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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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위대한 밥(1)
2019년 07월 18일 10시 06분  조회:61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위대한 밥(1)

조광명

 

1. 엄마의 술

어, 내가 지금 깜빡 졸았었나? 잠간 눈 감았던 거 같은데 아주 악몽을 꾸었던 것 같으네.

어느세 횐히 다 밝아있는 창문을 뿌연 눈 슴벅여 바라보며 복희씨는 분명방금 그 창문으로 허연 형체가 사라지는 걸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모습도 어슴푸레 잘 떠올려지지않는 남편의 모습이였다.

날마다 창문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할 때 쯤이면 눈을 뜨곤 하는 복희씨였다. 아까도 분명 눈을 뜨고 또 하루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다녀온 것 같은데 다녀와서 조금만 더 자리에 몸을 누인다는 게 그만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잠 속에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넘기 힘들다는 아홉굽이를 넘기지 못해 마흔을 코앞에 둔 서른아홉 나이에 아들 셋, 딸 둘 다섯 자식남겨놓고 먼저 훌쩍 저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이 분명 꿈에 나타난 것이다. 함께 살았을 적 모습도 이젠 다 기억 속에서 지워져 원래 모습을 떠올리기도 힘든데 젊었을 적 모습과 전혀 상관 없이 허연 수염을 한 령감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을 대번에 남편이라고 알아봤던 게 참 이상하다. 귀신이 되여서도 늙남? 마흔도 안된 한창 나이 때 죽었는데 그 귀신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백발이 허연 령감으로 늙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도 몇십년 전에 죽은 령감이 찾아온 거다 하고 대뜸 척 알아볼 수 있다는 게 꿈속에서도 신기했다.

그 령감이 침대에 누워있는 복희씨에게로 다가와 왼쪽 손을 잡았다. 가자, 혼자 이만 고생하고 이제는 내 따라 내 사는 곳으로 가자. 다짜고짜 복희씨를 잡아일으키려고 했다. 꿈 속에도 복희씨는 그게 싫었다. 죽은 령감이 허연 옷 입고 와서 손목을 잡아끄는 건 죽은 사람들 사는 동네로 데려가겠다는 뜻이 아닌가. 복희씨는 누운 채로 버티며 령감의 손을 탁 뿌리쳤다.

-살아있는 내가 왜 죽은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데. 당신 가고 난 후 나 혼자 남아서 다섯 자식 키우며 별의별 설음 다 겪다가, 스무살 넘게 다 키운 큰아들 지병으로 고생시키다가 끝내 지키지 못하고 먼저 앞세우고, 그러고도 남아있는 네 자식 불쌍해서 죽지 못하고 허리 부러지게 고생만 하다가, 네 자식 다 씩씩하게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고 손자들 업어키우느라 또 늙은 허리 부러질 지경이다가, 손주들도 하나 둘 시집장가 가기 시작해서 이제야 증손주들 엉덩이나 두드리며 늘그막 천륜지락 좀 누려보려 하는데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훼방질 하노? 내가 왜 당신 따라가야 하는데? 나는 싫다마. 내사마 당신 따라가지 않을라칸다. 그보다도 지금 몹쓸 지병에 걸려 누워앓는 막내딸이 눈에 밟혀서 나 그 녀석 놔두고 못 간다. 당신 따라갈 수가 없어.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면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 두 다리 사이에 바람이 일게 씽하니 방구석으로 달려가 벽에 세워놓은 몽당비자루를 들어 령감의 어깨인가 뒤잔등인가를 마구 때렸던 것 같다. 가라구 가, 꼴도 보기 싫응께.

-참 욕심두, 내가 살았던 나이보다 한배 더 넘게 살았음 됐지 뭔 미련 그리 많이 남아서 더 살려고 그래? 그럼 혼자 조금만 더 살아봐. 조만간 다시 데리러 올 테니께 떠날 준비랑 해놓고 날 기다리라구.

령감은 그렇게 말하며 복희씨 손에서 몽당비자루를 가볍게 빼앗아들고  스르륵 미끌어지듯 뒤걸음질쳐 안개처럼 사뿐히 창턱에 올라섰다. 복희씨를 보고 고개 끄덕여 씽긋 웃어보이고는 유리창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어  유령처럼 사라졌던 것 같다.  

-망할 놈의 령감태기, 그 어린 것들 활 다 내버려두고 자기 혼자 훌쩍 저세상으로 가버릴 때는 언제고 뭔 렴치로 이제 와서 자기 따라가자고그래? 미쳤지. 내가 왜 자기를 따라가? 죽어서도 나는 지가 사는 동네를 피해 다른 동네에 가서 살라칸다.

복희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꿈속에 령감을 쫓아버리려고 손에 들었던 몽당비자루가 정말 아직 현실 속 벽구석에 그대로 세워져있나 눈길을 벽구석으로 주었다. 그러나 그 벽에는 아무것도 세워져있지 않았다. 어, 그 귀신두상이 정말 몽당비자루를 들고 가버렸남? 순간 복희씨는 원래 저 벽구석에 몽당비자루가 세워져있기나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집으로 이사온 그때부터 아예 몽당비자루라는 건 없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며 꿈과 현실이 마구 헛갈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꿈에 손에 들었던 그 몽당비자루는 너무 눈에 익숙하고 손에 익은 몽당비자루였다. 언제 적의 비자루였나. 애들 어릴 때 초가집에 아직 장판도 아니고 까래를 깔고 살던 시절 구들을 쓸던 몽당비자루였던 것 같다. 아니면 맨흙바닥 봉당을 쓸던 부엌용 비자루였나?

령감이 몽당비자루 귀신이 되여서 꿈속에 나타나서 그 비자루로 령감을 쫓아버릴 수 있었던 것일가. 복희씨는 정말이지 오늘 당장이라도 동네 시장에 나가서 비닐로 된 비자루를 자루 튼튼한 거로 하나 새로 사서 벽구석에 세워놓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무서울 게 없이 만만하니까 감히 데리러 와도 비자루에 매 맞는 건 무섭다 그거지∼ 그래, 다시 와봐. 내가 두발 장대 비자루로 더 심하게 때려서 쫓아보내지 않나.  

