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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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겨울낚시1
2019년 07월 17일 09시 21분  조회:213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겨울낚시(1)

조광명

 

1.  ‘묻지 마’ 겨울데이트

남자는 차 안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차에서 내려 트렁크 뒤쪽으로 가 서있었다. 커다란 벤츠 SUV 차는 뒤꽁무니로 허연 김을 기세 좋게 토해내고 있었다. 그 흰 김이  남자의 청바지 아래부분에 부딪쳤다가 우로 연기처럼 피여오르며 바람에 휘휘 휘날려 흩어지는 것이 꼭 영화 속 어느 한 장면처럼 보여서 순간 문자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도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처럼 꽤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두 다리로 건강하게 서있는 남자가 부러웠다.

남자는 하얀색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나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환한 색이 오히려 너무 생기차게 보기 좋았다. 눈에 맞혀오는 환한 옷색갈이 문자의 기분까지도 밝혀주는 것 같았다.

그 눈 시린 하얀색 옷에 비해 오히려 짙은 회색 등산복을 입고 검은색 두툼한 캐시미어 머플러까지 두른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생기 없는 색갈로 둔중해 보이는 것이 아닐가 살짝 로파심이 들어 문자는 저도 몰래 고개를 숙여 머플러를 다시 다듬었다. 어제 남자가 전화 와서 오늘 옷을 최대한 가장 두터운 것으로 골라 입고 신발도 가장 따스한 것으로 골라 신으라고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서 든든하게 차려입은 겨울 옷차림이였다.

아직 남자와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괜히 얼굴이 약간 화끈거려나며 가슴 속에서 콩콩 작은 강아지 한마리가 뛰노는 것 같았다. 아 뭐 나쁜 사람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어데 나쁜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냥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를 한번 편하게 만나는 것 뿐인데.

급히 속으로 변명을 찾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제라도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옳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잠간 스쳤다. 그러나 문자는 자신의 그런 생각에 강하게 반기를 들고 뭐가 어때서? 괜찮아. 하고 더 강하게 자신의 오늘 외출을 두둔해 나서며 남자 쪽으로 걸어나가도록 두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주는 힘을 느꼈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문자를 발견한 남자의 눈빛이 금세 부드러워지며 얼어서 굳어졌을 얼굴이 환한 미소로 활짝 펴졌다.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춥네. 그래도 괜찮지?

추운 날 불러낸 것이 미안하다는 듯 남자는 사과의 뜻부터 전해왔다.

-아니요, 시원하고 좋네요.

문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 청량한 겨울하늘의 공기 만큼이나 시원하게 울려나오는데 움찔 놀랐다. 나도 연기기질이 있나 봐. 이렇게 씩씩한 체 대답할 줄도 다 알다니. 문자는 그런 자신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남자는 차 앞쪽 오른쪽 도어를 미리 열고 문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려줬다. 문자의 몸뚱이가 그래도 꽤 사뿐하게 올라앉기를 기다려 오른손을 뻗어 직접 안전벨트를 당겨 핸드백을 들지 않은 문자의 왼손에 쥐여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꽤 자상한 남자네…

집 실내처럼 이미 충분히 덥혀져있는 차 안의 공기가 방금 잠간 찬바람에 움츠러들려 했던 얼굴 근육을 다시 편안하게 간질여 펴주었다.

문을 닫아주고 차 앞쪽으로 돌아 운전석에 올라탄 남자가 자기의 몸에 안전벨트를 감고 운전대를 잡으며 어떤 버튼을 살짝 터치하자 차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껏 문자가 앉아봤던 차들과 다른 조작방식으로 출발하는 차였다.

그제야 차 실내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 대해서 별로 연구가 없어서 잘 모르긴 해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무척 고급스러웠다. 좋긴 좋은 차였다. 이 작은 시가지에 이런 차량이 몇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싸고 성능 좋은 호화급 차량이라는 건 예전에 동창들 모임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남자의 부인은 문자네 한 학과 한 학급 동창이였다. 단연 그래서 이 차량도 한때 동창들 입에 회자되였던 적이 있었다. 작은 시가지이지만 그래도 집값이 웬간히 오른 이 도시에 웬만한 아빠트 두채 값보다도 더 비싼 자가용을 굴리는 남편을 둔 동창을 녀자동창들은 부러움 반 질투 반 담아 입에 떠올리군 했었다.

-자 출발합니다. 어데로 모실가요?

차가 문자네 동네를 벗어나 도로에 들어서자 남자가 옆에 앉은 문자를 돌아보며 경어체로 익살스럽게 물어왔다. 그제야 문자는 어제 남자가 전화 왔을 때 오늘 목적지에 관해 물어오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오늘 낮시간을 몇시간 빌려도 괜찮냐고만 물어왔던 걸 떠올렸다. 남자의 물음에 작은 소리로 네,  괜찮아요. 하고 대답하기만 했지 어데로 가서 뭘 할 건지는 묻지 않았던 자신을 그제야 떠올리며 그렇게 쉽게 대답해버린 자기의 어떤 내면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약간 어색해났다. 어제는 왜 묻지 못했을가, 무슨 일이냐고, 어데로 갈 거냐고…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을 왜 묻지 못하고 그리 쉽게 대답했을가.

왜 그리 못나게 남자가 일방적으로 약속해오는 대로 “좋아요”만 대답했댔을가. 쉬운 녀자처럼. 기다렸던 녀자처럼.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데 괜히 부끄러워지며 뭐라고 대꾸할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자의 입에서는 어느새 다른 엉뚱한 대답이 부끄러움이나 궁색함 같은 것을 하나도 담지 않은 목소리로 위장되여 튀여나가고 있었다.

