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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2021년 06월 11일 17시 50분  조회:1358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손 도
 
     려행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어보고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된다. 나는 장가계시를 려행하면서 손도라는 가이드를 알게 되였다.  손도를 통하여 토쟈족의 력사와 전통을 알게 되였으며 기타 소수민족들이 어떻게 형성되였는가?를 알게되였다.
     우리가 장사시를 떠나 장가계시로 오기전에 가이드가 교체되였다. 교체된 가이드는 깜직하게 생긴 30세 좌우인 녀자 였다. 뻐스에 오른 그녀는 려행객들에게 깍드시 인사를 하더니 자아소개를 했다. 자신의 본명은 손여홍인데 부르기 좋게 가이드 손도(孫導)라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손도 자신은 토쟈족이라 했다. 손도가 자신을 토쟈족이라 하자 나는 같은 소수민족이여서 그런지 손도에게 마음이 끌리며 그를 주시해 보게 되였다.
    손도는 한어를 어찌도 잘 구사하는지 손도가 토쟈족이라 했는데도 토쟈족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알건대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지만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5섯개 민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토쟈족들은 자기민족의 언어와 문자가 없었기에 한어를 본 민족의 언어로 하고 있으며 한자를 토쟈족의 상용문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손도의 말에 의하면 토쟈족은 본민족의 문자와 언어는 없지만 토쟈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풍속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토쟈족들은 여늬 소수민족처럼 화려한 민족복장을 입고다니며 가족을 단위로 한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했다. 토쟈족들은 2층으로 된 목조 가옥에서 사는데 아래층은 가축우리거나 창고로 사용하고 2층에는 사람이 사는 다락식 전통 가옥에서 살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토쟈족은 특별히 은 장신구와 은 기물에 대하여 각별한 애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토쟈족들은 약혼식이거나 결혼식때 대방에게 은 장신구를 선물로 주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토쟈족들은 지금도 은 장신구와  은 기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부자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어느 조용한 기회에 손도를 보고 나도 소수민족인데 조선족이라고 하였다. 내가 조선족이라고 하자 손도는 눈을 크게 뜨고 내가 정말 조선족이 옳을가? 하는 뜻으로 찬찬히 훝어보더니 반색하는 것이였다. 손도는 나를 보고 이런말을 했다. 자신이 려행가이드를 맡아 하면서 조선족과 한국인을 많이 접촉하였다고 했다. 손도는 자기가 알건대 조선족들은 상당히 높은 교육수준과 문화소질을 갖고 있으며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민족이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연변은 조선족들의 많이 집결하여 사는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하면서 연변에는 경치가 수려한 명산 장백산이 있다고 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연변을 꼭 찾아가 보겠다고 했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에 갔다 오고 참새는 작아도 알을 낳는다고 손도는 비록 키는 작고 허리가 가늘어 보이지만 행동거지가 민첩하고 말을 야무지게 하는 총명한 녀자였다. 손도는 장사시 모 대학 력사계를 졸업하였데 중국지리와 중국력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였다. 손도는 장가계시와 장가계주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력사와 현황에 대하여 구수하게  이야기 하였다.
    “장가계시는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면적은 9.518평방킬로메터이고 인구는 170만명이며 그중 도시 인구가 50만명이 됩니다. 장가계시에는 토쟈족, 묘족, 바이족을 위주로한 17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소수민족인구가 총인구의 68프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장가계시와 장가계시 주변을 상서(湘西)지방라고 부름니다. 상서는 평원지대가 적고 대부분은 산악지대에 속합니다. 산이 많고 경작지가 적어 과거 이곳은 호남성에서도 빈곤한 지역으로 구분 되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호남 상서라 하면 과거 토비(土匪))가 많았던 곳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왜서 사람들은 상서지방을 토비가 많던 곳이라 하였을가요?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염황 자손이라고 말하지요. 우리 토쟈족들은 자신을 염황 자손이라 여기지 않고 치우의 자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염황자손이나 치우의 자손들 모두가 중화민족이지요. 하지만 력사는 중화민족을 여러개 민족으로 분리해 놓았지요.
     약 4천 년 전, 황하류역에는 많은 부락이 있었어요. 전설에 의하면 그중 한 부락의 수령이 황제(黃帝)였다고 합니다. 그는 원래 희수(姬水)에서 살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황하를 건너 탁록에 정착하고 농사와 목축을 발전시키기 시작 하였습니다. 다른 부락의 수령인 염제(炎帝)는 자기 부락 사람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발전 하다가 구려(九黎) 부락의 수령인 치우(蚩尤)와 령지를 두고 크게 싸우게 되였습니다. 치우에게는 형제가 81명이 있었는데 무두가 머리가 쇠처럼 단단하고 몸은 맹수 처럼  매우 사나웠다고 합니다. 치우의 타격을 받은 염제는 탁록에 가서 황제한테 원쑤를 갚아 달라고 간청 했답니다. 예전부터 치우를 없애버리려고 벼르고 있던 황제는 염제와 련합한후 다른 부락 사람들까지 모아 탁록 들판에서 치우와 생사 결전을 벌리였다고 합니다. 결국 황제는 치우를 이기고 그 무리들을 소탕 하였습니다. 싸움에서 패배한 치우의 무리들은 고향을 등지고 서쪽으로, 남쪽으로 도망쳐 심산속에서 살게 되였습니다. 훗날 치우의 후손들은 토쟈족, 묘족 등 소수민족으로 되였다고 합니다. 상서에 뿌리 밖은 치우의 후손들은 대부분 토쟈족으로 되였고 운남방향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묘족으로 되였다고 합니다.