꿈속에 령감에게 잡혔던 왼손에 아직도 불쾌한 저승사자의 기운이 그냥 묻어있는 것 같아 오른손으로 그 왼쪽 손을 탁탁 쳐서 털었다. 그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서 끙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많이 굳어지고 뻣뻣해진 다리를 움직여 주방으로 향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큰아들을깨울가봐 주방 찬장을 소리내지 않게 조용히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다행이였다. 반병 좀 넘게 흰술이 담겨져있는 술병이 찬장 한쪽 구석에 서있는 게 보였다. 큰아들이 반주술로 마시다가 남긴 걸 넣어놓은모양이였다. 복희씨는 그 술병을 내려 마개를 열었다. 밥공기 하나를 찾아 거기에 술을 절반쯤 부었다. 그 공기안의 술에 오른손을 넣어 술을 퍼서 왼손에 부었다. 그리고 술에 젖은 왼손을 오른손으로 슥슥 문대여 씼었다.

저승기를 씻어내는 것이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큰아들을 앞세웠을 때도 시체 우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묻혔던 저승기를 나중에 흰술로 씻어내군 했던 기억이 아직 머리 속에 남아있어서였다. 그래, 날 저승으로 데려가려구? 안 따라간다 안따라가. 당신이 꿈 속에 와서 묻혀놓은 저승기 빡빡 다 씻어내고 깨끗이 더 오래 살라칸다.

왼손이 깨끗이 씻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복희씨는 술에 젖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대여 씻었다. 온몸을 다 씻지는 못해도 령감의 눈길이 멈추었던 얼굴은 술로 씻고 싶었다.  

코구멍으로 술냄새가 막 비집고 들어오고 입술에 술이 묻어 촉촉해졌다. 향기롭고 시원했다. 정신이 확 드는 것 같았다.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흰술을 빨았다. 어휴, 흰술맛도 참 오랜만에 맛보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흰술맛이다.

남편이 먼저 저세상으로 갔을 때 기절해 쓰러졌었다. 그러다 귀 째지게 들리는 애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번쩍 눈을 떴다. 칠성판 우에 모셔져누워있는 아버지 옆에 엄마를 따라 엉엉 멋모르고 울다가 엄마까지 기절해서 쓰러지자 엄마도 죽은 줄 알고 놀라서 더 기절할듯 왕왕 대들보 무너져라 하고 울어대는 올망졸망한 다섯 자식을 보면서 복희씨는 더욱더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저것들을 다 어쩌노, 저것들을 다 어쩌노∼ 한품에 다 안고 집에다 활 불을 질러버릴가∼ 그러나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저것들을, 애비 잃은 저것들을, 불쌍한 내 피덩이들을 어찌하노∼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그대로 딱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아예 입안에 혀를 씹어 그대로죽어버릴가. 아아, 그러나 그것만은 차마 못할 짓이였다.

안되지. 불쌍한 저것들을 두고 나까지 죽어서는 안되지. 저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구, 제대로 기르지도 못할  거면서 펑펑 이 세상에 내싸지른내가 죄인이지.

복희씨는 벌떡 일어나앉았다. 칠성판 앞에 간소하게 차려놓은 제사상 우에 놓여있는 술병을 손에 들었다. 그대로 입에 대고 목을 뒤로 젖혔다. 꿀럭꿀럭 콸콸 쏟아져 입안으로 들어오는 술을 그대로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마셔보는 배갈이였다. 원래 수줍음 많은 성격이라 동네 잔치집 술상에서랑 너무 독해서 감히 입에도 대지 못하던 배갈이였다. 그러나 그 배갈이 전혀 독하지 않았다. 그냥 물 같았다. 숨이 찼다. 가슴이 터질듯 심하게 풀무질했다. 물 한병을 다 끝까지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조차 받아삼키기 힘든 가슴이 그대로 탁 터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터지지 않는 가슴에 쉬지 않고 그냥 꿀럭꿀럭 술을 부어넣었다. 그랬다. 배속에 삼킨게 아니라 터질 것 같은 가슴에 쏟아부은 술이였다.

드디여 술병이 굽이 났다. 술병을 내리고 뒤로 한껏 젖혔던 목을 다시 숙였다. 숨결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다섯 자식들이 울음을 딱 그치고눈물 코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놀라서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일어서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 엄마는 일어서야한다.

그랬다. 일어서야 했다. 저기 저렇게 죽어서 누워있는 애비 대신 엄마는 다시 당당히 일어서야 했다.

입술을 피나게 깨물며 이를 악물었다. 휴- 하고 가슴 안에 터질 것 같이 쌓여있는 한숨을 땅 꺼지게 길게 내뱉으며 벌떡 일어섰다. 조금도 휘청거리지 않았다. 맥 잃고 쓰러졌던 두 다리에 힘이 되돌아 생기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없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이 새까맣던 머리속이 오히려 더 말갛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놀라서 따라 일어서서 두 다리를 붙안고 두팔에 매달리는 자식들에게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엄마 안 죽어. 엄마는 살 거야. 살아서 너희들 다 안고 다 잘 키울거야. 애비 없이 자란 호로자식들이라는 말 안 듣게 당당하고 씩씩하게 잘 키울거야.

오른팔 들어 술병을 활 부엌 북데기더미 우에 던지고 두 팔 벌려 새끼들을 한품에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들아, 이 원쑤놈들아∼ 그제야 막혔던 가슴이 터져열리며 오열이 터져나왔다. 낮은 처마에서 흙이 놀라 부스러져 떨어지도록 울어댔던 그 캄캄했던 날∼

언제 어떻게 다 이겨내고 지금 이렇게 늙어버려 제몸 하나도 맘대로 움직이기 버거워졌노.

