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17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  

방문자

검색날짜 : 2017/11/06

전체 [ 10 ]

10    [쉼터] - 관광과 려행객과 "벼짚 미궁(迷宮)"... 댓글:  조회:5111  추천:0  2017-11-06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얼마 전, 여행객들이 장쑤(江蘇, 강소)성 쥐룽(句容)시 톈왕(天王)진의 볏짚 미궁을 구경했다. 이곳에서는 풍작기의 독특한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번역: 이충길) ///출처: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
9    [쉼터] -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행정향 - 玉麥鄕 댓글:  조회:4659  추천:0  2017-11-06
  눈이 내린 위마이(玉麥)향(10월 31일 촬영)     위마이(玉麥)향 경내의 원시삼림(10월 30일 촬영)     눈이 내린 위마이(玉麥)향(10월 31일 촬영)   눈이 내린 후 위마이(玉麥)향 경내에 위치한 폭포수의 모습(10월 31일 촬영)     위마이(玉麥)향 경내의 폭포(10월 30일 촬영)     위마이(玉麥)향 경내의 원시삼림(10월 30일 촬영)       위마이(玉麥)향에 살고 있는 프셰발스키가젤(10월 28일 촬영)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위마이(玉麥)향은 시짱(西藏, 서장) 산난(山南, 산남)시 룽쯔(隆子)현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행정향이다. 위마이향은 히말라야산맥 남록에 위치하고 있고 인도양 계절풍 기후에 속해 비가 많이 내리고 초목이 무성하며 환상적인 경치로 유명하다. 또한 해발 격차가 커 ‘하루에 사계절, 10리마다 다른 계절’이라는 특유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번역: 은진호) ///출처: 신화망(新華網)
8    [쉼터] - 고향에서의 "엄마표" 무우말랭이가 떠오르네ㅠ... 댓글:  조회:4081  추천:0  2017-11-06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산 절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장시(江西, 강서)성 상라오(上饒, 상요)시 우위안(婺源)현 황링(篁嶺)구춘(古村, 고촌: 오래된 마을)에는 평지가 3척 이상 이어져 있는 곳이 없다. 독특한 자연적인 조건과 국한적인 환경은 현지 주민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전시켰고 이색적인 ‘사이추(曬秋: 가을철 농작물 말리기)’ 풍경을 만들어냈다. 황링구춘에 위치하고 있는 수백 동의 휘파(徽派) 건축물은 100m 정도의 산비탈을 따라 들쭉날쭉 위치하고 있다. 매일 아침 따뜻한 햇살이 마을을 비추면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건축물의 외벽과 농작물을 말리기 위해 설치한 건조대 및 원형 바구니에 담긴 형형색색의 농작물들이 서로 잘 어울리며 환상적이고도 이색적인 ‘사이추’ 풍경이 연출된다. (번역: 은진호) ///출처: 인민망(人民網)
7    [쉼터] - 86세 할매와 "꽃만두"민간공예... 댓글:  조회:4611  추천:0  2017-11-06
  10월 11일, 양수란(楊淑蘭) 할머니가 자신이 만든 몐화(面花)를 보여주는 모습     10월 11일, 양수란(楊淑蘭) 할머니가 자신이 만든 몐화(面花)를 보여주는 모습   10월 11일, 양수란(楊淑蘭) 할머니가 만든 각양각색의 몐화(面花)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산시(陝西, 섬서)의 시골에서는 매번 관혼상제나 명절을 보낼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각양각색의 화모(花饃: 꽃만두)를 만든다. 이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전통으로 독특한 예술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게 꾸민 몐화(面花)는 다채로운 색을 띠며 생김새 또한 독특하다. 셴양(鹹陽, 함양)시 뉴자(牛家)촌에 살고 있는 양수란(楊淑蘭) 할머니는 올해 86세로 13살 때부터 몐화를 만들었다. 그녀가 만든 몐화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아름다운 빛깔을 띠고 있어 민간예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번역: 이충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6    [쉼터] - 중국 귀주성 준의시 장정진 豆花面 무료 아침 식사... 댓글:  조회:4894  추천:0  2017-11-06
