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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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소청
2015년 08월 17일 08시 32분  조회:974  추천:1  작성자: 오설추
  
   
  우리 어릴 때는 화장실을 변소라고 불렀다. 변을 보는 장소라 해서 간략해 그렇게 부른다지만 좀은 직설적인 감이 든다. 불교에서는 해우소라 부른단다. 문자 그대로 문자 그대로 번뇌를 가시거나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데 제일 더럽고 냄새나는 곳의 이름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것이 흥미롭다. 직설적이든 시적이든 결국 모두 배설물을 해결하는 목적이지 딴 의미는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이 장소에 색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어 재미난다.
  모 시의 국장님딸의 결혼식에 초청되여 간적이 있다. 국장님의 부인과는 갓 사귄 친구라 결혼식장에 아는 얼굴이 없었다. 어느 좌석에 갈것인가 고민하고있는데 그 시의 무슨 국장인가 하고있는 동창을 만났다. 한창 잘나가는 부시장후선인이였다. 나와는 특별히 허물없는 사이여서 구세주나 만난듯 반가웠다. 함께 앉자며 따라갔더니 결혼홀에는 안가고 별도로 마련된 고급방에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세 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고급간부들을 위한 특별석인것 같았다. 한 상에 대여섯이 한담하고있고 두 상은 비어있었다. 동창이 화장실로 가겠다며 대여섯만 앉아있는 상에 짐부리듯 나를 부려놓는다. 한상에 같이 앉은 사람들은 내가 타시 사람이라 그런지 알은척도 않고 저네끼리 국장, 국장하며 찧고 까불고 있다. 독도에 버려진듯 외로워진 나는 동창만 애타게 기다리는데 이 동지는 화장실에서 큰놈, 작은 놈 새로이 만드시는지 한식경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기다리다 못해 복도에 나가보았더니 그때까지 담배 물고 화장실 문어귀에서 서성거린다. '화장실냄새 맡기 그리 좋소?' 하고 성격이 나오는대로 한마디 폭 쏘고는 도루 들어와 앉았다.
  그런데 한참 지나 우리 상에 사람이 금방 다 차자 동창이 기다렸다는듯 휙 하고 나타난다. 반가워 활짝 웃는 이 녀동창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홍위병이 천안문 향하듯 줄기차게 시장들 좌석에로 향하신다. 아무렴 그렇겠지, 시장후선인이라는 분이 어찌 가볍게 국장들과 동석하랴, 문제는 인사발령이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 국장급이라는데 있다. 분명 국장급이면서 시장들 좌석에 먼저 가 앉는다면 남들 눈에 날것이다. 매부 좋고 누이도 좋은 식으로 시장들좌석에 가서 편안히 앉자면 반드시 국장들 좌석이 다 차기를 기다려야한다. 요런 기회를 엿볼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보다 더 맞춤한곳이 어디 있겠는가.
  동창님의 뜻밖의 행위로 실망과 더불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창이니 너그럽게 리해해 주자 마음을 다잡았지만 눈에 염증이 오는지 눈알이 가만히 시려오는 것은 무었때문인가.
  이튿날 동창님께서 식사 같이 하자고 전화가 왔다. 헐소청(歇所厅)이 무엇인지 아는가고 물었다. 모른다고 한다. 헐소청이란 옛날 권세있는 재상집대문안쪽에 별도로 마련한 방으로서 벼슬을 바라고 재상을 뵈러 온 궁한 선비들이 잠간 기다리는 장소라고 알려줬다. 이제나 저제나 재상님이 사랑방에서 나오시나 엿보며 네가 화장실에서 서성거리듯 궁한 선비들이 서성거리기 맞춤한 곳이라고 했다. 나 같은 서민과 같이 식사 해봤자 헐소청을 드나들 가치도 없겠으니 앞으로 이런 전화는 절대 사절이라고 오금박았다.