-그니까,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궁금했고 그 궁금함이 지금 이 순간 더 궁금해져서 꽤나 재밌다는 어투였다.

추운 날이지만 따스하게 미리 가열되여있은 차 시트의 온기가 엉덩이로부터 노긋하게 온몸으로 올리퍼지기 시작해서일가, 마음도 함께 많이 느긋해졌다.  

-그럼 추운 날이니까 더 추운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자는 이번에도 말끝에 경어체를 사용하며 아직은 비밀을 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어투로 신비스럽게 내뱉았다.

몸이 등받이 쪽으로 밀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 차는 이미 저만치 앞에 달리던 차를 왼쪽으로 추월해 앞으로 튕겨나가고 있었다. 이틀 전 눈이 적지 않게 내렸는데 도심 속 아스팔트길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차량이 별로 많지 않아 뻥 잘 뚫린 포장도로가 예전보다 많이 넓어진 것처럼 앞쪽 시야가 확 트이여서 문자의 가슴도 시원히 열리는 것 같았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먹거리골목도 지나고 다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한적한 도로로 차가 접어들었을 때 문자는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데로 가는 거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문자의 의중을 읽었는지 왼손을 핸들에 올려놓은 채 느긋하게 앞을 보며 운전하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문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멀지 않아. 시내를 벗어났으니까 이제 20분 쯤 더 달리면 도착해.

역시 목적지가 어딘가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전처럼 돌아가 편하게 말을 놓고 이야기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문자도 고개를 끄덕여 웃어주었다. 무슨 꿍꿍이속이 이리도 깊지?

아무려나… 오늘은 그냥 바퀴 따라 굴러가는 인생이 되는가 보다.

 

몰라도 좋았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도 목적지를 알고 달려온 게 아니였다. 잘되겠지, 힘든 시간은 끝나겠지, 더 나아지겠지, 태여났으니까, 사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살다 보니 웃는 날도 많고 우는 날도 더러 있으면서 지금 이때까지 벌써 60년 넘게 살아오고 있었다. 이제 더 살아가야 할 나머지 인생은 어떤 것일가는 더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궁금해 한다고 바뀌고 해결될 건 하나도 없었다. 하물며 옆에 앉아 차를 몰고 있는 남자는 문자보다도 인생을 몇년은 더 살아온 인생 선배였다.

지금 차 안에 두사람중 한사람은 목적지를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그중 한사람은 목적지를 잘 알아 헛길 달리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곧장 잘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함께 길에 오른 이상 믿고 함께 달려가주면 될 것이였다. 그 상대가 누구든.

지금 달리는 것도 오늘의 삶이고 도착해 내릴 곳 역시 오늘의 삶이 펼쳐지는 곳일 것이다. 그것만 믿으면 되였다.

-오빠랑 함께 진짜 오랜만이네.

-그래, 한 40년 되였지?

어렸을 적 문자와 남자는 원래 한 동네 아래웃집에 살았었다. 남자는 문자의 오빠 친구였고 동네서 키꼴이 제일 장대하고 덩치도 우람져서 중학교 때 현성에 있는 체육학교에 권투 특기생으로 뽑혀갔다. 후에 문자네가 현성으로 이사하면서 주말이면 늘 문자네 집으로 친구를 찾아 놀러 왔고, 그때 문자 눈에 남자는 참으로 다부지고 훤칠하게 멋진 오빠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때 잠간 남자답게 어깨가 떡 벌어진 오빠 친구를 작은 가슴 활랑이며 쳐다보기도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던가 대학교에 붙어서 지금의 남편이 된 한 학급의 남학생과 련애를 시작하면서 그렇게 덩치 크고 멋졌던 오빠의 친구는 문자의 가슴에서 잠간 들어오려 했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증발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되였겠죠…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근데 문자 너, 어렸을 적 모습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거 알고 있어?

-그래요? 간직하고 있어선 뭘해요? 이젠 늙어서 주름살 주글주글한 로파가 다 되여가는데.

저도 몰래 고개를 기웃해 앞쪽 천정에 매달려있는 백미러에 눈길이 가며 그 속에 비쳐진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였다.

-꼭 혼자 늙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그럼 나는 뭐 안 늙냐. 하긴 우리 다 늙었지. 아니야, 그래도 넌 그냥 어릴 때 귀여운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귀여웠던가 내가…

문자는 어렸을 적처럼 지금도 그냥 귀엽다는 남자의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차는 이제 차량이 다닌 바퀴자욱 두줄로만 흙모래가 드러나 있고 다른 곳은 흰눈으로 덮여 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2.  얼음호수 우에 작은 궁전 하나

남자가 차를 세운 곳은 그렇게 몇분 달리던 비포장도로에서도 오른쪽으로 새여나간 좁은 흙길로 몇분 더 달려서 도착한 황량한 들판 같은 곳이였다.

-자,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남자가 버튼을 눌러 안전벨트를 풀며 다시 출발할 때의 그 익살궂은 표정을 얼굴에 피워올렸다. 계기판 아래 수납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서 두툼한 장갑을 꺼내여 문자에게 넘겨주었다.

