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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조깅
2014년 08월 31일 21시 51분  조회:1006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조     깅

     
장학규

 

(젠장, 글로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마인드상태부터 글로벌로 가꿔보시지?! 글로벌이 뭐 말라비틀어진 거시기인가?)
만득이는 자기도 모르게 횡 하고 코방귀를 뀌면서 아파트 대문을 열었다. 어제 괜스레 기업인 상대의 무슨 정부 모임에 강제나 다름없이 억지로 불리워갔다가 질리도록 글로벌 타령만 잔뜩 듣고 돌아와 온밤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뇌의 메모리 용량이 고작 그 정도의 인간들이 허망 무대에 어쩡쩡 올라서서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그 식이 장식으로 앵무새같이 레코드판이나 돌리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변화가 없는 지루하고 고루한 스타일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귀띰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당장 짐을 싸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를 일이였다. 벌써 여러번 도대체 이곳에서 사업을 할거냐는 위협적인 경고를 받았었다.
(고상한 흉내내는것도 유분수지. 흥!)
바깥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초겨울 비가 비실비실 날리고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세상이다. 새벽 여섯시가 가까와 오고있지만 하늘은 아직 먹물을 뿌린채로 시꺼멓다. 숨이 꺼억 막힐것같이 짙게 깔린 어둠사이로 비방울이 소리없이 날려와 얼굴에 묻는다.
만득이는 문밖에서 잠간 머뭇거렸다. 이대로 계속 조깅을 나가야 하는건지 스스로도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11월 중순에도 비오는 동네가 새삼스러운듯 희한하기도 했다. 늦둥이인 만득이처럼 한참 늦어진 비가 지굿게 이른 새벽에 내리고있다. 고향도 이맘때 이 시각에는 이처럼 어둡다. 계절로 비스듬히 어두웠지만 한쪽에서는 폭설이 쌓이고 한쪽에서는 비물이 고인다.
아파트 앞으로 백사하가 길다랗게 누워있다. 로산 자락에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흐름을 거의 멈춘 강이다. 폭우가 내릴때마다 저수지에서 홍수 방지 차원에서  마지못해 잠간 방류할뿐 나머지 시간은 내내 웅뎅이처럼 물이 고여있는 강이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대수 멋있는 강처럼 느껴진다.
만득이는 느적느적 걸어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그 사이 동녁하늘이 물고기 배처럼 희끄므레하게 변해오고 있었고 언제 비방울이 오싹하게 뿌려졌냐싶게 미적지근한 바람이 페부를 훓는다. 산소가 흡입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밀려나는 순간은 참으로 후련한 느낌이였다.
한창 늦잠을 향수해야 할 만득이가 볼품도 없는 백사하에 매료되여 조깅을 다니기 시작한것은 불과 나흘전의 일이다.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양부장이였다.
그날 만득이는 좀 열이 받아있는 상황이였다. 아침에 회사 나오려고 집문을 가볍게 여는데 뭔가 문이 열리는 동시에 땅에 종이장 하나가 스르르 떨어졌다. 호기심이 동해 허리를 굽혀 주어서 들고보니 이번 주일내로 거주증 수속을 하라는 당지 파출소의 통고문이였다. 시뻘건 공장까지 찍힌 그 통고문은 주어진 시간내에 거주증 수속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할것이라고 강한 어투로 경고하고있었다. 약이 부쩍 오른 만득이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구정부의 열선전화를 호출했다.
“나 외지인은 분명한데 이곳에 내 돈을 주고 집을 샀거든요. 내 집에 내가 사는데 왜 거주증 만들어야 하우? 당지 사람이던 외지 사람이던 집 없어 남의 집 빌려들면 그게 거주증 발급 대상이 아닙니까?! 누굴 벌금한다고 위협입니까?”
“미안합니다. 정책이 그러니까요.”
사무적이고 딱딱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말입니다. 분명 틀렸는데도 정책입니다 하고 핑계 달고 밀어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겁니까?”
    “천천히 해결합시다.”
그 천천히가 대강 몇년이 될지 몇십년이 될지 그건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어차피 만사를 체념하면서 살아가는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을 문 입을 해가지고 출근하는데 5분도 채 안되여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동네파출소에서 온 전화였는데 벌금얘기는 실례라면서 취소하고 그러나 거주증은 시간이 나는대로 와서 수속하라면서 아니면 여러가지로 정책적인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완곡하게 설명했다.
