러나 업주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칫 눈속임 부실공사로 이어질수 있어서 홍은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씩 지나가는 길에 그 건물에 들려 인테리어 진행상황을 체크하군 했다.

인테리어가 끝나면 당장 사무기구를 갖추고 안해에게 그 사무실 키를 넘겨줄 작정이였다.


그런데 그 새로운 중임을 한몫 맡아줘야 할 안해가 지금 저렇게…
후유… 다시 터져나오는 한숨을 고개를 저어 털어버리며 홍은 그 고층 오피스텔 건물을 지나쳐 공장이 있는 공단으로 향했다.


7.
아직 채 끝나지 않은 스팅의 프레절 노래 후렴구가 딱 멈춰지며 높은 오디오소리로 전화벨소리가 울린건 그때였다. 블루투스로 휴대폰과 카오디오가 자동 련결되여있었던것이다.


홍은 전화벨소리에 훌쩍 놀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리유없이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온 하루 거의 전화기를 붙들고 싸우다싶이 해야 하는 홍에게 전화벨소리는 절대 기피대상이 되여서는 안될것이였다. 그러나 요즘 홍은 전화벨소리에 많이 민감해져있었다. 혹시 또 하는 마음속으로 미리 밀고 들어오는 불안함때문이였다.


네비게이션 액정 화면에 뜬 번호는 역시 혹시나 했던 안해의 번호였다.
-당신 미안해요… 아침도 챙겨드리지 못하고…
안해의 목소리는 멀쩡했다. 목소리로만으로는 안해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있는것 같았다.

혹시 안해는 간밤 자신이 온 밤 자지 않고 바퀴벌레사냥을 했다는것을 모르고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랬으면싶었다. 자신이 저질렀던 그 기이한 행각들을 다 기억하고있다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온 지금 안해 스스로도 자신의 그 이상한 행동을 리해할수 없어서 더욱 미치고싶어질것이였다. 홍은 그게 더 걱정이 되였다.
-아, 괜찮아… 당신 혼자 아침을 꼭 챙기고… 나 오늘 될수록 일찍 집에 들어가도록 할게
.
-그런데 당신 지금 어디예요?
안해는 느닷없이 홍의 위치를 물어오고있었다.
홍은 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응… 지금 막 우리 새로 분양받은 오피스건물을 지나고있어. 이십여분이면 공장에 도착할거야…
-아아악…
갑자기 카오디오에서 안해의 울부짖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신 그 건물 빨리 지나쳐요. 그 건물 지금 막 무너지려 하고있단 말이예요.
안해는 전화기 저쪽에서 막 다급히 소리지르고있었다.


아닌 밤중에 이 무슨 홍두깨 내미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도 홍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방금 지나친 그 건물을 뒤쪽 유리창너머로 얼핏 쳐다보았다. 멀어져가는 그 고층건물은 멀쩡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지금 막 새로 일떠선 건물이 왜 무너진단 말이야…
홍은 저도 몰래 흥분되여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건물 불량시공으로 지어진 위험한 건물이란 말이예요. 그 건물 지하받침 구조물이 무너지고있는 소리가 지금 막 들린단 말이예요.


홍은 갑자기 숨이 꺽 막혀오고 귀가 멍멍해나면서 오디오에서 터져나오는 안해의 그 다급한 고함소리가 메아리로 멀리서 맞혀 들려오는것처럼 들렸다.
-건물 멀쩡하니까 걱정 잡아매고 당신 잠 좀 더 자요… 당신 잠이 모자라서 그래요…


자신의 목소리도 먼 산에 부딪쳤다 되돌아오는 울림처럼 들려와 홍은 아뜩한 현기증을 느꼈다.


마침 옆골목으로 새여나가는 갓길이 보였다. 무조건 깜빡이를 켜고 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차들이 뜸해진 곳까지 어떻게 차를 운전했는지 모르며 홍은 브레이크 밟아 차를 세우며 왼손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숨이 막혀 막 터질것만 같은 가슴이였다. 운전석과 조수석사이에 있는 수납공간에 항상 비치하고있던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돼, 안돼, 숨을 쉬여야 해. 막힌 숨을 뚫어야 해… 눈앞이 캄캄해져오는 자신에게 홍은 악을 바락바락 쓰며 속으로 웨쳤다.


전화가 끊어진 카오디오에서는 다시 스팅의 프레절 노래가 후렴구로 반복되여 울려나오고 있었다.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계속해서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쉼없이 비는 속삭이리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쉼없이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계속해서 비는 말하겠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8.


그날 오후 홍은 날이 어두워지기전에 공장 사무실을 나섰다. 오랜만의 조기퇴근이였다.


아까 점심때부터 홍이네 공장이 위치한 블럭의 건물들에만 느닷없이 정전사태가 발생하여 홍은 아예 오후 휴업을 선포했다. 그리고 온 오전 걱정된 안해때문에 자신도 일찍 집으로 돌아가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홍은 손에 들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 그새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데 몇시간을 보냈다.


아침 출근길에 안해의 전화 사태로 갑갑해진 가슴은 온 하루 더해만 지는 불안감으로 더욱 숨을 들이쉬기도 힘들게 답답함을 호소해왔고 홍은 몸은 공장에 있어도 신경은 온통 안해에게로 향해져있었다.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안해에게 전화를 걸어 무사히 공장에 도착했음을 알렸었다.
그러자 안해는 전화기 저쪽에서 엉엉 울었다.
-당신이 안전하면 됐어요. 너무 걱정되였단 말이예요. 당신이 그 건물옆을 지나다가 무너지는 건물에 혹시 봉변이라도 당했을가봐…
-여보, 나 지금 멀쩡하잖아… 당신 혹시 옅은 잠속에 꿈을 잘못 꾼것일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건물 멀쩡해. 무너지지 않아.
-아니예요. 꿈이 아니예요. 지금도 그 건물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건물이 옆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인단 말이예요.