힘들었던 세월, 다섯 자식 먹여살리려고 너무 뼈빠지게 일해 정말 밥숟가락도 들기 힘들게 지쳤을 때면 저도 몰래 흰술을 찾게 되였다. 남편잃은 불행 앞에 다섯 자식 한품에 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던 흰술이 아닌가. 그 흰술을 식전에 한잔씩 하면 막혔던 숨구멍이 다시트이군 했다. 막막한 세상에 다시 숨 쉴 수 있었다. 그 한잔 배갈 주량이 차차 늘더니 어느 날엔가 7푼짜리 술잔 석잔 주량으로 굳어졌다. 해마다 청명, 추석 두번과 남편의 제사날과 구정까지 네번 남편의 무덤 앞을 찾아 제사 지내고 차례를 지내며 석잔씩 붓고 남편 대신 마셔주던 딱 그 주량이였다. 저녁마다 지친 몸을 흰술 석잔으로 달래군 했다. 안주도 따로 없이 밥이 그냥 안주였다. 쌀알이 막대고 밥알이 안주였다. 그리고 술이 힘이고 술이 위안이였다. 자식들 다 키워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고∼과부인생 30여년 남편 대신 가녀린 한 녀자의 인생을 강하게 지켜준 것이 흰술이였다.

그런데 그 흰술도 어느날인가 갑자기 입안에 쓰고 목구멍에 너무 따가워서 넘기기 힘들어졌다. 그때 복희씨는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어이쿠, 내 인생도 이젠 맛이 다 가는가 보네. 내 몸 속의 진도 이젠 다 빠져나갔는가 보네. 어쩜 그렇게 맛있던 흰술도 이렇게 넘기기 힘들어졌노? 자신이 늙었음을 인정하고 채 비우지 못한 흰술병을 찬장 안에 서글픔과 함께 다시 넣어두었다.

그러고도 나 지금 몇년 더 살았노? 질긴 게 사람 목숨이라 흰술 마시지 못하는 인생도 10여년은 더 산 것 같다.

아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는디∼ 새끼들 다 커서 시집 장가 갈 때까지만 죽지 않게 살게 해주십사 하고 빌었는데, 쓰러지지 말고 이 악물고라도 살자 했는데∼이젠 손주녀석들도 시집 장가가기 시작해서 증손주들 엉덩이까지 두드리는 나이까지 살다니∼일찍 죽은 령감 몫까지 다 사는가부다 했다. 큰아들 앞세운 죄로 죽고 싶어도 못 죽나부다 했다.

어이쿠, 내가 살이 센 년이지. 령감 잃고 자식까지 앞세우고∼ 내가 전생에 지은 죄 너무 많은 년이여∼ 그래서 그 죄를 다 갚느라 두번씩이나 제 손으로 살붙이에게 상복 입히며 남보다 열배 되는 불행을 겪고 허리 휘게 고생만 하며 살아온 거여. 그러면서도 참말로 나이 여든 되도록 징하게 오래도록 산 거여. 이러다 어느 날 기력이 뚝 진해서 벌커덕 드러누워 똥오줌 건사도 바로 못하면 큰일인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전에 어서 죽어야 하는디∼ 그런데 왜 방금 꿈 속에 령감이 데리러 왔을 때 순순히 따라가지 못했을가. 왜 죽은 령감 따라 저세상으로 가기가 그렇게도 몸이 오싹해나도록 싫었을가. 왜 꿈 속에서도 그렇게 더 오래 살고싶었을가. 죽은 령감이 손을 잡는 것조차 오싹 싫고 무섭고 진저리 쳐졌을가.  

사람 목숨이란 게 참 치사하고 질긴 거지 제 마음대로 안되는 게 죽는 일이지∼드러누워 대소변 못 가려 자식들 고생시키기 전에 어서 죽어야 하는디∼ 왜 이리 더 살고 싶어지노∼ 복희씨는 내려놓았던 술병을 오른손에 들고 저도 몰래 입가로 가져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술잔 아닌 병나발 그대로 흰술 한모금을 입안으로 부어넣었다. 시원하고 달착지근하고 쨍한 술향기가 입안에 돌았다.

아참, 오랜만에 흰술에 적셔보는 혀였다. 입안의 모든 감각들이 다 살아나는 듯했다. 그래, 못 마시겠던 흰술을 다시 또 마실 수도 있고∼ 사람이 오래 사니까 별 희한한 일 다 있네∼복희씨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흰술을 꿀꺽 목구멍으로 넘겼다. 목구멍이 알싸해나며 아직 새벽이여서 텅 빈 속이 그대로 흰술 도수만큼 따뜻해지고 뜨거워져왔다. 어이쿠, 딱 한모금이네, 더 마시지는 못하겠네. 그래도 술맛이 다시 돌아오다니∼ 복희씨는 한모금이라도 더 마시고프지만 더 마셔서는 안된다는 몸의 신호를 그대로 받아들여 술병을 내려놓으며 아쉬운듯 입을 쩝쩝 다셨다.

그 때 복희씨의 귀에 환갑이 다되여가는 큰아들의 침실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들려왔다. 희한하네, 늙으면서 청각도 이전보다 많이 못해져서 옆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도 듣지 못하고 놓칠 때가 많았는데 오늘 새벽엔 왜 침실안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주방에까지 잘 들리지? 방금 목구멍으로 넘긴 새벽술 한모금이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마시군 하던 귀밝이술보다도 더 귀를 밝게 해준 모양인감? 갑자기 귀가 뻥 뚫려 열린 것이 이상했다.

복희씨는 어느새 큰아들의 침실 밖으로 새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2. 술병에 기대여 일어서라

-오, 하은이구나. 이 새벽에 어쩐 일로?

-엉? 뭔 소리냐.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넘었다고?∼ 근데 왜 이제야 알려주냐?∼ 의사가 그래?

-음∼ 울긴∼ 울지 말고∼그래, 큰외삼촌 지금 당장 비행기표 알아볼게. 안되면 기차를 타고라도 달려갈게.

-응, 작은외삼촌이랑 이모랑 내가 전화해서 련락할 테니까 너는 엄마만 잘 돌봐.  

-아버지에겐 알려줬냐? 응, 잘했다. 알려줘야지. 온다냐?

-울지 말고∼ 잘 버텨. 니가 고생 많다.

가담가담 끊겼다 이어지며 들려오는 큰아들의 통화내용이 꼭마치 옆에서 듣고 있는듯 생생히 귀가에 맞혀왔다. 그걸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복희씨는 아래다리가 떨려 더 제자리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두 손으로 싱크대를 붙잡았다.

