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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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위대한 밥(2)
2019년 07월 18일 10시 04분  조회:39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위대한 밥(2)

조광명

 

6. 집밥 

택시에서 내리자 미리 입원병동 문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하은이가 다가왔다. 반쪽이 된 하은이 얼굴에 피곤이 꽉 끼여있었다. 택시 안에서 문자로 미리 약속한 대로 하은이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활짝 웃는 얼굴로 할머니를 맞이했다. 그 웃음 뒤에 뚝뚝 떨구고 있을 눈물을 생각하며 순철은 아직도 대학교도 마치지 못한 어린 하은이가 너무 측은하고 안스러웠다.

병실로 이동하며 하은이가 외삼촌에게 조용히 속삭여 알려줬다. 엄마와 거의 날마다 영상채팅을 하는데 그 날 갑자기 아무런 련락이 안되여서 느낌이 이상했다고. 그래서 생활담당 교수에게 청가를 맡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더니 역시 집문은 잠겨있었고 무작정 엄마가 이전에 입원했던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왔더니 아니나 다를가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있더라는 것. 이전보다 훨씬 엄중한 상태인 데도 엄마가 누구한테도 알리지 못하게 해서 지금까지 일주일 넘게 련락드리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일주일 사이에 세번이나 쇼크하며 고열이 내리지 않고 어제부터는 환각상태에서 온몸에 경련까지 일으켜서 너무 무섭고 놀랐다는 것. 오늘 새벽에도 다시 또 쇼크가 와서 긴급구호 수단으로 겨우 안정을 찾았고 의사선생이 주변 친척들에게 다 알리라고 해서 련락드렸다는 것∼  등을 이야기해줬다.

순철은 서로 다른 도시에 멀리 떨어져있다는 리유로 아픈 녀동생에게 너무 등한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워졌다. 당장이라도 어린 하은이에게 미안하다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 너무 내색할 수는 없었다. 하은의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엄마 복희씨의 귀에 들릴가봐 무척 신경이 씌였다. 오늘 새벽에  순철이 전화내용을 알려주기 전에 엄마가 상황을 어떻게 다 알고 길 떠날 준비까지 식사전에 미리 해놓고 계셨던 사실이 순철에겐 아직까지 미스터리였다. 가는 귀 먹었던 엄마의 귀가 언제 다시 뻥 뚫려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였다. 옆에서 부축해주는 손녀 하은의 한쪽 손을 꼭 잡은 복희씨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피여있어서 순철은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영은 깨여있었다. 복희씨가 딸 하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걸 보자 엄마! 하고 목메여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거의 기진맥진 탈진한 상태라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고개만 약간 들려다가 다시 힘을 놓아버렸다. 그러는 순영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다가가서 순철이 먼저 순영의 손을 잡았다. 검버섯과 주름살로 뒤덮인 야윈 손이 딸의 얼굴을 어루쓸었다.

-못난 것, 아프면 엄마를 부르지∼엄마가 아직 살아있는데 혼자 누워서 아팠어? 못된 것, 첨부터 엄마를 불렀으면 엄마가 언녕 이렇게 달려와 내 새끼 옆에 함께 해줬지∼못난 것, 못된 것∼

엄마의 눈에서도 드디여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에게 아직 채 흘리지 못한 젖은 눈물이 남아있었던 것일가. 눈물 없이 마른 울음소리로만 꺼이꺼이 자식들 몰래 우는 모습을 숨어서 여러번 보았던 순철이였다. 그런 엄마에게도 자식을 위해서 흘려줄 젖은 눈물은 남아있었구나. 순철은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의 눈물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코등이 시큰거려 눈을 슴벅여 참았다.

-순영아, 오빠가 늦게 와서 미안하구나.

-아니야, 오빠, 내가 못나서 번마다 오빠를 고생만 시키고∼미안해.

-미안하긴∼

순철도 순영의 다른 한손을 잡고 억지로 눈물을 안으로 삼켜 참고 있었다.

-작은삼촌이랑 이모랑 다 저녁전에 도착할 거예요. 다들 비행기에 올랐대요. 외숙모도 저녁 늦게 도착한대요.

하은이 말했다.

-다 오는구나∼ 그래, 잘됐다. 다 볼 수 있겠네.

다 모이고 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겠다는듯 순영의 얼굴에 서글픈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 표정이 더욱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순철은 일부러 화제를 다른데로 옮겼다.

-하은아, 이 주변에 호텔 같은 거 있음 방 몇개 예약해줘. 너희 젊은애들 휴대폰으로 그런 거 잘하잖냐.

순철은 우선 엄마를 호텔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동생 순호가 도착하고 녀동생 순복이가 도착하면 그 땐 정말 형제들끼리 끌어안고 울음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일이였다. 그리고 순영이 언제 다시 쇼크가 오고 경련을 일으킬지도 알 수 없는 일이였다. 그런 장면을 늙은 엄마에게 보여선 안될 일이였다.

-네.

하은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복희씨가 순영에게 물었다.

-그래, 밥은 끼니 거르지 않고 먹고 있냐?

