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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로얼 별전
2017년 06월 07일 22시 00분  조회:789  추천:3  작성자: 장학규
단편소설 
왕로얼 별전
장학규
 
로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왕거장에 살고 있는 왕로얼이 위챗으로 청첩장을 보내왔다. 마누라가 둘째를 임신했다는것이다. 
“모두들 큰 경사라면서 한턱 내라고 해서 방법없이 술상을 마련했어. 바쁘면 오지 않아도 돼.”
왕로얼을 알아서 꼭 20년만에 스물번째로 받는 청첩이였다. 왕로얼은 산동사내답게 번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대범하게 말했었다. 그리고 꼭 꼬리를 달았었다. 
“일 없으면 오든가.” 
“그런데 나이가 얼마인데 또 애를 낳는다는거야? 딸애가 작년에 결혼했던가?”
“링링이도 애를 품었어. 모녀가 같이 애 낳게 생겼단말이지. 겹경사가 났으니 한턱 쏠수밖에.”
왕로얼은 나의 로골적인 빈정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왕로얼을 알기는 갓 청도에 왔을때의 일이다. 20년전의 일인데 왕로얼은 내가 세집을 맡은 집주인이였다. 
청도에 와서 내가 처음 입사한 회사는 슬리퍼를 만들어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한국 제조업체였다. 재단, 봉제, 접착, 검사, 창고 순서로 어셈블리라인으로 이루어진 회사인데 규모가 꽤나 컸다. 
나는 운좋게도 여직원 수백명이 미싱기에 다닥다닥 붙어서 해종일 드르륵 드르륵 신발을 박는 봉제작업장에 배치받았다. 
출근하다보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동반하게 된다. 재단 현장에서는 한달에 한번 꼴로 꼭 사고가 난다고 선배들이 가만히 알려주었다. 조금만 신경을 다른데로 돌려도 재단기는 원단을 자르는게 아니라 사람손을 썩둑 해버린다고 소름 끼치는 소리로 귀띰했다. 창고에서 무료한김에 잠들었다가 사장한테 발각되여 쫓겨난 친구도 여럿이 되였다. 접착 현장은 그대로 살인적인 냄새로 진동했고 제품 마무리 단계인 검사 작업장은 해종일 긴장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넌 보기는 안 그렇는데 참 복있는 친구야.”
나보다 한달 먼저 입사하여 재단 일을 보는 화룡에서 온 선배가 나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나는 내가 복있는 사람인줄 전혀 모르고 살아왔었다. 선배의 말을 듣고서도 그저 덕담을 해주는것으로 생각했을뿐이였다. 그런데 세집을 찾으러 나가면서 정말 내가 복을 가진 사람이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좋게 왕로얼을 만난것이다. 
화학약품을 쓰는 관계로 우리회사는 청도 시내서 꽤나 멀리 떨어진 왕거장에 자리잡았다. 그때만 해도 청도는 매일이다싶이 한국기업이 무더기로 쓸어들고 있었지만 왕거장은 상대적으로 구석진 고장이라 고작 세개 기업만 자리를 틀었을뿐이였다. 우리회사가 그중 컸는데 직원이 500여명이 되였다. 
산동사람들은 듣던 말대로 정말 부지런했다. 거의 집집마다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휴일에는 농사일을 하면서 억척스레 살아가고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왜 예전에는 못살아서 관동으로 떠났을가고 갸우뚱했었는데 정작 그들의 농작지란것을 보고 경악했다. 세상에 그걸 어떻게 경작지라고 말할수 있단말인가?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새노란데다가 풀기 하나없이 푸실푸실 갈라졌다. 그것도 한집에 차례진 면적이 1.5무 아니면 고작 2무 정도였다. 거기다 땅콩 심고 고구마 심고 오이 심고 가지 심고 고추 심고 별의별거 안 심는게 없었다. 
그 척박한 땅을 대처하는 그들만의 비법이 따로 있었다. 그 비결은 화장실에 있었다. 집집마다의 화장실에는 배설물을 받아주는 큰독이 묻혀있었다. 그것들을 모아두었다가 요긴하게 써먹는것이였다. 물론 이것은 후에 할 이야기이다. 