외손녀딸 하은의 전화.

∼올 것이 왔구나∼

복희씨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방 바닥에 무너져내렸다. 마침 옆에 작은 플라스틱 쪽걸상이 보여서 팔을 뻗쳐 그걸 끄당겨서 그 우에 엉덩이를 얹었다.

-불쌍한 것∼

깡충깡충 재롱 떨며 밥상 앞에 나비처럼 춤을 추던 막내딸 순영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타고난 무용수로 그렇게 이쁜 춤 팔랑팔랑 잘 추더니∼

-엄마, 술 맛있어?

술잔 기울이는 엄마를 빤히 두눈 반짝이며 쳐다보던 량태머리 막내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도 한잔 하련?

-선생님이 학생은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그랬어.

-그래, 선생님 말 잘 들어야지. 근데 너희 선생님, 진짜 술맛 어떤 건지 모를 건디.

-술맛에도 진짜 맛 가짜 맛 있어?

-있지, 진짜 술맛 알고 마시는 사람과 진짜 술맛 모르고 마시는 사람 있지.

-그럼 진짜 술맛은 어떤 거야?

-그걸 어떻게 말로 해? 니가 직접 마셔봐야 알어. 조금 한모금만 마셔봐.

방금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작은딸의 입가로 술잔을 가져다 대였다.

-괜찮아. 엄마가 맛보라고 입에 넣어주는 걸 받아마시는 건 나쁜 짓 하는거 아니야.

막내딸은 그래도 될가 하고 묻는듯 눈을 반짝이며 술잔의 술을 한모금 호록 입안에 빨아들였다.

옆에 빙 둘러앉아있던 나머지 네 아이들의 눈이 동시에 놀라서 동그래지고 숟가락질하던 손길들이 다 뚝 멈춰버렸다.

-뱉지 마, 그대로 입에 머금었다가 꿀꺽 삼키는 거야.

막내딸의 두 눈이 놀란듯 올롱해지고 량쪽 볼이 금세 빨개졌다. 그래도 입을 벌려 술을 토해 내뱉지 않았다. 캬 하고 입술을 벌려 뜨거운 술열기를 토해내지도 않았다. 엄마가 시킨대로 아래우 입술을 꼭 앙다물고 입안에 술을 머금고 있었다.

-이젠 넘겨도 돼.

기특해서 눈빛으로 격려해주며 꿀꺽 넘기는 시늉을 시범 보여줬다.

꼴깍.

막내딸의 예쁜 목선이 꿈틀했다.

-넘겼어?

-응.

-참 용하다. 우리 순영이. 술맛 어때?

-음∼ 독해. 근데∼ 맛있어.

너무 뜻밖의 대답이 막내딸의 입에서 튀여나왔다.

-맛있어?

-응.

-진짜루다?

-진짜루.

다른 네 아이들이 믿기 어렵다는듯 고개를 빙빙 돌렸다.

-흰술이 맛있어? 독해서 쓰거운 거 아니구, 맛있어?

네 아이들이 중구난방 물었다.

막내딸이 고개를 딸랑방울처럼 끄덕였다.

-응. 진짜 맛있어.

복희씨도 너무 뜻밖이여서 입이 딱 벌어지려 했다. 니가 술맛을 아네. 니가 술맛을 알아뿌렸네. 엄마의 쓴 술맛을 단맛으로 알아뿌렸네.

오른손을 뻗어 귀여운 딸애의 얼굴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괜히 코등이 시큰거려왔다. 괜히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밥상 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되는데. 눈을 비집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꿀꺽 눌러 삼키며 딸애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밥 식는다.어서 밥 먹어. 밥 먹어야 우리 순영이 빨리 크지.

그런 딸애가, 그런 순영이가 지금, 지금 많이 아파서 다시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복희씨는 갑자기 온몸의 맥이 탁 풀리며 사지가 해나른해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숨구멍이 막힌듯 가슴이 답답해났다. 그대로 옆으로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러다 오늘 정말 아까 꿈속의 령감을 따라 저세상으로 가는 건가. 눈앞이 까무룩해지려 했다.

복희씨는 급히 속으로 부르짖었다. 안돼, 안돼, 아직은 안돼. 가기 전에 내 새끼들 얼굴 다 내 눈에 다시 비벼넣고 담아야 돼. 순영이, 내 새끼 순영이, 순영이를 안아주러 가야 돼.

복희씨는 힘을 모아 고개를 흔들었다. 억지로 고개 들어 싱크대 우에 놓인 술병에로 눈길을 던졌다. 그 술병에라도 기대여야 했다. 구원병 같이 서있는 그 술병에라도 기대여야 했다. 남편을 잃었을 때도, 큰아들을 앞세웠을 때도 쓰러진 복희씨를 다시 일으켜준 술병이였다. 술병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간신히 손에 닿는 술병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손안에 거머쥐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용케도 술병을 떨구지 않고 입까지 가져왔다.

꿀꺽.

흰술 한모금을 크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술은 입안에 머물새 없이 목구멍을 적시고 가슴을 지나 그대로 명치끝까지 쨍하니 뜨겁게 가닿았다. 술에 데여 뜨거움을 느낀 몸속 기관들이 꿈틀꿈틀 살아움직이는게 느껴졌다.

죽지 않았구나. 다시 살아났구나. 휴- ∼

막혔던 숨구멍이 열렸다. 들이마시고 내쉬지 못하고 있던 숨을 드디여 다시 토해낼 수 있었다.

-순영아, 엄마를 기다려. 엄마가 니 입에 맛있는 술 넣어줄게. 엄마와 맞술 한잔 해야지. 이것아.

그렇게 속으로 넉두리가 나오는데 그 넉두리는 목소리로 밖으로 터져나가지 않았다. 복희씨의 입에서 후여후여 하는 바람소리가 눈물 없이 말라버린 갈대의 흐느낌처럼 터져나왔다.

큰아들의 방에서는 큰아들이 여러 곳으로 전화를 돌리는지 통화소리가 한참 더 이어져 흘러나왔다.