암튼 2라운드에서는 심리적으로나마 이긴 셈이였다. 그래서 링에 오른 김에 전화를 걸어온 경찰 친구에게 느끗하게 다른 질의를 들이댔다.
“제 려권이 기한 완료되였습니다. 외지 호적도 당지에서 려권을 발급 받을수 있다구 들었는데요. 가능합니까?”
“제 소관이 아니여서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번과 비슷한 텁텁한 소리가 돌아왔다.
“정책이 그렇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몰라요. 아마 고향에 돌아가서 수속을 다시 밟아야 할거예요.”
대방은 더이상 귀찮다는듯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 이런 쓰벌…”
만득이가 3라운드에서 멋지게 펀치당하여 카운트다운 상태로 회사에 들어오는데 눈치 없는 양부장이 정면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인력 부분은 양부장의 몫이였다. 총무 한사람 받아들이는데 굳이 사장인 만득이에게 재가를 받지 않아도 될 일이였다. 어쩌면  양부장으로서는 좀 난처하기는 했었다. 팔팔한 애들이 입사했다가 거퍼 업무도 익히기 전에 금세 달아나군 했다. 화가 잔뜩 난 양부장이 이제부터는 조선족보다 한족 위주로 직원을 채용하자고 볼이 부어 제기해왔다. 조선족만 받는다는것은 만득이가 회사 설립 초기에 세워놓은 직원채용규정이였다.
“그건 안돼!”
심통 맞은 양부장이 파리를 날리기 시작한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알맞고 적중한 사람을 고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람을 찾을수 없다고 투정부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더니 이날 방정맞게 서류 뭉치를 들고와 만득이더러 재가해달라고 요청한것이다.
“마음에 들란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도 겨우 찾았습니다.”
“그래?”
만득이는 내색 없이 양부장이 내민 서류철을 받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멋지게 사인해버렸다. 다른건 몰라도 사인 하나는 만득이를 따를 사람이 주변에는 별반 없었다. 기실 필치를 자랑하기보다는 반칙을 일삼는것은 경박을 넘어 일종 악이란것을 양부장에게 귀띔해주고싶어서였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별로 튀는데가 없는 양부장이 회사 초창기부터 내리 쭉  10여년간 중견으로 자리를 굳혀온 리유는 그가 여직껏 사장의 말에 토를 달아본적이 없는데다 마음의 눈을 다른곳에 팔지 않았기때문이다. 만득이는 그 점을 높이 사왔었다.
“보시지 않으십니까?”
“뭘?”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하기사 나이는 꽤 먹었어도 얼굴은 많이 동안이더라구요. 그리고 묘하게도 사장님과 한고향 출신이데요.”
“엉?”
양부장이랑은 같은 채널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 둘이 묘하게 도킹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손이 맞는다는 느낌이 들때는 대개 그런 경우였다. 만득이는 호기심에 쫓겨 서류철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순간 저 아득한 고향의 들판이 우렷이 떠올랐다.
거칠것 하나 없는 일망무제한 논밭사이로 훓어지나는 북풍이 윙윙 소리를 내며 눈보라를 산지사방으로 날려준다.
오붓한 농가집 구들은 그래도 마냥 따스하다.
이모는 어딘가 놀러가고 해가 중천에 두둥실 떠오른 시각까지도 누나는 일어날 념을 않는다. 매끈하게 퍼진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아있다. 조용히 불러보아도 대답은커녕 숨소리도 없었다. 잠보다는 감기에 지친 몸이다. 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준후 살그머니 이마를 짚어보았다. 크게 뜨겁지는 않았다. 다시 더듬더듬 손을 잡아보았다. 솜같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한결 마른 입술이 수분을 갈구하고있었다. 입술을 맞닿이듯 가까이 대고 혀를 살짝 갖다붙였다. 마음 밑바닥에서 쿵쾅 하고 천둥이 울고 찌르릉 전률이 흘렀다.
“김민정”
입속으로 되뇌인다는게 모름지기 저절로 소리가 되여 나왔다. 프로필은 물론 사진까지 오차 하나 없이 틀림없는 민정이 누나였다.
“으음…”
꼬박 20년을 도망치듯 의식적으로 피해다닌 이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는 이름이기도 하다.
민정이 누나하고는 그 눈보라 사납게 휘몰아치는 겨울날 낮에 고향집에서 인연이 종쳤던 셈이였다.