-끼고 온 그 장갑, 얇아서 손이 시려 안될 거야. 그 우에 이걸 한층 더 끼면 많이 따스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어떤 버튼 하나를 눌렀다. 뒤쪽에서부터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들어오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차량 백도어가 자동으로 우로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이 황량한 벌판에… 이 추운 날… 뭘하러…

의문이 들었으나 묻지 않고 머플러를 꼭 다시 여몄다.

그러건 말건 남자는 차에서 내려 차 뒤쪽으로 가더니 미리 실어놓았던 배낭 같은 커다란 짐 두개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자가 마지막으로 손에 든 건 끝이 창끝처럼 뾰족하게 날이 서있는 길다란 금속체였다. 어렸을 적 많이 보아왔던 물건이였다.

어렸을 적 집에도 저런 게 하나 있었던 것 같았다. 거의 자기 손목 만큼 실하고 길이가 자기 키보다도 더 길게 큰 그 무거운 쇠몽둥이 같은 것을 아버지가 가뿐하게 손에 들고 겨울 뒤간에 얼어붙은 배설물들이랑 쾅쾅 곡괭이질 하듯 두엄장처럼 떼여내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걸 뭐라 하던가? 토박이말로 빙창이라고 했던가 쇠창이라고 했던가. 문자는 그냥 쇠창이라고 불렀던 것 같이 기억되였다.

차키에 있는 버튼을 눌러 백도어를 잠근 남자가 차에서 내려 옆에 다가오는 문자의 손에 그 쇠창을 넘겨주었다.

-잠간 이걸 들어줘.

배낭을 두개 량손에 들더니 옆에 약간 올리솟은 둔덕 우로 올라섰다.

-눈이 신발안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내가 디뎠던 발자욱 그대로 밟고 따라와.

그렇게 성큼성큼 걷는 남자 뒤를 문자는 코 꿰여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졸졸 따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추운 날, 눈 덮인 황야. 인적 없는 이 황량한 들판을 걷는 두 늙은 남녀의 모습이라니… 문자는 스스로도 지금의 이 상황이 꼭 극중의 어느 한 장면인 것 같아서 못내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몇십메터 쯤 걷자 눈에 덮였지만 그래도 번뜩번뜩 얼음날들이 보이는 겨울호수가 왼켠에 나타났다. 남자는 그 호수를 향해 낮은 언덕을 내려갔다.

아…

문자는 이제야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혹시 저 겨울호수에 얼음구멍을 내고 산소를 찾아 그 구멍으로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그물로 건지러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어렸을 적 집에서 학교를 오가는 길옆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는 그 호수 우에서 얼음지치기도 놀고 썰매도 타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어서 잘 다져진 흙길로 걷지 않고 일부러 그 호수우를 가로질러 걸으며 학교를 가는 아침이면 오빠는 호수 옆 마른 풀숲에 숨겨두었던 커다란 돌멩이를 찾아들고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호수 썩 안 쪽으로 걸어들어가 두텁게 언 얼음을 쾅쾅 두드려 댔다. 열번, 스무번 찧었던 곳을 자꾸 찧으면 얼음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을 둘레 두뼘 쯤 되게 더 넓혀 뚫고 오빠는 맨손으로 그 얼음구멍에 떠있는 얼음조각들을 건져서 눈밭에 던졌다. 그 때 쯤이면 개털모자를 쓴 오빠의 이마에서 흰 김이 몰몰 솟아올랐다. 다시 그 돌멩이를 마른 풀숲에 감추고 돌아와서 문자 손에 들려 있던 책가방을 받아 어깨에 메면서 오빠는 성취감이 넘치는 뿌듯한 목소리로 말하군 했다.

-저녁에 돌아올 때 보면 저 구멍에 물고기들이 잔뜩 얼어붙어있을 거야. 그거면 오늘저녁 맛있는 반찬이 돼.

정말 그랬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얼음구멍을 찾아가 보면 신기하게도 손바닥 만한 붕어랑 버들치들이 주둥이를 우로 향하고 벌린 채 다닥다닥 얼어붙어있었다. 꼭마치 오빠가 그 얼음구멍에 대고 물고기들아 이 곳에 집합해라 하는 주문을 걸어놓은 듯이 열마리, 스무마리도 더 되게 촘촘히 얼어붙어있던 물고기들. 낮 사이에는 밤 사이보다 얼음이 덜 얼어붙어 아침때보다 얼음을 까는 돌멩이질이 훨씬 쉬웠다. 오빠가 손을 넣어 건져서 눈밭에 던지는 물고기들을 주어서 더러 아직 대가리에 붙어있는 얼음을 털고 탁탁 눈까지 털어 미리 준비했던 주머니에 주어담는 건 항상 문자의 몫이였다.

잊고 있었던 그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문자는 신기했다. 그 때 그 오빠는 반년 전에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지금 문자 앞에는 그 오빠의 장례식장에서 몇십년 만에 다시 얼굴을 대했던 어릴 적 동네 오빠가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호수 중앙쯤 되는 곳에 이르자 남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바람에 날려 눈이 아직 둥지를 틀지 못했는지 투명하게 얼음이 드러나 있는 곳이였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투명한 얼음이였다. 미끌어져 넘어질가 몸을 낮춰 조심하며 문자는 얼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얼음 아래로 썩어가고 있는 듯 생기를 잃고 축 처진 수초들이 보이고 그 수초들이 뿌리를 박고 있는 검은색 흙모래 바닥이 다 내려다 보였다.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얼마 없이 얕은 호수였다.

-자, 도착했습니다.

-겨울 물고기잡이 하려구요?

-그래. 이젠 눈치챘구나. 날씨가 좀 춥긴 하지만 오랜만에 재밌지 않겠어?

