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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
2014년 08월 31일 20시 34분  조회:640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

장학규



타이밍이 절묘한 탈출이였다. 어쩌면 드라마같은 탈출이기도 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맹사장은 전형적인 미소를 짓고 사무실에 일찍 나왔었다. 마침 음력으로 2월 2일날이라 직원들은 룡이 머리를 쳐드는 날 “룽타이터우”라고 해서 옛풍속대로 머리를 가쯘하게 깎고 출근했다. 명절 분위기때문인지 사장을 감시하는 눈초리가 많이 무뎌져 있었다.

맹사장 역시 이날만은 배포유했다. 흐들흐들한 얼굴에는 전처럼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전혀 없이 사장실에 태연히 죽쳐 앉아서 별 볼 일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댔다. 사무실 분위기는 금방 밖으로 새여나간다. 해산물가공수출업을 하는 회사라 직원이 고작 10여 명뿐이였다. 그 몇명 안되는 직원도 둬사람이 사무실에 앉아 실없이 귀구멍을 후비는외에 나머지는 울안 공지에서 평화롭게 해빛을 쪼이고있었다. 그옆으로 대문이 활짝 열려진 공장건물안에는 고물같이 낡아빠진 기계 몇대가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있었다.

회사 업무가 내리막길로 곤두박질하게 되면서 사실상 맹사장은 연금상태에 처해진거나 다름없었다. 몇년간 줄창 회사 울안 숙소에 홀로 기거하고있는 맹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제부터인가 직원들의 감시를 받고있었다. 직원들은 여느 회사처럼 사장이 갑자기 증발해버리면 반년간 밀린 봉급을 받을수 없을가봐 전전긍긍하고있었다.

특히 쑈량네 형제가 남달리 맹사장의 활동라인을 매일이고 체크했다. 허우대가 큰 두형제가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 다른 직원들을 부하처럼 리드하는 원인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하는 홍합양식장이 별로 수익이 그닥잖아 돈이 저으기 딸리는 눈치였다.

“준, 오늘 저녁 회식할거라고 직원들에게 알려.”

맹사장은 통역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준이에게 분부했다. 사장과 직원 사이의 모든 교류는 준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준이를 사장의 사람으로 알고있었고 사장은 사장대로 준이가 직원들과 통한다고 인식하고있었다. 아무튼 준이는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찡겨서 말이 아니였다.

그날 저녁 오래간만에 작은 어촌의 최고급 식당에서 회식자리가 마련되였다.

“새해는 새기상이라고 모두들 나를 믿어. 올해부터는 오더가 늘어나고있단말이야. 한번 손을 맞춰 다시 크게 해보자구.”

맹사장은 특유의 달변으로 회사에 기사회생의 새로운 기회가 나졌다고 역설하면서 자꾸 술을 권했다. 직원들도 오래간만에 경계심을 풀고 룡의 수염이라며 국수를 청하고 회사에 단비가 내린것을 축하한다며 돼지머리고기를 주문했다. 소주에 맥주에 짬봉을 하면서 술자리는 새벽까지 치달았고 누구라없이 술에 푹 취해버렸다. 특히 맹사장은 더했다. 일어서다가 그 자리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꼬꾸라졌다. 금세 이마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맹사장은 그것도 모르고 바닥이 침대인듯 그대로 팔다리를 뻗고 잠들었다. 준이는 그 웅장한 체구를 회사까지 업어오느라고 죽는줄 알았다.

그런데 이틑날 점심무렵에도 맹사장은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숙소 앞마당에는 맹사장이 10여년 굴린 애마 쏘나타가 상처투성이인채로 얌전하게 서있었다. 직원들은 그 차를 보면서 사장이 아직 깨여나지 않은것이라 믿고있었다.

“어제 진짜 술 많이 먹었어. 늙은 사람이 우리랑 똑같이 먹어서 될법이나 한가?”

쇼량의 동생 쑈밍이 오른손 엄지로 코를 쓱 문다지며 지껄였다. 그러자 옆에 둘러선 직원들이 서로 허리를 찔러대며 히히닥거렸다.