하필이면 만득이의 혀가 민정이 누나의 입술에 닿이는 찰나에 민정이 누나가 가벼운 신음을 하면서 이불을 훌 걷어찬것이다. 더불어 꽉 조인 흰 적삼속에 꼬옥 감춰진 봉긋한 젖가슴이 산등성이마냥 우뚝 눈앞에 솟아났다. 그건 그대로 지진을 잉태하고 용암을 끓이고 분출을 대기하는 산등성이였다. 그리고 항거를 절대 허용치 않는 사탄같은 유혹이였다. 만득이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심령의 이끔대로 손을 경건하게 그 산등성이에 얹고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지고 머리가 하얗게 비여갔다.
“아이구 이넘아, 너 뭐하고 있어?”
만득이의 손을 치운건 언제 들어온지도 모르는 이모였다. 민정이 누나는 계속 깊은 잠속에 빠진듯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만득아, 너 자꾸 이러면 민정이 시집도 못간다. 알겠니?”
“나하구 살면 되잖아요.”
“누나잖아 민정이가.”
“혈육관계도 없는데므.”
“그리구 나이도 너보다 세살이나 많지 않아.”
“민정이 누나 아버지도 이모보다 나이 적잖아요?”
“이 자식이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모는 그 길로 멀리 청도에 있는 만득이 삼촌에게 전화하여 만득이를 데려갈것을 요청했고 만득이는 동네집 신세를 지던 몸이라 싫어도 민정이 누나 옆을 떠나야 했다.
그후로 한번도 민정이 누나를 만나보지 못했다.
(벌써 20년이 되였구나,)
그러니까 가슴으로 고향을 뜨겁게 그려온지가 어느새 20년이 되여오는 셈이다. 눈 없는 이곳의 미적지근한 겨울이 다가오면 항상 저멀리 처마밑에 고드름을 만드는 고향의 겨울이 떠올랐고 주변 농군들이 바짝 메마른 누르끼한 땅에 인분을 퍼놓고 종자를 뿌리는 봄날이면 어린시절 늘 보아왔던 시꺼면 흙에 그대로 싱싱하게 곡식이 자라던 고향의 비옥진 들판이 눈앞에 우렷이 나타났다. 
만득이는 발 가는대로 추적추적 강변을 거닐었다. 금방 수천금을 들여 새로 정비한 강변유보도는 줄곧 308국도까지 이어지고있었다. 원래 만들어놓았던 유보도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것은 물론 그 옆에 웅덩이와 풀밭으로 방치되였던 자리에 4차선 대통로를 쭉 빼고 어디서인가 아름드리 나무들을 가져다가 옮기고 있었다. 출퇴근하면서 일년남아 트럭들이 왔다갔다하고 기중기가 나무를 들었다놓았다 하고 검은 구름같은 먼지가 뭉게뭉게 올리솟는것을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던 만득이였다.
애들이 다닐 학교가 모자라서 수백명이 죽기내기로 하나의 명액을 두고 경쟁하는 동네에서 학교 10개는 거뜬히 지을 거금을 애궂은 강변에다 퍼붓고있었다.
바로 얼마전에 만득이는 풋면목있는 어느 교장에게 인민페 두묶음을 던져주고 친구의 애를 명액이 도저히 없다는 그 학교에 붙인적이 있었다. 돈을 판 친구가 에잇 이넘의 지랄같은 동네에서 못살겠네를 주절거리는것을 그래도 고향을 이미 떠나온바엔 뿌리를 굳건히 박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리기도 했지만 사실 콘트라스트(反差)가 심한 이런 대목에서는 만득이 자신도 심리평형을 잡기 어려웠다.
(망할 넘의…)
느닷없이 박쥐 여러마리가 눈앞을 희미하게 날아지나는것이 보였다. 아닌 계절이라기에는 조금은 포근한 날씨여서 날벌레들이 꽤나 설쳐대고있었다. 박쥐가 새냐 쥐냐 하는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다툼보다 더 멋대가리 없지만 식충성적인 박쥐가 기어코 초겨울의 새벽 하늘을 난다는것은 좀 심각한 일이였다. 어쩌면 대만 작가 백양의 말처럼 일찍 일어난 “새”에게 먹을 벌레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박쥐도 어쩌면 생존경쟁에 떠밀려 도심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어둠과 침침함에 익숙하고 적응된 박쥐도 관성에 밀려 어느 정도 내몰린 상황이겠지만 만득이는 이렇게 집 부근에서 박쥐를 면대하기는 처음이였다. 
