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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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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129번
2014년 08월 31일 19시 48분  조회:956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129번


아, 미치겠네. 그녀는 워이커광장 버스역에서 바장이고 있다. 벌써 그러기를 20여분이다. 129번 버스는 여전히 나타나지를 않는다.
건너가본다?

눈으로 힐끔 건너다 보이는 거리 저쪽 리커라이슈퍼 밑이 129번 선로의 출발역이다. 걸어서 채 5분도 아니되는 거리이다. 거기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면 한 40분 동안 편안히 앉아서 집까지 갈 수 있다는 유혹을 난생 처음 강하게 받았다.

그래도 그녀는 서성이기만 할뿐 쉽게 걸음을 성큼 떼어서 거리를 넘지 않는다. 웬일인지 그녀는 팔다리를 쭉 늘이고 앉아있기보다 붐비는 사람들속에 서서 흔들리며 가는데 더 습관이 되고 스릴을 느끼는 편이다.

이제야 오네. 진짜…

그녀는 선 자세 그대로 머리만 왼편으로 돌린채 저 앞에서 굽이를 돌고 있는 버스를 눈여겨 살펴본다. 연푸른 색상만 보아도 129번 버스가 틀림없었다.

한눈에도 서있는 승객이 여럿 되도록 만원인데도 하품을 토하며 심드렁하게 서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길가에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사람들은 뭐나 다 늦은데 버스 타는데만은 누구보다 빠르단 말이야. 그녀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인간이란 참 아둔하고 미련한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먼저 올라가도 어차피 시루속 콩나물처럼 허리 휠 틈도 없이 꼿꼿이 서서 가야 할 운명이 분명하지만 목숨을 걸듯이 밀고닥치며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인생이 참 더럽고 역겹다는 느낌뿐이었다.

늘쩡늘쩡 마지막으로 오른 그녀는 한사코 입구쪽에 몰려서있는 사람들 틈새를 간신히 비집으며 뒤쪽으로 움직이다가 버스가 예고도 없이 부르릉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하필이면 이쪽을 향해 서있는 덜 젊은 남자의 품에 그대로 자신을 들이박았다. 그 경황에도 남자의 향이 코속을 간지럽혀왔다.

아 미안해요!

이제 갓 서른을 넘겼지만 오랜 풍진을 겪은 것처럼 쉽사리 얼굴이 붉혀지지 않는다.

괜찮아요.

역시 애된 남자보다 성숙된 남자가 보기에도 즐겁다. 그녀는 말없이 해시시 웃어보이고 남자의 뒤로 넘어가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남자가 뒤로 한번 건너다보는 것이 감각으로 잡혀왔다. 40대 중반의 남자의 몸에서 나는 향이 어쩐지 많이 익숙했다. 남편의 몸에서 가끔 맡았던 거 같다.

다음 역은 이촌파크역이다. 말이 파크이지 별로 시설물도 없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이 역은 청도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버스환승역이기도 했다. 아직 버스가 멈춰서지도 않았는데 저 앞에서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우야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무관심인듯 파크내 지하슈퍼로 눈길을 돌렸다. 버스 정류소와 대착점에 있는 지하슈퍼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미꾸라지처럼 쉴새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었다. 미꾸라지를 연상하니 엉뚱하게도 난생 생각지도 않던 추어탕이 먹고 싶어졌다.그녀는 뭐나 많이 먹지 못하는 새처럼 작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지만 짬만 나면 뭔가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지하슈퍼로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선미미스낵”이 있다. 거기엔 그녀가 즐기는 냉면도 있다. 비빔밥도 있다. 떡볶이도 일품이다. 한그릇 후딱 해치울까보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버스는 그녀의 욕망을 무시하고 이촌파크를 저만치 밀어버린다. 버스가 달리는 거리만큼 시간도 앞으로 달린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머리를 털다가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누군가 그녀의 등뒤에 바싹 붙어서서 그녀의 머리칼위로 뜨거운 숨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스므나문살되어보이는 남자가 하신을 밀착해온채 아닌보살로 얼굴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살짝 몸을 옆으로 탈았다. 무언가 딱딱한 것이 허벅지를 툭 스치고 튕겨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반감은 없었다. 워낙 승객이 붐비다보니 서로가 불편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부자연스럽게 앞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그녀는 마침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향기있는 중년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느새 앞으로 향했던 남자가 그녀쪽으로 몸을 돌려세우고 있었다. 가슴 부위로 쏠린 남자의 눈길은 뜨거울 지경으로 강렬했다. 가끔 당하는 일이어서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대체가 거기서 거기야.