“그래도 우리 사장 만날 아가씨를 달고 다니더라. 할수나 있으면서 그러는지 몰라 히히히.”

그러나 해가 중천에 걸리면서 모두들 초조한 눈빛이 되였다. 맹사장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그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야. 무슨 일인가 있어!”

쇼량이 동생 쇼밍을 건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긴장해졌다. 쇼밍이 본능적으로 움직이자 누구라없이 모두가 그 뒤에 몰려서 우하고 사장의 숙소로 달려갔다. 숙소문은 쉽게 안으로 열렸고 그 안에는 맹사장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없었다. 식모는 맹사장이 여직껏 식사할려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회사 구석구석을 뒤져도 맹사장은 없었다.

“이 자식이 도망친게 틀림없어.”

금세 추격전이 벌어졌다. 오토바이가 부르릉 시동이 걸리고 자가용이 씽 용수철 튕기듯 마을밖 거리로 달려나갔다.

어촌은 시내와 꽤나 떨어져있었다. 그래도 한시간 품이면 곧 닿을 거리였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사라진 사람을 찾아온다는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는 일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한식경도 못되여 하나둘씩 어깨가 처져 회사로 돌아왔다. 쇼량이 다짜고짜로 다가와 준이의 목덜미를 거머쥐였다.

“준이 넌 맹사장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알고있지?”

“아니, 난 몰라. 알았으면 여기에 이러구 죽치고있었겠어.”

준이가 입이 열개라고 해명이 안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대목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쇼량은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뒤에 남아서 회사 물건 챙기려고 그러는건줄 다 알고있어. 이 회사도 준이 니 이름으로 등록되여있잖아. 맹사장을 못 찾으면 니가 책임질수밖에. 쇼밍, 이 친구를 우리 컨터이너쪽으로 데리고 가서 지켜. 나머지는 조를 나누어 매일 공항에서 지키자. 넘이 얼마나 숨어있는가 보자구.”

준이는 쇼밍에게 끌려 어촌을 벗어나 해변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되여 습지가 눈앞에 나지는가싶더니 자잘한 갈대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자랐다가 비쩍 말라버린 속빈 갈대들은 시누렇게 바람에 흔들렸고 점차 두툼하게 길가에 깔려서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찌지직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하아얀 갈대에 가려 더이상 저 멀리 해변의 갯벌도 잘 내다보이지 않게 갈대가 무성해져왔다. 준이는 쇼밍의 앞에 서서 자기 키보다도 더 큰 갈대들에 부대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쯤 걸었는지 알바 없다. 다시 해안선이 내다보일 즈음 적황색 컨터이너 하나가 마춤하게 나타났다.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있는 그곳에 쇼밍의 아버지가 언제 전갈을 받았는지 컨터이너밖으로 나와있었다.

“이 친구랑 며칠 이곳에 있어야겠어요.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 주무세요.”

“이분 찐부장이 아닌가? 왜 무슨 일 있은거니?”

“사장이 달아났어요. 찾아내기전에는 이 친구를 볼모로 잡아두어야 합니다.”

세사람은 컨터이너로 들어갔다. 겉으로 덕지덕지 칠이 벗겨진데 비하면 집안은 꽤나 정갈한 편이였다. 흰 뼁끼로 색을 새로 올린 가운데 앞뒤로 창문을 내여 밝고 환했다. 제일 안쪽으로 스프링침대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출입문을 면대한 벽쪽에는 자그마한 난로도 설치해두고있었다. 그 난로로 때시걱을 해결하는 모양이였다.

령감은 집에 돌아갈 준비로 부산했다. 침대밑에 아무렇게나 뭉쳐넣은 옷가지들을 꺼내는 순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까부터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침대밑을 시작으로 집안 구석구석에서 비린내, 노린내에 썩은내가 진동했다.

준이는 코를 싸쥐고 밖으로 나왔다. 큰일난듯 헐레벌떡 뒤따라 나온 쇼밍은 준이가 멀쩡하게 컨터이너에 기대여 서있는것을 보고는 제풀에 멋적었는지 헤벌써 웃었다. 회사에서 오며가며 만날때마다 허리를 굽석이며 “형님”을 개여올리던 쇼밍이였다.