  해당 가게에서는 매일 50그릇의 무료 아침을 제공하고 있으며 하루도 쉰 적이 없다. 맛과 양은 모두 똑같고 대충 만들거나 재료를 덜 쓰지 않는다. 이 가게는 2015년 11월 개업했고 현재까지 1만 그릇 정도의 무료 아침을 제공했다.     한 환경미화원이 아침을 먹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쑨원즈(孫文志) 사장은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5명의 자녀를 길렀다. 당시 쑨원즈 사장의 가족은 이웃, 가족,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잘 살게 되었으니 우리가 당시 받았던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무료 아침을 제공하면 적자가 나지 않냐는 질문에 쑨원즈(孫文志) 사장은 “무료 아침을 먹은 사람들이 저희 가게를 홍보해주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아요. 베푸는 만큼 그대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점심 무렵 인터뷰가 끝났는데 그의 말대로 그게 가게에는 점심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신선한 식재료   쑨원즈(孫文志) 사장이 음식에 조미료를 첨가하고 있다.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구이저우(貴州, 귀주)성 쭌이(遵義, 준의)시 훙화강(紅花崗)구 창정(長征)진에는 ‘사랑의 더우화몐(豆花面)’이라는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환경미화원, 장애인, 현역 군인,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무료로 아침을 제공한다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번역: 은진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   대형 만터우(饅頭: 찐빵)를 구입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10월 21일, 충칭(重慶, 중경) 푸링(涪陵) 훙주샤오전(紅酒小鎭: 와인타운)의 한 만터우(饅頭: 찐빵) 가게에 대형 만터우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다. 이 가게에서 판매하는 대형 만터우의 길이는 35cm에 달하지만 가격은 단돈 1위안(한화 약 170원)이고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1만 개 정도의 만터우가 팔린다고 한다. (번역: 은진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호야, 백호야, 나와 놀쟈... 댓글:  조회:4094  추천:0  2017-11-06
  현재 여섯 마리의 새끼 백호들은 모두 건강하며 몇 달 후 관광객들과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어미 백호가 여섯 쌍둥이를 낳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윈난(雲南, 운남) 야생동물원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서로 기대고 있는 새끼 백호들의 모습     새끼 백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     구석에 있는 새끼 백호가 침입자를 지켜보는 모습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6일] 10월 25일, 새끼 백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8월, 윈난(雲南, 운남) 야생동물원의 어미 백호가 씩씩하고 늠름한 백호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 (번역: 이충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4    "봄을 그리려면 봄의 느낌이 나야"... 댓글:  조회:2170  추천:0  2017-11-06
박수근은 화가이자 가장, 혹은 구도자이자 순례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당신을 외면하는 불모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됐을까”(아들 박성남) ⊙ “현재 아버지의 그림은 호당 1억원이 넘어. 이게 내 아버지 맞아? 아닌데 …” ⊙ ‘박수근은 불필요할 때 결코 천재성을 노출시키지 않았다’(故 박완서 선생) ⊙ 박수근의 딸·아들·(외)손자 3대가 화가의 길 걸어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오른쪽) 화백과 손자 박진흥 화백.    20세기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면 박수근(朴壽根·1914~1965) 화백이 첫손에 꼽힌다. 지금은 그림 값이 제일 비싸지만 생전 전시회 한 번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그의 그림엔 대개 농사를 짓거나 아이를 돌보고, 난전의 여인이 등장한다. 남자는 늙거나 늘어져 있다. 가난한 이웃의 얼굴이다.       생전 박수근은 이런 말을 했다. “나더러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모두 외면하려는 걸까?”      박수근의 그림은 살아서 유명세를 타지 못했고 도쿄 유학파가 장악한 화단에서 배척을 당했으나 구도자처럼 캔버스 앞에 앉아 종일 그림을 그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어린 아들(박성남)은 “너네 아버지는 뭘 하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빌어먹고 살아요.”      어느새 일흔의 나이가 된 아들 박성남(朴城男·70)씨를 경기도 파주에서 만났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다.