-응, 먹고 있어. 먹으니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지.

순영이가 억지로 웃었다.

순철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먹긴 뭘 먹어? 영양제 주머니를 링게르에 걸어놓고 있는 주제에. 녀동생 순영이 영양제 힘으로 버티고 있는 줄 순철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황판단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하은이도 엄마를 돌보느라 반쪽이 다됐구나. 하은이도 집밥 먹어본 지 오래지? 엄마 같이 그냥 병원 밥으로 에때운 거지? 이젠 할매가 왔으니까 이 할매가 끼니마다 맛있는 집밥 해줄게.

순영이가 웃었다.

-아, 맛있겠다.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팠는데∼

복희씨가 순철이더러 끌고 온 트렁크를 열라고 하셨다. 순철이 트렁크를 침대 옆 바닥에 눕혀놓고 지퍼를 열었다. 엄마 복희씨가 무릎을 굽혀 쪼그리고 앉으시더니 안에서 큰 비닐봉지 두개를 꺼냈다. 엄마의 손에서 비닐봉지 포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겹 또 한겹∼ 얼마나 여러겹으로 싸고 또 쌌는지 바닥에 금세 빈 비닐봉지가 여러개 널려졌다. 하은이 허리 굽혀 그 봉지들을 다 주어서 그중 하나에 담았다. 드디여 복희씨가 비닐봉지들을 더는 버리지 않고 큰 비닐봉지 안에서 올망졸망 작은 비닐봉지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순영이 니가 어릴 때 좋아하던 고추떡 쪄서 말린 거구, 이건 하은이가 들어서면서 입덧이 심해서 밥 먹지 못할 때 니 입덧을 한방에 날려주던 영채김치고, 이건 우리 하은이 할매 보러 올 때마다 맛있다고 잘 먹어주던 총각김치고∼ 이건 가지 말린 거, 이건 마늘장아찌∼

순철이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언제 저런 걸 다 준비하셨을가.

그리고 또 다른 큰 비닐봉지는 열어볼 필요 없이 입쌀이였다.

-이건 시장에서 파는 걸 산 게 아니구 전번에 순철이 니 오빠가 고향에 다녀오면서 한마대 얻어온 쌀을 다 먹지 않고 더러 덜어내서 보관해놓고 있었던 거다. 너희들이 먹고 자란 그 맛 그대로 고향쌀이다. 고향쌀 맛을 순영이 네게 다시 맛보게 하려고 네 큰오빠 순철이가 무겁게 끌고 오느라 고생 많았다.   

엄마는 공로를 큰아들 순철에게 돌리고 있었다.

순영이 고개를 돌려 오빠 순철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 앞에 순철은 아니라고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오히려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이렇게 무거운 건가고 속으로 투덜대며 겨우 끌고왔다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냥 빙그레 웃어주었다.

-오늘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고 우리 순영이 기운 내고 벌떡 다시 일어나는 거다. 알았지?

-네. 엄마.

순영이 눈물 참으며 가까스로 얼굴에 웃음을 다시 피워올렸다.

-하은아, 큰외삼촌 왔으니까 이젠 엄마 걱정 말고 하은이 너는 할매를 모시고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집 밥솥으로 밥을 따끈하게 지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주자. 우리 하은이도 할매가 해준 밥 배부르게 먹고 힘내야지.

-그래, 하은이 할머니 모시고 집에 가. 가서 너도 오랜만에 씻고 옷도 갈아입고 푹 한잠 자고 와. 엄마 걱정 말고.

순영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 자식새끼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어시의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배여있었다. 그래, 사랑은 내리사랑이지. 아파서 병원신세 지느라 자식새끼한테 자기 손으로 밥도 해 먹이지 못하며 오히려 그 자식의 돌봄을 받고 그 자식을 고생시키는 엄마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순철은 순영의 마음이 같은 부모 마음으로 넘짚어 리해되였다.

조금 후 호텔 예약을 마친 하은이가 커다란 비닐봉지 두개를 들고 할머니를 모시고 병실을 나섰다. 그 뒤모습을 눈빛으로 바래며 순영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정말, 정말 엄마가 해주는 엄마밥 먹고팠는데,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고팠는데∼ 오빠는 정말 좋겠다. 날마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7. 밥&집

형제들이 다 모이는 날인 줄 알고 정신력으로 버텨서인지 다행히 순영은 오후 낮을 돌발상황없이 무사히 넘겼다. 피곤을 못 이겨 잠간 눈을 감고 잠 속에 빠졌던 걸 제외하곤 작은오빠 순호 내외가 도착할 때도, 언니 순복이네 부부가 도착할 때도 맑은 정신상태로 눈을 뜨고 웃음으로 형제자매들을맞이했다. 그러는 순영이 앞에 다들 정서를 잘 억제하고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어  병실이 눈물바다가 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순철은 그러는 동생들이 고마웠다. 역시 굳센 엄마의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철의 안해 지연이도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국제선이라 해도 거리가 멀지 않아서 국내 다른 도시들에서 달려오는 시간과 엇비슷하게맞먹었다.