     상서지방 특히는 장가계 주위의 험한 산속에 흩어져 운둔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종족을 위주로 하여 부락을 형성 하였습니다. 그런 종족들은 점차 장가계, 양가계, 호가계 등 여러 종족마을을 형성하였습니다. 마을과 지역마다에는 그 지역을 통치 할수있는 지도자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칼과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타민족과 외래인들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무리를 사람들은 토비라 불렀습니다.
     호남상서는 많은 혁명자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존경하는 화룡원수도 호남상서에서 태여났습니다. 화룡원수는 두자루의 식칼을 들고 당지의 염국을 점령하고 혁명에 투신하였습니다. 화룡원수도 한때는 토비로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손도의 말을 들으면서 손도가 왜서 소수민족의 력사와 토비에 대한 말을 할가? 혹시 손도의 가정력사가 토비에 련관되여 있지 않을가? 하는 의혹을 가지게 되였다. 아니나 다를가 내 의혹이 빗나가지 않았다.  손도는 담대하게 자기집  가정사를 이야기했다.
     “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토쟈족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때는 토비(土匪)였다는 불미스러운 명예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한때 아버지는 토비무리에 랍치당하여 토비의사로 생활한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토비의사로 있었다는  력사문제 때문에 가족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는 손도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생각을 했다. 나같으면 아버지가 토비의사였다고 하면 주눅이들어 어디서나  아버지의 력사문제를 말못하고 감추려고 했겠지만 손도는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력사문제를 주저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가? 손도를 볼수록 깨알처럼 여문 녀자로, 용기있는  녀자로 돋 보였다.
     손도는 토쟈족자치주가 언제 세워졌으며 토쟈족자치주와 장가계시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들도 알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일은 1949년 10월 1일로 정하였습니다.  1949년 10월1일부터 중국에 사는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서지방에서는 1953년에야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소수민족 단체간의 협상을 통하여 장가계지역을 토쟈족자치주로 명하였습니다. 정부의 민족정책에 의하여 한시기 우리 토쟈족자치주에는 민족군대가 있었으며 총과 칼을 휘대 할수 있었습니다.
     토쟈족자치주내에 토비에 가담 하였던 사람의 많음을 감안하여 중앙정부와 자치정부에서는 협상하여 그들에게 립공 속죄할 기회를 주었답니다. 1952년에 3만명의 토쟈족 젊은이들의 자원하여 항미원조전쟁으로 갔습니다. ”
이어 손도는 장가계국가삼림공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 했다.
     “개혁개방을 시작하기 전까지 장가계국가삼림공원은 세계에서도 손꼽을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삼림공원이였지만 유람구로 개발이 되지 않었습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토쟈족자치정부에서는 봉쇠되였던 장가계삼림공원을 개발하기로 결정 하였음니다. 처음 일본 상인한테 임대로 30억원을 받기로 하고 개발권을 임대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문표값만 받기로 하고 기타 수입은 임대자의 목으로 하였습니다. 외국인에게 개발권을 양도한후 장가계삼림공원은 개발이 빠른속도로 진척되였습니다.  산으로 오를수 있는 교통시설이 완미하게 건설되자 많은 유람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유람객들이 많아지자 지방경제도 활기를 뛰게되였습니다.
      토쟈족자치주정부에서는 장가계삼림공원을 더 높은 단계로 개발을 하기 위하여  장가계삼림공원을 국가급삼림공원으로 겪상시켜줄것을 중앙정부에 보고서를 올리였습니다. 중앙정부에서는 충분한 조사연구를 거처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가계삼림공원을 “장가계국가삼림공원”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장가가계삼림공원이 장가계국가삼림공원으로 겪상되자 천문산 유람지와 장가계국가삼림공원은 더 활기를 띠게되였습니다.
     관광산업을 기둥산업으로 하자 토쟈족자치주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오게 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토쟈족자치주를 더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토쟈족자치주를  장가계시로 격상하였습니다. ”
      나는 손도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었다. 가이드들의 수입이 얼마나 될가? 손도는 결혼하였을가? 알고 싶어 손도를 보고 년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 결혼하였는가 슬쩍 물었다. 손도는 년수입이 20만원이 된다고 하면서 어떤해에는 수입이 곱배로 될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자기는 이미 아이둘을 가진 엄마라고 하였다. 남편은 장가계시 대외무역부에서 사업하는데 경제수입도 자기보다 못지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장가계시를 려행하는 사이 손도한테서 장가계시에 대한 정보를 알게되였으며 토쟈족의 력사와 현황을 알게되여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며칠안되는 사이에 나와 손도는 친구처럼 가까히 보내였다.
     갈라질때 손도는 손저으며 “아저씨 안녕”이라 하였고 나도 “손도조카 안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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