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가 몇 해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 동심(童心)의 관찰자가 말한 ‘빌어먹다’는 표현이 왜 이리 웃플(웃으면서 슬플)까요.       박성남씨의 말이다.       “외삼촌들은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무시했어요. 방물장수가 간혹 우리집 마루에 걸터앉아 그림을 보곤 했는데, ‘수근’이라는 사인을 보고 혼잣말로 ‘나무들이 수군수군 대나 봐’ 하고 말했어요. 동네 이웃들도 아버지 그림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어느 날 아버지가 마루에서 곤히 낮잠을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주무시는데 ….”      — 휘파람? 코 고는 소리?      “코 고는 소리는 아니고 … 뭐랄까 제 귀엔 휘파람처럼 들렸어요. 그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를 외면하는 불모지(不毛地)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하고 말이죠. 아버지는 전업작가로, 피붙이를 부양하는 가장으로 사셔야 했어요. 어쩌면 아버지가 순례자나 구도자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아버지가 되니 그제야 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박수근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    박수근의 서울 창신동 집 마루. 박수근 화백과 아내 김복순, 딸 인숙.     — 박수근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는 평가를 받아요.       “아버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요강을 비우고 이불을 개십니다. 마른 걸레로 방·마루를 닦고 아침을 드시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림에 매달리셨어요. 그러곤 미니 스케치북이랑 몽당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명동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셨어요. 이런 생활이 거의 반복됐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아버지가 ‘우리의 화가 박수근’이 돼 있더군요. 저는 대통령이란 자리도, 노벨상이란 명예도, 아버지 자리에 비해 근사해 보이지 않아요. 아버지는 정직하고 근면한 하루의 삶에 충실했을 뿐인데 말이죠.”      성남씨는 “철학적인 용어인 ‘포월(抱越)’이란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포월이란 ‘품에 안고 넘는다’, ‘포함하며 초월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버지는 묵묵히 자기 세계로 나아가셨어요. 사람이 태어나 엉금엉금 기다가 지치게 되면 어느새 걸어가게 되고 ….”      — ‘지치다’?      “삶에 충실하다는 말입니다. 기다가 지치면 어느새 두 발로 걷게 되고, 또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뛰어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포월의 길로 나아가 그림의 달인이 되셨어요. ‘겪는 자’의 삶이라고 할까요?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겪는 삶 ….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지만, 작은 물방울이 강한 바위를 가르듯 자신의 경지에 오르셨어요.       아버지의 작품 중에 〈기름 파는 여인〉이란 그림이 있어요. 실제로 윗집에 기름집이 있었는데 그 집 아주머니는 글을 몰라 어머니더러 읽고 써 달라고 부탁하셨죠. 그럼 고맙다며 참기름 한 병을 주셨어요. 참기름 맛의 고소함에선 그 아주머니가 달인이겠지만 어쩌면 (아주머니는) 참기름에 취해 정작 고소한 냄새를 못 느꼈을지 몰라요. 시대에 취하면 그 시대를 모르는 법입니다.       아버지 그림은 아버지의 러닝셔츠나 흰 고무신처럼, 평범한 일상의 하나였는데 한 시대가 지나고 보니, 아버지 그림이 호당 1억원을 넘어요. 이게 내 아버지 맞아? 아닌데 ….”      그의 집엔 그렇게 비싸다는 아버지 그림이 한 점도 없다. 박수근이 1965년 사망하자 가족들은 ‘박수근 유작전’을 열어 그림 대부분을 팔았다. 당시엔 호당 5000원 정도에 팔렸다고 한다. 그 돈으로 생계를 이었고 쌀을 샀으며 학비를 보탰다.       — 진짜 한 점도 없나요.       “생계를 위해 다 팔았고 나머지 그림들도 아버지 고향인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 다 기증했어요. 유품 등 200 몇 십 점 모두요.”         “봄을 그리려면 봄의 느낌이 나야 한단다”(박수근)    박수근과 딸 인숙과 아들 성남.    강원도 양구가 고향인 박수근은 이웃의 처녀 김복순(金福順)과 1940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현재 딸 인숙씨와 아들 성남씨만 생존해 있다. 인천에서 중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한 박인숙(朴仁淑·73)은 교장으로 퇴임했다. 박인숙은 국전에 3차례 입상한 화가다. 