-이렇게 얕은 물에 물고기들이 있겠어요?

-옛날엔 호수마다 물이 넘쳤는데 지금은 시골에도 물이 많이 줄어서인지 깊은 호수가 별로 없어. 얕아도 물이니까 물고기들은 놀고 있겠지 뭐. 설마 다 얼어죽기야 했겠어?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더니 그중 한 배낭을 열고 그 안에서 잘 접힌 오렌지색 천 한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세뼘 쯤 길이로 꺾어 한웅큼 묶어 담고 있던 새끼손가락 굵기의 쇠줄토막 같은 것도 꺼내들었다.

-문자 너 춥겠는데 텐트부터 치자.

남자는 그 오렌지색 천들을 펼쳐 땅에 펴고 꺾어져 있던 쇠줄토막 같은 것을 펴서 한데 이어 길게 만들었다.

문자가 옆에서 거들자 금방 투명한 비닐창문까지 달린 텐트가 완성되였다. 눈 덮인 얼음강판 우에 오렌지색 작은 ‘집’이 생겨났다. 남자는 그 안에 두툼한 방석까지 넣어주었다.

-자, 우리 문자녀사님을 이 바람막이 겨울궁전 안으로 모십니다.

오른손으로 지퍼가 달린 ‘앞문’을 들어 열고 어서 안으로 드세요 하는 포즈를 취했다.

남자의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익살스런 행동이 재밌고 우스웠으나 문자는 선뜻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색했다. 아무 인적 없는 이 허허벌판에 늙은 몸이지만 그러나 달랑 남녀 단둘인데 잠간새 만들어진 ‘집’ 그리고 녀자더러 그 집안으로 들어가라는 남자, 들어가면 꼼짝없이 잡히고 말 신세가 되고 만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건 아직 마음속에 녀자로서의 방어본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이였을가. 아직 내게 남자를 찌를 가시 같은 것이 남아있기나 한 걸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 들어가겠다고 피해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서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문자를 보며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들어가면 범에게 잡혀 먹힐가봐 겁나셨구나. 호랑이래도 이젠 이 빠진 호랑이니까 무서워 마세요. 호랑이굴 아니니까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세요.  

문자의 마음을 다 읽고 있다는 듯 골려주었다. 그 호탕한 웃음과 롱담은 문자의 어색함을 풀어주는 묘한 전염성을 띠고 있었다. 문자도 덩달아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아니요, 왔으면 함께 움직여야죠. 나도 겨울고기 어떻게 잡는지 알아요.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고 문자는 명랑한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목소리로 자신을 해방시키자 괜히 기분이 들떠지며 진짜로 방금 전까지도 예상 못했던 겨울 물고기잡이에 문자도 이젠 적극적으로 참여해 즐기고 싶어졌다. 참으로 몇십년 만인가. 추워서 손발이 시리고 코등이 얼어들고 머리에 두른 수건에 흰 성에가 두툼히 앉아도 즐겁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겨울 물고기잡이.  

-아직은 문자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들어가 앉아있어. 옷 속으로 한기가 배여들면 추우니까 아직 몸이 추워지기 전에 어서 들어가.

달래듯 문자의 어깨를 다독여 텐트 안으로 밀어넣었다.

별로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같았는데 두겹으로 만든 것이 튼튼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는지 텐트 내부는 생각보다 바람기 한점 없이 아늑했다. 찬바람이 직접 얼굴을 덮쳐오지 않고 옷 속으로 파고들지 않아 좋았다.

문자가 들어가 앉자 남자는 다른 한 배낭에서 담요 하나까지 꺼내여 문자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젤리 같은 내용물이 들어있는 손바닥 크기의 비닐 포장물을 두개 꺼내더니 문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핫팩이야. 두 손으로 힘주어 주무르면 금방 따스해 날 거야. 그걸로 얼굴도 덥히고 손도 덥히고 해. 난 얼음구멍을 끌게.  

남자는 문자가 눈판 우에 내려놓은 쇠창을 주어들더니 텐트 앞 둬메터 쯤 되는 곳의 얼음을 묘준하고 높이 들었다 힘있게 내리박기 시작했다.

탕, 탕…

창끝이 얼음을 내리찍을 때마다 호수를 두텁게 덮은 얼음 전체가 다 꿈틀꿈틀 놀라 잠에서 깨는 듯 쩌렁쩌렁 청청-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크게 울려퍼졌다.

문자는 남자가 알려준 대로 핫팩을 두 손 안에 주물렀다. 진짜 금방 따스해 났다. 세상에 신기하게… 별난 게 다 있었다. 문자는 그 핫팩을 얼굴에 댔다. 따스한 온기가 금방 가슴 속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커다란 덩치대로라면 그리고 한때 주먹이 세기로 소문났던 남자로 보면 너무나 독단적이고 데면데면할 것 같은데 답지 않게 너무나 자상한 남자였다. 문자의 의사 같은 건 묻지도 않고 행선지를 혼자 정하고 오는 길 내내 알려주지도 않고 이 황야의 얼음판 한가운데 훌 ‘던져놓은’ 건 좀 독단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독단’도 문자에게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한 깜짝이벤트 내용으로서의 준비된 ‘잔꾀’였다면 충분히 그 ‘독단’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줄 만했다.