이날따라 그녀는 드물게 가슴 낮은 옷을 입고 있어 가슴 라인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남편도 남자라고 치부하면 그녀의 가슴은 언녕 남자한테 오픈된 것이다. 쑥스러울 것도 없었다. 괜히 내숭 떨고 생까는 여자들 보면 오히려 민망했다. 분명 남들이 보아달라고 옷을 차려입고 나섰으면서도 아닌체 새침 떼는 건 여자들의 특허인듯 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손을 올려 가슴을 가렸다. 어쩜 자기가 다중 인격을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섬찍하기도 했다.

버스는 경운기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차창밖으로 “차이나모바일”이란 간판을 내건 빌딩이 보였다. 매일 이 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처음 보는 집이다. 보름후면 남편이 회사일로 출국하게 된다. 견물생심이라고 언제부터 시간나는대로 국제로밍을 좀 해달라던 남편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출입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점잔을 빼며 한옆에 붙어있던 젊은 남자가 아쉽지 않게 떨어져나갔고 중년남자의 눈길은 지궂게도 따라왔다.

버스가 하왕부 역에 칙 하고 멈춰서고 승객들이 하나둘 튕기듯 내렸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있기만 했다. 순간이긴 했지만 머리는 거의 공백상태에 처해있었다.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역을 지나치는 건 밥 먹듯 자주 있었고 멍하니 서있다가 그대로 차를 놓쳐버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벌써 늙어버린 건가? 여자는 7, 남자는 8이랬던가. 동의보감에 그렇게 적혔다는 거 같던데. 여자는 일곱살에 여자생리가 형성되기 시작해서 14세면 완전 여자로 되고 21세쯤 되면 최고봉을 자랑하다가 28세면 노쇠가 시작된다고 어디서 들었던지 보았던지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노쇠가 한참 진행된 셈이다.

다시 버스문이 닫히고 금수로를 가로질러 308국도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원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말고 그대로 출입문 옆에 고양이같이 붙어섰다. 금수로와 308국도 사이에 들어선 위동아파트단지를 한번 더 살펴보고 싶었다. 그녀가 가장 욕심내는 아파트단지이다. 옛날엔 토끼도 배설하기를 꺼리던 이 고장이 지하철건설과 이창구정부의 이전 덕택으로 평당 만원으로 치솟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아파트는 사전 예약금을 지불하고 번호를 받아야 비로서 구매자격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언제 이런 위치에서 호강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와들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실지로 그녀는 많이 민감한 편이다. 태연한체 쿨한체 해도 남들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무척 신경이 도사려진다.

한평생 평사원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기대하기는 열번도 글러먹은 일이다. 남편은 마음은 좋으나 입밖에 살아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세상 이치 모르는게 없고 사리분별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딱 돈 버는 재주만은 제로이다. 그래도 체면은 잘 챙겨서 남 하는 노릇은 다 할려고 해서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자그마한 집의 은행대출금을 갚자고 해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어떻게 갈쿠리로 돈무지를 왕창 긁어올 수는 없을까.

갑자기 버스가 터덕터덕거리며 심하게 흔들렸다. 고속도로에 버금가는 308국도에 들어섰다는 암시였다. 국도에 들어서는 차들의 속도를 제약하려고 일부러 길목에 장애물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상왕부를 지나고 산수가원역에 이르자 아까 뒤에 섰던 젊은 남자가 얼굴을 깊숙이 숙인채 내렸다. 역에서 역시 키가 호리호리하나 얼굴은 덜 고운 아가씨가 기다리다가 그가 내리자마자 옆에 아무도 없는듯 냉큼 젊은 남자의 품에 안기며 얼굴을 부벼댔다.

이 동네서 사는 모양이구나.

전에 대출로 집을 살 때 이 동네를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차가 없으면 불편할 거 같아 그만두었었다. 자가용까지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친구 하나가 중고 QQ를 사서 몰고 다니는 걸 보면서 자기는 죽어도 그런 차는 몰 수 없다는 하늘만큼 높은 마음을 가졌다.

