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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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2009년 02월 27일 08시 59분  조회:894  추천:26  작성자: 조광명
    나를 향해 날아오는 파리 한 마리가 있었다.
    어망 결에 팔을 뻗치고 손바닥을 펼쳐 파리를 덮쳤다.
    느낌이 왔다. 내 손바닥 피부에 뭔가 닿는 느낌.
 
    정말 미세한 느낌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다른 한 생명이 죽음의 벽을 향해 달려드는 그런 무모한 <충돌>이었다.
    꽉 움켜쥐었던 손바닥을 펼쳤을 때 나는 거의 만신창이 되어있는 파리의 시체를 보아야 했다. 죽으려고, 죽으려고 나를 향해 날아온 파리였다.
화장지로 손바닥안의 파리 시체를 닦아서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비누칠해 빡빡 문대어 씻었다.
 
    -완전 죽으려고 작정을 했었구먼, 아침부터. 그놈의 파리가 간밤 꿈을 잘못 꾸었었나?
    잠에서 일어나 아직 제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부스스한 머리로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배설하고 나오다가 겪은 <살생>이었다. 살생으로 시작하는 하루였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큐큐가 있었다. 308국도 1차선을 타고 제한속도 60키로를 초과하지 않게 딱 미터기 바늘이 60위에서 춤출 정도로 엑셀을 밟고 달리는 데, 역시 1차선을 타고 마주 달려오던 큰 버스 뒤에서 난데없는 노란색의 작은 큐큐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중간선을 넘어서 나를 향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상거한 거리가 50미터나 될까 말까한 너무 가까운 거리였고,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 백미러를 통해 나를 추월하려는 차가 2차선에 없음을 감지하며 전방에 꽤 긴 공간이 있는 2차선을 향해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야 했다. 2700CC의 힘 좋은 엔진이 부르릉 하고 떨며 급가속하는 게 알렸다.
 
    쌩-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노란 큐큐가 내 차 옆을 스쳐 지났다.
    -지럴,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먼. 아침부터, 죄꼬만 큐큐가.
하고 속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왼쪽 백미러를 보니 큐큐는 어느새 저만치 뒤에 노란 점으로 작아지고 있었다.
 
    뭔 급한 일이 있어서 저렇게 정신없이 내달리는 걸까? 자기 생명을 가지고 노는 걸까? 글쎄 자기 생명을 가지고 노는 거야 상관할 바 못된다 치더라도, 이건 남의 생명까지 위협하며 장난도 유분수지...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생명을 가지고 저렇게 무모한 장난질을 할까?

    그리고 10분후 쯤 나는 카 오디오의 FM교통방송을 통해 308국도 아무 구간에서 노란색 큐큐차가 1차선을 타고 마주오던 트럭을 들이박고, 트럭 뒤를 달리던 차들이 연속 앞차를 들이박아 4중 연쇄 추돌사고까지 생겨서 교통이 크게 밀리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들어야만 했다.
 
    -이크, 그놈의 죄꼬만 큐큐 끝내 일을 쳤구먼. 아침부터 죽으려고 작정을 했었구먼...
    꼭 아까 그 노란색의 큐큐차일 것이라고 단정하며 뻔한 결말의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아까 달리던 기세로 봐서는 시속 80키로는 훨씬 넘는 속도였을 거니까, 그리고 도로위에서 트럭이 1차선을 타고 달릴 때는 역시 속도가 제한속도에 가까웠거나 넘어섰을 속도였을 거고...아마 작은 큐큐는 새벽 내 손바닥 안에 만신창이 되었던 파리의 꼴이 되었을 것이었다.
 
    가슴속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아까 하마터면 큐큐와 정면충돌할 번 했다가 다행히 2차선이 비어있어서 모면할 수 있었던 그 아찔했던 순간에도 없었던 서늘함이었다. 만약 2차선 내 금방 앞에서 달리는 차가 있었다면...차는 글쎄 쇠로 된 물건이니까 어떻게 구겨졌든 괜찮겠지만, 그 안의 생명은...파리가 아닌 인간의 생명은...
 
    트럭을 향해 달려든 큐큐는 어쩜 내 손바닥을 향해 달려들었던 파리보다도 더 무모한 충돌을 감행했는지 모른다. 쾅 하고 부딪는 순간 어쩜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인간의 목숨이었을 것이다.
 
    아침 나를 향해 날아오던 파리에게나, 금방 나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해오던 큐큐에게나 그 <돌진>의 이유는 다 있었을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 이유의 해명이 있기 전에 씌어진 충돌과 죽음이라는 시나리오. 파리의 죽음은 변기통 물을 내리는 것으로 끝났지만(모르지...그 파리에게도 가족들이 있어서 파리들의 동네에서는 울음통이 터지고 추도식도 치루어 졌는지도...) 그 큐큐의 무모한 운전으로 인한 충돌 뒤에는 일단 신속한 사고현장처리를 위한 교통경찰들의 출동과 사고차량 견인차들의 동원, 그리고 사고과실 분석과 사고차량 수리, 보상... 등등이 죽은 생명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더 절실한 사안으로, 살아있는 관련된 자들을 꽤 오랜 시간동안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할 것이었다. 살아있는 자들에겐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더 절실한 거니까...

    그리고 20여분 뒤, 나는 주차장 관리인에게 환한 얼굴로 아침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굿모닝!
    좋은 아침! 이라는 뜻이다. 바람도 한 점 없고, 햇볕도 쟁그러운, 한낮이면 제법 따스해 질 것 같은 정말 좋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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