떠나는 령감을 바래고도 준이는 한동안 밖에서 서성였다. 쇼밍은 출입문에 기대선채 아무렇지도 않은듯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놀기 시작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준이에게 가 있었다.

갯벌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갈대가 불타는 석양을 반사하면서 은빛으로 반짝이였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갈대는 따스한 솜이불마냥 포근함을 전해주었다.

잠자리를 바꾼 탓인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던 준이가 눈을 떴을때는 게으름뱅이 초봄의 해도 한발이나 두둥실 올리솟은 9시무렵이였다. 막 썰물이 밀려갈 무렵이였다.

“형, 짱둥어 잡이 나가지 않을래?”

옆에 사람이 없자 쇼밍은 다시 이전처럼 형이란 호칭을 썼다.

“너희 집에서는 홍합을 양식하잖아. 짱둥어는 어디서 나지?”

“히히히”

쇼밍은 헤식은 웃음을 흘리면서 앞서 컨터이너밖으로 나갔다. 준이가 뒤따라 오는것을 의식했던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집뒤로 가더니 갈대숲에서 낚시대 두개를 더듬어냈다.

“썰물이 나갈때면 재밋어. 칠게나 짱둥어들이 막 물따라 밀려나가지. 그물을 치면 찰게가 덕지덕지 걸려들어. 짱둥어는 좀 손으로 잡자면 힘들어. 배밑에 지느러미 두개로 발처럼 사용하여 기어다니기도 하고 뛰여다니기도 해. 정말 뻘밭에 박아놓은 낮은 말뚝우에도 막 뛰어오를수 있어.”

짱둥어의 부화철이 곧 다가온다면서 쇼밍은 부지런히 준이를 재촉하여 낚시터로 알맞은 자리를 찾아갔다. 미끼를 끼고 던지기 바쁘게 한번에 짱둥이 두마리가 걸려나왔다. 탐욕스러운 짱둥어는 그래서 잡기 쉽다고 쇼밍은 자랑삼아 얘기했다. 쇼밍은 주머니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준이더러 먹으라면서 낚시대 하나를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나 준이는 낚시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힐링하기를 즐긴다. 발밑에서부터 쭉 머리를 들며 먼 바다까지 내다보면 바다물이 틀림없이 사선처럼 보인다. 막 바다물이 자신한테로 금방 쏟아져올것만 같다. 힘든 육체나 아픈 마음이나 그대로 던져서 맞받아보고싶어진다. 바다의 효능은 그래서 병원 못지 않다.

쇼밍이 혼자서 낚시질하는게 먹적었던지 돌아가자고 소리쳐왔다. 부시시 일어나서 쇼밍의 파란색 양동이를 들여다보니 그새 짱둥이는 물론 소라나 칠게, 바지락 따위도 들어있었다.

“너 국제백정도 아니구 닥치는대로 다 잡았구나.”

“국제적이기야 형들이지. 여기까지 와서 국제사기치면서.”

준이는 금세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그걸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막무가내가 다시 한번 엄습해왔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컨터이너에 사람 하나가 대신 들어있었다. 요즘 세월에는 쉽지 않은 량태머리를 한 앳된 처녀였다. 준희를 보는 맑은 눈동자가 새물새물 웃고있었고 새하얀 얼굴은 붉게 물들고있었다.

“엄마가 점심밥 갖다주라고 해서…”

처녀애는 발끝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아버지가 만두 몇개를 남겨두고 갔어. 오늘 하루는 살수 있을텐데…”

쇼밍은 처녀의 손에서 보자기를 받아서 침대우에 내려놓고 준이에게 말했다.

“형, 내 녀동생 링링이야. 링링, 오빠한테 인사해.”