문자는 그 독단으로 이렇게 자신이 겨울텐트 안에 방석 깔고 담요를 덮고 앉아 예전에 누려보지 못했던 ‘호강’을 누리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설화 속에 나오는 백설공주인들 이런 호강을 누려보았을가. 실감이 나지 않아 혹시 자신이 지금 비현실 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문자 앞에 두 다리를 튼실하게 벌리고 우뚝 서서 쇠창으로 얼음을 힘차게 내리찍고 있는 남자는 문자에게 이 모든 것이 믿어도 좋은 현실진행형임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남자의 두 다리가 지금 이 호수 우의 하늘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처럼 튼튼하게 보여 너무 부러웠다.

드디여 남자의 쇠창이 두터운 얼음층을 뚫고 구멍을 내기 시작했는지 남자는 다시 허리를 숙여 가방에서 그물조리를 꺼내들었다. 그 그물조리에 방금 깬 얼음들을 담아 건져 옆의 흰눈 우에 부어 던졌다.

-그 정도 크면 이젠 됐지 않아요?

앉아있기 심심해진 문자의 입에서 ‘잔소리’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치? 이 정도면 되겠지?

-오빠가 힘들면 내가 도와드려요?

-네가? 하하하, 쇠창이 배 끌어안고 웃다가 부러지고 말겠다.

남자가 쇠창을 지팽이처럼 짚고 서서 문자를 내려다 보며 껄껄 웃었다. 허연 입김이 남자의 입에서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다시 쇠창을 들어 몇번 힘차게 내리찍더니 남자도 힘들었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쇠창을 옆에 던졌다.

-고기들이 안에 노는 게 보여요?

-아니, 아직 먹이를 던져주지 않았는데 벌써 모이겠어?

-먹이를 던져줘야 모여요?

-그럼. 먹이를 안 주는데 고기들이 왜 모여? 먼저 뭔가를 줘야지. 고기들도 인간들과 꼭같애. 공짜에 약해요.

남자는 높임말과 낮춤말을 맞춤하게 잘 섞어 전혀 어색함 없이 사용했다.

말을 하며 남자는 텐트 쪽으로 걸어와 텐트 옆에 눕혀놓았던 배낭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찾아서 꺼내들고 다시 얼음구멍 쪽으로 갔다. 봉지에서 가루 같은 것을 한줌 꺼내여 방금 만든 얼음구멍으로 흘려넣었다. 문자는 그것이 고기들을 유인해 올 고기밥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다시 텐트 쪽으로 오더니 가방에서 앙증맞게 생긴 낚시대 두개를 꺼내들었다.

아, 산소를 찾아 얼음구멍으로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그물로 건져서 잡으려는 게 아니구, 얼음구멍에 낚시를 드리워 고기를 낚으려 하는 것이였구나.

문자로서는 처음 해보는 겨울낚시여서 부쩍 구미가 동했다. 륙십이 넘은 가슴에 동심이 다시 파릇파릇 살아나려 하는 것 같았다.  

-자, 이젠 슬슬 본격적으로 낚시준비 해봅시다.

이미 방석에서 엉치를 떼고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온 문자에게 아이들 놀이감 같은 짧은 파란색 낚시대 하나를 넘겨주며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문자는 그 낚시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 낚시대가 어쩜 이렇게 앙증맞게 귀여울 수가 있지? 아기낚시대, 귀여운 아기낚시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낚시대에 감겨져 있던 낚시줄을 풀자 겨우 50센치도 안되게 짧아보였다. 그래서 더욱 장난감처럼 보였다. 문자의 가슴에 대뜸 그 낚시대 색갈 같은 파란 물이 들었다. 문자는 아기낚시대를 든 아기가 되여 아기물고기들과 놀고 싶어졌다.

어제 남자의 전화를 받고 무조건 네 하고 응대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며칠 전 남자를 병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그렇게 련락처를 주고받으며 미리 오늘의 이런 얼음구멍 겨울낚시질을 예견하고 이 며칠 동안 이 남자의 전화를 기다렸던 것일가.

 

3.  녹쓸어 삐꺽거리는 몸뚱이인 것을

어제아침까지만 해도 그랬다. 일어나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전기를 누른 후 남편 몸을 닦아줄 더운 물을 받으려고 순간온수기가 설치되여 있는 화장실로 향하며 문자는 저도 몰래 바지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여 혹시 그 사이 미확인 전화가 없나 확인해 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누구의 련락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아버지 건강이 걱정되여 문안전화를 드문드문 해오는 아들과는 어저께 통화했으니까 며칠 내로 다시 전화 올 일은 없을 거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자 나흘 전 병원 문앞에서 마주쳤던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데 약간 놀랐다.

내가 지금 정말 그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걸가?

-며칠 내로 련락 꼭 할 거니까, 만나서 식사도 함께 하고 그래.

나흘 전 병원 문앞에서 마주쳤을 때 련락처를 달라고 하며 그 남자가 했던 말을 아직 머리속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다시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문자는 입가에 쓴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귀가에 얇은 여운의 보호막처럼 달라붙어 잘 털어지지 않는 건 이상했다.

몇십년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남자였다. 물론 그 사이 매스컴을 통해 사진으로 더러 얼굴모습을 보고 그 남자의 부인이 대학동창이여서 그 동창 부부에 관한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들어오긴 했지만 정작 몇십년 만에 다시 얼굴을 본 건 반년 전에 세상을 떠난 오빠의 장례식장에서였고 그리고 그 후 반년 동안은 역시 서로 래왕 없이 지내오던 사이였다.

그런 남자를 나흘 전 우연히 병원 문앞에서 마주쳤고 남자의 손에 약을 가득 담은 비닐봉지가 들려있는 것을 보고 문자는 얼떨결에 물었다.

