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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이 만들어낸 선물
2015년 06월 25일 05시 45분  조회:775  추천:1  작성자: 장학규

 

평론]

숙명이 만들어낸 선물

김운천 선생의 수필집에 부쳐




들어가는 말

고향의 선배님이 책을 내게 되였다. 그리고 아름차게도 그 서평을 나에게 부탁해왔다. 당연히 내 수준이 별로 높아서가 아닐것이다. 고향사람으로서 남보다는 여러모로 료해가 깊기 때문일것이다.
사실 나는 평론은 작가론이 좀이라도 곁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작자의 경력이나 성격 등 내막을 잘 모르면서 평론을 하면 그 깊이나 넓이를 제대로 파내지 못할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내가 김운천 선생의 책자에 문학비평을 할만한 적임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문학비평이 이름만 비평일뿐 찬양일색으로 도배되는 현실에서 작자와 친분이 있는 내 평이 오히려 합리성을 가질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 크게 사양하지는 않았다.

해림이란 고장은 연변을 제외한 산재지구에서는 문화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일찍 광복전후에 해림에서 활동했던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후에 중국은 물론 나아가서 조선과 한국에서도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 당시에 벌써 영화음악을 창작했던 작곡가 조두남씨, 작사가 윤해영씨, 평양로농국장 배우로 유명한 김산씨, 중국동방가무단 무용쏠로 부단장 최미선씨 등이 그 대표적인물들이다. 이들은 해림에 자리잡고 많은 문예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 질펀한 문화토양은 후에도 많은 문예인들을 양성하였다. 단 문학방면만 봐도 조선족문학의 태두라고 할수 있는 김철 시인, 북방시단의 거목 한춘 시인, 저명한 소설가 윤림호 선생, 실화대부이자 신문업계 대표자 홍만호 선생 등등이 해림벌에서 출생, 성장 또는 창작활동을 전개했었다.

당연히 김운천 선생도 그중의 한분이였다. 김운천선생을 알기는 지난세기 80년대 중반이였다. 당시는 한춘 시인과 리장수 평론가가 흑룡강신문사로 자리를 옮겨가고 윤림호 소설가가 문학인들의 주축으로 활약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문학하는 사람은 대개 다분히 “멍청”한데가 있는 법이다. 질리게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하고 고루하고 고단하다. 이런 점에서 김운천 선생 역시 례외일수가 없다.

문학모임때면 만나게 되는 김운천 선생은 첫 인상에도 달변이였다. 둥굴넙죽 푸더분한 얼굴에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고있었다. 말을 시작했다하면 마치도 누구와 싸울것처럼 고지식하게 마냥 진지한 표정이 되여 격정에 넘쳐 열변을 토하군 했다.

김운천 선생이 고리타분할수밖에 없는 리유 역시 만만치 않다. 그와 마주 앉으면 두마디안에 교육 얘기가 나온다. 그는 25세 안팎의 젊은 나이에 벌써 공사 단위서기와 공사혁명위원회 부주임이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향단위서기와 부향장인셈이다. 전도가 창창한 그가 글에 랍치되여 정계에서 교육계로 인생궤도를 변경했다. 허나 그는 30년이 넘은 지금도 자기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한테서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되는 누구누구랑 어떻게 “혁명”을 했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듣지 못한다. 백번 같이 앉아도 백번다 지루하고 답답하게 교육이 어쩌고 문화가 저쩌고이다.

그에게는 고루한 일면도 없지 않다. 스타일이 매양 변함없이 그대로이고 고집이 강해 쉽사리 꺾어지지 않는다. 보수성향이 강한 편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언행에는 이마살을 자주 찡그린다.

그래서 고단할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요즘같은 경제시대에 하다못해 로변가게라도 차리는게 득이 될것도 같지만 퇴직한지도 여러해되는 김운천 선생은 융통성없게도 글쓰기를 계속한다고 야단이다. 이 고단한 길을 버리지 못하는 김운천 선생은 이미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숙명에 포박된 사람이다.

이제 그 고단한 삶과 고단한 숙명을 그의 작품을 통하여 해부해보도록 하자.