엄마를 밤낮 없이 옆에서 간호하기 위하여 하은이가 환자용 침대 옆에 돈을 따로 더 내면서 설치한 접이식 간이침대에도 걸쳐앉을 자리가 모자라게 병실에 갑자기 사람이 넘쳐났다.

지쳤는지 순영이 잠감 눈을 감고 있을 때 순철이 모두를 복도로 불러냈다. 작은 회의를 조직했다. 세 가정에서 밤과 낮을 나누어 교대로 환자를 돌보는 거로 하고 오늘 밤은 일단 맏이인 순철이네가 순영의 옆을 지키고 순호네와 순복이네는 하은이가 예약해놓은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쉬도록 했다. 세 가정 경제실력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번 순영의 병원치료비는 나중에 세 가정에서 골고루 분담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대신 이번에 발생하는 호텔비용과 매일 세끼 식사비용은 맏이인 자기네가 부담할 거라고 했다. 안해 지연이도그런 비용은 당연히 맏이인 자기네가 부담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 남편의 말에 따라주고 힘을 실어주었다. 순호네와 순복이네가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치료비와 기타 발생 비용을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하고 왔으니까 서로 돈걱정은 하지 말자고 했다. 순철은 그러는 동생들이 고마웠다. 안해 지연이도 동생들과 함께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씻은 다음 다시 병실에 모이기로 했다.

이 때 복도 저쪽 끝에 하은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섰다. 여럿은 우르르 그리로 달려갔다.

-엄마

-어머님

-장모님

-하은아

-삼촌

-숙모

-이모

-하이고 내 새끼들아

-하이고 우리 사위

-하이고 아가들아

∼부름들이 오가고 눈물 섞인 포옹들이 오갔다. 혈육은 그렇게 정해진 부름 대로 불려지는 것이였고 혈육들은 만나면 얼싸안게 되는 것이였다.

잠시 후 병실 안 간이침대 우에 복희씨가 준비해온 하얀 천이 펴지고 그 우에  조촐한 저녁식사상이 마련되였다. 다 복희씨 손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였다.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되는데 이렇게 번거롭게 준비했어요?

큰딸 순복이가 엄마를 아끼는 마음으로 말했다.

-밖에 나가 먹는 음식 산해진미인들 엄마 손맛 배인 음식에 비하겠냐. 엄마가 아직 살아있는데 내 새끼들 밥은 내가 해 먹인다. 어서들 먹거라 식기 전에.

그리고 순영의 침대 옆에 작은 걸상 놓고 앉아 자신이 직접 순영의 입에 밥을 퍼 넣어주었다.

-사람이 죽어도 밥은 먹으라 했다. 아플 때일 수록 힘들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더 밥을 먹어야 돼. 쌀이 막대라고 산 사람은 밥을 먹어야 힘이 생기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수 있어. 너도 밥을 먹고 아픈 거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야지.

머리 쪽을 많이 높여 비스듬히 누운 순영이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밥과 반찬을 받아 꽁꽁 씹었다. 한모금 넘기고는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순영의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눈물을 감추고 촉촉하게 피여올랐다.

-어이구 내 새끼 용타∼ 제비새끼처럼 입 짝짝 벌리고 잘도 받아먹네.

복희씨 기분이 좋은지 롱담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엄마가 해준 집밥 먹어보는 거∼

순영이 숨이 가쁜지 잠시 음식 씹기를 멈추고 숨결을 가누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어?

-응. 진짜 맛있어. 혀에 감각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애.

순영이 다시 입을 벌려 엄마가 넣어주는 밥을 받아 씹었다.   

-급해 말고 천천히 씹어서 조금씩 넘겨.

옆에서 언니 순복이가 마시기 맞춤한 온도로 식힌 물을 숟가락에 담아 녀동생의 입에 넣어주었다.

너무 가슴이 찡해나는 광경이였다. 그러나 누구나 다 웃었다. 그리고 간이침대 우에 차려진 음식들을 입에 넣고 맛보며 다들 엄마표 음식맛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장모님 음식점 꾸리면 대박 난다니까.

사위가 장모를 올리 치켜주는 롱담에 분위기가 한결 더 훈훈해났다.   

복희씨가 한마디 했다.

-좋은 일로 모인 게 아니고 사람이 아파서 이렇게 모인거지만 다들 모이니까 이 에미는 기분이 좋구나. 이렇게들 다들 모이니 다 한데 둘러앉아서 한솥 밥을 먹어보게 되구. 한집식구라는 게 뭐냐. 한집안에 얼굴 마주보면서 한솥의 밥을 함께 나눠먹는 게 한집식구 아니냐. 지금 이곳이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먹으면 따스한 집밥이 있는이곳이 곧 집이 아니겠냐. 밥을 많이 해왔으니까 집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배불리 많이 먹거라.

순철은 엄마가 늙어가면서 점점 깊은 철리가 담긴 말씀을 철학가처럼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엄마에게 대꾸했다.

-엄마 말씀 다 맞아요. 그런데 그보다도 더 정확한 건 엄마가 오셨으니까 집인 거예요. 엄마가 계시니까 집인 거예요. 엄마의 밥이 있는 곳, 그 곳이 저희에겐 집인 거예요.