그녀는 물론 남편도 자가용면허증을 언녕 따놓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욕심에 그들로서는 너무 아름찬 돈뭉치를 처넣고 따낸 면허증이 지금 고스란히 서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끔 그 면허증을 꺼내놓고 소나타냐 혼다냐를 두고 입싸움을 벌리기가 일쑤였다. 그녀는 일제를 선호하는 대신 남편은 언제나 한국제품을 우선하고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젊은 연인들을 한사코 돌아보며 그녀는 남자아이가 자기 뒤에 섰던 장면을 쉽사리 기억에서 지울가가 궁금했다. 인차 잊겠지. 인간이 본능을 내놓고 도대체가 진실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넘짚어보면 이해도 닿을만 했다. 숨기고 감추고 덮고 치우기에 급급한 인생은 너무도 불쌍하고 가엽다고나 할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부질 없는 노릇이란 걸 알면서도 뒤늦은 점검에 나선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화끈 달구고 있는 공공버스내 성추행사건이 갑자기 떠올라서이다.

그 아가씨도 참 코미디야. 뭐 바지에 흰 액체가 묻었다고? 액체가 뿜어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기나 하나. 그때까지 짓써 들이대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뭐했다는 거지. 희한해요 아무튼. 그리고 인육수색을 한다고 올린 그 사진도 그렇지. CCTV도 없는 버스안에서 웬 사진이란 말이. 조작이야 틀림 없이. 년놈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지. 거기에 덩달아 흥분하는 네티즌들은 또 뭐야. 머리가 장식품이 틀림없어. 요즘 세상이 정말 재미있어.

승객들이 갑자기 부산을 떨며 탈 때와 똑같은 승벽내기로 차문쪽으로 몰려왔다. 내리는 손님이 가장 많은 천태성 역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녀는 여기 치우고 저기 밀리다가 아예 버스 제일 뒤쪽으로 물러갔다.

어느새 중년남자도 뒤쪽에 와있었다. 말 못할 향기는 여전하고 끈질긴 눈길은 계속 그녀를 쫒고 있었다.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질긴 남자를 흔상하는 터였다. 남편도 거의 십년을 쫒아와서 그녀와 결혼에 골인했던 터였다. 남자는 그래도 항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 남자라야 사랑을 해도 진하게 하고 직심으로 한다고 믿는 터였다.

천태성에서 적지 않은 승객이 내렸다. 그녀 옆에서 잠자듯 눈 감고 앉아있던 아가씨 하나가 차가 떠나려고 할 때 불시에 일어나 후다닥 달려내려갔다. 뜻하지 않게 생겨난 빈자리를 그녀는 중년남자에게 양보한다는 듯 옆으로 비켜서주었다.

앉으세요.

그녀의 눈길에서 이런 뜻을 읽었던지 남자는 간만에 눈길을 풀면서 의자를 가리켰다.

아가씨 힘든데 앉으십시오.

괜찮아요. 앉으세요.

여사가 우선입니다. 사양마십시오.

아니오.

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가로젖고 이제는 텅 비여있는 차문쪽으로 다시 내려섰다. 그러면서 흘끔 천태성을 돌아보았다.

청도에서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천태성이었다. 한국인과 조선족이 무리 지어 사는 곳이다. 그만큼 청도에서도 물가가 아주 비싼 동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집값은 죽어도 오르지 않는 마을이다. 5,6년 전의 5천여원이 지금도 그보다 별로 높지 않은 가격대로 팔리는 억수로 재수 없는 단지이다. 그럼에도 임대료는 또한 청도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다. 듣건대 옛날에는 무덤자리였다고 한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면 한겨레가 몰려진 때문에 매매던 임대던 거래는 또한 활발하다고 한다. 남편 회사의 사장 부장들이 이곳에 집을 잡았는가 하면 그녀의 친구 친척도 여럿이 여기에 집을 사서 살고 있었다.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

핸드폰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사서 다운 받은 벨음악이 3년째 계속 그대로이다.

그녀는 “대장금” 드라마를 열번도 더 본 거 같다. 여러 티비에서 돌리는 걸 돌아가며 다 본 건 물론이고 DVD를 사서 심심하면 띄워놓고 감상했다. 이영애는 그래도 한복을 입어야 미인다운 느낌이 들었다. 그 날씬한 몸매와 환한 얼굴, 그보다도 유연하고 아련한 자태가 한복이라는 고유의 복장과 어울릴 때 비로소 이영애란 캐릭터가 두드러진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언젠가 KBS의 어떤 행사에 나타난 평복차림의 이영애를 보고 기절초풍할듯 놀랐었다. 저 여자가 정말 이영애가 맞을까 의심할 지경으로 여기저기가 비례에 맞지 않았다. 여하튼 그녀는 이영애팬이었고 “대장금”팬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거의 알아먹지 못하는 주제가 가사도 그녀는 언녕 외우고 있었다. “

대장금”은 멀어져갔지만 벨소리는 그냥 새롭기만 하다.