영어교사인 천명운(千明雲·80)과 결혼해 2남을 낳았다. 장남 정국(千丁國·48)은 현재 증권회사 중견 간부, 차남 은규(千銀逵·45)는 화가로 활동 중이다. 박수근-박인숙-천은규로 이어지는 3대가 화가인 셈이다.       아들 박성남은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국전에 7차례 입상했다. 그러다 1986년 국내 활동을 접고 호주에 정착, 낮엔 접시를 닦고 청소부로 일했다. 밤에 돌아와 캔버스와 마주하며 작품활동을 이어 갔다. 호주한인미술협회 회장, 크리스찬리뷰 아트디렉터를 지냈다.       권영란과 결혼해 아들 진흥·진영을 낳았다. 장남 진흥(朴振興·45)도 그림을 그린다. 역시 3대가 함께 화업(畵業)의 길에 들어섰다. 진흥씨는 인도 델리대와 웨스턴시드니대 미술대학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 정미영씨와 결혼해 두 아들 예담(15)·예솔(12)을 낳았다.       차남 진영(朴振英·43)은 스위스 호텔학교 레로시(Les Roches)에서 호텔경영학부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리츠칼튼 호텔(시드니, 서울)에 재직했다. 현재 시드니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이다. 정경화씨와 결혼해 딸 예서(12)·아들 예샘(9)을 두었다.       — 박수근의 아들은 어떻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요.       박성남씨의 말이다.       “환쟁이는 돈 못 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중학교 다닐 때 집안이 어려웠어요. 중3 때 아버지께 공업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죠. 아버진 아무 말씀도 안 하셨죠. 서울공고에 입학해 인쇄과를 택했어요. 인쇄과가 그림과 관련이 많거든요. 그즈음, ‘신(新)기회 미술대회’라는, 구상작가들이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는데 가작에 당선됐어요.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칭찬받을 생각에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 학창시절, 박수근의 그림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아버지의 수채화는 단순하고 투명해서 고교생인 제 눈엔 재주가 하나도 없게 보였어요. 아버지의 단순한 채색과 달리 저는 중색으로, 가령 보라색을 칠할 때, 빨강을 칠하고 파랑을 겹쳐 그려 보라색이 나오게 붓 터치도 하고, 빛이 사물을 에워싸게 정물을 그렸죠.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 그림을 보시더니 ‘봄을 그리려면 봄의 느낌이 나야 한단다’는, 알쏭달쏭한 말씀만 하시곤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러다 고3 때 간경화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화우들의 도움으로 유작전을 열었는데, 그때 아버지 그림을 유심히 보게 됐어요. 가만히 〈좌녀〉라는 그림을 응시하는데,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에 간절한 마음의 고뇌가 느껴졌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과를 사과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야 잘 그린 그림이라 생각했거든요. 유작전에서 아버지 그림을 보며 ‘아버지, 저도 화가가 될래요’라고 말씀 드렸죠.”         6개월 동안 박수근 그림을 베껴 그리다    미8군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왼쪽에서 두 번째).   박성남은 박수근의 사망 이후 6개월 동안 아버지 그림을 연구했다고 한다. 아버지 그림을 옆에다 놓고 수없이 베껴 그리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작업과정을 가만히 떠올렸다. ‘캔버스나 하드보드에 청자색과 암갈색 계통의 바탕색을 기름에 버무려 칠해 놓고선, 그리려는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 내는지 눈여겨보았던’ 기억이 났다.       미술 평론가들은 박수근 그림의 특징으로 회백색의 화강암 같은 거친 질감을 꼽는다. 그 질감은 서민들의 삶의 무게를 연상케 한다.      “저는 아버지 그림 특유의 마티에르(질감)를 얻기 위해 몇 번 정도 덧칠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비밀기법인 ‘열십자 터치’도 알고 있었어요. 캔버스나 하드보드의 요철을 이용하고 화폭을 가로세로로 돌려 가면서 서너 번 덧칠을 하시던 기억을 떠올렸어요. 저는 아버지 작품을 두고 위작(僞作) 시비가 일었을 때 단박에 가짜를 알아챘어요. 다만 미술감정협회 등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뜻에서 입을 다물었어요.”      고교를 졸업한 박성남은 제15회 국전에 120호 크기의 그림을 출품됐다. 제목은 〈추야의 표정〉. 그 그림은 당시 국정교과서 미술책 표지로 채택했다. 교과서에는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이 함께 실렸었다.       “그렇게 정식 데뷔했죠. 