생활령역으로 널리 연장된 고지식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는 김운천 선생이 자기의 주견을 설파하기 좋아한다는것을 설명했다. 주견은 어찌보면 나만의 견해이므로 남과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인가 그의 수필에서는 우리에게 많이 생경하고 또 잘 납득되지 않는 주장들이 불쑥불쑥 나온다.

“살짝붕어”는 납주레기를 잡아온 아들을 보면서 10년전 어느 학부형으로부터 납주레기 대접을 받던 일을 쓰고 있다. 그 납주레기를 “살짝 붕어”라고 형용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서로가 전혀 닮아지지 않은, 일반 사람이라면 절대 련상할수 없는 “나는 그속에서 인민교원의 중대한 사명감을 다시 한번 무겁게 느꼈다.”고 말한다.

“두부 한모에 이어지는 생각”도 제목과는 련관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두부 한모에 22.5전씩 밑지면서도 콩으로 두부를 바꾸어먹는 우리민족의 낙후한 시장경제의식을 질타한것이다. 그러니까 “보토리(외토리)”는 이 문장에서 그저 두부를 바꾸어 먹는 주체에 다름 아니다. “두부 한모”하고는 련결고리를 도무지 찾아볼수 없다.

가히 이색적이라 할수 있는 이런 문장은 아주 많다.

“겉도는 대화”는 분명 선생님과 학생간에 방법 방식이 달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사안임에도 작자는 “평소 대화를 많이 가져야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부어넣을수 있다.”고 설파한다. “신문촌이 되였으면”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메말라가는 문화생활의 실태를 고발하고있다. 특이한것은 “우리신문조차 보기 싫어하구서야 어찌 문명의식을 갖추었다고 말할수 있을가”라면서 “문명촌건설과 문명집거구의 건설을 하자면 뭐니뭐니해도 ‘신문촌’이 먼저 되여야 한다.”는 결론을 만들어낸다. “경기의 주동권과 삶의 자세”는 시드니올림픽으로부터 신변의 두 친구의 실례를 끄집어내여 “인생도 주동권이 중요하다.”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쇠말뚝”은 싸구려 소를 사서 치부꿈을 꾸던 아버지의 일을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설왕설래가 되여버린 구조이다.

얼핏 보면 융통성이라군 꼬물도 없는 이런 수필들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물론 주제와 내용이 잘 도킹되지 않고 사건과 인물이 서로 기어가 맞물리지 않는 이런 글들은 우선 먼저 그 합리성부터 의심을 자아내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것들이 사람 좋게 고지식한 작자의 본연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두부 한모에 이어지는 생각”을 실례로 외토리도 장가 들고 두부 한모도 싸게 사먹으면 아니 좋냐로 해독하면 별로 무리는 없을것이다. 어차피 이래저래 누이 좋고 매부도 좋자는 고지식한 마음을 담았기때문이다. 

고리타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리타분은 경직을 의미한다. 반성을 모를때 사물은 메말라가고 생기를 잃게 된다. 우리는 김운천 선생의 작품에서 참으로 숨이 막히게 지루하고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고행길”은 인생길을 자전거로 열어간다. 그렇게 어렵게 열어온 인생길이지만 작자는 추호의 원망도 없다.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그야말로 노력과 분투, 모험과 도전, 결투와 죽음을 각오한 고행의 길이였다면서도 “고생도 내가 사서 한것이고 화와 복도 내가 만든것이였다.”고 세월의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자신이 모든걸 짊어진다. 누구처럼 한번쯤은 못난 년대의 탓을 할만도 했건만 답답하게 나의 차실만 살핀다.

“이 밤도 별빛이 흐른다”는 어머니가 장애인이 되는 장면부터 “자신의 불찰”로 규정해버린다. 돈 없고 의원도 없는 그 세월의 잘못은 그대로 간과해버린다. 소학교 5학년 생인 “내”가 야밤에 의사를 데리러 령 세개를 넘으면서 짐승들의 위협을 받은 것도 고작 인생이 그렇다는 체념 정도로 지나친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형상을 강직한 성품으로 굳혀버리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가 사망할때 독자들은 마침내 참을성을 잃게 된다.