가끔 강물속에서도 가마우찌같은 물새가 요란한 물소리를 내고 낮게 나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백사하 가운데 볼품없이 또치까처럼 높다랗게 쌓여있는 펌프우물이 어쩌면 가마우찌들의 휴식터일지도 모른다. 그 펌프우물은 일찍 백사하 물줄기가 끊기기전부터 시민들에게 음료수를 공급하던 시설이였다. 당지에서 새로운 수원을 확보하면서 운행을 중단하고있지만 수요될때에 언제든지 수시로 가동할수 있도록 항상 보수하고있는터였다.
언젠가 한번은 이웃집 로인에게 저 물탱크를 왜 없애버리지 않는거냐고 물었었다. 로인은 제법 심각한양 그게 바로 청도인들의 생존방법이라고 답했다. 자연적인 여건이 부족하기에 어차피 남보다 일찍 시작하고 남처럼 버리지 않고 남따라 하지 않게 된다는것이였다. 배고픔을 참지 못했을때는 남부녀대하여 관동으로 떠났고 오늘날 국문이 열리자 또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는게 바로 산동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찮으면 이 험악한 동네에 사람이 남아있지 못했을거라고 했다. 다행히 그렇게라도 서둘렀기에 그나마 허리띠를 조금은 풀어놓고 살만하다면서 입에 침방울을 튕겼다. 여건이 여의치 못하면 일찍 출발하고 빨리 처리하고 자주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기실 따져보면 만득이도 이름이 느질뿐이지 사람은 많이 조숙했던거 같다.
부모가 한국으로 나가면서 만득이를 민정이네 집에 맡겨두었다. 원체 두집이 평소에 네것내것 따로없이 더불어 쓰는 많이 가까운 사이였던 원인도 있었지만 만득이가 유별나게 민정이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기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민정이가 공부도 배워주고 돌봐도 주면 우리가 마음 놓을거다.”
그해 민정이는 열여덟이였고 대학입시를 앞두고있었다.
물론 민정이도 만득이를 무척 귀여워했다. 초중 3학년생인 만득이는 한창 사춘기를 앓고있었다. 민정이가 메이크업을 할라치면 멀찌감치 서서 얼굴을 붉힌채 힐끔힐끔 훔쳐보군 했다. 그런 눈치를 민정이 누나가 모를리 없었다.
“얘, 여기 와.”
“왜?”
“오라면 올거지.”
만득이는 웬지 민정이 누나의 말은 항거 못한다. 그처럼 부드럽고 가늘었지만 도무지 저항할 힘을 잃어버린다. 민정이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커버린 만득이가 쑥스러운듯 기가 질려 다가오기 바쁘게 만득이 얼굴에 크림을 한손가락 듬직이 찍어놓고 민정이는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너 이걸 맛보고 싶어 그렇게 쳐다본거지?”
어느날 하학하고 집에 돌아온 만득이는 집에 아무도 없는 기회에 민정이 누나가 홀로 사용하는 웃방에 살그머니 들어갔다.
책상우에 이름 모를 화장품이 여럿 있었다. 전번에 민정이 누나가 얼굴에 찍어주던 크림도 보였다. 우선 그걸 살짝 열어보았다.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질렀다. 그건 크림 냄새가 아니라 그대로 민정이 누나 냄새였다. 민정이 누나가 스쳐지날때마다 항상 맡게 되는 냄새였다.
“너 이걸 맛보고 싶어 그렇게 쳐다본거지?”
민정이 누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흔적나지 않게 조금 손가락으로 찍어 얼굴에 바르려다가 그대로 혀바닥으로 가져갔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무슨 맛인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
다시 한옆에 오렷이 서있는 립스틱을 더듬어쥐었다. 뚜겅을 열었으나 속살을 올릴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가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당기거나 밀어서 안되는거 보니 비틀면 될것 같아 조심스레 비트니 스르륵 시뻘건 속살이 솟아올라왔다. 거울을 마주하고 평소 민정이 누나가 하던것처럼 입술에 발라보았다. 생각처럼 잘되여지지 않았다. 입술이 순간적으로 립스틱이 더덕더덕 찍히면서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해버렸다. 급히 냅킨을 찾아 입술을 닦았으나 여전히 닭잡아 먹은 형상이였다. 할수없이 물로 입술이 아려날때까지 박박 씻어냈다.