여건이 여건이였던만큼 왕거장 사람들은 일찍부터 다종경영을 하고있었다. 밭농사, 바다고기잡이는 물론 회사 출근에 거리 장사에 닥치는대로 돈이 되는 일이면 다했다. 특히 집집마다 세집을 내고있었다. 마을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외지인이 갑작스레 늘어난것이다. 
나도 회사에 직원숙사가 따로 없어 세집을 찾아야 했다. 하여 첫날 퇴근하자마자 마을로 내려갔다. 집집마다의 벽에 나붙은 임대광고를 훓어보다가 아무렇게나 찾아들어간 집이 바로 왕로얼네 집이였다. 출입문을 떼고 들어서니 주방 겸 식당이였고 량쪽으로 사랑채가 달린 구조였다. 
마침 왕로얼네는 손님이 와서 일찍한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였다. 내 나이또래인 왕로얼은 산동사람답지 않게 왜소한 체구를 가졌었지만 성격은 역시 호방하고 시원했다. 
“세집 찾으러 왔습니다.”
내가 미안해 두손을 비비며 겨우 내뱉는데 출입문을 등지고 앉았던 왕로얼이 냉큼 돌아보며 손짓했다.
“일단 한잔하고 봅세. 들어오면 모두 손님이라구. 마침 잘 왔어. 한잔 해.”
초봄이라지만 한쪽 구석에 난로가 있어 집안은 별로 춥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왕로얼은 솜옷에 국방색 군용외투까지 걸치고있었다.
“임대 놓는다해서 들어왔는데…”
“좋아좋아, 그건 문제 아니야. 술 먹구 취하면 저 서쪽방에 들어가 자면 된다구. 어서 앉아.”
왕로얼은 나의 해석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옆에 눌러앉혔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단단하고 힘이 있었다. 
“오늘 운수 좋게 큰 우럭을 낚았어. 이거 우럭찜이니까 한번 맛 보시지?”
왕로얼은 생면부지인 나와 몇십년은 친한듯 어깨를 다독이더니 술잔을 넘겨왔다. 나는 마지못해 한잔을 받아 마시고 다시 세집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왕로얼이 고기 한점을 집어 나의 입가에 가져왔다. 내가 자리에 앉았을무렵 우럭은 이미 반나마 먹은 상태였었다. 한모금 집어보니 다른 고기와는 달리 쫀득하고 맛이 독특했다. 국물이 멀건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가. 내 성깔같았으면 고추가루를 벌겋게 뿌리고 숟가락으로 국과 고기를 듬뿍 떠서 술 한잔과 함께 넘기면 제법 좋을거 같았다. 
“친구야, 이 술은 꼭 다 먹어야 돼. 여기 법이거든. 주배 석잔, 부배 석잔은 기본이야.”
왕로얼은 코물을 벌렁거리면서 술상에서 자기가 주인이고 마누라는 부주인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자기네 두사람이 붓는 여섯잔 술을 무조건 마셔줘야 하는게 례절이란다. 
“고기는 그렇게 헤집으면 안돼. 여기 바다가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절대 번지지를 않아요. 고기가 배처럼 생겼거든. 고기를 뒤집으면 배가 번져진다는 말과 같단 말이야.”
날씨도 안 더운데 괜히 머리가 어떻게 헤까닥해졌지 않나 의심될 지경으로 왕로얼은 시도때도 없이 나의 실수를 교정해주었지만 왠지 기분이 잡쳐지지는 않았다. 넘쳐나는 열정이 에때움을 해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잔두잔 마시다가 나중에는 술이 당겨서 나절로 찾아먹으면서 어지간히 취해버렸다. 
이틑날 퇴근하고 트렁크를 끌고 다시 찾아가니 왕로얼은 서쪽 방을 벌써 비워두고있었다. 내눈에는 중학생 같아 보이는 왕로얼의 마누라가 세살난 딸애를 앞세우고 이부자리를 갖다 펴주는 사이 나는 왕로얼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임대비 얼마 주면 돼?”
“좋아좋아.”
왕로얼은 너스레만 떨었다. 
“얼마 받을거냐고 묻는데 좋아가 뭐니?”
“좋아좋아, 괜찮다니까.”