“부끄러움”은 일단 앞집에 물 길으러 갔다가 게사니와 싸우는 “나”와 터밭에 물 주는 “사내”가 “탐욕”으로 해석된다는게 아이러니하다. “류학생마을’을 읽어본다”는  거액의 수속비를 팔면서 류학길에 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충고를 담았다. “제자의 사랑에 미치던 나날에”도 페교를 앞둔 스산한 교정에 조선어문선생님을 “조선엄마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학생이 왔다는 이야기를 쓰고있다.

상기한 글들은 한결같이 사회배경이 결여되여있다. 사회의 병페나 부조리, 모순들이 배제된 자아반성적인 글은 공감도도 약하고 설복력도 높지 못하다. 결국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단절된 력사속에서 삶을 연출한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것들이 고의적인 문장 장치가 아님을 글을 통해 인츰 느껴받을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욱 억이 막히고 숨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 부류의 수필들에서 강하게 풍겨나오는 메시지는 작자 본신이 그 시대에 공감도가 비교적 높다는것이다. 수혜자로서의 우월감도 가끔 보이고 가해자의 역할을 논적이 없다는 당당함도 느껴진다.
필자가 높이 사는 점도 바로 이 점이다. 이념의 지배에 쉽게 휘둘리는 중국사람들은 어떤 시대나 사건을 보는 시각이 매우 단일하다. 바꾸어 말하면 다양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살고있다.

그러니까 김운천 선생의 담담하면서도 거의 반성을 모르는 집필 풍격이 비록 각박할망정 어느 정도는 나름대로 점수를 주고싶다.


변화를 거부하는 고루한 이야기들

김운천 선생은 자기가 옳다고 느끼는건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강한 고집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분명 낡은 사유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나름대로 새로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하는 모습이 알린다.

“나의 명함장”은 32년만의 동창모임에서 경리, 원장, 교수, 공정사, 과장, 주임 일색인 동창들의 명함장을 받아든 “내”가 주눅이 들기는 고사하고 독특한 나의 명함장 “교육론문복사본”을 내민다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케이스이다. 그만큼 우리민족의 고루한 형상이 잘 반영되고있다. 세월은 요란한 발자국소리를 내면서 문명시대로 성큼 들어섰다. 짚신을 신고 초모자를 쓰던 시대는 아득히 멀어졌다. 지금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야 하고 정교한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을 해석해야 한다. 이런건 이 시대의 매너고 센스고 예절이다. 허영이 아니고 교제의 규칙이다. 그걸 무시한다는건 변화를 거부한다는 뜻이고 시대의 락후자로 남아있겠다는 의미이다.

“밑창 없는 수렁길을 따라서”는 10만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한국에 불법체류한 사실을 쓰고 있다. 난무하는 욕설, 더럽고 위험한 일, 본토인보다 낮은 대우에 시달리는 불체자들의 신세를 적고있다. 법을 지키지 않고 기능이 모자란데다가 의력까지 약한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기에 앞서 성급히 자본주의의 병폐부터 질타하고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써먹은 그대로의 답습에 불과하디. 그래서 오히려 련민이나 동정이 잘 가지 않는다.

이러고보니 이 부류의 글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말이 되여진거 같다. 사실 이것은 가치관의 차이라고밖에 해석할수 없다. 작자로서는 그런것들이 꼭 지켜야 할 가치일지도 모르겠고 한편 섭섭하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일로 평생 남을지도 알바 없다. 그래서 기록적인 차원에서는 넘어갈수 있다고 판단된다.

“벼랑길”도 한국 불법체류시절에 126명 조선족이 부산항으로 밀입국하다가 한국해경에 잡히는 뉴스를 본 소감을 털어놓고있다. “우리말은 흙덩이고 외국말은 진주보석이냐”는 한국의 외래어문화를 비판하고있다. “한국노래방에서 있은 일”은 한국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면서 나의 살던 고향 중국을 생각한다는 스토리이다. “강한 녀자냐 약한 녀자냐”에서는 “자기한테 차례진 생육임무도 완성하지 못한다면 어찌 민족앞에 책임지는 강한 녀자라고 말할수 있겠는가”라고 질의하기도 한다.

사람 좋은 김운천 선생이 쉽지 않게 화를 내는 대목들이다. 그리고 또 내남이 대강 다 알고있는 일이고 남의 사정보다 내 입장에서 팔짱 끼고 한 말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우리문단에서 꼭 던져버려야 할 고루한 고질임에 분명하다.


