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정문이를 떠나보내며
----녕안문협의 중견작가 정문이를 추모하여
뜻밖에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부고를 받고 한밤중에 택시를 잡아타고 화장터로 향발하는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쩌면 한창 문학의 성당에서 자신의 재질을 꽃피우고있는 새파란 나이의 사나이 를 묶어간단 말인가?
일찍 학교시절부터 문학을 지향하고 문학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준 정문 작가는 9십년대초 그러니 스므살을 갓 넘긴 애숭이 청년시절에 벌써 수필 “눈내리는 날이면 네가 보고싶다”를 흑룡강신문 진달래문예부간에 발표 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후 륙속 신문과 간행물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문이라는 이름이 서서히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사람의 뜻대로 안되는 생활의 곡절은 그런 활발한 작품활동이 불과 몇년이 못되여 거의 자취를 감출만큼 잠잠한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녕안문협을 책임지면서 안 사연들이지만 그사이 그는 민영교원사 업에서 부득히 떠나야 하는 고충과 사랑에서 겪에된 불행으로 하여 목숨처 럼 소중히 여겨오던 문학창작에 심혈을 기울릴수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하해하면서 더는 창작에 정진하던 그가 아니였으며 오직 새로운 직장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생활이 궤도에 잡 히자 이미 마음속에 깊이 락인된 문학창작이란 불씨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곡절적인 생활에 의해 침체했던 의욕은 더 세찬 불길 로 타번졌다.
2008년 이후로 그의 창작은 왕성기를 맞이하면서 무게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부활된 그의 창작은 전성기를 맞았을뿐만 아니라 문학활동에도 남다들 열정을 보여주었다. 우리 문협에서 활동경비난으로 의례 가져야 할 활동마저 못하는 정황를 안 그는 서슴없이 자신의 호주머 니를 털어 우리 문협활동을 자기집 온돌방에서 할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 하여 녕안문인들의 응집력을 키우는데 물심량면으로 서슴치 않은 의협심이 강한 정의의 사나이기도 하였다.
우리 녕안문협에서 말하면 그는 이미 중견이였지만 언제나 허심한 자세로 문협동료과 글을 두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와 단평을 내놓으며 문학에서 자신의 기량을 다같이 공유하는 문학량심도 보여주어 문협동료들의 마음의 지기기도 하였다.
다시 문학창작의 끈을 잡고 그렇게 행복해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눈앞이 흐려진다. 하늘에 삿대질하고싶다. 어쩜 소망으로 들끓는 무고한 생명을 그렇게 수월히 앗아가는지?
무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그저 탄식할뿐이다. 만약 하늘에 천당이 있다 면 나의 아우 정문이 너는 천당에 고이 모셔질것이다. 그만큼 너는 지상에서 높은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아우 정문아, 선배라고 나를 언제나 존경의 대상으로 높이 모시던 어제가 나에게 눈물만 심어 주었구나. 이시각 네가 눈앞에 얼른거려 나는 눈물 하염없이 흘리고있다. 오,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내가 되려 죄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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