그 “좋아좋아”가 한달후에도 이어졌다. 첫달 로임을 받고 집세 얘기를 꺼내니 왕로얼이 또다시 넉살 좋게 “좋아좋아”하는게 아닌가? 자식이 꽈배기를 쳐드신것도 아닌데 밸밸 태극권을 꼬는 모양이 꽤나 유치찬란했다. 나는 미리 회사 동료들한테 물어서 이 동네 세집 시세를 알고있었다. 하여 800원 월급에서 200원을 꺼내 왕로얼의 딸 링링의 조그마한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를 갖다줘 응?”
저녁에 왕로얼이 채소 두가지를 볶았다. 하나는 땅콩 볶음이고 다른 한가지는 매운 맛조개였다. 바지락에 말린 붉은 고추를 썰어서 볶아내는 매운 맛조개는 청도 생맥주와 궁합이 아주 맞았다. 그사이 나는 이삼일에 한번꼴로 비닐봉지에 생맥주를 받아와서 왕로얼하고 마셨기에 왕로얼이 채소를 한다고 처음 왔을 때처럼 미안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우리 친구하기로 했잖아?”
왕로얼이 맥주를 부어주며 말했다. 
“그런데?”
“친구란게 써먹자구 있는게 아니야?”
“그렇지”
“슬리퍼 좀 갖다주라마. 마누라가 욕심내서 말이야.”
“아…그거 말이야…알다싶이 난 봉제팀이야. 내 뒤로 접착이 있고 큐시가 있어. 완성품은 창고로 들어가. 어디 볼수 있어야 말이지.”
“관리인들은 모두 너희들 사람이잖아. 한두컬레야 못 얻겠나 아무렴.”
그 친구 한마디에 나는 빡세게 거절 못하고 며칠동안 혼자서 낑낑 갑자르다가 결국 생산을 책임진 한국인 마과장을 찾았다. 세집에서 신으려고 그러니 슬리퍼 둬개 살수 없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전량 수출인데다가 미처 생산이 따라가주지 못해 재고품이 없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었다. 내가 념두에 둔것은 검사팀에서 골라낸 불량품이였다. 불량품은 하루 작업이 끝날무렵 작두로 자르는것이 회사 규정이였다. 그것이 절대 회사밖으로 흘러나가서는 안되였다. 마과장도 물론 내가 어벌크게 그것을 노리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한동안 나를 노려보던 마과장이 웬일인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지나가는 어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퇴근하고 찾아와.”
후에 마과장은 어느 술자리 끝에 나에게 불량 슬리퍼를 준 리유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머리 많이 다쳐 헛소리치는 놈팽이로 보여 화가 꼭뒤까지 치밀어 순간이지만 회사에서 짜를 생각까지 했었다. 겁대가리 상실한게 참 건방져보였다. 염병지랄도 가지가지라고 언감생심…그러다가 문뜩 이넘이 진실하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놈 같으면 슬쩍 서리할 궁리부터 할터인데 돈 주고 사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적어도 도적넘 컨셉은 아니였다. 잠간 더위 먹은것쯤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돌리니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더란다. 
“나가서 절대 누구하고도 말하지마. 사장 귀에 들어가면 나부터 목이 날아난다. 알겠어?”
마과장은 내가 찾아가니 도적이 강아지를 꾸짖듯 낮은 소리로 다짐을 주고 책상밑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싼 물건을 건네주었다. 
물론 나도 세집에 돌아와서 왕로얼한테 단단히 을러멨다. 
“신은 집에서만 신고 밖에 끌고나가지마. 내 쫓겨나는거 보기 싫으면 말이야.”
이듬해 날씨가 좀 풀리자 왕로얼은 고기배를 팔아버렸다. 주변 해역에 고기가 적어진것도 원인이였지만 해상사고가 빈발하여 도무지 무서워 못하겠다는것이였다. 
그때문에 왕로얼은 아버지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평생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왕로얼의 아버지는 거쿨진 체격에 우락부락한 성격을 가지고있었지만 또 쉽게 마음을 풀기도 했다. 50대 중반의 젊은 할아버지인 그는 언제 다퉜냐싶게 손녀인 링링을 안고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못하는 법이니까 맥버린 모양이였다. 