전혀 생소한 번호였지만 그녀는 그대로 받는다.

여보세요. 여긴 상해 만통증권투자회사입니다. 저…

그녀는 1초도 지체없이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왕짜증나도록 거의 매일이다싶이 여기 저기서 걸려오는 주식자문회사들의 전화이다. 상해 심천은 물론 멀리 곤명에서도 걸려온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도 어디가서 해낼데가 없다.

하긴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죄라면 돈이 그리운게 죄라 할까.

올봄이던가. 주식하는 친구가 하도 들볶아서 증권회사에 등록한 것이 화근이였다. 기실 주식 놀음 한번도 놀지 못했다. 어디 심심해서 한옆에 누워있는 돈이 있어야 놀던가 말던가 하지. 하긴 한국 간 남동생이 건사해달라고 맡겨놓은 돈이 좀 있긴 했다. 그걸 염두에 두고 탐욕의 걸음을 떼긴 했으나 정작 거기에 손을 대자니 두려워졌다. 주식을 놀다가 돈 다 떼우고 자살한 사람도 많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남동생은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 못나거나 모자란데도 없는데, 누나인 자기가 보기엔 정말 멋진 사나이인데 여직 처녀 꼬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생 덕분에 자기 집이라고 사서 지금 살고 있다. 동생이 그녀가 세집 살이 하는게 안쓰러워 집 사라고 선불금도 대준 것이다. 그 돈도 아직 갚지 못해 속병이 되고 있다.

매일마다 하는 다짐이지만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침 한창 건설중에 있는 동방성을 지나치고 있었다. 이곳이 미래 대청도의 상업중심이 될 거라고 요란하게 피켓을 걸어놓고 있었다. 딴에는 그럴듯 하기도 하다. 도심 외연이 점차 넓어져가는데다 공항이 복사하는 부근이다보니 그 파워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동방성에 동생 이름으로 상가 하나 사두는게 좋을 상 싶었다. 지금 한창 기초를 다지는 중이었지만 마켓팅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꼭 한번 와봐야지. 쇠파이프가 빼곡히 들어선 현장을 내다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꼭 마치 동생을 위해 큰 일을 성사시킨 것만 같았다. 상가가 있고 그 가게가 가격이 올리뛰고 그러면 동생도 예쁜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고 키우겠지 싶어 심장이 막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슴이 뛰면 좀체로 안정이 안되는 타입이다. 이럴 때면 세상이 한없이 즐거워보인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귀밑머리로 슬그머니 지나치는게 기분 만땅이였고 팔짱 끼고 거리를 지나치는 남녀를 그림처럼 느껴받을 수 있었다.

국제공예품성 역에 도달했을 때까지도 그녀는 흥분을 걷잡을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심한 격동에 휩싸여들었다. 저기 저 4층 건물속에 한때 그녀가 좋아했고 또 미친듯 그녀를 쫓아다녔던 사나이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인연이 그만큼이어서 이제는 완전히 남남이 되어 서로 소닭 보듯 하지만 한때는 정말 치렬한 사랑을 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여 년 세월이 흘러 제가끔 가정을 가졌지만 그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상 싶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우울이 그대로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사업도 있지만 그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한번 손짓해 부르면 그대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올게 분명했다.

내가 뭐 볼데 있다구?

그녀는 자조하듯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자는 생리적으로 여자와 틀린 모양이다. 한번 마음을 주면 미운 구석도 아픈 자리도 다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도 참으로 모질게 굴었었는데도 여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지극히 질긴 남자였다.

버스는 그녀에게 더 많은 회억을 주려는듯 부르릉거리면서도 좀체로 움직이질 않는다. 고장난 게 분명했다. 하긴 몇십년은 굴렸을 낡아빠진 고물이니까 고장 안나면 오히려 궤변일 것이다. 성냥갑처럼 꽉꽉 채워넣고 그만큼 다녔으면 새 물건으로 바꾸어도 될상 싶지만 여전히 중국답게 그 식이 장식으로 요란하게 털렁털렁거리는 낡은 버스가 가물에 콩나듯 드물게 왔다리갔다리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남자는 버스와 흡사했다. 하지만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더 정이 가는게 인지상정이다.

가끔이지만 여자로서 너무 지나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원하는데 지금이라도 한번쯤 줄가 그러다가도 나사 한번 풀리면 겉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마음을 접군 했다. 저런 남자라면 사랑해도 무방한데 나는 왜 상처만 줘야 하나. 그저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프지 말아요 화이팅!

