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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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곱다
2015년 08월 30일 08시 46분  조회:1987  추천:3  작성자: 최화길
우리 곱다
 

 
   삼십대가 다 되는 딸에게는 좀 어색한 말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한번이 라도 꼭 이렇게 말하고싶은 마음을 감출수 없다.
   아버지가 될 준비가 다는 되지 못한 80년대 중기에 얻은 딸이다. 별것만 했다. 문득 아버지가 되여버린 당혹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내가 자 식을 보았다는 현실자체가 흥분을 불러왔다. 새신랑과 아버지의 차이는 확 실히 다르다는 체험이기도 했다. 딸애가 쌔근쌔근 자고있는 얼굴만 보아도 기분이 붕 떴다. 어떤 조건부도 없이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걸 어쩌랴! 혈육 이라는 존재는 말로써 형언이 잘 안되고 말로써는 근본 그 기분을 그려낼 수 없는 황홀함이랄가?
  한때는 안해이상으로 집에만 들어서면 애에게 집착한다고 안해의 고운 눈흘김도 받았었다. 이미 옛말같이 되였지만 그때 딸애는 그냥 연고없이 고왔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고운것이 전부였다. 젖내나 는 얼굴에 매일 여람번씩 뽀뽀해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 나의 사랑표현의 덕을 입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딸애가 서너살되여 말을 쨀쨀 해댈 때 동네 어른들이 안해와 나를 가리키며 누가 더 곱니? 하 고 물으면 딸애는 서슴없이 “아빠”라고 하여 나를 즐겁게 하고 동네어른 들을 놀라게 하였다. 동네어른들의 눈길에서 나는 해박함이라곤 잘 보이지 도 않고 오직 무뚝뚝한 인상의 애비가 어쩜 더 곱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을 가 하는 의문을 읽을수 있었지만 딸애의 야무진 대답만은 사실이였다. 두번 다시 물어봐도 “아빠”라는 대답을 들으며 나는 저으기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고운 딸이였지만 마음처럼 곱게 키운것은 아니다. “청화대학생으 로 키운다.”고 안해앞에서 희떠운 소리를 해댔지만 결코 대학문도 못들여 보낸 애비다. 30여년의 교직생활에 숱한 학생을 키워 일류대학에 보냈지만 딸은 대학가에도 못보낸것이 내내 마음속에 무거운 앙금이 되여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괴롭힌다.
  딸애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 때는 안해가 유치원교양원으로 있었으니 매일 아침 제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가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좋았다. 그리고 만시름이 놓였다. 그만큼 유치원서부터 제 앞가림을 온천하게 하여 하냥 웃음꽃이 흐늘거렸다. 희망 또한 차넘쳤다. 당금 인재로나 된듯한 착각도 없지 않았다.
  딸애가 소학교에 다닐 때는 내가 또한 딸애가 다니는 소학교 교원이였으 니 당연히 혜택이 아닌 혜택이 없은것이 아니였다. 담임을 맡은 교원마다 애비를 담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무람보다는 항상 칭찬을 앞세웠다. 그리고 제앞의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받들어주어 마음 하나만은 든든했다.
  순풍에 돛단듯이 앞으로 질주하였다고 할수 있은 우리 딸의 행운도 거기 까지가 한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것은 중학교로 올라올 나일 때 나의 사업터가 중학교로 옮겨지면서 안해가 민영으로 하던 유치원교양원이라는 일자리를 잃게 되여서였다. 서푼어치되는 나의 봉급으로는 가정생활유지 도 어려움이 있게 되여 안해는 내가 조동되여오던 그날부터 실업한거나 다름이 아니였다.
  생활의 핍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안해는 집에다 기숙생을 넣었다 자그만치 다섯이나 넣다보니 그때부터 딸에 대한 관심은 기숙생과 꼭 같았다. 오히려 기숙생에게 신경을 더 쓰면 더 썼지 딸애에겐 손길이 미치 지 못하였다. 원래 곱게 커오던 딸애는 그때부터 무슨 기미를 알아차렸는 지 공부보다 오히려 독립적인 생활에 더 신경을 쓰는듯 하였다. 다 알다싶 이 초중단계공부에서 제일 관건으로 되는 2학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미끄럼을 타기 시작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를 놓지지 말고 잘 다독 이든지 아니면 바싹 뒤를 받쳐줘야 했는데 그럴 겨를이나 정력이 없었다. 퇴근하여 집에 오면 시장을 방불케 하는 벅석임에 딸애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것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장장 5년이 흐르다 보니 딸애에 대한 관심 과 배려는 꿈에서나 본듯 까마득해졌다.