이젠 그 소리들이 다 환청같이 웅웅웅 들려왔다. 이제 더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복희씨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스스로 내리쓸어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수십번은 무너졌던 고난의 세월 스스로 익힌 재활 호흡법이였다. 서서히 다시 호흡의 리듬이 회복되여졌다. 드디여 손이 떨리지 않아 싱크대를 다시 붙잡고 일어설 수 있었을 때 복희씨는 큰아들에게 발각될세라 아까보다 열배는 더 무거워진 다리로 그래도 소리나지 않게 사분사분 조용히 걸어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옷장문을 열고 작은 보따리 하나를 꺼내여바닥에 내려놓았다.

-순영아, 엄마가 니 보러 가려고 옷보따리 언녕 준비해놓고 있었걸랑. 이제 엄마 니 보러 가도 너무 늦은 것 아니지? 엄마를 기다려줄 수 있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복희씨의 눈가로 눈곱보다 더 진한 것이 피눈물인듯 축축히 배여나왔다.

 

3. 엄마의 밥

여기저기 여러 곳에 새벽전화를 돌리고 방안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씻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철의 코에 진한 청국장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주방 옆 식탁우에는 어느새 아침밥이 차려져있었고 엄마가 벌써 의자에 앉아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엄마, 어느새 아침밥 다 해놓으셨네요. 그러잖아도 오늘아침 좀 일찍 출장 나갈 일이 있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엄마 앞에 마주앉았다. 수저를 들고 뜨거운 된장찌개를 한숟가락 푹 떠서 후후 불어 식히고 입안에 쏟아넣었다.

-앗 뜨거워. 역시 엄마가 끓인 청국장 맛 최고야. 근데 엄마 언제 이렇게 청국장 끓이고 상도 다 차려놨어요? 나 엄마 움직이는 소리 방안에서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맛있음 됐구나. 어서 먹자. 먹고 기운 내야지.

복희씨의 목소리에 어떤 결연함 같은 것이 묻어있는 걸 아들 순철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제 목소리에 비해 갑자기 진이 많이 빠진듯 탁하게 말라있고 갈라질듯 많이 쉰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철이 다시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눈확도 어제보다 갑자기 많이 안으로 푹 더 꺼져들어간 것 같았다. 크게 열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하루밤 새 갑자기 너무 많이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신 엄마의 옷차림새는 너무 정갈하게 깔끔했다. 웬간해서는 잘 꺼내입지 않으시는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한복을 입고 계시고 머리도 한올 헝클어질세라 가운데로 쪽 하얀 가리마를 길처럼 내고 뒤에 쪽진 머리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흰색 코신 모양의 악세사리가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하얀 은비녀를 꽂고 계셨다.

언젠가 막내동생 순영이가 아시아 문화교류 중국대표 무용수로 한국과 일본 등 7개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와서 엄마에게 선물한 옷과 은비녀였다. 엄마의 인생을 모티브로 창작한 독무 <한>을 무대에 올렸고 그 무용 공연 때 무대우에서 무용복으로 입었던 한복이라며 그 무용으로 공연 때마다 극장을 메운 외국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어릴 적 재롱 부리느라 춤추기를 즐긴 딸에게서 무용 재능 끼를 보아내고 그 힘든 세월에도 기어코 무용수로 자라나도록 밀어주고 힘을 주신 엄마의 은공이라며 그 날 순영이는 엄마 앞에서 그 한복을 입고 <한>이라는 그 무용의 마지막 한단락을 신들린듯 춤춰보였다. 그 무용의 진짜 주인공인 엄마가 가장 이 한복의 영원한 주인공이여야 한다면서 엄마에게 그 한복을 선물하고 직접 입혀드리기까지 했다. 그 후 당연히 엄마 당신인 복희씨는 그 한복을 애지중지 주름 갈세라 옷장안에 정히 걸어 아끼셨고 둘째 순호네 애가 장가갈 때 그 한복을 정히 입고 앉으셔서 손주며느리의 절을 받으셨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한복을 오늘 입으시다니?

순철은 느낌이 약간 이상했다. 혹시 아까 통화내용을 다 들으셨나? 속으로 그런 의문이 떠올랐으나 그러나 급히 속으로 도리머리를 저었다. 몇년 전부터 가는 귀 먹어서 바로 면전에서 아니고 뒤쪽에서 말씀드리면 일상 대화 나누는 정도의 목소리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작년에 만원 넘게 돈을 들여 독일제 보청기까지 맞춰드렸는데도 오히려 말소리가 더 윙윙 울림소리로만 들려서 불편하다며기어코 끼지 않고 그냥 어두운 맨 귀를 고집하시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청력으로 방금 방안에서 나눈 통화내용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침실에서, 먼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다 알아들었을 리가 만무했다.

순철은 엄마에게 롱담을 건네였다.

-혹시 오늘 동네 로인활동실에서 무슨 중요한 행사가 있어요? 새각시처럼 곱게 한복까지 차려입으시고∼

-아니다. 나 오늘 좀 멀리 다녀올 곳이 있어서 그런다.

-네? 어디루요?

-나 순영이 보러 다녀와야겠다. 애비 니가 좀 비행기표든지 기차표든지 알아서 수고해줘야 되겠다.  

-네? 엄마!

순철은 놀라서 입안에 우물우물 씹던 밥을 그대로 넘기지도 못하고 하 입을 벌리고 엄마를 바라봤다.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한 것 같은 엄마의 얼굴에는 더 상의할 여지 없이 이미 결정내린 일이라는 뜻의 결연함이 묻어있었다. 방금, 먹고 기운내야지. 하던 목소리에서 결연함을 느끼며 약간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틀린 게 아니였다.

-엄마!

순철은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뜬금없이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고 모르쇠를 대고 꾸며서 말하려면 목소리부터 꾸며야 했다.  

-됐다. 어서 밥 먹자. 밥 먹고 기운 내야지. 

엄마는 다시 식탁에 마주앉을 때 했던 그 말을 반복했다. 담담하나 더 결연해진 어투였다.