-오빠가 병원에 웬 일이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아님 누가?

머리 속에 얼핏 남자의 부인 모습이 떠올랐으나 딱 집어서 물으면 결례가 될가봐 그냥 스쳐지나가듯 물었다.

-그냥 내가 좀 불편해서.

-세상 사람들 다 앓음자랑 해도 오빠는 건강해야죠. 오빠가 아프다면 누가 믿겠어요?

-세월 이기는 장사 있어? 나도 이젠 약병과 친해질 나이가 됐지. 늙으면 약보따리 안고 산다는 말 있잖어?

남자는 서글픈 내용인데도 씩씩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남자는 오늘은 시간이 안되니까 후에 보자고 하며 문자의 련락처를 요구했었다. 그래, 며칠 내로 꼭 련락을 해오겠다 했었지. 어쩜 흘리듯 그냥 인사치례로 했을 수도 있는 남자의 말을 진짜처럼 믿고 련락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참 어이없이 생각되였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걸 함부로 쉽게 흘리며 다닐 남자는 절대 아닐 것이였다. 오빠의 친구였던 동네 오빠가 언제 문자의 가슴에 믿음이라는 두 글자로 각인되였는지 문자도 알 수 없었다.   

거울 속의 녀자는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염색을 한 지 아직 두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월의 진실은 염색으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시위를 하는 듯 어느새 다시 하얗게 밀고 올라온 뿌리부분이 그 우로 검게 염색되여진 머리칼들을 비웃으며 유난히 눈에 밟혀왔다.

문자는 그 하얀 색갈 우에 지금 당장 치솔에 물감을 묻혀서라도 검은색을 입혀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긴 머리칼 몇오리가 어지러이 감겨진 채 세면대 옆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얼레빗을 손에 들었다. 엊저녁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웠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까 대충 손에 물을 묻혀 얼굴과 목만 적시고 아직 머리도 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호-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도 힘주어 내쉰 것이 아니라 꼭마치 세월의 먼지와 앙금이 잔뜩 가라앉아있던 생기 없던 호수에서 거품 하나가 맥없이 솟구쳐 오르듯 그렇게 가슴 속 밑바닥에서 꾸역꾸역 밀려올라온 것이였다. 올라와 목구멍에 답답하게 걸려있는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벌려 호- 하고 그 거품 같은 것이 가고파 하는 길로 사라지도록 내보내줬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시도 때도 없이 하루에도 수없이 그렇게 꾸역꾸역 리유없이 크르륵 거품 같이 올리솟는 한숨이였다. 그걸 굳이 자기 귀에도 거슬릴 정도의 소리로 내보내지 않고 꾸욱 눌러도 될 것이겠건만 그렇게라도 내보내지 않으면 정말 가슴속이 짙은 연기 같은 것으로 가득 들어찬 것 같이 답답해서 참다가 정말 가슴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 하나가 가슴밖으로 툭 부러져 튀여나가며 그대로 가슴이 펑 하고 터져버리고 말 것 같아서 심호흡 삼아 그렇게 토해내군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한번씩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뿌연 연기 같은 형체 없는 것을 토해내고 나면 잠간이라도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거울 속 윤기를 잃고 부시시한 머리결이 요즘 생기를 많이 잃고 푸석푸석 말라 부스러지는 소리를 내는 건조한 일상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처럼 눈길에 밟혀와 기분이 덩달아 푸석푸석 말라 부스러지는 것 같았다. 자기 몸에도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게 너무 많았다.

빗이 머리 정수리 부분을 지나 뒤쪽으로 향할 때 문자는 오른쪽 어깨가 다른 날보다도 유난히 많이 당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따라 팔다리도 옛날 같지 않게 많이 뻣뻣해지며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며칠 전 어느 날인가는 몇십년 동안 날마다 습관처럼 기계적으로 손을 등뒤로 해서 채우던 브래지어를 두 팔이 뒤로 잘 꺾어져 올라가주지 않고 두 손이 제대로 맞닿지 않아 한참 만에야 겨우 채웠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두 팔 돌리는 련습을 했다. 아직은 이렇게 빨리 팔다리가 굳어져서는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두 팔을 앞으로 뒤로 휘휘 돌려대군 했다.

꺾이고 펴지는 역할을 해주는 관절들이 하루 다르게 물기를 잃고 뻑뻑해지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날씨가 많이 차가워지는 겨울에 들어서부터 손발 뿐이 아닌 온몸의 뼈마디들이 다 삐꺽거리고 달그락소리를 내며 잘 맞물려 돌아가주지 않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었다.

하긴 세월의 힘을 이기는 장사는 없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남편도 1년 전에 쓰러졌다.  

그리고 지금 저렇게 안방 침대 우에 누워있다.

문자는 세면대 아래에 넣어두었던 세수대야를 꺼내여 화장실 절반을 차지한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갔다. 순간온수기에 련결한 수도꼭지를 열어 더운물을 받았다. 누워있는 남편의 몸을 수건에 물을 묻혀 닦아주어야 했다. 남편이 쓰러진 다음부터 문자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번씩 남편 몸을 닦아주는 걸 견지해오고 있었다.

-내 몸에서는 냄새가 나도 당신 몸에서는 냄새가 나게 하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남편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던 날, 남편이 쑥스러워하며 등 돌려 누울 때 문자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였다.

 

4.  미녀와 야수

-문자 너 아직도 소설이랑 쓰고 그래?