그런데  저녁에 민정이 누나가 조용히 만득이를 불렀다.
“너 내 크림에 손을 댔지?”
“아니…아닌데…”
“니 얼굴에 용건이 딱 써있어. 아닌 보살할 생각 말어.”
만득이의 DNA는 거짓말을 못하도록 메모리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도 흔적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도 인차 들통나는것을 보면 민정이 누나 말처럼 그의 얼굴에 뭔가 씌여져있는게 틀림없었다. 아무튼 민정이 누나가 그걸 알아차린게 오히려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너 혹시 나를 좋아하는거니?”
“누나니까.”
“그렇구나.”
만득이는 아차했지만 이미 엎질러놓은 물이였다. 민정이 누나 얼굴에 실망같은 그늘이 가볍게 흘러지나가는것을 보고 만득이는 정말이지 그저 죽고만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면 오늘밤 누나하고 잠간 시내 갔다오자.”
학교가 위치한 시내는 마을에서 채 5리도 떨어지지 않았다. 가운데 해랑하가 흐르고 그 강에 건설된 다리에서 가끔 여러가지 사고가 생기군 했었다.
늦여름이라 해도 고향의 밤은 차가웠다. 하늘 높이 하얗게 떠오른 하현달은 찬 빛만 발산하고 있었고 그옆으로 촘촘히 둘러싼 별들도 추운듯 바들바들 떨고있다.
대학입시를 반년 좀 넘어 남겨둔 민정이 누나는 언제나 저녁밥을 학교에서 먹고 밤 자습까지 마친후 돌아왔었다.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모부가 한국 나가면서 민정이 누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던 리유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던 민정이 누나가 만득이를 데리고 마실가듯 학교를 한바퀴 돌더니 곧 도로 집으로 다시 가잔다. 밤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친구들과 인사말 몇마디 나눈것이 고작이였다. 그저 그 정도 말을 하려고 밤걸음을 걸은건지 그저 궁금하기만 했지만 만득이는 용케 참아냈다.
해랑하대교를 건널때 민정이 누나는 어슬렁 만득이한테로 다가와 팔을 끌어안았다.
“여기에 강도가 가끔 나타난다면서?”
“거짓말이야.”
만득이는 저도모르게 얼굴이 겁기로 긴장해졌지만 억지로 태연한체 대꾸했다.
“우리 다리밑으로 한번 내려가볼까?”
민정이 누나가 이끄는대로 둘은 다리밑으로 내려갔다. 가을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물이 많이 낮아진 느낌이였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강물은 바닥까지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버들나무가 듬성듬성 자라있는 땅바닥사이로 강물이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모아졌다 하면서 똘랑똘랑 물소리를 내고있었다. 가끔 새끼손가락만한 고기들이 물을 거슬러 오르면서 찌르륵찌르륵 소리를 낸다.
“고기들이 왜 물살을 거슬러오르기 좋아하는지 알아?”
“아니…”
“그건 살아있다는 증명이야. 활어역수(活鱼逆水)라 했어. 죽은 고기는 물을 따라 떠내려가…”
 민정이 누나는 하던 말을 삼키고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손을 쑥 내밀었다. 순간 상체의 평형이 기울어지면서 미처 잡기도전에 물속으로 엎어졌다. 힘을 불시에 쓴 탓이였다. 허우적거리다보니 웃옷이 거의 다 젖어버렸다.
“아 추워.”
민정이 누나는 겉옷을 벗어 짜다가 기침을 쏟아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득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가가 뒤에서 민정이 누나를 꼬옥 껴안았다. 차가왔다. 인차 따스해졌다. 그리고 포곤해왔다.
“이 죄꼬만 넘이…”
이렇게 야단칠것 같던 민정이 누나는 그러나 몸을 털지 않았다. 만득이 존재가 없는듯  조용히 짜던 옷을 계속 비틀고있었다.
그날부터 민정이 누나는 다시 만득이를 닦아세우지 않았다. 멀찍이 서서 훔쳐보아도 모른체 가만히 있었다. 가끔 만득이가 민정이 누나의 손을 잡고 만져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떤때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가 뒤에서 살짝 안아도 타발하지 않았다.
“이 철딱서니 없는것아, 다 자란것이 누나하고 그게 뭐야?”
대신 이모의 입에서 난데없는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다가 마침내는
“너 자꾸 그러면 민정이 시집도 못간다.’