순철은 자기가 참 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해 지연의 립장에서는 자신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들인 순철의 립장에서는 엄마를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엄마가 해주는 엄마 밥을 받아먹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따스한 밥을 날마다 얻어먹고 있는 가장 행복한 아들이였다.

순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랑 오빠네랑 언니네랑 다 와서 함께 하니까 오늘은 정말 이곳이 병원이 아니고 집인 것 같애.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으니까 옛날 우리 함께 살던 따스한 고향집에 다 모인 것 같구. 정말 좋네. 이렇게 얼굴 다 보면서 밥 먹으니까∼

 

8. 향기로운 밥춤

그 날 저녁 다들 자리를 비우고 순철이네 부부만 남았을 때 순영이 오빠에게 속삭였다.

-오빠, 자기 살림 하느라 다들 바쁠 건데 이렇게 다 달려와줘서 고마워. 이제 난 죽어도 될 것 같애. 엄마 앞에 먼저 간다는 게 너무 불효인 것 같아서 미안하구 하은이 저거만 아니면∼

순철이 일부러 어성을 높이는 체했다.

-얘가 지금 무슨 엉뚱한 소리 하고 있어? 니가 지금 엄마 걱정, 하은이 걱정 하고 있을 때냐. 그럴수록 힘 내서 다시 일어서야지. 하은이 걱정을 니가 왜 하냐. 애가 너무 밝게 크고 당당하고 의젓한데두. 옆에 든든한 외삼촌과 이모들 잔뜩 있는데 뭔 걱정이냐. 엄마도 그렇지. 울 엄마 어떤 엄마냐 이 세상서 가장 강인한 분 아니냐? 엄마 걱정, 하은이 걱정 다 붙잡아 매여두고 니 병치료나 잘하자.

-아니야, 오빠, 내 상태 내가 잘 알아. 나 오래 못 가. 나 아까 오후에 잠간 잠들었을 때 죽은 순기오빠 봤어. 순기오빠 죽어서 아버지 사는 동네로 가서 아버지랑 함께 사나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오라고 순기오빠를 보냈대. 순기오빠가 그랬어. 아버지가 날 데려가기전에 엄마를 먼저 데리고 가려고 엄마를 찾아갔댔는데 엄마가 화를 펄펄 내며 비자루로 아버지 등을 때려 쫓더래. 울 엄마 아무래도 백년장수 하시려나봐. 그래서 아버지가 이번엔 아파서 고생하는 나를 해탈시키려구 오빠를 보냈대. 그런데 그때 엄마가 저녁밥 준비해서 오빠랑 언니랑 다 함께 문 열고 들어오신 거야. 나랑 이야기 나두던 오빠가 엄마가 들어온다며, 엄마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고 엄마 소원 꺼주라며 오늘은 날 데리고 가지 않겠다 했어. 며칠 후 다시 데리러 오겠다 하면서. 엄마를 보니까 자기도 눈물 난다면서 눈물 흘리는데 너무 꼭 현실 같아서 나 막 순기오빠 손을 잡고 따라갈 번했어. 난 아무래도 엄마 먼저 아버지와 오빠 사는 동네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애. 하은이만 아니면 나 정말 사는데 아무 미련두 없는데.

순철이 화가 치밀었지만 억지로 참고 태연한 척했다.

-니가 아프니까 생각이 많아져서 그래. 엉뚱한 생각만 하니까 꿈도 그렇게 엉터리 꿈을 꾸는 거야. 나도 꿈에 드문드문 아버지도 보고 순기형도 보고 그래. 왜 안 보겠냐. 나를 만들어준 친아버지이고 내 우에 태여나서 나를 업어주던 친형인데. 친혈육은 그렇게 음지와 양지에 갈라져 살아도 서로 잊지 못해 꿈에 찾아오고 꿈에 만나보고 그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좋게 생각해. 그리구 꿈을 꾸고 나면 난 그 꿈 내용 기억하지 않고 일부러 다 잊어버려. 훌훌 털어 잊어버리면 다 아무것도 아니잖냐. 그래서 꿈이잖냐. 꿈 같은 거 믿지 마. 너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꿈이 무서워져서 그래. 이 오빠 니 옆에 왔잖냐. 꿈을 무서워하지 마. 꿈에 순기오빠 다시 나타나면 나를 불러. 내가 그 꿈속으로 달려들어가서 순기형 쫓아보내줄게. 아니다. 내가 오늘 밤 꿈에 미리 순기형 찾아가서 욕 좀 해놓을게. 괜히 아픈 막내녀동생 꿈속에 찾아와서 엉뚱한 짓 하지 말라고.