그렇지만 나는 왕로얼이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것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3월달에 접어들면서 왕로얼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콩을 심는 계절이라면서 며칠동안 부지런히 돌아치더니 하루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야. 래일 쉬지? 나하고 밭에 나가자.”
이틑날 왕로얼은 나를 깨워서 밥을 먹으라고 다그친후 뭐가 그리 급한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왕로얼의 녀편네가 차려준 밥을 느직느직 먹고 집문은 나서던 나는 그만 못볼거 보고 동공이 작살나고말았다. 왕로얼이 변소간에서 똥물을 퍼내고있었던것이다! 주위에는 지린내와 구린내가 진동하고있었다. 
“이넘아, 웬 짓거리냐? “
일년간 그 일을 볼 때마다 똘랑똘랑 주루룩주루룩 소리내며 큰독에 떨어져서 이상했었다. 저게 꼴똑 차면 어쩔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예 더 넓고 깊게 구뎅이를 파놓는게 실용적일거 같았다. 그런데 넘쳐나는 경우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왕로얼이 내가 출근한 사이에 내다버린 모양이였다. 
“자식이 자기 똥 보고 짓는 강아지와 똑 같네.허허허”
“그런데 퍼런 대낮에 뭐하는거야? 밭에 가자 했잖아?”
“맞지, 이걸 메고 가야해”
왕로얼은 시무룩히 웃으며 멜대로 인분을 담은 물통을 메고 어슬렁 대문을 나섰다. 
왕로얼네 밭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뒤산에 있었다. 멜대를 멘 왕로얼이 저만치 앞에서 휘청휘청 걸어갔다. 물통이 몸 률동에 맞추어 흔들거렸고 액체의 인분이 출렁이면서 두줄의 가느다란 금을 그어가고있었다. 나는 엄지와 식지로 코를 틀어막고 소에게 물린 상통을 하고 저만치에서 따라갔다. 
밭에 이르자마자 왕로얼은 바가지로 인분을 퍼서 부지런히 밭에다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냄새도 냄새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멀찍히 물러나 서성이기만 했다. 한참을 왔다갔다 하면서 인분을 밭에다 골고루 뿌린 왕로얼이 한옆에 널부러진 삽을 가리키면서 나한테 말했다.
“내 집 가서 한번 더 메고 올테니 그사이 저기 뿌린데 땅을 삽으로 파서 번져.”
“이눔아,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저런 일 시켜. 안한다 안해.”
“자식이 싸대기 왕복으로 쳐맞을라.”
“주둥이 세탁하고 다녀. 깐죽대다간 발에 밟힌 빈 맥주캔 모양이 될수도 있다구.”
그러면서도 나는 순순히 삽을 찾아들고 땅을 번지기 시작했다. 포크레인 놔두고 삽질한다는 말이 그른데 없었다. 하기사 1무3푼밖에 안되는 땅뙈기에 포크레인이 무슨 소용이랴.
그날 저녁 왕로얼의 마누라가 수고했다면서 술상을 차려내왔다. 여전히 땅콩 볶음과 매운 맛조개에 생맥주였다. 왕로얼과 몇년 붙어살더니 왕로얼 음식솜씨까지 따라배운 모양이였다. 한가지 더 늘어난거 있다면 토란국이였다. 토란은 쪄서 먹는줄로만 알았는데 국도 제법 맛있었다. 
“우리 둘을 좀 너희 회사에 취직시켜주라.”
술이 좀 얼근해지자 왕로얼이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요구해왔다. 기실 왕로얼이 고기배를 팔아치울때부터 이런 요구를 해올줄 미리 짐작했었다. 하긴 우리회사도 미싱사가 모자라 죽는 판이였다. 
“너는 모르겠고… 니 마누라 미싱할줄 알지?”
“그거야 말해서 아나? 우리집 옷견지 몽땅 마누라가 손수 지은거야.”
“배 고플때 흰소리가 잘 나온다더라. 너 만날 굶고 다니는건 아니니? 허허허”
“너 혹시 곤충인거니? 왜 사람말 통 알아듣지 못하니? 그러지 말고 잘 말해달라. 그러면 음력 6월달에 한잔 잘 살게.”
“근데 왜 하필 6월이야?”
“링링이 세살 생일이 그때야.”