순철은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음을 깨달았다. 아, 엄마는 다 알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아신 걸가. 하은이 그 녀석 그 경황에 직접 외할머니에게까지 먼저 전화를 드렸을 리는 없고. 엄마, 순영이 많이 아픈 걸 이미 다 아셨어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이미 씹은 밥과 함께 다시 눌러 삼켜버렸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입안으로 부지런히 밥숟가락을 날라 청국장 한그릇과 공기밥 하나를 비웠다. 밥 한알도 남기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릇에 밥알 하나 남기는 걸 절대로 용서하지 않던 엄마의 엄한 식사법 례의범절 훈육에 자기 앞의 밥그릇을 철저히 깨끗하게 비우는 데 습관된 순철이였다.

순철이가 수저를 놓을 때 쯤 엄마도 반그릇 담으셨던 당신의 밥그릇을 깨끗이 다 비우셨다.

-오늘 비행기표 다 매진되여서 고속기차로 움직여야 될 것 같아요. 다섯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엄마몸으로 견딜 만하겠어요?

-그럼. 그보다 더 험한 시간도 다 이겨내고 지나왔을려니∼

-알았어요, 엄마. 설겆이는 내가 할 테니까 들어가서 약병이랑 다 잘 챙기세요. 신분증 챙기는 것도 잊지 마시고.

-이미 다 챙겼네라. 작은 보따리몇개 만들어서 바퀴 달린 트렁크 하나에 다 담아놓았으니까 애비 니가 오늘 좀 고생해야겠다.

-뭔 짐을 보따리 몇개씩이나 싸요? 간단히 싸면 될건데.

-다 필요한 것들이고 이 어미가 생각 있어서 싼 거니까 무겁고 귀찮더라도 수고해줘야겠다.

아, 엄마는 오늘 따라 그 언제보다강하시구나. 무엇인가 각오하고 결연해지신 것 같아서 그래서 순철은 막내녀동생 순영의 지금 건강상태가 더 걱정되였다. 순철은 더 아무 말도 못하고 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멈에겐 련락했냐?

순철은 속으로 꿈틀했다. 딸 순영의 상태가 위급한 상황인것도 엄마는 다 알고 계시는구나. 과연 마음에 이미 어떤 각오를 하고 계시는구나∼ 어떻게 아셨는가고 감히 묻지 못했다. 건너오는  엄마의 물음이 너무 조용하고 차분해서 순철 역시 모든 감정의 기복을 감춘 채 조용히 대답했다.

-네. 비행기표 알아보고 있대요.

퇴직 후, 아직 몸에 힘이 남아돌고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을 때 하나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 뒤바라지 해준다고 늙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집에 두고 외국에 일하러 나가 있는 안해였다.

순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순영아, 엄마도 오늘 니 보러 가신댄다. 엄마에게 알려주지 않고 나 혼자 니 보러 가려 했는데.

2년 전 공연중 무대 우에서 쓰러진 것이 불치의 근위축증으로 진단내려졌고 발견했을 때는 이미 병이 거의 골수 속까지 스며든 상태라 별로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의사와의 상담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대 의학으로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는 현실을 인정한 순영이가 입원해서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강한 화학약품들을 사용해 치료하는 걸 거부했고 주변에서도 환자의 의견을 존중해 입원치료하지 않고 집에서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검진을 다니며 약처방을 받아 보수적으로 치료하는 데 동의했다.

그 사이 병세가 점점 악화되여 근육이 뒤틀리는 통증을 이기기 힘들 때마다 입원치료도 서너번 했고 그때마다 소식을 들은 순철은 녀동생에게로 달려가 힘이 되여주군 했었다.

예술혼을 불사르느라 집안 살림에 좀 등한했는지 부부가 늘 불화를 겪더니 어느날인가 조용히 리혼 사실을 통고해와서 형제들 가슴을 아프게 했고 엄마 복희씨의 가슴에 탕탕 큰 대못질을 했다. 딸아이를 기어코 자기가 맡아 기르며 더욱더 혼자 그냥 춤에만 미쳐살던 동생 순영이 뜻밖에 뛰쳐나온 불치의 병으로 더는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가슴에 아파 순철이도 막내녀동생 순영이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서 검은 연기 솟아나도록 한숨을 쉬곤 했다.

 

4. 내 엄마가 너무 가벼워 눈물 나네

유리창 밖으로 언뜻언뜻 지나가는 풍경들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복희씨가 환갑이 다 되여가는 아들 순철에게 말했다.

-허이구, 내가 왜 순영이 그걸 춤군으로 키워놔서∼∼

뒤말을 잇지 않았지만 순철은 그 삭제된 뒤말의 뜻을 충분히 다 알 수 있었다. 허이구, 내가 왜 순영이 그걸 춤군으로 키워놔서 그렇게 정신없이 무대우에서 춤을 추다가 기어코 무대 우에 쓰러지게 만들었노? 그냥 평범한 녀자로 키웠음 무대 우에 껑충껑충 춤추느라 몸을 혹사할 일도 없고, 그러면 살림살이 등한히 한다고 남편과 다툴 일도 없고 리혼할 일도 없고, 춤추다 지쳐서 근위축증에 걸릴 일은 더구나 없었겠는데∼

엄마는 지금 딸 순영이가 리혼하고 근위축증에 걸린 모든 책임이 엄마인 당신이 딸을 기어코 무용수로 키워냈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계시는 것이였다.

-엄마는 왜 부질없는 생각 하고 그러세요? 다 순영이 지가 좋아서 춤을 춘 거구, 지가 춤을 추면서 행복해했던 거구, 지가 춤에 미쳐서 무용가로 성공했던 거 아니예요? 리혼하고 근위축증 걸린 건 걔가 무용 했던 것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엄마 말 대로라면 이 세상 그렇게 많은 무용수들이 다 근위축증에 걸려야 되게요?

순철은 늙은 엄마를 위안해줄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다. 후유∼ 이 에미 살이 너무 세서 그런 거다. 이 에미 몸에 배여있던 액운을 순영이가 물려받아서 그런 거다. 내 대신 걔가 죄를 받는 거지 뭐.

그렇게 대답하는 복희씨의 머리속에 어린 딸 순영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엄마 대신 내가 아플게.