이제 문자와 남자는 텐트 안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얼음구멍에 낚시를 드리우기 전 텐트를 얼음구멍 앞으로 바싹 당겨 옮겨놓았던 것이다. 둘은 텐트 안에 앉아서 바로 코앞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와서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요,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글 쓰기 거의 그만뒀어요. 근데 오빠가 어떻게 내가 글 쓰기 좋아했다는 걸 알아요?

작은 공간 안에 남녀 단둘이 나란히 앉아있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 허허벌판이여서 주변에 아무 보는 눈 없고 아무리 둘 사이가 어렸을 적부터 아래웃집에 오빠동생 하며 가까이 살아 스스럼 없던 사이라 해도 그러나 남녀는 남녀였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과 상관없이 이젠 칠십세를 바라고 사는 남녀의 동석이긴 하지만 꼭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저 둘 뿐이니까 둘이니까 더 서로 어색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그런 어색함을 깨는 데는 침묵이 아닌 대화가 최고의 약이였다. 그걸 깨달아 둘은 대화거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왜 너희 집이 방금 현성으로 이사왔을 때 내가 주말마다 너네 집으로 쫓아가군 했었잖아? 너희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있다고 하면서.

-네… 생각나요. 오빠가 전국 복싱대회에 대표선수로 나가서 일등을 했다고 와서 자랑하던 것두요.

-그래 맞어. 아마 한창 그 때 쯤이였겠지 싶다만 내가 거의 주말마다 너네 집으로 쫓아가니까 어느 날 너의 오빠가 내게 그러더구나. 문자 너는 나중에 위대한 소설가가 될 거니까 황소처럼 힘자랑이나 하는 주먹대장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는 뜻이였지. 너 오빠가 눈치를 챈 거였지.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핑게로 널 더 보고파서 쫓아다니는 줄.

-네? 그런 일도 있었어요?

첨 듣는 소리여서 문자도 꿈틀했다. 그저 멋있는 동네 오빠라고 가슴 한쪽 구석에 조금 담고 은근히 주말마다 기다려지군 했던 거 같은데 그 때마다 달려왔던 동네 오빠도 은근히 자기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넌 몰랐겠지 아마. 그 때 네 오빠 말을 듣고 난 내가 너처럼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착한 학생이 아니고 머리가 단순해서 주먹자랑 밖에 할 줄 모르는 복서인 것이 얼마나 저주스러웠는지 몰랐어. 전국 경기에 나가서 일등을 한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아마 그 때부터 너네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줄이고 네 오빠와도 조금 거리가 멀어졌던 거 같아. 너는 내가 쳐다보지도 못할 높은 곳에 앉아있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그랬어요? 난 전혀 몰랐어요.

언제부터 남자가 오빠 보러 뜸하게 놀러 다니기 시작했는지 문자는 눈치를 채지도 못했었다. 그냥 그렇게 문자의 가슴 문전에서 맴돌다가 맴돈 흔적조차 없이 문자가 모르는 사이 사라지고 기억에서 그냥 지워져갔던 남자였다. 오빠도 죽을 때까지 문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아, 오빠… 고기가 보여요.

문자가 급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끊었다.

얼음구멍으로 물고기 두마리가 꼬리를 하늘거리며 헤염쳐오는 것이 보였다. 작지 않은 체구를 자랑하는 버들치 같았다.

-버들치 맞죠? 버들치가 저 정도면 작지 않은 거죠?

-그럼. 버들치 몸통이 저 정도면 어린 놈은 아니지… 몸통은 다 여문 놈이지.

버들치 두마리는 낚시에 꿴 미끼를 발견하고 다가온 게 분명했다. 둘이 어깨를 가지런히 하고 문자가 드리운 미끼 주변을 한바퀴 돌고 이번엔 남자가 드리운 미끼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단번에 확 달려들어 입에 덥석 물지 않고 입질도 급히 하지 않는 놈들인 걸 보면 여간내기들이 아니야.

-그러게요. 덥석 물면 안되는 줄 감이 오나 보죠? 물고기들도.

-생명의 본능이겠지. 자기보호 방어능력. 저 투명하고 차거운 물 속에 느닷없이 유혹의 미끼가 탁 던져졌으니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앞서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이겠지.

-그니까, 인간만 생각할 줄 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것들도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조심하겠죠. 안 그러면 언녕 미끼를 입에 물었겠죠.

-재밌지 않어?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그대로 확 덮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빙빙 돌며 위험요소가 있나 없나를 관찰해보는 거. 그게 자기가 싫어하는 물건이면 저렇게 가까이 다가왔겠어? 아예 무관심으로 멀리 피해버렸겠지. 그러면 저렇게 맴돌 일도 없을 거 아니야? 자기가 좋아하고 정복하고프고 소유하고픈 대상에 대한 접근과 우유부단… 생명에게는 다 저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냥군의 본능이 숨어있고 좋아하길래 오히려 그 앞에 다가서면 주눅이 들어 경계심을 앞세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

역시 오른손에 든 낚시대를 살살 움직여 미끼가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가장해 물고기를 유인하며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저 물고기들만을 가리켜 그냥 하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살아온 인생에서 깨달은 뭔가를 담은 목소리였다.

문자도 남자를 따라 손에 든 낚시대를 조금씩 살살 움직였다.