그것은 왕로얼을 알아서 처음으로 받은 공식 청첩인셈이였다. 물론 붉은 청첩장을 직접 받은건 아니여도 왕로얼의 표정에서도 초청이 분명한것을 알수 있었다. 
왕로얼의 마누라는 내가 관리하는 미싱현장에 취직이 되였고 왕로얼도 운수 좋게 접착부서에 배치받았다. 
그해 음력 6월 초하루날에 나는 동네 식당에서 벌어지는 링링의 세돐생일잔치에 부조돈 200원을 내고 참석하였다. 마침 그날은 또 산동사람들이 꽤나 륭중하게 쇠는 “과반년(过半年)”날이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석하여 즐겼다. 그날 밤 왕로얼네 부부가 건너방에서 밤을 패면서 부조돈을 세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리가 내 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때로부터 나는 해마다 왕로얼의 초청을 받고 이런저런 파티에 참가했다. 산동사람들은 무슨 관습이 그리도 많은지 달포에 한번씩 꼭 무슨 명목의 명절이 있었다. 그리고 법도 많았다. 봄철이면 사위가 장인장모한테 싱싱한 고등어를 가져다준다. 나이가 쉰만 넘으면 자식들이 알아서 상복을 미리 준비해둔다. 어린 자녀한테 양부모를 만들어주는것도 큰행사에 속했다. 그때면 친척, 친구들이 모여 한바탕 축하연을 베풀군 했다. 링링도 양부모를 찾았고 나도 그 주연에 초청받아 갔었다. 
취직한지 5년이 된 어느날 나는 나의 직접 상급인 마과장과 트러블이 생겨 밸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과장은 나에게 불량 슬리퍼를 가만히 챙겨준 당사자였다. 어지간히 정이 들었던 사람이였는데 별로 큰 일도 아닌걸 가지고 천둥같이 화를 내더니 다시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거기에 비하면 왕로얼은 코마루가 찡하게 따스한 면이 있었다. 내가 왕거장을 떠나던 날 왕로얼은 여전히 땅콩 볶음과 매운 맛조개에다 생맥주로 대접했다. 
그후 나는 시내의 다른 회사를 이곳저곳 전전하면서도 왕로얼과는 자주 련락이 통했고 1년에 적어도 한번꼴로 꼭 왕거장에 다녀갈 일이 생겼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왕로얼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왜 앓는다는 말도 없었잖아?”
“그렇게 되였어. 그저 알리는거니 오지 않아도 돼.”
“어디지?”
“집이야.”
그럴려니 했다. 재작년인가 왕로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때도 병원에 모시라는데도 왕로얼의 아버지부터 쓸데없는 돈을 판다면서 왼고개를 틀었었다. 동네 의사를 보이면 된다면서 한사코 집에서 운명을 맞이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가보니 짐작대로 왕로얼의 아버지는 전에 내가 들었던 방에 반드시 눕혀져 있었다. 이제 고작 예순 중반이 좀 넘은 사람인데 모질(耄耋)의 노인같아 보였다. 
왕로얼은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을 거의 찾을수 없을만큼 평온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가끔 가벼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나한테 다가온 왕로얼은 미안하다는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조문 오는 사람들이 많아 너만 붙들고 있을수 없구나. 량해해다구.”
“괜찮아, 나 좀 마당에서 바람이나 쐴게.”
그 사이 왕로얼네 집은 변화가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왼쪽 편으로 창고 비슷한 건물이 한채 늘어난것이다. 작년 늦가을에 왔을때만 해도 오른쪽에 창고가 있어서 웬간한 물건은 거기에 챙겨두고있었다. 솔직히 세사람의 살림에 창고는 그 하나면 충분했다. 굳이 창고 하나를 다시 지어야 할 리유가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후 나와 왕로얼은 어느 허름한 간이식당에 마주 앉았다. 여전히 땅콩 볶음에 매운 맛조개를 두고 생맥주를 기울렸다. 
“창고 하나 새로 지었더구나.”
“응”
“괜히 마당이 좁아터졌더라. 쓸데 없이.”
“지금 그 말씀 웃기려고 하신거 아니지? 쿡쿡…”
“왜 내가 무시당할 말이라도 한거니?”
“그게 아니구 오라잖으면 이곳이 개발된대. 동네가 철거된단 말이야.”