안해의 증상은 심각했다.
-당신 오늘 그 오피스텔 건물 부근에 절대로 다시 가선 안돼요. 우리 그 사무실 분양받은 거 포기하면 돼요. 미련 갖지 말아요. 사무실 인테리어 걱정되여서 다시 가보면 절대 안돼요.

홍은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안해를 둘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가고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홍은 두려웠다. 그렇게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는 안해를 대하면 자신이 먼저 미쳐버리고 말것 같았다. 그런 안해를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홍은 온 하루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꿈틀꿈틀 놀라면서도 그때마다 그 전화들이 안해에게서 걸려온것이 아님에 안도의 숨을 내쉬군 했다.

차에 올라 키를 돌려 시동을 걸며 홍은 하아… 하고 장탄식을 토했다.
막막했다.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 겁났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고있었다.


안해는, 안해는 오늘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있을것인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아 아니, 감히 상상을 할수가 없어서 홍은 그렇게 멍하니 운전대앞에 앉아만 있었다.
도대체 어데서부터 잘못된걸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렇게 일욕심 많고 살림욕심 많던 안해였는데.

그렇게 자기 몸 헤아리지 않고 일에 매달려 둘이 함께 뭔가 자그마한걸 하나 만들어놓고 함께 그걸 키워가는데 그렇게 열성을 부리고 보람을 느끼던 안해였는데.
그런데 그런 안해가 지금…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싶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안해가 미쳐가고있는 집을 내놓고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 미치자. 같이 미치자. 나도 당신과 함께 미쳐주마.


홍은 그렇게 중얼대며 파크위치에 두었던 스틱을 드라이브 위치로 당겼다.
한창 퇴근시간대여서인지 길에 차가 많이 밀렸다. 엑셀을 밟는 시간보다 브레이크를 밟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렇게 굼벵이 기여가듯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는 차안에 홍은 그냥 후유~ 후유~ 가슴이 꺼질듯한 한숨을 이어갔다. 그렇게 해도 가슴속은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분양받은 오피스텔 고층건물과 가까워질수록 그 한숨의 두께는 점점 두꺼워져갔다. 아침 안해의 전화때문일것이였다.

얼마를 기였는지… 멀리 그 건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물들기 시작하는 석양빛을 받아 찬란한 빛을 눈 시리게 반사하는 건물을 바라보며 홍은 더구나 억장이 무너지는듯한 한숨을 토해내야만 했다. 이 도시에 와서 분투한 그 모든 피눈물의 시간들이 응고되여있는 저 건물속의 300평방메터 되는 작은 공간, 그 공간에서 새롭게 새롭게 시작하려 했는데 그 공간의 주인공이 되여야 할 안해는 무너짐을 호소해오고있었다. 무너질거라고, 그렇게 쌓아온 모든 시간들이 허무하게 다 무너질거라고 호소해오고있었다.

아,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홍은 느닷없이 차의 속도를 높여 그 건물을 향해 돌진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안해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전에 자신을 먼저 파괴해버리는게 나을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나 그건 안될 짓이였다.


홍은 저앞에서 빛을 반사해 찬연한 건물을 바라보며 속으로 웨쳤다.
-여보, 다 잊고 다 버리고 우리 다시 시작해… 우린 아직 젊잖아, 충분히 다시 멋있게 시작할수 있다구.
홍은 안해를 향한 그 호소가 역시 자신을 향한것임을 깨달으며 등받이 깊숙이 묻었던 허리를 쭉 펴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홍은 그 찬연한 석양빛속에 하얀 날개가 펼쳐지는것을 발견했다. 건물 꼭대기에 하얀 날개가 우아하게 펼쳐지고있었다.
홍은 갑자기 숨이 꺽 막혀오고 오금이 저려왔다.


아니야, 잘못 본거야.
착시현상이겠지싶어 급히 왼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차창너머로 그 건물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잘못 본게 아니였다.
직감으로 홍은 웨쳤다.
안돼! 안돼!
안해였다. 안해가 하얀 치마를 입고 그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서있었다.
홍은 본능적으로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엑셀을 콱 밟았다. 차가 튕기듯 앞으로 치고 나갔다.
쾅! 하고 앞차를 들이박으며 홍은 터져나오는 에어백의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 홍의 눈에는 자기 차를 둘러싼 사람들 너머로 저앞에 고층건물에서 날아내리는 하얀 날개의 모습이 맞혀왔다.

-안돼!!!!
홍은 울부짖으며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옆 문을 뛰쳐나갔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리는 안해를 받아안으러 두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그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홍은, 안해가 날아내린 그 건물의 밑에서부터 화산연기 같은 먼지파도가 치솟으며 건물이 기우뚱 도로쪽으로 크게 기우는것을 감지했다.


새로 일어선 건물이 정말 거짓말처럼 무너지고있었다. 스스로 긴 목을 꺾어 무너지는 기린처럼 그렇게 옆으로 살풋이 기울어지며 쓰러지고있었다.
홍은 무너지는 그 건물밑으로 두팔을 펄럭이며 날아 들어갔다.

 

 

조광명 략력:

1986년부터 문학작품 발표 시작. 

시집 《좌선, 어느 30대의 아침》, 

수필집 《그리하여마침내 도시여》 출간. 

현재 광주 거주.
 
장백산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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