   “애들은 정성을 먹고 큰다.”는 말이 내가슴을 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애들은 필경 나무처럼 방치해도 곱게 크는것은 아니였다. 내가 현성중학교 로 조동되여 그나마 딸애의 고중진학이나 고중공부에 조건은 창조하였지 만 공부는 외부적인 조건으로 향상하는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막바지 고중공부에 신경을 써보느라 했지만 애매한 딸애의 스트레스만 더 키웠을뿐이다.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딸애의 안타까움은 커만 갔다. 지어 는 이렇게 압력을 가하면 생사람 잡겠다싶어 내쪽에서 순기자연 (顺其 自然)으로 위안하는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나의 호언장담이 물거품으로 되여 동료들앞에서 떳떳하지 못할만큼 초라해졌다.
  3류대학에서 온 입학통지서를 찢어버리고 일본류학을 권장했다. 딸애의 자존심을 세운다기보다 나의 자존심의 작간이라는것이 더 알맞는 처사였 다. 십여만이라는 빚을 내는것도 눈 한번 깜짝 하지 않고 보란듯이 유학을 보낸다고 내세운 자존이였다. 거의 망발에 가까운 오기였으나 그렇게라도 내 속에 도사린 공허를 메우려고 작정하였다. 하지만 딸애의 운명인듯 유학은 순순히 풀리지 않았다. 어느 일본 대학교의 통지서가 오고 학비까 지 다 보내기에 이르렀는데 령사관에서 비자를 내려주지 않았다. 답답해 도 한참 답답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때가 마침 중국과 일본간의 관계가 악화되던 때여서 그렇다는것이 내가 알수 있는 전부의 원인이였다. 요행을 바라 이듬해도 시도해봤지만 똑같은 미역국이였다. 그래서 한국유학도 시 도했봤는데 역시 꿩구워먹은 자리였다.
  이런 굴곡은 나의 짜증만 불러온것이 아니였다. 딸애는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나에겐 이미 딸애를 붙들어둘 힘이 딸렸다. 딸의 요구에 따르는수밖 에 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집나갈 돈을 대주는 서러움이 내가 할수 있 는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단 돈 3천원을 들고 청도에 있는 친구를 찾아 떠난것이 십년이 더 되게 청도에 정착하여 소위 말하는 제노릇 알뜰하게 하고있는 딸애다. 십년이 넘도록 집에다 손 한번 내밀지 않고 오히려 아빠생일이요 엄마생일이요 하며 돈이나 기념품을 부쳐오는 딸애 앞에서 내가 왜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딸애가 애틋하게 굴수록 나의 마음은 더 아릿함을 속일수 없다. 장중보옥으로 키우려 했던 초지가 다 깨여진 마당이지만 올곧게 자 란 의젓한 딸애를 떠올리면 아빠로서 할수 있는 말이 더 있을수 있으랴!
  오직 “우리 딸 곱다.”로 못난 자신을 위안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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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최화길
날자:2015-09-01 10:59:25
딸복이 있나봐요 ㅋㅋ 응원에 대단히 감사하고요
3   작성자 : 고리끼
날자:2015-08-31 18:31:53
고리까나 에디슨이나 모파쌍, 마크트웬, 오헨리, 존 스타인, 앙드레말로등 세계적 명사들은 소학문전도 못갔다. 그러나 세계3대소설가요 세계문학의 겅전을 써냈다.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월리엄코크너도 두번이나 학교를 그만두었고 궈니터거라스도 초중도 졸업못했다. 중국의 저명한 작가들인 경요, 자유현량, 장잫룡, 해암도 고중문응ㄹ 못나온 처지들이다. 오힐상 영재는 명문대학을 못나온 가운데서 출현하는법이기도 하다. 청화대학을 졸업한 유수는 천진거리에서 돼지고기를 팔고 북경대학을 나온 ㅗ앙이리는 농초노에 내려가 양몰이를 한다. 거기다 비하면 청도에서 해마다 아버지어머니꼐 효도 잘한다는 화길씨의 따님은 얼마나 멋진삶을 살고있는가!! 화이팅! 화길이 나요 ,나!!
2   작성자 : 최화길
날자:2015-08-31 09:44:22
신뢰에 깊은 사의 올립니다
1   작성자 : 참된글 참된인간
날자:2015-08-30 13:11:50
화길작가의 이 글은 솔직한예술의 글이오. 허풍치기를 잘하는 어떤 작가의 글이 아니오.그러기에 어너제나 화길작가의 글을 난 존중하고 감명깊게 보군하오! 화이팅! 그리고 화길작가의 따님의 마냥 행복한 생할을 축복하는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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