그래서 그때 오빠도 나에게 어떤 호감을 가지고 주위를 맴돌며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어떤 경계심을 앞세웠던 거였어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서 와서 덥석 미끼를 물어주길 기다렸지만 물고기들은 쉽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 놈들 참 영악하네. 지금은 물고기들도 다 지능만점이라니까. 여름에 낚시군들이 많이 와서 낚시에 놀란 적 있던 놈들임에 틀림없어. 배고픈 본능을 참고 저렇게 그냥 주변만 어슬렁대면서 쉽게 먹이사냥에 나서지 않잖아?

-그러게요… 입에 물어도 안 보고 입질 해봐야 맛있는 건지 독인지 알게 아니예요?

문자는 문득, 이 남자가 철없던 그 때 자기에게 덥석 입질을 해왔다면 자기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가 궁금해졌다. 그냥 맛있는 먹이로 남자에게 넘어갔을가 아니면 안에 뾰족한 가시를 감추고 있다가 콱 쏘았을가.

아직 철없던 그 때, 남자가 먼저 접근해오고 입질을 해왔다면 멋 모르고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 문자의 가까운 주변에서 가장 남자답게 멋지게 보였던 동네오빠였으니까. 아니, 어쩜 놀랍고 당황해서 멀리 도망쳐 버렸을 수도 있겠지 싶기도 했다. 자기도 몰래 소녀의 본능으로 감추고 날 세우고 있던 장미가시 같은 것을 겉으로 뾰족이 드러내고 남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던 철부지 사춘기였을 때니까.

-젊었을 적엔 낚시질도 할 줄 모르고 그냥 그물로 반두질만 할 줄 알았으니깐 미끼를 던질 줄도 모르고 먹이감이 보였을 때 확 덮칠 줄도 몰랐지.   

남자가 꼭 문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대답하는 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둘은 어쩜 지금 같이 낚시질하며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단 고기가 미끼를 물면 확 낚아야 돼. 기회는 한번 뿐이라 생각하고 지체없이 과감히 낚아야 해.

-알았어요.

그러나 문자는 속으로 그걸 이제야 깨우치셨나요? 하고 묻고 있었다.

아니, 나이 칠십이 다되도록 살아오기까지 남자는 그 도리를 언녕 깨우쳤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래서 문자네 대학에서 퀸카로 소문난 녀자를 확 낚아채여 자기 녀자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행복했을가, 이 남자는. 그 퀸카를 자기 녀자로 만들어 살면서 행복했을가.

대학 졸업 후 한 도시에 남은 동창들끼리 가지는 모임에 학교 때 그렇게 도고하던 남자의 안해는 잘 나오지 않았다. 잘 나가던 권투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체육학교의 복싱코치로 남아 역시 문하에 훌륭한 제자를 양성해내는 복서명장으로 활동력을 자랑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인가 이 도시의 첫 개인복싱관을 개업하고 그 복싱관 운영으로 번 돈을 기초자금으로 다른 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잘 풀리기 시작하여 몇년 사이 몇개의 계렬사를 운영하는 기업인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하여 잘 나간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그 부인인 동창생 역시 각종 매스컴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매스컴은 ‘미녀와 야수’를 패러디하여 “이 시대의 최고의 주먹과 최고의 미녀의 만남”을 개혁개방 초기 성공의 행복모델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동창들끼리의 모임에서는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 남자의 주먹이 녀자의 이쁜 미모에 대한 경계로 휘둘러져서 늘 가정불화가 일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갔고 남자는 주먹 휘두르기에도 지쳐 집보다 밖에서 더 나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부인은 남자의 돈 때문에 리혼도 못하고 억지로 붙어 겨우 부부의 명목만 유지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문자는 그 주먹이 자기가 잘 아는 어릴 적 옆집 오빠여서 안타까웠고 그 녀자가 자기와 한 학급에서 공부했던 동창이였음에 안타까웠다. 가장 잘 나가는 성공한 기업인 남자와 대학에서도 소문 높았던 퀸카 녀자, 뭐가 모자라서 그렇게 남들의 말밥에 가십거리로 오르내리며 불쾌한 소문의 주인공으로 되여야 한단 말인가.

오죽하면 미녀 안해를 놔두고 밖에서 나돌가?

아무리 돈이 좋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위해 그 주먹도 참아낼 수 있을가?

부럽지 않았다. 평범하지만 정부기관에서 꾸준히 승진의 길을 걸으며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 맞춰 집에서 나가고 저녁이면 늦더라도 외박을 하지 않으며 집으로 들어와주는 남편과 남들 웃기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녀자동창이 다시 동창들 모임에 나서기 시작한 건 주변 여러 도시로 사업을 확장하여 부동산개발에까지 손을 댔던 기업가 남편이 아들에게 기업 경영권을 거의 다 물려주고 이 도시로 다시 돌아와 골프나 치면서 거의 은퇴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몇년 전부터였다.

녀자동창의 그 도도함은 아직도 남아있는 미모와 함께 여전했고 녀자동창을 모임에 모셔다 주고 모셔서 돌아가는 승용차는 이 도시에서 최고의 부자들만 탄다는 엄청 비싼 고급차량이라는 사실이 동창들의 입에 더 잘 씹히는 가십거리로 등장했다. 밖으로 나도는 남편과 갈라서지 않고 꾹 버티고 참아온 보람을 늘그막에라도 누리는 그 퀸카 동창을 녀자동창들은 거의 다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 부러움도 잠간, 작년 년초 구정을 앞두고 가진 동창들 모임에 퀸카가 나오지 않아 이상했는데 후에 다른 동창생이 전화 와서 퀸카의 건강이상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출처:<장백산>2017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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