지속되는 고단한 삶

숙명적으로 고단한 삶을 짊어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김운천 선생이 그중의 한사람이다. 서두에서 구구히 설명했지만 김운천 선생은 창창한 벼슬길을 버리고 어려운 교육사업에 뛰여든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가시덤불인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계몽은 김운천 선생의 직업이고 묵직한 십자가가 되여버렸다. 그래서 퇴직한지 수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고행의 길을 더듬고있다. 

“무너지는 하늘을 떠받들며”가 전형적이다. 4명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에 교원 및 유관인원 지도간부 등 30여명이 참석한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것도 3명 학생을 한족학교로부터 되찾아왔기에 4명이 되였다면서 타민족학교에 간 학생들을 끌어오는 방식이 민족교육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수 있다고 일갈, 작자는 그것을 형용하여 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30개 학교가 이제는 겨우 10개 정도 남은데다 그것도 10명 정도되는 학교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앞에서 우리는 가슴을 조이지 않을수 없다. 작자를 따라 그 해결책을 더듬어야 했다.

“한국어에 깃든 사랑”은 아버지의 한국방송 청취를 가로막던 “내”가 조선어교원으로 30년, 퇴직후에도 원동학원에서 “부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작자의 민족어에 대한 깊은 사랑을 토로했다. 특히 재미있는것은 한개 반에 50~60명이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전교 학생이 40명도 되나마나하던 모교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이 숱한 타민족학생들을 조선족학생으로 만들수 없을가”고 엉뚱한 궁리를 하는 대목이다. 점차 조금씩 사라져가는 민족과 민족어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나 강렬했을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전반 작품집에서 이 부류의 수필이 가장 많은 편폭을 차지하고 있다. 작자의 신분과 경력, 바램 같은것이 모름지기 그대로 반영되고 투영된것이다.

아동독물이 적은 현실을 폭로한 “속마음을 달래우며”, 조선말매체 통신원들의 단절현상을 못내 아파하는 “짧아지는 ‘뒤줄’”, 학업을 중단한 학생에 대한 사죄심정을 그린  “못 잊을 가시사연”, 흑룡강대학 한국어반의 50여명 학생을 데리고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의 민속촌에 견학간 사실을 적은 “도심속에서 만난 한국의 일각”, 외국어선택문제를 다룬 “영어는 샘이 깊은 물이다”, 피아노 소녀를 그린 “꿈을 실은 아리랑 선률”, 가정풍파로 학업을 중단한 제자를 쓴 “저 푸른 대안으로 쪽배는 떠났는데”, 만방중학교 합창단이 “전국제4기 중소학생예술절”에서 1등을 수상한 사실을 다룬 “푸른 바다가 갈매기노래를 실어온다” 등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글들에는 마디마디마다 작자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고 아픔이 새겨져있으며 희망을 잃지 않은 오기가 자리잡고있다. 전반 작품집에서 가장 긍정하고싶은 부분이다. 더불어 김운천선생을 가장 잘 설명할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끝맺는 말

평론을 하다보면 분류를 나누어서 설명하는것이 가장 편하다. 통계학적인 수법의 도입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문학작품은 다른 과학령역처럼 무조건 줄을 세워서  갈라놓을수는 없다. 일목료연하고 효과적이여서 차용하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어차피 억지로 편입되여지는 글들이 있게 되고 한편으로 어느 분류에도 섞이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게 마련이다.

김운천 선생의 작품들도 례외없이 그렇게 빠진 작품들이 적지 않다. 구경 어떤 글들이냐고 한사코 차문한다면 그중 두개 정도를 례로 들수 있다. 
수필 “사랑의 거짓말”은 전반 작품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론리적으로 짜여져서 분류가 어렵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살면서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고 또 그런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있다.

한편 성공적인 수필로 “실수”을 꼽을수 있다. 잘못 걸려온 마작전화로부터 건축 실수, 수술 실수로 번지면서 사소한 실수라도 엄청난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서술했다. 학교나 문화나 두루 작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글이여서 주목된다.
아울러 이 두편의 글을 통해 작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수 있게 되여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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