“아!”
정확히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초겨울에 왕로얼네는 마침내 새아파트 세채를 분배받았다. 그것도 개발상이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맞바꾸었다면서 왕로얼은 은근히 으시댔다. 
“너두 얼른 집을 마련해야지.”
“내야 집 살 돈 어디 있어?”
“청도 온지도 이젠 16년이 됐잖아. 자꾸 움직이니까 돈은커녕 먼지도 안붙잖아.”
왕로얼은 새끼손가락으로 코구멍에서 코딱지를 훑어내며 정색해서 훈계하기 시작했다. 몸에 걸친 국방색 군용외투는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때 입었던 그 옷인듯 옷소매가 때로 반들반들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살면 안되니? 지금 데리고 사는 녀자가 몇번째야? 이번에는 끝까지 갈거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보니 왕로얼네 부부간은 그때까지도 내가 소개해준 슬리퍼회사에 다니고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딸 링링이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 일하고있었다. 
“기집애들 공부시켜 쓸데 없어. 돈이나 쾅쾅 벌게 해야지. 링링아, 니 찐아저씨 봐라. 저게 대학생이야.”
왕로얼은 심심하면 나를 끌어넣어 공부 무용론을 펼쳐내군 했다. 
그날 왕로얼네 새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나는 난생 처음 비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모름지기 촌놈이라고 은근히 무시했던 왕로얼이 산같은 무거운 압력이 되여 나를 지지누르고있었다.
다음다음해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여기저기서 돈을 꿔서 선불금을 내고 다시 은행대출을 받아 70평 남짓한 아파트 한채를 구입했다. 아무렴 왕로얼한테 업수임을 그대로 당할수만은 없었다. 대출 갚을 일때문에 마음이 많이 얼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마침내 내집이 생겼다는 성취감이 모든것을 압도했다. 
소식을 들은 왕로얼은 휴일날을 잡아 마누라와 딸을 대동하고 진둥한둥 찾아왔다. 새집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쉴새 없이 주절댔다. 
“좋아좋아, 집이 구조가 마음에 들어. 네모반듯하고 칸마다 창문이 달려 환하구. 작은 면적에 비하면 분포가 합리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졌어. 봐, 이러니 얼마 좋아. 여기서 밥 먹구 넌 책 좋아하니 저기 책장 놓으면 좋겠구. 정말 인테리어 내가 책임질게. ”
나는 왕로얼이 이렇게 긴 말을 조리있게 하는걸 처음 보았다. 
“내 집 장식하면서 남은 재료가 적잖아. 아마 이 집 하나 장식해도 될거 같아. 일단 먼저 시작하자구.”
이틑날 왕로얼은 차로 타일이며 바닥재며 목재들을 가득 실어왔다. 집 세채를 장식하면서 남은것인데 버리자니 아깝고 어디 보관할데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차에는 면목 모를 장정 둘이 묻어왔다. 
“내 친구들이야. 여기는 목수고 저 넘은 미장이야. 돈은 줄 필요없고 그저 밥만 먹여주면 돼.”
그날따라 왕로얼은 어색하기는 해도 양복차림새였다. 아마 왕로얼을 알아서 양복차림새는 처음인거 같았다. 언제나 낡아빠진 구두를 궤차고 있던 발에 반들반들한 새구두가 신겨있었다. 아마 그 새구두에 맞추느라고 양복을 찾아입은 모양이였다. 왕로얼은 투박한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내 동생이야. 유명 대학 졸업생이라구. 대단한 인물이니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돼. 나와는 거의 20년 사귀여왔어. 저 친구자 나라고 생각하고 일 잘해주어.”
그날부터 왕로얼은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와 인테리어 진척 여부를 물어왔다. 그리고 휴일만 되면 꼭꼭 달려왔다. 왕로얼이 오는 날 점심이면 새집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술상을 벌렸다.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바를 몰라 그저 때만 되면 좋은 안주에 술을 대접하는것으로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달이 채 안되여 인테리어가 완성되였다. 왕로얼이 재료를 많이 가져다주었지만 그래도 인테리어를 하다보니 이것저것 모자라고 보태야 할것들이 많아서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 결혼증은 타지 않았지만 몇년째 같이 사는 녀자가 친정에서 돈을 얻어온것이 좀 남아서 나는 조용히 왕로얼을 불러 물었다. 