두 형제뿐인줄 알았더니 그 밑에 또 녀동생이 있었단말이지? 령감 나이가 예순전일거 같은데 그때면 산아제한이 시작되였을텐데 어떻게 자식 셋이나 낳았지? 하긴 전에부터 저 집안이 빽이 들어있다는 인상은 있었다. 아무튼 이쁜 녀자애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준이의 마음은 한결 밝아졌다.

“오 링링이랬지? 먹을거 갖다주어서 고맙다.”

링링은 준이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도 몸을 돌려 급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쇼밍은 아예 잘되였다는듯 링링에게 짱둥어탕을 부탁하고 자기는 밖에서 모닥불을 지펴 칠게랑 바지락이랑 굽기 시작했다. 링링이 잽싸게 짱둥어탕을 끓여내오는것과 함께 굽기도 맞춤하게 끝나 점심식사는 예상외로 풍성했다. 링링이가 끓여서인지 짱둥이탕은 정말 천하일미였다. 링링은 거두매까지 깨끗이 마무리고 갈대가 바람결에 흐드러지게 날리는 오솔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틑날 아침무렵에도 링링이 나타났다. 아울러 아버지의 분부도 전해왔다. 시간나는대로 컨터이너 지붕에 있는 건홍합을 집으로 가져다달라는 부탁이였다.

“시내 무슨 큰 회사에서 건홍합을 무지 요구하나봐. 아빠가 온동네의 건홍합을 모두 거두고있어.”

“사람 손으로 깐 얼마 안되는 그까짓거 가지고 얼마 번다구 야단이라니?”

쇼밍은 투덜대면서도 아버지의 분부라 거역할수 없었던지 기신기신 컨터이너 우로 기여올라가 반주머니 정도 되나마나한 건홍합을 들고 내려왔다.

“쇼밍, 지금 홍합철이잖아. 우리 회사 기계 돌리면 며칠내로 엄청 만들수 있을텐데.”

“아, 형, 내 왜 이 생각 못했지. 형이 맹사장한테서 기술 다 배웠잖아.”

“기술은 문제 없어. 나한테 맡겨.”

“좋아. 나 아빠한테 갔다올게. 링링 니 이 오빠하고 잠시 이곳에 남아있어.”

쇼밍이 부랴부랴 건홍합 주머니를 둘러메고 갈대숲속으로 달려갔다. 쇼밍이 떠나기 무섭게 컨터이너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링링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숨소리마저 옆사람이 들릴 정도로 가팔아졌다. 준이는 더이상 그렇게 보고있을수 없어 입을 열었다.

“링링, 너희 홍합양식장에 한번 가볼수 없을까?”

링링은 대답대신 씽하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준이도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뒤따라갔다. 갈대밭을 몇고비 에돌아가니 갯벌가에 자그마한 기름배 한척이 매여있었다. 밀물때라 기름배가 바다물에 세차게 흔들거리고있었다. 링링이 민첩하게 배우에 뛰여올라갔다. 그러나 육지동물인 준이는 아무리 애써도 좌우로 흔들리는 배우에 기여오를수가 없었다. 링링은 그제야 홍조를 풀고 해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준이를 끌어올렸다.

기름배를 10여분쯤 몰고나가니 저 얖에 흰색의 부피들이 눈뿌리 모자라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굵은 줄이 부피와 련결되여있었다. 길이가 200메터는 실히 되는거 같았다. 줄이 수십개는 되였고 원래는 줄줄이 똑바로 펴놓았을거지만 파도때문인지 구불구불 곡선을 이루고있었다. 그것도 묘하게 수십개 줄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있었다.

줄옆으로 배를 몰고간 링링이 바다물에 손을 내밀더니 무엇인가 잡아당겼다. 원래 이 줄 아래로 홍합을 단 바줄이 내려져있었던것이다.

“이걸 ‘년’이라 불러요. 5메터 정도되는데 홍합은 이 기다란 바줄에 붙어서 자라요.”

링링은 딸려올라오는 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작년 9월 중순에 종패를 붙여 바다에 내린것을 2월부터 걷어올려요. 살이 여물게 오른것을 맛보자면 늦은 겨울과 이른 봄 사이의것이 제일 좋아요.”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홍합은 산란을 하게 되는데 이때면 홍합에 독소가 생겨 먹으면 안된다고 부언했다.

