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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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된 생명의 메아리
2009년 03월 04일 08시 39분  조회:2001  추천:29  작성자: 오설추

     마지막 길을 잘 해드리려고 나는 심한 풍을 맞아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셔왔다. 몇달간 정성껏 모셨더니 누워 앓는 로인답지 않게 하야말쑥하고 윤기가 돌아 보는 사람마다 천사처럼 곱게 늙는다고 부러워하였다. 남편도 우리 어머니를 ‘5성급’대우를 받는 고급로친이라고 ‘놀려’주군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무엇이 불만족인지 늘 울며불며 진정을 못했다. 때론 밤중에도 새된 소리를 쳐서 집식구들을 몽땅 깨워놓고는 자식들의 걱정과 근심어린 시선속에서 당신은 여유있게 마라손 울음을 시작하는것이였다. 딸이였기에 망정이지 며느리였으면 동네에서 로인을 때리며 구박하는가 하였을것이다.

    솔직히 말해 애가 울며보채는것은 귀찮을뿐이지만 늙은이가 밤중에 길게 늘이며 천천이 우는것은 귀신이 곡하는 소리와 같이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얼마나 불편하면 저러실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약도 대접해보고 간식도 드려보고 배겨서 그러는가  돌아눕혀도 보며 별별 방법을 다 해보았다. 그래도 어머니 울음은 그칠줄 몰랐다. 이튿날 아침에는 출근해야겠는데 온밤을 이렇게 시달리고나면 저도모르게 짜증이 나고 미워나서 한참동안 못본척하고있으면 이번에는 마구 발버둥치며 야단이시다. 이러는 어머니를 보고 아들은 외할머니가  ‘전술’을 바꿔 새로운 ‘발동’을 건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나도 ‘발동’에 걸렸는지 방금까지 고깝던 생각이 훌 사라지며 킥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아들녀석이 탁아소문어귀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발버둥치던 모습이 떠오르며 ‘피부기아증’이란 의학명사가 생각났기때문이다.

    ‘피부기아증’이란 사람이 굶으면 기아가 들듯 피부도 ‘굶’으면 기아에 허덕인다는 뜻이다. 부모의 애무속에서 피부를 포식하며 자라는 애들은 그 증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부모의 애무없이 고독하게 자라는 애들은  그 증상이 심하다고 한다. 고아원의 애들이 간단없이 벽에 골을 짓찧거나 우정 싸움을 걸어 매를 청해 맞는 등 현상이 바로 이런것인데 타의적인 피부학대를 청해받으면서라도 허기진 피부를 달래야 하는 고아들의 무의식적인 발로인것이다. 황차 포화된 애무상태에서도 엄마를 떨어지기 싫어 발버둥치는 애들일진대 따뜻한 애무는 커녕 부모의 아픈 매 한번 맞아보지 못한 고아들이야 더 말할나위 있겠는가. 고아들이거나 현재 외국에 돈벌러간 부모들로하여 고아아닌 고아가 된 아이들이 범죄률이 높은것도, 또 공부를 안하고 pc방에서 밤을 새우는것도 바로 이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피부기아증을 달래기 위한, 혹은 발설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데  범죄행위나 pc방같은 곳이 바로 그런  적절한 장치가 아닐듯 싶다.

    사람이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도 늙으면 애들처럼 피부기아증이 온다는 말로 된다. 십몇년간 시아버님과 친정어머니를 차례로 모셔보면서 이 점을 절실히 느꼈었다. 늙은이가 ‘아이’가 된다는 말은 결국 ‘늙은 아이’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로 되며 애들이 엄마의 애무를 수요하듯 ‘늙은 아이’들도 ‘엄마’의 애무가 수요된다는 말로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귀여워서라도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지만 파파 ‘늙은 아이’들은 어느 누가 감정이 나서 안아주고 뽀뽀해 주겠는가, 더구나 로인들을 구박만 하지 않아도 복으로 알라는 이 세월에 말이다. 좀 현명한 자식들이라도 기껏해야 나처럼 의식주나 돌보는 의무적인 보모역할밖에 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늙으면 원하든 원치않던 피부기아증에 걸리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울며 불며 진정을 못하시는것도 아마 이때문일것이라고 진단해본다. 로년의 비극은 자식들이 이것을 로망으로 보고 방심하는데 있지 않을가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 어머니가 몹시 섭섭해하며 하시던 말씀이 맞혀온다.