“저 친구들 거의 한달이나 일했는데 하다못해 수고비라도 얼마쯤 줘야 하는게 아니여?"”
“좋아좋아.”
왕로얼은 동에 닿지 않은 대답을 하며 돌아서 친구들옆으로 가려고 했다. 나는 무작정 왕로얼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야. 친형제도 장부를 맞춘다고 했잖아. 하루도 아니고 한달씩이나 어떻게 공짜로 일 시켜먹어.”
“좋아좋아…”
왕로얼은 말귀를 흐리면서 은근히 내 눈치를 살폈다. 아마 그도 친구들을 맨손으로 보내기에는 어딘가 미안했던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나에게 구체적인 액수를 제출하기는 더욱 어려웠던게 분명했다. 왕로얼의 눈에는 또다시 그를 처음 만났을떄의 그런 희미하고 아리숭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나는 시무룩히 웃으면서 미리 준비해둔 2만원을 슬쩍 왕로얼의 주머니에 질러주었다. 왕로얼은 생각밖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손으로 막거나 뿌리치지도 않았다. 
그들이 떠나간지 사흘이 되여서 내가 한창 새집에 들어가려고 짐을 싸고있는데 난데없이 모를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본능적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기 바쁘게 억센 톤을 가진 사람이 성급하게 물었다. 
“당신 왕로얼한테 장식비 안줬어?”
나의 머리는 순식간에 수백번 회전했다. 
“준적 없는데요. 그런데 누구시지요?”
“붕붕…”
전화가 대답도 없이 끊어져버렸다. 통화질이 별로여서 목소리를 판별할수 없었지만 꼭 어딘선가 많이 들었던 목소리가 틀림 없었다. 
그해 음력 섣달에 왕로얼의 딸 링링이 결혼식을 올렸다. 링링의 남편은 조선족이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관리원이였는데 계장 직책을 꿰차고있었다. 
“대학생이야. 우리 링링이는 고중도 다니지 못했잖아. 복이 덩쿨채로 굴러온거야. 한번 와봐. 역시 너같은 조선족이야.”
나는 왕로얼의 지청구에 못이겨 한번 가서 만나보았다. 여러모로 삐여난 총각이였다. 신수도 멀끔했지만 례절도 밝아 왕로얼은 그저 끔뻑 죽는 시늉을 했다. 
“너네 민족 참 훌륭해. 술도 몸 돌려서 먹구. 사람은 그래서 배워야 한다고 했어.”
“그런 넌센스가 어디 있어? 포인트 못잡고 횡설수설하는 특기 참 부럽다.”
“왜 사람을 욕해. 지금 니까지 올리춰주는 중이잖아. 어이 상실한거냐?”
“니가 십수년 나를 공부 필요없는 전형으로 몰았잖아?”
“언제 쌍팔년도 소리하고 자빠졌어?!”
왕로얼은 나의 어깨를 한번 쥐여박고 허허 웃었다. 나도 덩달아 시원하게 웃었다. 
“마침이다. 너도 이 참에 링링이 결혼날 마누라한테 웨딩드레스 입히구 결혼식 신고해라.”
왕로얼 덕분에 나도 안해한테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등장했다. 안해는 그날따라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부부 관계도 나이를 먹는다더니 이젠 미운정 고운정 들대로 든 안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안해는 왕로얼네 일이라면 만사불구하고 등을 밀었다. 
“얼른 가봐요. 그 나이에 둘째를 임신했다니 정말 축하해줄 일이예요. 가서 배 한번 만져보고 와요. 우리도 생길지..”
안해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있었다. 마침 안해는 출근해야 해서 시간을 낼수 없었던것이다.
“남의 녀자 배를 어떻게 만져?”
“가까운 사이에 그게 뭐 대수예요. 제가 미리 전화해둘게요.”
“하긴 그 자식한테 부조돈만 해도 숱해 빼앗겼다. 마누라 배 한번 만져본다고 야단은 하지 못하겠지.”
나는 실없는 웃음을 킬킬 웃으며 문을 나섰다. 소태 씹은듯 입을 쩝쩝 다실 왕로얼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2017년 1월 19일 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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