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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면 죽는다
2014년 11월 08일 13시 36분  조회:949  추천:3  작성자: 장학규


수필

비우면 죽는다

장학규
 

정인군자들은 가끔 ‘비우라’는 말로 인간의 자아완성을 강조한다. 특히 글쟁이들이 더욱 그런거 같다. 이와 류사한 말로 “비운만큼 채워진다”, “비워야 채울수 있다.” 등을 들수 있다.

일단 나쁜 말은 아니란 점을 긍정한다. 사람을 외딴 길로 이끌기 위해 의식적으로 꾸며낸 나쁜 론리가 아님을 승인한다.
그리고 “정인군자”란 누군가를 펨훼하기 위한 말도 아님을 전제한다. 흔히 품행이 단정한 사람을 “정인군자”라고 한다. “정인군자”가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 풍자의 함의를 지닌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화려하지만 론리적으로 모순투성이인 “비우라”는 말도 근래에 생겨난 말이다.  아마 한국과 거래가 이루어지기전에는 우리가 이런 말이 있는줄조차 몰랐을것이다. 처음에는 어느 고승의 말을 옮겨와서 토를 달던데로부터 점차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기 발명처럼 도도하게 풀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너무 린색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사실이다. 틀림없는 우리의 현주소이다.
그만큼 우리 조선족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남을 답습하는 수준이다. 도무지 발명이나 창조란것을 모르고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을 따라할줄밖에 모르는 군체이다. 그러면서 또 누구나 다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부류이다.
그래서 “비우라”는 말도 빌려와서 그것을 자기것인양 포장해서 청고한체, 득도한체 으시대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가?! “비우라”가 얼마나 비론리적인가를.

우선 사람을 병이나 컵이나 독과 같은 담는 용기와 비유한것이 문제다. 하긴 형상적으로 보면 비슷하기는 하다. 너나없이 서있는 형상이고 붓거나 넣으면 들어간다는 공통성은 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용기에는 없는 구멍 두개가 더 있다. 용기는 붓거나 넣으면 꼴똑 차게 되고 그것을 비우지 않으면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들어온것들이 려과를 거쳐서 찌꺼기는 배출되기때문이다. 거기에 다시 붓거나 넣지 않으면 사람이라는 “용기”는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바로 죽어버리게 된다.

혹자는 배출되는 찌꺼기가 비우는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비워진다”와 “비우다”는 본질적으로 구별이 된다. 하나는 피동사이고 다른 하나는 능동사이다. 자동사적인 “비우다”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비워지는 현상과 동일시하는 것은 론리적으로 착오가 있는것이다.

생리적으로 인간은 비울수가 없다. 비우면 영양이 고갈되여 다시 채울새도 없이 죽어버리게 된다. 자연히 생리적으로 비우라는 말은 절대 아닐것이다.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비우라는 말이 되는셈인가? 어쩌면 그것도 아닌상 싶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인생은 짧다면 엄청 짧은 려정이다. 금방 아장아장 걸음마를 탄것 같은데 어느새 백발머리 로인이 되여있는 현실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만큼 쉽지 않게 마련되고 또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을 그저 소리소문없이 보내는건 조물주에 대한 실례이고 모욕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은 자기의 능력과 천부, 성격과 기질, 노력과 의력, 환경과 기회에 따라 각자의 배역에 충실했다. 게을리하지 않았다.

왕자(王者)의 천부를 가진 사람들은 왕도를 걸었다. 진시황이 그랬고 이성계가 그랬고 세상의 왕자는 다 그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왕권에 도전했었다. 신앙에 충실했던 분들은 가시밭길도 마다않았다. 예수가 그랬고 석가모니가 그랬고 세상의 도인은 한결같이 오직 자신의 리상에 몸을 바쳤었다. 예술인의 기품을 소유한 천재들은 더우기 그랬다.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제9교향곡”를 완성했고 37세에 정신착란상태에서 총으로 자살한 반고는 죽을때까지 예술에 향한 추구를 버리지 못했다. 문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필을 멈추지 않았다. 똘쓰또이가 그랬고 김립도 그랬다. 명인뿐만 아니라 대개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은 사랑을 위해서, 혹은 금전을 위해서, 혹은 혈육을 위해서 나름대로 포기란것을 모르고 이악스레 살아왔었다.

만약 누구라없이 비우면서 살았다면 아마 지금쯤 지구에는 사람이란 동물은 사라졌거나 아니면 백두산호랑이처럼 보호동물이 되여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불타는 소유욕과 넘쳐나는 진취정신이 지금처럼 이렇게 다채롭고 생기발랄한 세상을 만들어놓은것이다.

물론 지나친 욕망이나 욕심을 적당히 컨트롤하면서 살자는 말인줄은 안다. 욕심이 지나쳐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엉망의 세상을 피면하자는 말인줄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절제이지 비우는것은 아니다. 비운다는것은 상실을 의미한다. 잃은것이나 파괴된것을 다시 복원한다는것은 결코 물을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것처럼 그렇게 쉽고 용이한 일이 아니란것은 힘겹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것이다. 어쩌면 평생을 모두 허비해도 다시 복원할수 없는것이 인간이 잃은것이리라.

그래서 끝없이 담을수밖에 없다. 채워도 채워도 끝없이 채우고싶은것이 인간이라는 객관체이다. 범은 배부르면 지나가는 양을 고스란히 보낼수 있지만 사람은 절대 아니다. 곳간이 넘쳐나도 그저 흘러보내지 않고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가둘수밖에 없는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 “곳간”을 헐어서 남한테 주는것은 자선이고 선행이고 또 베품이다. 절대 비우는것은 아니다. 비우면 다시 채우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말로 텅텅 비여져서 지탱하는 에너지 보충을 할수 없어 사람은 죽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특히 머리는 죽을때까지 쉼없이 한층한층 꼭꼭 쌓아두어야지 절대 비워서는 안된다. 반푼을 “머리가 비었다.”고 형용하는것처럼 일단 머리를 비우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무런 리유도 없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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