불길한 꿈얘기를 하는 순영을 이렇게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로 달래며 순철은 정말 순영의 남은 나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아까 엄마가 하은이랑 집으로 돌아갈 때 꼭 엄마를 붙잡고 싶었는데. 딱 하루만이라도 엄마품에 안겨서 잠 자고팠는데∼ 근데 나 밤에 또 호흡장애를 일으킬가봐, 그런모습 엄마에게 보여드릴 수 없어서 그냥 엄마를 보내드렸어. 아, 나 죽어도 엄마 품에 안겨서 죽는 게 소원인데∼오빠, 나 참 나쁜 딸이지? 엄마 품에 안겨서 죽어 엄마 가슴에 너무 아픈 대못 박으려 하는 세상 제일 고약한 나쁜 년이지?

순영이 말하느라 너무 지쳤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슴이 심하게 오르내렸다. 그러면서도 그냥 더 말하려 했다.

그러는 순영의 이마 땀을 닦아주면서 순철이 달래였다.

-그래, 니가 다 나아서 퇴원하면 나 엄마를 모시고 가지 않을게. 당분간 엄마가 니 옆에 머무르게 할게. 그 때 마음껏 엄마품에 안기고 마음껏 응석도 부리고 해봐.

순영이 빙그레 웃었다.

-정말 그랬음 좋겠어.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걸 내가 잘 알아. 나 오빠한테 한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준다고 약속해줘.

-무슨 부탁이냐. 이야기해봐야 대답하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니야?

-아니야, 오빠가 진짜로 나를 고와하구 아낀다면 내 청을 꼭 들어줘야 돼.

-글쎄, 일단 말을 해봐야 알지. 이렇게 무조건 청을 들어준다고 미리 답복부터 하라는 생어거지가 어딨어? 말해봐, 뭔지.

-오빠.

불러놓고 순영이 간절한 눈빛으로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 나 한번씩 호흡장애 오고 근육에 경련이 올 때마다 정말이지 지옥에 갔다오는 것 같애. 죽기보다 더 힘들어. 너무 힘들어서 그때마다 힘을 활 놓고 죽어버리고 싶었는데 하은이가 불쌍해서 못 죽었어. 이제 오빠랑 언니랑 다 와서 하은이를 맡아주겠다니까 나 한시름 놨어. 만약 나에게 호흡장애가 오면 이번엔 제발 그대로 내버려둬. 강제로 호흡기 자극해서 숨 쉬게 하고 산소호흡기 들이대서 다시 살아나게 하지 마. 내가 아직 제정신이고 조금이라도 원래 모습 얼굴에 남아있을 때 그대로 훌 맥 버리고 떠나가게 내버려둬. 살겠다고 버둥대는 치사한 모습 그냥 더 하은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미안해. 오빠 말 대로 내가 죽으면 하은이 제일 불쌍하지만 그래도 우리 하은이너무 당당하니까 반드시 다시 씩씩한 아이로 이 세상 멋지게 살아가겠지 뭐.  

순철이를 쳐다보는 순영의 눈빛이 너무 애절하게 애처로웠다. 그러나 그 눈빛은 거부할 수 없게 너무나 강렬한 힘을 담고 있었다. 아까 낮부터 지금까지 순영의 눈빛에 이렇게 강력한 힘이 담긴 적이 없었다. 창백하던 얼굴빛도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 피색이 돌고 있었다. 이런 걸 반조현상이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얼핏 순철의 뇌리를 스쳐지났다.

-순영아, 너는 떠날 준비가 되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엄마랑 언니랑 오빠랑은 전혀 너를 보낼 준비가 되여있지 못하구나. 너 많이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를 위해서라도 더 살아야 해. 반드시 힘 내서 다시 일어서야 해. 늙은 엄마를 두고 니 먼저 가겠다는 건 말도 안되는 걸 알지? 하은이 대학 마치고 남자친구 사귀고 시집가는 것도 다 봐야지∼

순영이 허구피 웃었다.

-아니야, 나 사는 거 정말 힘들어. 이젠 훌 가버리게 그냥 놓아줘. 오늘 다 봤잖아?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어보고. 아, 아까 엄마가 해주는 집밥 정말 맛있었는데∼

순영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의 밥맛을 기억에 담고 눈감으면 마지막 길 따스하고 아름다울 것 같애.

순영이 얼굴에 그냥 행복한 미소를 담고 살풋이 눈을 감았다. 그 얼굴이 점점 더 이쁘게 피여나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뜬 순영이 순철에게 속삭였다.

-오빠, 나 방금 눈 감고 무대 우에 춤 추는 내 모습 떠올려봤어. <엄마의 밥>을 주제로 독무를 만들었어. 아 참,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롭고 에너지 충만한 생명의 찬가로 관중석에까지 밥향기 넘치게 하는 무용인데∼아쉽네∼ 무대에 올릴 수 없고 직접 출 수 없다는 게∼

순영이 정말 아쉽다는듯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 눈에 춤에 대한 동경이 골똑 담겨있었다.