순영이 그것이 진짜로 했던 말이였다.

복희씨 눈앞에 엄마 아프지 마 하고 울면서 엄마 손을 꼭 붙들고 부르짖던 막내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였던가∼ 복희씨가 뜨거운 땡볕 아래 논에 분무기로 농약을 치다가 더위도 먹고 농약냄새에도 중독되여 논두렁에 쓰러졌던 그 날이∼

아, 맞다. 그 날은 순영이 대학입학 시험을 마치고 시내 학교에서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였다∼

다행히 동네사람들에게 발견되여 진 중심병원으로 실려가 구급조치로 눈을 떴을 때 복희씨 눈에 안겨온 건 근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동네 이웃 사람과 그리고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찔찔 짜고 있는 막내딸 순영이였다.

-순영이, 네가 돌아왔구나. 시험은 잘 쳤고?

-응, 엄마, 내가 왔어. 엄마 딸 순영이 왔어. 응응, 시험은 잘 쳤어. 무용실기 시험도 잘 봤고∼ 걱정 마, 가고팠던 대학에 꼭 붙을 수 있어.

순영은 흐느끼며 엄마 말에 대답했다.

-울긴, 못나게. 더위 먹고 잠간 어지러워서 그런 건데∼울지 마.

그렇게도 보고 싶던 막내딸의 얼굴을 어루쓸었다.

-엄마, 아프지 마. 이젠 엄마 대신 내가 아플게. 엄마 딸 순영이 다 컸으니까 이젠 내가 엄마 대신 아플게. 엄마는 이제 더 아프지 마.

순영이 더욱 흑흑 흐느끼며 엄마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다.

-못난 것. 그래, 엄마 아프지 않을게. 우리 순영이도 다 커서 이젠 대학생이 다됐는데 엄마가 왜 아파. 이젠 안 아플  거야. 엄마 다 나았어.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 맛있는 거 해줄게.

복희씨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발에 신을 신었다.

하루 쯤 더 링게르를 맞고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도 물리치고 기어코 병원문을 나섰다. 딸이 고중 공부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 딸이 대학시험 잘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혼자 의젓하게 시내 학교서 기숙사 생활하면서 공부하다가 몇달 만에 짐 다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인 내가 병원에 누워있을 수만은 없지. 딸 얼굴이 가장 좋은 약이고 아픔을 잊게 해주는 처방이였다. 복희씨는 온몸에서 다시 샘 솟듯 솟구치는 힘을 느꼈다.  

-가자, 집으로. 우리 순영이 뭐 먹고 파? 엄마가 니 먹고프던 거 다 해줄게.

엄마인 자기를 닮아 키도 딱 엄마만큼 크고 몸에 살집도 전혀 붙지 못하고 가냘픈 몸매를 유지하는 막내딸이 안스러워 복희씨는 그동안 학교서 돈 아끼느라 먹고픈 것도 마음껏 사먹지 못하고 더욱 여위였을 딸애에게 해줄 수 있는 료리를 다 해서 배불리 먹이고팠다.

-난 먹고픈 거 없어. 엄마를 보니까 배불러. 엄마만 아프지 않으면 돼. 엄마가 아프면 나 무서워.

-엄마 이젠 안 아프다니까. 봐봐, 다 나았잖아? 믿기지 않어? 엄마가 우리 막내딸 순영이를 오랜만에 업어볼가, 대학시험 치르느라 수고했는데. 시험 잘 봤다니까 엄마도 너무 기뻐 축하해서 업어줄가.

-아니야, 이젠 순영이가 다 컸으니까 순영이가 엄마를 업어줄게. 순영이 보기엔 약해도 춤을 춰서 다리힘은 좋아.

순영이 엄마 앞에 무릎을 굽히고 등을 들이댔다. 복희씨 미처 뒤로 피할 새 없이 순영의 두팔이 뒤로 와서 엄마를 당겨 등뒤에 업었다. 끙 하고 힘을 쓰더니 정말 엄마 복희씨를 업고 일어섰다.

-순영아, 니 허리 상한다. 빨리 내려놔.

복희씨가 다급히 소리 질렀다.

-아니야, 엄마 하나도 안 무거워. 엄마 너무 가벼워. 엄마 너무 가벼워. 울 엄마 너무 가벼워. 엄마 왜 이리 여위였어? 엄마 우리를 키우느라 너무나 여위였구나∼이제 내가 대학 마치고 돈을 많이 벌면 엄마에게 날마다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서 엄마가 삐둥삐둥 살찌게 해줄게. 엄마를 뚱뚱보로 만들어줄게.

딸 순영의 목소리가 다시 물기를 머금고 목멘 소리로 바뀌는 걸 복희씨는 딸의 등에 업혀서 느낄 수 있었다. 복희씨 가슴에서도 더 걷잡기 힘든 감정의 파도가 솟구쳐올랐다. 다 컸구나 내 새끼, 철들었구나 내 새끼∼ 그대로 딸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파지는 자신을 간신히  추스리며 복희씨 기어코 딸의 등에서 내렸다. 내려서 이미 딸의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만들었다.

-그래, 우리 딸 해주는 맛있는 거, 우리 딸 사주는 맛있는 거 엄마 다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찔게. 뚱뚱보엄마 돼서 우리 순영이 엄마 무거워서업지 못하게 할게.

-아니야, 그래도 업을 거야. 엄마, 너무 가벼워. 엄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순영의 손이 엄마 복희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더는 참지 못하고 어느새 눈가에 맺힌 엄마의 눈물을 딸 순영의 손이 닦아주었다.

-엄마는 울지 마. 그동안 엄마 흘린 눈물 얼마인지 나 다 알아. 이젠 엄마를 울지 않게 할 거야. 이젠 엄마를 웃게만 할거야.