  ‘애가 그렇게도 고우냐? 너도 다 그렇게 자래웠건만…’

  애 엉덩이를 물고 빨고 하며 고와 어쩔줄 모르는 나를 보며 하시던 말씀이다. 오늘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때 분명 애무를 독차지한 외손자를 ‘시기’하고있었고 이 딸에게 주었던 사랑과 애무를 은근히 되받고싶어했던것 같다. 더구나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고 오로지 치마폭에 감긴 여섯자식들과만 고독을 풀어나가던 어머니가 아니였던가, 늘 이 막내딸만은 더 크지 말고 조꼬만대로 당신곁에 붙들어놨으면 좋겠다던 말뜻을 이제야 알것 같다. 치마폭에서 하나하나 빠져나가는 자식들로하여 얼마나 허전하고 외로왔으면 이런 말씀이 다 나오실가, 어쩌면 어머니의 피부기아증세가 그때부터 서서히 시작되였는지도 모른다. 제 살붙이에게 쏟아부었던 애무의 손길을 다문 얼마만이라도 부모에게 기울였더라면 어머니의 증상이 이토록 심하지 않았을것을.

    가슴저린 추억을 뒤씹으며 나는 과거를 보상하려는듯 와락 어머니를 붙안고  눈물을 흘렸다. 당신도 어느새 진정되였는지 젖먹이처럼 내 볼을 부여잡고 와와 하며 좋다고 야단이시다. 그러더니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할것처럼 끙끙 갑자른다. 갑자르다 안되니 답답하다고 가슴을 팡팡 치다가 끝내는 ‘엄ㅡ마ㅡ’하는 소리가 터져나오고야말았다. 어머니가 말을 잃어버린지 한달만에 처음 나오는 발음이였다.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남편이 너무도 신기해서 어머니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 딸님이 어머이의 엄마란 말임둥?’하고 물으니 단번에 옳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이어 시름을 놓은듯 안도의 숨을 활 내쉬는것이였다.

    ‘딸이 엄마 되믄 이 사위는 어머이의 아부지 되겠씀다, 예?’하고 남편이 슬쩍 롱담을 걸자 알아듣고나 그러시는지 당신도 같이 따라 웃고있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치에 털이 나는데…’

  곰처럼 자던 아들애가 어느새 깨여나서 할머니를 놀려주고있었다. 어머니의 눈가에는 어느덧 빨간 부끄러움을 탄 연분홍눈물이 달랑달랑 즐겁게 춤추고있었다.

    이렇게 어머니와 울고웃고 하며 살아간지도 어느덧 일년이 지나갔다. 여든하고 다섯해를 넘긴 어머니도 이젠 더는 지탱 못하시겠는지 우유 한모금도 넘기지 못한다. 단백질도 다 빠져나갔는지 며칠사이에 팔 다리의 살이 뭉텅뭉텅  물러나며 뼈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다. 예전 같으면 한동네가 아니라 열동네도 더 깨우며 소리쳤겠건만. 내 발걸음소리만 들어도 반짝 빛내던 안질이 멍해 천정만 쳐다보고있다. 나만 보면 ‘어마’하고 부르던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자식들이 통곡치며 애끓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모두들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의 림종만 지켜보고있었다.

이때였다.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아들애가 엎어질듯 달려들며 할머니 얼굴에 마구 뽀뽀를 퍼붓는것이였다. 순간, 옆에 있던 보모가 환성을 올렸다.
‘할머니 웃씀다!’
  하긴 달반전에 들어온 보모가 돌처럼 굳어진 어머니의 모습만 보아왔으니 환성을 지를만도 한 일이였다. 뒤이어 철문처럼 닫혔던 어머니 입에서  ‘어ㅡ마!’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숨막힐듯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드디여 흑 하고 터지는 울음소리와 더불어 형제 모두의 입에서 ‘엄마!’하는  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여섯쌍의 눈들이 약속이나 한듯 어머니의 집요한 눈길을 따라 우리 아들애한테 쏠려진것이다.

    순간, 나는 키스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더불어 숭고한 감정이 치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남편과의 첫키스도 격정과 환회에만 머물렀을뿐 이렇게까지는 승화되지 못했었다. 언어에 대한 기아를 느끼며 나는 저도모르게 키스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키스ㅡ사랑의 불길을 일으킬수 있는 발화점, 스러져가는 오감을 환원시킬수 있는 환원제, 생명력을 촉동시킬수 있는 촉감, 그리고 또, 또…
   그 이튿날부터 쇤이 다 돼가는 이 막내딸과  한타스나 되는 어머니의 손자손녀들이 겨끔내기로 할머니를 뽀뽀해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사라질줄 몰랐고 덩달아 터져나오는 ‘어ㅡ마’소리도 단순히 엄마만 찾는 소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촉감으로 발굴된 생명의 노래였고 촉감으로 환원된 생명의 메아리였으며 절정에서 울려퍼지는 생명의 탄성이였다.  어머니는 이렇게 일주일간 내내 웃으시며 엄마를 부르다가 쌕쌕 잠든 아기처럼 달콤하게 천당으로 가셨다.
    금년 가을에 어머니무덤에 가보니 산뜻한 코스모스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나를 반기고있었다. 어머니가 제일 즐기던 꽃이였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날아왔을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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