 

9. 자장가 

그 날 밤 자정을 넘기면서 순영이 고열에 시달리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순철이 급히 호출버튼을 눌러 야근 당직 의사를 불러 긴급구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정말이지 눈앞에 직접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모습을 대한다는 건 죽기보다 더 괴로운 형벌이였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괴로운데 호흡장애로 거의 한시간동안 온몸이 비틀리는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지 순철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심장과 페를 자극하는 강력한 약물투약으로 거의 한시간 만에 다시 호흡을 찾아 숨결이 겨우 다시 고르로와지기 시작한 순영의 온몸은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아니, 그것은 땀이 아니였다. 죽음과 맞서 싸우느라 온몸을 비틀어 쥐여짠 생명의 진액이였다. 또 한고비를 넘겼음을 확인한 지연이가 탈진 상태로 축 늘어진 순영의 몸을 더운 물에 수건을 적셔 닦아주었다. 순영은 죽은 것 같이 아무 것도 몰랐다.

순철이 의사 사무실을 찾아 상담을 요청했다. 의사는 의덕의 각도에서 환자가 위험할 경우 의사로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살려내고 무조건 그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의무와 직업도덕을 지켜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더 회복의 가망이 없고 생명을 연장해봤자 환자의 고통만 연장해주는 치료수단 밖에 되지 않는 경우, 환자 가족의 동의와 요구하에 긴급구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호출버튼을 눌러 의사가 환자 앞에 도달했을 때는 환자 가족의 그런 요구가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를 앞에 두면 의사는 무조건 환자를 살리기 위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말뜻을 순철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의사도 우리 순영이가 더 가망이 없다고 하는구나. 의사도 우리더러 순영이를 보내주라고 하는구나.

의사 사무실을 나서는 순철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철은 그대로 병실로 돌아가 순영이를 내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순철은 직접 병실로 돌아가지 않고 복도 끝 비상계단 쪽으로 내려가 입원병동을 나섰다. 건물 한쪽 구석 보안등 불빛이 비치지 못하는 곳을 찾아 드디여 왕왕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 순영이 불쌍해서 어쩌냐∼

-우리 순영이 불쌍해서 어쩌냐∼

-우리 하은이 불쌍해서 어쩌냐∼

순철의 머리 속에 어렸을 적에 잃은 아버지의 모습과 다 커서 잃은 순기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철은 아버지, 순기형 하고 부르며 더욱더 슬피 왕왕 울었다.

이튿날 아침, 엄마가 지어온 아침밥을 순영은 더는 한숟가락도 받아먹지 못했다. 생명의 의욕을 잃어버린 퀭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하은이를 바라보며 그냥 주르륵 주르륵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눈빛은 순철에게 낯선 것이 아니였다. 20대 한창 나이에 지병으로 앓다가 죽은 형 순기가 죽기 전날 엄마를 쳐다보고 동생들을 둘러보던 눈빛이 저러했다.

엄마 복희씨도 딸의 그 눈빛과 눈물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억지로 더 먹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불쌍한 내 새끼∼

하시며 딸 순영의 옆에 몸을 누이셨다.

-엄마가 안아줄게. 엄마가 우리 순영이를 안아줄게. 엄마가 우리 순영이를 꼭 안아줄게. 엄마가 우리 순영이를 꼭 품에 안고 있을게.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순영이 옆을 꼭 지켜줄게∼

복희씨는 그 말을 그냥 딸 순영의 귀에 대고 반복해 속삭여줬다. 그러는 복희씨의 귀가로 피눈물같이 진한 것이 그냥 흘러내렸다.

엄마의 그 넉두리 같은 속삭임이 자장가인듯 순영이 엄마 손을 꼭 잡고 다시 잠속에 빠져들었다.

-자장 자장 잘 잔다

우리 애기 잘 잔다

자장 자장 잘 잔다

엄마 애기 잘 잔다

복희씨의 입에서 정말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 그 자장가소리 들으면서 자란 자식들 모두 침대 옆에 둘러서서 그 자장가 노래 들으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다. 순영이를 안은 복희씨의 몸이 물기를 잃어가는 벌레처럼 점점 작게 졸아들었다. 그런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린 하은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목소리 죽여 오열했다.

순철이 동생들을 복도에 불러냈다.

-순영이 오늘 저녁을 넘기기 힘들 것 같구나. 각자 애들에게 전화해서 이곳 상황을 알려주고 정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에 청가를 내고 오늘중으로 다 오라고해라. 애들에게 순영이는 고모이고 이모이지 않냐. 고모와 이모가 가는 길을 조카들이 와서 바래줘야지. 그리고 그보다도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끼리 다 통하지만 다음 세대는 다음 세대 끼리 통하고 정을 나누고 서로 힘이 되여주고 의지해야 할 게 아니냐. 하은이를 위해서라도 하은이 형제들을 다 불러주는게 좋겠구나. 순영이 외롭게 가는데 남은 하은이를 너무 외롭게 만들순 없잖냐. 우리가 다 간 다음 애들끼리의 세상이 그냥 끈끈한 혈육의 정으로 묶여지게 해야 할 게 아니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각자 전화를 돌려 자기 자식들을 불렀다. 맏이 순기가 죽고 둘째 순철이 맏이가 됐을 때부터 엄마 복희씨가 가정의 률법처럼 가르쳐온 것이 있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맏이 순철이를 가장처럼 여기고 믿고 따르고 어려워하고 잘 받들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우리 집에 맏이는 곧 엄마 다음의 어른인 거다. 다들 맏이 말 잘 들어야 한다.