순영이 말하면서 더는 참지 못하고 엄마 품에 안겨 오열을 터뜨렸다. 그런 딸을 품에 안고 등을 다독여주며 복희씨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하늘이 푸르구나, 하늘이 푸르게 열려있구나∼복희씨도 더는 참지 못하고 딸의 등에 후둑후둑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살아오는 세월 그동안 참았던 눈물들이 더는 걷잡을 수 없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래, 오늘은 실컷 울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 다 흘려버리고 그리고 이제부턴 웃자. 우로 세 자식 다 키워 공부 다 시켜 대학생 만들고 시내사람으로 만들고 이제 막내도 큰 대학 가서 큰 무용가가 될 거다. 이젠 힘든 시간도 거의다 지나가고 이젠 정말 웃을 일만 남은 거다.

복희씨는 눈물 흐르는 얼굴에 기꺼운 웃음을 떠올렸다. 품에 안겨 우는 딸 순영의 얼굴을 두 손에 잡고 말했다.

-순영아, 엄마 잘 웃지? 엄마 이제부턴 정말 활짝 웃으면서 살 거야. 꽃같이 이쁜 우리 딸 순영이처럼 정말이지 활짝 활짝 웃기만 하면서 살 거야.

순영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였다, 반짝이는 눈물에 젖은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응, 엄마, 다신 아프지 마. 엄마가 아파지려 하면 대신 내가 아파줄거야.

∼다신 아프지 말라고 그렇게도 엄마와 다짐받던 딸이, 딸 순영이가 이젠 거꾸로 저렇게 자기가 앓으며, 몹쓸 병을 앓으며 늙은 엄마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5. 밥힘

복희씨 중얼거렸다.

-못된 년, 왜 그렇게 엄마 대신 아프면서 오히려 엄마 가슴에 못을 박는 거야? 어시 가슴에 못을 박는 게 얼마나 고약한 짓인지 지는 모르지?

맞은켠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큰아들- 원래 둘째이다가 큰아들이 죽으면서 맏이가 되여버린-순철이가 눈을 뜨고 복희씨에게 한마디 했다.

-엄마두 잠간 눈을 붙이고 쉬세요. 거기 가면 잠자리랑 다 불편할 건데.

그 때 량쪽 좌석 사이 통로로 쟁반에 도시락을 든 승무원아가씨가 지나가면서 식사 주문을 받았다.

순철이 복희씨에게 물었다.

-엄마, 기차가 도착하려면 아직 한시간 좀더 남아있는데 식사하셔야죠? 기차음식 맛 없어도 식사는 하셔야죠.

-나보다도 애비 네가 식사는 꼭 해야지. 순영이 그 애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까 병원에 도착하면 애비 네가 정신없이 바빠질 수도 있잖겠냐. 밥 먹고 속을 든든히  만들어서 기차에서 내려야지.

복희씨가 오히려 아들걱정을 앞세웠다.

-난 별로 생각 없어요. 엄마만 드세요. 도시락 하나만 주문할게요.

-둘이 함께 기차에 올라서 엄마 혼자만 식사하라는 법 어딨냐. 맛 없고 식욕 없어도 산 사람 끼리는 밥을 함께 먹는 거다. 혼자선 넘어가지 않아도 함께 먹으면 넘어가는 게 밥이다. 두 사람 몫으로 주문해라.

-네, 알았어요. 엄마.

순철은 더 아무 말 않고 도시락 샘플 두가지중 그나마 기름져보이지 않고 담백하게 입에 맞을 것 같은 도시락을 골라 두개 주문했다. 엄마앞에서 때시걱이면 무조건 밥은 먹어야 했다. 그건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였던 가난했던 시절 엄마가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며 반드시 지켜왔던 인생신조였다. 밥은 먹어야 했다. 엄마 앞에선. 어떤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하는것이였다. 그걸 오늘 깜빡 하고 엄마 앞에서 어길 번한 것이다.

밥힘.

엄마는 밥힘을 믿고 있었다.

힘든 때일수록, 불행한 때일수록 엄마는 밥힘을 믿어 밥을 억지로라도 씹어삼키군 하셨다. 밥을 먹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고 밥을 먹는 건 살아있는 자들만의 권리라고 하셨다. 밥을 먹는다는 건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오늘을 버텨낼 힘을 몸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오늘을 이겨 래일로 살아 닿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오늘 먹은 밥은 래일을 분명 오늘보다 더 좋은 거로 만들 수 있다고 밥힘으로 알려주군 했다. 그 래일엔 분명 오늘 먹는 밥보다 더 맛있는 밥이 기다리고 있음을 순철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희망처럼 몸에 익혔다.

그 고난의 세월 엄마에게 밥은 이를 악물고 씹고 삼켜 산 자는 반드시 더 살아가야 한다는 악 같은 거였다. 그것은 순철에게도, 밑으로 남동생 순호에게도, 큰녀동생 순복에게도, 그리고 지금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막내 순영에게도 다 한집안에 한구들에 비비고 볶으며 살던 그 시절에는 진리 같은 것이였다.

잠시 후 배달되여온 도시락 밥을 순철은 밥 한알 남기지 않고 깨끗이 다 먹었다. 엄마도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이 맛없는 알량미 밥을 꽁꽁씹어 끝까지 다 비우셨다.

-역시 위대하신 우리 엄마야.

속으로 이렇게 중얼대며 순철은 엄마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엄마는 오늘도 밥힘으로 아픈 딸 앞에까지 쓰러지지 않고 잘 지탱해서 이를 것이였다.

전혀 식욕 없이 먹은 밥인데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해지고 두 다리에 힘이 생기는 걸 순철은 느꼈다.

역시 밥은 위대하고 밥은 위대한 힘이였다. 그 위대한 힘을 씹고 넘기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 줄 알고 자식들에게 가르쳐준 엄마는 밥보다위대했다. 밥보다 위대한 힘이였다. 엄마는.

순철은 여든이 다된 엄마와 함께 하는 이 길이 너무나 속이 든든해졌다. 앞에 건강한 모습으로 앉아계셔주는 것만으로도 아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여주고 계시는 줄 엄마 당신은 알고나 계시는 걸가. 순철은 강인함을 감추고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앉아계시는 엄마의 주름살 깊은 얼굴이 너무나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내밀어 엄마의 고운 그 얼굴을 만져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순철은 대신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엄마의 손으로부터 열배 강한 힘이 순철의 손에 전해져왔다. 엄마는 오늘도 자식에게 힘을 넘겨주고 계셨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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