썰물때문에 더이상 구경하지 못하고 귀로에 오르면서 링링은 홍합을 큼직한걸로 한아름 떼여냈다.

뭍에 배를 미끄러매기 무섭게 홍합꾸레미를 준이에게 지우고 앞서서 컨터이너로 걸어갔다. 종전의 얌전하고 부끄럼 많던 처녀애가 아니였다. 손재간 좋고 부지런한 어촌 쳐녀로 어느새 변해있었다.

링링은 난로불을 피우고 솥에다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쌀을 씻으면서 준이더러 듬직한 홍합으로 스무나문개 까놓으라고 분부했다. 준이는 기계적으로 처녀가 시키는대로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링링은 준이가 골라내고 남은 홍합을 그속에 넣고 삶았다. 홍합 입이 벌려지는것을 확인한후 건져내더니 다시 새물을 붓고 준이가 까놓은 홍합을 쌀과 함께 넣어서 밥을 지었다.

“홍합은 암컷은 살색이 붉고 수컷은 흰편이예요. 암컷이 훨씬 맛있어요.”

맹사장을 따라 해산물가공수출업을 10여년 해온 준이는 물론 그 정도는 알고있었다. 홍합은 어떤 양념도 필요없이 오직 제몸에서 우러나는 천연조미료로 감칠맛을 낸다는것도 알고 숙취해소기능과 비만예방효과도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직접 양식하는것은 처음 보았다.

“오빠, 식기전에 얼른 먹어.”

“너도 같이 먹자구나.”

“그럴까?”

링링은 잰솜씨로 홍합밥을 한사발 꼴똑 퍼서 준이에게 넘겨주고 홍합탕도 떠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자기도 모르게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점심식사가 끝나서 한참 지나서도 쇼밍은 돌아올념을 않았다. 링링은 쇼밍의 부재를 완전히 잊은듯 침대가에 걸터앉은채 여전히 코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요즘 티비에서 한창 방송되는 유행가들이였다. 머리태는 땋았어도 신조류는 막을수 없나보다.

“오빠, 소녀시대 노래 알아? 거 지지배배하는거 말이야.”

“알구말구. 그게 제비처럼 지지배배하는게 아니구 ‘지’는 ‘와’하는 감탄사고 베비는 ‘아기’란 뜻이야. 나중 시간나면 가사 알려줄게.”

“와, 오빠 역시 대단해.”

준이는 난생 처음으로 이성앞에서 으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외딴 어촌이라 마음을 흔들어놓을만한 아가씨가 없었다. 워낙 해산물가공이라는 힘들고 어지러운 일이라 녀자들이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직원 전원이 남자일색이였다.

전에 회사에 미스최라고 그나마 쑬쑬하게 생긴 아가씨 하나가 비서로 온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스최는 이 고즈넉한 동네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몇달만에 떠나버렸다. 그후론 넓고 후줄근한 천옷에 네모수건을 머리에 동인 촌아낙네들만 보아왔었다. 갯벌에 진주라더니 이런 동네에 링링과 같이 자연 그대로의 이쁨과 순수함을 가지고있는 처녀가 있었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준이는 괜히 혀를 끌끌 찼다.

“나 말이야. 사실은 오빠를 본지 오래되였어. 한번은 쇼량 오빠를 찾으러 가는것처럼 하구 회사까지 가서 오빠를 훔쳐보고 오기도 했어.”

링링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 말이 흘러나간것을 의식했던지 혀를 홀랑 내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홍합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준이는 그게 더 재밋고 즐거웠다.

“그때 왜 오빠 나 여기 있어 그렇게 소리칠거지.”

“아이참, 말하지 않을래.”

“그때 소리쳤으면 내가 링링한테 바로 반했을지도 모르잖아?”

“정말?”

“그럼, 링링처럼 이쁜 처녀한텐 누구나 다 반할거야.”

“오빠도 나한테 끌려?”

