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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수필

수필을 위한 수필
2018년 09월 21일 09시 49분  조회:727  추천:0  작성자: 장학규

수필

 

수필을 위한 수필
 

장학규


 



  조선족이 쌀에 뉘만큼도 아니되는 청도에서 있은 일이다.
  하루는 회사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늘어지게 술을 퍼먹고 왁작 고아대며 밖으로 나오는데 저만치에서 길 가던 웬 청년이 불시에 백미터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싸우자는 건가?”
  “누가 원쑤를 졌게?”
  타관땅이라 언제나 원시적인 본능을 앞세우는 우리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전투태세로 기다리는데 헐레벌떡 달려온 그치가 뜻밖에도 “조선사람들이구만. 어디서들 왔소? “하고 우리말로 묻는 것이었다.
  초면에 ‘하오’를 들이대는 것이 좀 방자하고 덜돼먹어 보였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때문에 서로 반갑게 “나는 아무 곳의 아무개요”하는 식으로 인사수작들을 나누었다.
  그 차례가 나한테로 돌아와 막무가내로 ‘나는 해림의 장학규란 사람이요”라고 하니깐 글쎄 이치가 대번에 다른 친구들은 싹 젖혀놓고 나한테만 살갑게 대하는 것이었다.
  “나도 문학을 하오. 어 반갑소.”
  자신의 능력을 검열해볼겸 생활체험도 할겸해서 객지에 나온 나로 보아도 외딴 청도땅에서 문학동료를 만나는 것이 역시 싫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후로 사나흘에 한번씩 전화 연계를 가지고 또 서로 자주 찾아다니며 문학을 담론했다.

  하루는 이치가 수필 명색을 써가지고 찾아왔다. 손톱만큼한 의견이라도 제기해달라는 겸손한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그 글을 거퍼 두페이지도 읽어내지 못하고 막 하품이 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이 이렇고 생활이 저렇고 사랑이 어쩌구 행복이 저쩌구... 여하튼 그러루한 설화가 절편에 관통되어 있었다. 종래로 체면치례를 잘하던 나도 그만 참을 줄이 끊어진 것이다.
  “아, 뒤가 무거워 오는군. 치질인가?”
  그렇게 화장실에 한번 갔다가 돌아와서는 아예 그 글을 다시 집어들념을 않고 자질구레한 일화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는데 둬마디 안짝에 다시 볼 것을 성화같이 재촉해와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또 그것을 집어들었으나 한페지도 채 보지 않고 화장실 출입을 거듭했다.
  “미안하지만… 이것 참 실례인데…”
  이번에는 그 친구도 나의 회피술에 어쩌지를 못했다.
  나에게는 ‘성경전서’가 있지만 8년이 되도록 그것을 다 읽어내지 못했다. 그러한 나더러 선견지명을 가진 건교사마냥 따분한 설교만을 일삼는 그따위 글을 읽으라니 어처구나 없는 일이 아니고 뭔가?
  우리의 수필이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수필들이 이런 유인 것만은 사실이다. 남들이 다 알고 있는 간단한 도리를 미사려구로 지루하게 내뿜는 것이 바로 우리 수필문학의 주류이다. 편집들이 모름지기 그런 입맛에 굳어져버렸고 그에 덩달아 작가들도 알량한 문자놀이에 재미 들이고 있다. 어찌나 비비고 꼬았는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했는지 분간할 수 조차 없다. 옛날 선비나부랭이들처럼 사회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풍월 읊기에만 열을 올린다. 글은 확실히 글로 되었으되 읽고난 후에는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장학규 같이 까다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비단 남는 것이 꼬물도 없을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품을 하고 치질을 앓는 몹쓸 병이 도지게 될뿐이다.
  문학은 종교책이 아니다. 철학책도 아니다. 수필도 문학이지 이론문장이 아니다. 인생이나 무엇이나 그 본체적 뜻은 한두마디면 해석이 되는 것이다. 지지콜콜 캐고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슴슴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책임은 철학가나 종교가나 혼인전문가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나는 절대적인 부정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즐기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도 보지 말라는 이유와 억지는 없다. 이 세상에서 예수교의 묘리를 터득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선교사적수필에서 참된 인생수업을 받는 독자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수필애호가들을 한사코 그 한곬으로만 몰아가려는 것은 백가쟁명, 백화만발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 어떤 한정된 틀을 세우지 않고 술술 써내려 갈 수 있다고 해서 수필이라 하지 않았는가 싶다. 다른 문체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수필이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나는대로 적고 말하고 싶은대로 써서 하나의 이치나 자세를 보여주었다면 곧바로 훌륭한 수필이 아닐까. 여기서 한조목 끌어오고 저기서 한단락 베껴오는 것보다 사소한 인물이나 사건속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더듬어내는 것이 퍽 실용적이라고 나는 인정한다.
  이 점에서 ‘천지(지금의 연변문학 전신)’ 잡지 1994년 4월호는 선두자적 역할을 보여주었다. 김양금 선생의 두편의 수필은 똑같이 설교가 없다. 그중 ‘인생의 초불’은 천자도 안되는 간단한 체험이었다. 이상각 선생의 ‘윁남에서의 하루’는 그대로 기행문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필됨에 손색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따위는 신문사의 종합면에나 보낼게지”따위로 이해하면 곧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십상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수필문학의 번영발전은 우리의 존경하는 편집들의 혜안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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