아버지는 18살 때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이 오다〉로 입선하며 화단에 나섰고, 저는 한 해 늦은 19살 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데뷔한 셈입니다.”    박수근의 1962년작 〈나무와 두 여인〉.   — 아버지 그림을 볼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나요.       “아버지가 미군 PX에서 미군들과 그들의 애인 초상을 그리고, 집에 와서는 ‘시대의 초상’을 그렸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미군들의 초상화와, 가진 것이라곤 폐허뿐인 ‘서울의 초상화’를 그려야 했던 나의 아버지셨어요.       1970년대 나온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을 읽을 때까지, 전 아버지가 PX에서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제 기억엔 아버지가 종일 말없이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박완서의 장편 《나목(裸木)》에 등장하는 ‘옥희도’가 박수근이란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는 실명으로 박수근의 이름이 등장한다.       … 그(박수근)의 눈은 황소처럼 순했고 그림 그리는 태도는 진지하기보다는 덤덤했다. (중략) 그는 예술보다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훗날 그가 예술가로서 받은 최고의 평가를 생각한다면 그는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불필요할 때 결코 그 천재성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      p263~266,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웅진 刊) 중에서      — 박완서 선생은 ‘박수근·옥희도’를 참 따뜻하게 그려냈어요.       “어느 시인이 박완서 선생에게 이렇게 물었대요. ‘그 시절, 화가 박수근을 사랑했냐’고요. 선생은 열여덟 소녀처럼 달뜬 목소리로 ‘아니다’고 하셨대요. 제 기억으로, 어떤 여인이 서울 창신동 집에 온 적이 있는데, 당시 어머니가 밥 짓다 말고 밥주걱으로 무쇠솥을 탕, 탕 치며 질투하신 적이 있어요.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박완서 선생이 ‘그 여인이 내가 아니다’고 웃으셨다고 해요. 하하하.”         박수근 그림의 비밀은 비극을 비극으로 인식하지 않는 순수함    박성남 화백의 2016년작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 같은 화가로서 박수근의 그림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독일 괴테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했던가요? 아버지 그림은 가장 한국적입니다. 일제 강점기, 전쟁, 가뭄, 홍수, 전염병, 보릿고개, 그야말로 인고의 시대가 그림에 다 묻어나요. 비극을 비극으로 인식하지 않고, 슬픔을 슬픔으로 인식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까요? 광폭한 현실에 대한 저항도 비관도 아닌, 그렇다고 무관심도 아니며 때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도 아닌, 그냥 사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에게 진실함이란 그저 물감이었고, 선함은 팔레트였습니다.”      — 2세 화가라는 게 큰 짐이 되지요?      “아버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자긍심이 없다면 붓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아들이 아닌 독립된 예술가로서 아버지 명성이 방해가 된다고 느낀 적이 있고요. 극복하려고 제가 그린 국전 입선작을 포함해 상당수 작품을 불태웠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2세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작년 10월부터 ‘박수근 스타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 화백.   아들 박성남은 젊은 시절, 아버지와 당당히 겨뤄 보겠다며 아버지의 그림세계를 버리다시피 했다고 한다. 서울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부터 아버지와 다른 추상의 그림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아버지 그림과 마주했고 아버지가 꿈꾸던 세계로 방향을 틀었다.       “아버지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인, 등짐 진 여인, 곰방대 든 노인, 멍한 모습의 이웃들을 그렸습니다. 그 모습은 선합니다. 아버지 그림의 선함은 타인에게 선함을 강조하지 않아요. 그림 〈나목〉처럼 나무에 이파리가 필요 없어요. 나목은 하늘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죠.       