“응. 너만 괜찮다면 우리 사귀자.”

“나몰라.”

링링이는 두손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슬그머니 준이에게 기대왔다. 준이는 자연스럽게 그러는 링링을 받아안았다.

그때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쇼밍이 들어서다가 그자리에 굳어졌다. 이어 뒤따라 들어오던 링링의 아버지가 쇼밍의 등어리를 박으면서 아이쿠 소리를 질렀다. 준이와 링링은 후다닥 갈라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쇼밍은 물론 령감도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알아버렸다. 먼저 쇼밍의 눈에서 불같은것이 타올랐다.

“형이 이렇게 얄팍한 사람인줄 몰랐어. 내 의리 없다고 원망하지마.”

쇼밍이 주먹을 들고 다가오는 그 앞으로 링링이 벌떡 막아나섰다. 가냘픈 처녀의 몸에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였다.

“오빠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링링은 다시 문가에 굳어진채로 멀뚱하게 서있는 아버지를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나 저 사람에게 시집갈래.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한지 아주 오래되었단 말이야.”

두 부자간은 이윽토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응고된듯 긴 침묵이 흘렀다. 한식경이 자나서 령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가지 물읍세. 저 회사 자네 이름으로 되여있다는게 사실인가?”

“네. 처음에 정부에서 외국인이 해산물가공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었습니다. 그래서 맹사장이 저의 이름을 빌린거구요.”

“리유는 필요없고 확실히 자네가 법인인거 맞지?”

“네.”

“량이가 이미 공안국에 맹사장을 고발했네. 이미 출국했다면 어쩔수 없는 문제지만 아니면 언젠가는 잡히게 될거네. 이제 남은것은 저 회사 기계를 돌리는 문제인데 우리가 다치면 바로 타인 재산 침범이 된단말일세.”

“거야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데 자네는 그 회사의 법인이란 말이네. 자네가 회사를 움직이면 아무런 법적문제도 없단말일세. 어떤가? 자네가 기계를 가동하여 우리랑 한번 손잡아보지 않겠나? 기술은 자네한테 있고 나는 원자재가 있고 판로가 있네. 해볼 생각이 없나?”

준이는 잠간 망설였다. 담배 한가치를 피워물고 밖으로 슬쩍슬쩍 걸어나갔다. 어느새 하늘가에는 석양이 조금씩 물들고있었다.

생각해보면 맹사장이 준이를 섭섭하게 대해준것도 별로 없었다. 금방 대학을 나온 준이에게 같은 동포라면서 손을 잡아끌면서 남한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기술을 배워주었다. 비록 준이한테도 탈출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슬그머니 혼자서 도망가는바람에 하마트면 준이가 큰 곡경을 치를번했지만 어쨌던 맹사장한테서 준이는 여러모로 많은것을 배웠었다.

이제 맹사장은 다시 돌아올 가망이 없었다. 낡은 기계를 기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수도 없고 행여 고물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져봤자 직원들에게 밀린 로임에 대면 새발의 피였다.

그 뒤수습을 준이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를 쳤다. 어쩌면 이 곤경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여버린 형국이였다. 기회가 왔을때 부지런히 기계를 돌려 맹사장대신 로임빚도 갚아주고 회사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면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준이는 지신지신 걸어서 갈대숲가로 다가갔다. 뒤따라온 령감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물어봅시다. 여기 해변가에 웬 갈대가 이렇게 많지요?”

“실은 인공적으로 심은거네.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게 요즘 대세네.”

“아, 그런 원인이였군요.”

“갈대의 뿌리는 약으로도 쓰네. 한방에서 쓰는 노근(蘆根)은 갈대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으로 위 운동촉진, 이뇨, 지혈 등에 쓰이기도 하네.”

“알겠습니다. 저 할게요. 지금 당장 가서 기계를 정비합시다.”

“허허허 좋네”

령감은 준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치면서 호방하게 껄껄 웃었다. 쇼밍도 덩달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링링이 슬그머니 준이의 잡을 잡았다. 부드러운 녀인의 손으로부터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왔다.

2014년 3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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