그녀의 축복을 들었는둥 말았는둥 버스는 시동이 걸렸다.

국제공예품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동차전시판매장이 줄줄이 나타났다. 벤츠 보마로부터 대중싼타나 장안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줄로 쭉 선 그 진한 풍경은 그대로 유혹 그 자체였다. 자기도 모르게 서랍에서 잠자는 면허증이 또 떠올랐다. 세월은 좋아진것이 확실한데 그녀는 그 과실을 맛볼 수가 전혀 없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잠시나마 둥둥 떳던 기분이 불시에 식어지고 그저 백사하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심정뿐이였다.

그러고보면 기쁨이던 슬픔이던 즐거움이던 괴로움이던 모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짓거리가 분명했다. 현실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고 그녀는 여전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지만 그녀는 순간에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 그리고 행복과 불행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백사하는 오랜만에 정말로 사람이 빠져죽어도 될만큼 불어있었다. 패어들어가서 강이라 불렸을뿐 몇년동안 거의 마르다싶이 했던 강이었다. 비물이 모아져서 겨우 강이라는 명맥을 이어가는 백사하, 그런데 금년에는 곤파스요 덴무요 하는 태풍이 쉴새없이 오가더니 백사하가 찰찰 넘치도록 채워주었다.

그래도 죽기보다는 미역이라도 감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비록 추석이 눈앞에 다가온 초가을이지만 청도는 여전히 무덥기만 하다. 정말 고향에 있을 때처럼 으슥한 구석에 숨어들어 미역이라도 감고 싶었다.

자연을 잊고 산지 너무 오랬다.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냥곽같은 집안에서 아무리 물줄기 멋지게 뿜어나오는 샤워기밑에 서있어도 강가에서 물싸움하던 그 시골풍경보다 감흥이 덜했다. 사우나방에서 질벅하게 호사해도 여자들의 가슴 모양이 각양각색이고 유두도 천차만별이란 발견외에는 도무지 강가에서의 즐거움과 전혀 비길바가 못되었다.

백사하가의 유팅 역은 한산했다. 공항이 자리잡은 이 동네가 영문을 알수 없이 개발이 엄청 느리다. 다른 도시같으면 공항이 위치한 곳이 변화가 가장 빠르지만 청도는 꼭 그 반대였다. 유팅은 석 삼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식이 장식으로 아무런 체감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체교 하나 넘어가 있는 청양은 지금 한창 청도의 새로운 궐기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유독 유팅만은 아직도 낙후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청양은 한국사람과 조선족이 만들어낸거야. 이건 청양의 한족들마저 공인하는 사실이다. 언젠가 택시기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듣기도 했던 일이다. 암, 그렇구말구. 조선족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국인이 없었다면 청양의 오늘이 있을 수 없는 일이구 말구.

유팅에서 향기의 중년남자가 머뭇머뭇 내렸다. 내리면서 그녀를 한번 힐끔 쳐다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녀는 시무룩이 웃었다. 그 사이에 그만 그 남자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사람의 잊음이란 참 헤픈가 보다. 먼저 내린 꼬맹이는 이젠 어떻게 생겼던지 모습조차 기억에 남지 않았다.

창밖에 선 사나이는 가끔 버스를 올려다보면서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도 백사하에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수영이라도 할 타산을 하고 있을까?

버스는 308국도를 벗어나 와리쪽으로 굽어든다. 왼쪽으로 “한국인병원”이란 지시판이 보인다. 그만큼 와리는 한국기업이 몰려있는 동네이다. 특히 악세서리공장이 쫙 널려있다. 아무래도 이 동네서 일감을 맡아하는게 가장 편할 거 같았다. 이 곳에서 두 역전 더 가면 그녀의 집이다. 가까워서 다니기도 편하고 애를 돌보기도 제격이다.

글찮아도 언젠가 한번 공장에 찾아가서 일감을 가져간 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궤고 매고 했지만 30원 벌이밖에 안되었다. 지독한 사람들이야. 그녀는 한국사람 말만 나오면 꼭 이렇게 평가했다. 인정머리라군 꼬물도 없어. 좀 더 주면 어디 망하나? 꼭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단 말이야.

안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것들의 치닥거리 해주지 말아야지!

그녀는 괜히 버스출입문에 눈을 흘기며 종알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초원의 집”과 “경복궁”을 지나쳐 종착역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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