  글 쓰는 사람들의 일종의 호기심이라 할가, 동창과의 그 조우가 있은 후부터 나는 파티 때마다 좌석에는 앉지 않고 공연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류의해 보게 된다. 어느 해 년말총결이였다. 그날도 령도동지들이 다른 부문에 들러서 인사하느라 오래동안 대령치 않았다. 예상한대로 한 녀사동지께서 궁둥이를 온전히 붙이지 못한 채 팥죽단지에 생쥐 드나들듯 화장실로 들락거리신다. 때론 핸드폰을 귀에 걸고 열심히 입은 놀리지만 팽글팽글 도는 눈은 수시로 바깥동정을 게을리하지 않고있다. 혹은 무슨 기미를 알아채셨는지 화장실에서 급급히 나오시다 아쉽게도 목적한 님일랑 보이질 않으면 미처 말리지 못한 죄 없는 손만 반복적으로 터신다. 그 모양이 안쓰러워 우리 좌석에라도 잠간 앉아쉬라 권했더니 살포시 앉기는 앉는다. 그런데 수시로 되록거리는 360도 동공이 풀잎에 앉은 잠자리마냥 불안스럽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한참 두드러지게 먹고 나니 본인의 방광에도 찬란한 화장실 고민이 온다. 화장실 고민이 오자 곧바로 잠자리녀사 생각이 나서 둘러봤더니 예상대로 언녕 다른 상에 날아가고 없었다. 그런데 신고스레 두 번째로 날아가 앉은 좌석에서도 그 잠자리 같은 동공이 진정 못하고 되록거린다. 그 위태위태한 동공의 주파수를 보면 아무래도 시시각각 다른 좌석에 날아갈 예정 같다. 아마도 지금 자리잡은 상에 괜찮은 간부동지들이 있긴하지만 관건적이시고도 관건적인 제일 높으신 분이 안계신 까닭인것 같다. 아무렴 맹모도 세번씩이나 이사 했을라니, 우리 잠자리 녀사라고 세번 옮기지 못할 체격이실것 같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제 일 령도동지옆에 이미 발빠른 한 녀사동지가 호사스레 떡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고약한 지고!
  마침 발빠른 "고약한 지고!"가 일이 있다고 나가신다. 대박, 오늘은 내나 슬금슬금 령도 옆자리나 차지해 볼가. 그렇잖아도 며칠전에 제 일 령도동지께서 연극표까지 주며 선심쓰는것을 마다했었는데, 오늘은 웬일로 라이벌경쟁의식이 생기는가. 이런것이 자기 갖기는 싫고 남주기도 싫은 요상스러운 사람심리인가. 어쨌던지간에 우리 맹모님이 오늘은 참 재수가 없어, 나처럼 요때쯤 해서 화장실 고민을 하실것이지, 하기에 빠른 놈도 살고 늦은 놈도 산다했다. 굼벵이처럼 느린 나도 맹모녀사처럼 나도 젖은 손을 부랴부랴 털며 화장실을 나와보자, 또한 우리 동창동지처럼 홍위병이 천안문을 향하듯 줄기차게 제 일 령도좌석을 향해보자! 그런데 에구, 또 한발 늦었네.
  '내 여기 앉아도 되겠습니꺄.'하는 우리 맹모의 목소리가 언녕 앞서가고있을줄이야. 두툼히 화장한 못난 얼굴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자음을 빼고 모음만 남은 간드러진 허밍. 아, 이번에는 심마진이 오는지 온 몸에 두드러기가 슬금슬금 돋을가 한다.
  화장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화장실에 관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관광코스로 금방 지정된 마을이 있었다. 산골이다 보니 공용화장실이 없어 려행객들이 불편을 겪었는 모양이다. 횡재할 기회를 포착한 갑 농민이 재빨리 공용화장실을 지어 돈을 벌었다. 이에 건너집의 을 농민도 뒤질세라 화장실을 지었다. 그바람에 수입이 절반이나 줄어든 갑이 묘한 꾀를 생각해 내였다. 려행객으로 가장하고 아침부터 을 화장실을 차지하고 앉아있는것이다. 화장실문틈으로 토치카구멍 내다보듯 시시각각 엿보다가 사람기척만 있으면 컹컹 기침을 해서 쫓아냈다. 려행객들이 좋던궂던 갑 화장실에 돌아가 동전을 집어넣은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그 화장실이야말로 횡재둔소(横财遁所)로서 더할나위 없는 장소라 하겠다.
  갑의 마누라가 저녁 이슥토록 랑군이 돌아오지 않자 을 화장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랑군이 정신 잃고 쓰러져 있을줄이야. 점심시간도 마다하고 온 종일 똥냄새만 맡았으니 오죽하겠는가.
  우리 동창동지나 맹모여사도 제 일 령도동지가 해종일 파티에 나타나지 않으면 갑 농민처럼 아예 화장실에 둔치고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지금의 화장실은 재래식이 아닌 수세식이라서 변독가스에 쓸어질 정도까지는 되지 않으리라.
 
   이젠 화장실 정의를 다시 내릴 때가 된것 같다. 변소나 해우소라기 보다는 '헐소청'이라 함이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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