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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원래 죽을 쓰며 사는것이다
2014년 09월 01일 06시 15분  조회:546  추천:1  작성자: 비전


수필

인생은 원래 죽을 쑤며 사는것이다

장학규


오래동안 련락이 단절되였던 이성 친구와 십수년만에 어떻게 메신저로 통하게 되였다. 우리 신문에서 누군가 내 메일을 보고 자기한테 알려주었다고 한다.
교원직을 때려치우고 한국에 간지 여러해 된다면서 그래도 대수 실목숨을 부지하면서 사니까 이렇게 인연이 다시 이어진다고 반가운 인사를 해왔다. 그렇게 두루 인사수작끝에 아, 이젠 가끔 외롭고 허황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사람 사는게 무슨 멋인지 도무지 감이 안오네요 이런 심각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별로 깊은 생각도 없이 한마디 내뱉었다.
"인생이란게 원래 그렇게 죽 쑤며 사는거잖아."
원체 서로 허물 없는 사이여서 이런 교훈적인 냄새가 다분한 말이 나갔는지는 몰라도 가끔 나는 상대에게 사정을 두지 않는 말을 한다.
나는 선악이 좀 명확한 축에 속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미우면 밉다고, 호감이 있으면 호감을 느낀다고 직방 대고 말하는 사람이다. 누구처럼 무엇이나 감추고 사는 노릇은 때려죽여도 못한다. 그런 표현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많이 괴롭다. 그러면서 두루 포장이 잘된 사람들한테 너무 리얼하다거나 바보같다거나 또는 속에 없는 빈말을 하는 약은 사람같다는 평도 더러 듣는다.
그렇게 내 인생은 계산적으로 운영된게 하나도 없다.
학생 시절에는 갑자기 집에서 학비를 이어대지 못해 초중 3학년에서 사회로 직행했다. 고작 10원에 불과한 학비였다. 그처럼 마음이 한없이 여린 부모님들도 나의 인생길을 설계해주지 못했다. 가정을 념두에 둔 연애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남이 이어주어서 장가란것을 갔다. 연해도시진출 역시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타산이 없이 그저 먹고 살기 어려워서 단행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냥 샐러리맨에 불과하다.
잘만 경영해도 두루 후회가 적은 삶일수도 있지 않겠냐싶지만 매양 허우적거리며 그때그때를 헤쳐왔었다. 몸이 오싹해나는 낭떠러지길도 걸은거 같고 가파른 비탈길도 톺은거 같다. 물에도 빠졌고 바위에도 부딪쳐보았다. 강냉이 나지면 강냉이로 밀이 나지면 밀로 조가 나지면 조로 죽을 쓰며 인생을 영위해왔던게 분명하다. 입쌀을 찾느라고 의식적으로 여기저기 눈길을 돌리지는 못했다. 그만큼 죽에 만족했었다.
그렇지만 시간의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면 보리고개마다 고마운 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면 죽을 쑤는 내가 안쓰럽고 불쌍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을 쑤면서도 살겠다고 아득바득하는 내가 대견하고 기특해서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 혹시 죽을 쑨것만치 조금이라도 이룬것이 있어 자랑스럽고 멋져서일지도 알바없다.
아무튼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오늘의 내가 죽을 쑬지언정 그나마 배포유하게 살아왔던 배터리로 된것이다.
그중의 한 사람이 지금 나하고 메신저로 통한 친구이다.
내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때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준 친구이다. 하루 아침에 마누라와 다 키워놓은 아들을 사고로 죽이고 나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있었었다. 그때 글친구였던 그녀가 예고도 없이 남편을 대동하고 우리집에 나타났다. 이럴때는 술이 제격이라며 나를 곤죽 만들고 자기도 남편한테 업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녀는 한달 넘어 나의 말동무가 되여주었고 나더러 고통속에서 헤여나오도록 타일렀다. 후에는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과 더 친하게 되여 너나들이로 말을 놓고 다녔다.
물론 사람이 쇠덩이가 아니여서 미열은 10여년간 계속 남아있어 지금도 나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지만 내가 훌훌 털고 일어설수 있은데는 그들 부부가 가장 큰 힘이였다. 그리고 내가 고향을 완전히 정리하고 떠날때도 마지막 식사는 그들 부부와 함께 했었다.
산해관을 넘고 황하를 건넜다가 다시 장강을 뛰여넘으면서 그들의 소식을 가끔 전해들었다. 남편이 먼저 한국에 갔고 이어 그녀가 교사 사업을 때려치우고 뒤따라 한국 간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였다. 그리고 긴긴 십수년을 서로 소식을 모르면서 살았다. 다시 그리고 그녀 역시 죽 한번 잘 쑤면서 살고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되였다. 그간 남편은 딸애 대학입시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그녀는 애의 학비를 더 벌어야 하기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죽을 쑤지 않으면 안되는 리유를 그녀가 구구히 해석했다.
많이 안타깝기는 해도 솔직히 뼈를 도려내는 아픔같은것은 전혀 없다. 내가 그들보다 차갑고 리성적이기때문은 아닐것이다. 립장을 바꾸어서 그들이였다해도 나처럼 차분했을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으로 통한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러나 따스한 정은 계속 남아있다.
그녀는 나는 어떻게 사냐고 물어왔다. 시종여일 끊이없이 줄창 죽을 쑤면서 산다고 하니 그녀는 ㅎㅎㅎ 하고 흐물지게 웃는다. 그렇게 웃는걸 보니 그녀는 비록 죽을 쑤긴 해도 인생 막장으로는 직진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모름지기 나의 입가에 웃음기가 걸렸던 모양이다. 빨래감을 들고 왔다갔다하던 마누라가 어느결에 들여다보고 물어왔다.
“무슨 죽 쑨다는거예요?”
“아니, 그저 하는 말이야.”
“잘됐네요. 마침 애가 밥맛 없어 하는데 제가 빨래하는 동안 죽이나 끓이세요.”
괜히 덤으로 벌어온 일이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죽 끓이라면 끓이는거지. 인생도 죽 쑤었을라니 그따위 쌀죽 하나 쑤지 못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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