그 날부터 순철은 가장의 책임을 어깨에 무겁게 받아안았고 아래 동생들은 순철의 말을 무조건 따르며 맏이를 받들었다.  

 

10. 마지막 밥

그 날 저녁 순철이는 엄마 복희씨를 하은이네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 젊어 남편을 잃고 큰아들을 눈앞에 먼저 앞세워 보낸 엄마를, 다시 또 막내딸을 눈앞에 피눈물로보내게 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하든 하은이더러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가라고 했는데 손녀도 할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복희씨는 끝내 품에 안은 딸을 놓지 않았다. 딸의 옆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순영이 마지막 숨을 간신히 톺을 때 복희씨 들고온 트렁크에서 수의 한벌을 꺼냈다. 그 옷을 당신이 직접 딸의 몸에 입혀주면서 이렇게 넉두리를 했다.

-엄마가 이 세상 떠날 때 입으려고 준비한 수의를 자식놈이 먼저 빼앗아 입는 법이 어디 있냐. 세상이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구나∼ 엄마 옷 입고 추워하지 말고 따스한 곳으로 찾아가라∼ 못난 네 아버지 찾아가고 네 오빠 순기 있는 곳을 찾아가서 세식구 오손도손 재밌게 살아라. 엄마도 이제 곧 네 뒤를 따라서 가마. 네 오빠 순기한테 엄마 마중 나오라고 잘 전해줘라. 순영이 니가 팔랑팔랑 나비 되여서 날아와서 황천길 잘 안내해주면 더 고맙구∼

당신이 입으려고 준비했던 수의를 직접 자식의 몸에 입혀주고 복희씨 이번엔 트렁크에서 깨끗한 동전 한잎과 주먹 만하게 작은 하얀 천주머니를 꺼냈다. 그 동전을 딸 순영의 입에 물려주고 하얀 천주머니에서 흰쌀을 꺼내여 순영의 입에 세번에 나누어 넣어주었다.

-순영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니 입에 넣어주는 밥이다. 황천길 머니까 익힌 밥은 쉽게 상할가봐 오래오래 상하지 말라고 생쌀을 넣어주는 거다. 저세상에서도 배고프지 말고 굶지 말고 항상 배불리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 알았지, 내 새끼야∼

그리고 왼손으로는 떨어지려는 순영의 턱을 올리 받들어 입을 꼭 다물게 하고 오른손으로는 감지 못하고 그냥 뜨고 있는 딸의 눈을 내리쓸어 감겨주었다.

그렇게 딸의 턱을 올리받친 자세로 침대 옆에 허리 굽히고 지탱하기가 몇분, 복희씨의 입에서 드디여 아이고, 내 새끼야, 이놈의 웬쑤야! 하는 오열이 터져나올 때 복희씨의 몸이 옆으로 꺾이듯 무너졌다.

옆에 서있던 순철이 엄마 몸을 받아 옆 간이침대에 눕히고 의식을 잃어가는 엄마의 인중을 엄지 손톱으로 꾹 눌렀다. 복희씨 입에서 후유 하는 긴 한숨소리가 터지고 복희씨 눈을 뜨고 주변에 둘러서있던 자식들과 손주들의 모습을 둘러볼 때 드디여 여럿의 입에서 참았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11. 가훈 그리고 가문의 전통 

그리고 이틀 후 저녁.

음식점 대형 룸.

20명은 넉근히 둘러앉을 수 있는 대형 원형 식탁에 사흘 전보다 절반은 왜소해진 복희씨를 가운데 모시고 순철, 순기, 순복이네 세 가정 그리고 죽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장례식에는 달려와준 하은의 아빠 준수까지 3세대 도합 15명이 빙 둘러앉았다. 망자를 화장해서 그 령혼을 하늘에 날려보내고 골회를 강물에 띄워보내고 돌아와 모여앉은 자리였다.

순철이 쓰러질듯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드팀없이 앉아있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 앞의 잔을 들고 일어섰다. 하은이 량옆에 나란히 앉은 아들 세대를 빙 둘러보며 입을열었다.

-자, 이제 간 사람은 갔고 산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다. 산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 밥을 먹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모였다.

오늘 이 밥은 내가 사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강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계시는 우리 엄마, 너희들의 할머니 김복희씨께서 사는 거다. 설명절 때랑 너희들이 할머니에게 챙겨준 용돈을 모아두었던 것으로 오늘 이 밥 한끼를 할머니께서 사시는 거다. 왜 할머니 이름을 직접 호명하는지 너희들은 그 뜻을 잘 모를 거다. 그래, 할머니의 이름 김, 복, 희, 오늘부터 그 이름을 너희들 가슴에 영원히 기억하고 새겨야 한다는 뜻에서 특히 호명해서 부르는 거다.

너희들 할머니 김복희씨가 이 큰아버지 어렸을 적부터 늘 귀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던 말씀이 있다. 사람이 죽어도 밥은 먹으라 했다. 이 한마디다. 기억해라. 너희들. 이 한마디- 사람이 죽어도 밥은 먹으라 했다- 평생 동안 가슴에 꼭 새기고 살아있는 내내 떠올리고 그 뜻을 새겨보아야 될 말씀 한마디다.