이런 험한 지청구도 튀여나왔다.
그리고 그해 초겨울에 만득이는 고향의 따뜻한 구들에 혼곤히 잠들어있는 민정이 누나를 흔상하다가 이모로부터 축객령을 받았던것이다.
하늘이 이젠 제법 밝아왔다. 조깅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했고 까치들도 가로수에 오구작작 모여앉아 재잘대고있었다.
혼탁한 백사하도 새벽의 비때문인지 둔덕진 구역에서는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여름에 낮아졌던 물이 초겨울이 되면서 오히려 불어나는 눈치였다. 찌르륵 찌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지저분한 쓰레기가 널려있는 방파제에 다가가보니 제법 보아줄만한 붕어들이 무리지어 상류쪽으로 헤염쳐 올라가는것이 얼결에 보이고있었다. 그 붕어들을 환영하는듯 가끔이지만 웃쪽 풀밭에서 팔뚝만한 잉어들이 풍덩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백사하에 고기가 있다. 로산저수지에서 방류할때 딸려온 고기들임에 틀림없다. 흐름이 거의 멈춘 백사하에서 그 고기들은 작은 흐름을 이용하여서라도 우로우로 오르고있었다.
만득이도 이젠 뭔가 결판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벌써 전부터 하고있었다. 아직은 돌도 소화시킬 왕성한 나이이다. 그리고 얼마간 성숙을 가져오면서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더 절박해진 시점이다. 만득이는 항상 생각은 뇌로 하는것이지 가슴으로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의과대학을 나온 민정이 누나가 홀몸이 되여 20년만에 다시 나타났을때 만득이는 그것이 자기의 운명임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어디가 자기의 귀속인지 알아버렸다.
“이 여자 당장 불러와.”
  그때 양부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였다.
“지금요? 이 여자를?”
“그래, 지금 당장.”
“지금은 곤란한데요. 아마 고향에 돌아가는 기차에 있을겁니다.”
“고향은 왜?”
  “정리할것이 많다고 합니다. 애 학교문제도 있고 아무튼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새해부터 출근하겠다네요. 아무튼 한달밖에 남지 않았잖아요.”
“아, 잘됐어. 애를 그곳에서 계속 학교 다니도록 해줄테니 오지 말라고 해, 아니 연락 번호 나를 줘!”
만득이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있는지 자신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눈이 데꾼해진 양부장을 사무실에 그대로 놔두고 만득이는 정말 오래간만에 두둥실 뜬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틑날부터 잠을 잃은 만득이는 모름지기 조깅을 시작하였다.
날이 완전히 밝아왔다. 그런데 가시권은 반경 50메터도 되는것 같지 않았다. 더 멀리는 안개 같고 구름 같고 또 먼지 같은것에 의해 담벽처럼 막혀서 보이지 않았다.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는 스모그탓이다.
고향의 하늘이 기억에 새롭다. 티 한점 찾아볼수 없이 맑고 깨끗했던 하늘이 태반이였다. 사람의 모습이던것이 급작스레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고 산수가 불시에 수목으로 바뀌는 흰구름의 조화는 신비하기만 했다. 봄이면 아지랑이 몰몰 피여오르는 가운데 강남 갔던 제비가 하늘을 오르내리며 회귀를 자랑했고 여름에 접어들기 바쁘게 싱그러운 꽃향기에 실려 잠자리들이 너울너울 춤춘다. 가을이면 애처로운 울음을 남기며 새로운 서식처로 자리를 옮기는 기러기떼가 줄을 이었고 겨울이면 솜같이 가벼운 눈꽃이 하늘하늘 춤추며 내렸었다. 고향은 대체로 랑만이였고 동화였다. 
불현듯 일찍 빨리 자주를 강조하던 이웃집 산동로인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추세에 끌려서 덩달아 고향을 떠나는 시점이 오히려 고향이 기회를 잉태하는 타이밍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동을 찾아왔다가 되돌아가는 산동사람들처럼 말이다.
백사하도 그 사이 부쩍 들끓기 시작했다. 붕붕 차들이 다니고 여기저기서 쿵쾅하고 시공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만득이는 먼지가 다시 일기 시작한 백사하를 등뒤에 내버려두고 아파트단지로 가볍게 접어들었다.
민정이 누나에게는 고향에 따로 설립할 회사의 관리를 책임지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고향이 어쩌면 만득이가 남보다 더 일찍 돌아가야 할 인생역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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