너희들 할머니 김복희씨 인생이 얼마나 불행했고 굴곡 많았고 고생많았고 한과 피눈물로 얼룩진 인생이였는지는 이 자리에서 더 말하지 않겠다. 서른여섯 나이에 남편을잃고 생과부로 나셨고 그리고 후에는 다 큰 자식을 한명 자기 앞에 앞세우는 불행도 겪으셨다.

그러나 그 때마다 너희들 할머니 김복희씨는 밥을 드셨고 그리고 그 밥힘으로 밥상을 차리셨다.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살아있는 네 자식을 위해 본인이 밥을 먹고 힘을내야 했고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식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셨다. 그 고난의 세월에도 너희들 엄마와 아버지 세대들 우리는 밥 한끼 굶어본 적이 없다. 지금 너희들 앞에 앉아계시는 이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 김복희씨께서 자기의 살과 피를 흘려 쌀을 마련하고 밥을 지으셔서 자식들 배를 불리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 밥을 먹고 그 자식들다 씩씩하고 건실하게 자라서 후에 너희들 엄마가 되고 너희들 아버지가 된 거고.

그 엄마들 밑에 너희들 태여났고그 아빠들 밑에 너희들 태여났다. 우리가 너희들 입에 밥을 넣어주었고 우리 세대가 너희 세대를 키웠다. 너희들 세대가 이제 너희들아래 세대 손에 밥숟가락 쥐여줄 것이고 그 밥숟가락으로 너희들 자식들은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얻는 방법을 깨우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는 거다. 그렇게 돌고 도는 인간사에 가장 지켜야 할 도리가 하나 있다. 그것이 우리 가문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밥은 먹으라 했다”이다. 친혈육을 잃는 아픔이 아무리 커도 그 슬픔앞에 산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을 먹고 나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만만찮고 지치더라도 살아나갈 힘과 삶의 의욕이 다시 생기게된다. 그게 인간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친혈육 한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슬픈 날이다. 슬퍼서 목이 메는 날이다. 그러나 그런 날이길래 우리는 더욱더 밥을 먹어야 한다. 너희들 할머니 김복희씨가 자기의 인생사로 쓰고 지켜온 가르침“사람이 죽어도 밥은 먹으라 했다”를 오늘부터 영원히 가슴에 새기며 우리 지금 이렇게 밥상 앞에 밥을 먹으려고 모여앉은 거다. 자, 슬픔은 안으로 삼키고 밥을 먹고 힘을 내자.

순철이 목을 젖혀 잔을 굽냈 다. 그리고이를 악물고 앉아버티고 계시는 엄마에게 한 말씀 드렸다.

-자, 엄마부터 한술 드셔야죠.

엄마 김복희씨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뱉었다.

-자, 다들 함께 밥을 먹자.

김복희씨가 숟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밥그릇의 밥을 한술 떠서 옆에 놓고있던 빈 밥공기에 담았다. 그리고 그 우에 아까 복희씨가 특별히 주문한 감자채를 집어서 올려주었다. 순영이가 끼니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던 감자채였다. 못난 것, 천당에 가서 감자밭 농사나 지어 먹고픈 감자나 마음껏 먹어라. 김복희씨가 속으로중얼거렸다. 

-순영아, 네 몫이다. 엄마가 끓인 밥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퍼주는 밥이니까한숟가락 받아먹어. 너때문에 한데 모여앉은 온 집 식구다. 너도 끼여서 함께 먹어야지.

옆사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 듯 말하고 김복희씨가 다시 앞그릇의밥을 한숟가락 퍼서 입에 넣었다.

-다들뭐 하냐?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거다. 밥은 누가 대신 먹여주지도않고 대신 자기 밥그릇 누구한테 빼앗겨서도 안된다. 자기 입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다.

룸 안에 온 집 식구 함께 밥 먹는 소리 하모니로 넘쳐났다.

식사가 끝난 후 김복희씨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식사하는 사이 다리맥이 풀려버린 것이다. 숨결도 많이 약해져있었다.

옆에서 부축해 일으키려는 순철이와 순호에게 김복희씨가 말했다.

-나 방금 밥상에서 잠감 눈 감았는데 너희들 아버지 찾아왔더구나. 요 며칠 벌써 몇번째다. 번마다 쫓아보냈는데 오늘은 쫓아보내지 못하고 손에끌려서 따라가더구나. 아무래도 나도 이젠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내수의는 순영에게 입혔으니까 순영이 내게 선물한 한복을 내가 떠날 때 맏이 네가 직접 수의  대신 내게 입혀주면 되겠다. 그리고다들 고맙다. 아무래도 지금 나를 순영이 입원했던 병원으로 데려다 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순철이 아무 말도 못하고 빈 껍질만 남은 엄마를 부서질가봐 조심스레 품에안았다.

-엄마, 아직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해주는 밥 나 아직 다 먹지 못했는데∼

순철의 목이 메여 목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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