〈절구질하는 여인〉처럼 살아가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버지에겐 리얼리티였고 모던이었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아버지 그림은 소통할 수 있는 진실성이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혼잣말로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 멀어 …’ 그러셨거든요. 아버지에게 천당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건 선함과 진실함이 그리는 세상 아니겠어요? 아버진 그걸 그리길 원하셨지만 완성하지 못하시자 ‘멀다’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셨던 겁니다.       이 세상이 퓨전화되고 혼란스럽잖아요. 아버지가 꿈꾸던 단순하고 선하며 진실한 그림을 제 나이 일흔이 되어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박수근의 창신동 시절(1952~63)이 화가로서 인생의 황금기    박수근의 손자 박진흥 화백..   이번에는 박수근의 손자 진흥씨에게 물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만 해도 ‘화가 박수근’이란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유명한 할아버지를 둬 좋겠다”고 해서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중학생이 돼서야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흥씨의 꿈은 야구선수였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업엔 영 관심이 없었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집 안엔 온통 그림으로 가득했다. 그림을 보고 만지며 냄새를 맡던 기억이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버지 박성남에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진흥씨의 말이다.       “그때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도, 말씀도 없이 담배를 피우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그림이라는 세계가 어려운데, 앞으로 그 길을 어떻게 헤쳐 갈지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닐까요?”      — 화가의 꿈이란 게 쉽지 않은 도전 같아요.       “화가가 되려 계원예고에 입학했는데 점점 할아버지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서 그림을 대하는 편안함이 사라졌어요. 학교 선생님은 ‘넌 박수근 손자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친구들보다 더 혼이 났어요. 그림 대신 조각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는 고3 때 인도로 떠났고 호주 시드니에서 미술대학원을 나왔다. 2001년 블랙타운시티 예술전시회(Blacktown City Art Exhibition)에서 대상을 타며 화가로서 처음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 가면 3대가 하는 우동집이 있잖아요. 맛의 비법을 전수하는 일이 그들에게 중요합니다. 화가라는 직업도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지니신 예술정신을 이어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 정신을 존중하고 싶어요.       그중에서 할아버지 박수근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제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한땐 저도 출품 욕심을 가진 적이 있어요. 그런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의 왜곡이 생겨 후회가 됐어요. 할아버지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변함없이 그림에 담았던 겁니다. 저도 거짓 없는 진솔한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박진흥의 2016년작 〈쉼/ 오늘도 마이너스〉.     — 할아버지의 삶에서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라고 보시나요.       “할아버지는 6·25 당시 혈혈단신으로 남하해 한동안 군산 부두에서 노동을 하시며 기약없이 지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할머니가 도강증도 없이 트럭에 몰래 숨어 서울로 들어가 할아버지와 극적으로 재회했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창신동에 모여 살던 시절(1952~1963년)이 화가로서 열정이 가득 찼던 시절이 아닐까요?”      — 40대 중반의 나이면 인생에서 어떤 결실을 맺어 가는 시기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할아버지 박수근의 그림은 사립문을 열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이웃과 풍경이 소재였잖아요. 반면 오늘의 시대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삽니다. 스마트폰을 보고 울기도 웃기도 해요. 어쩌면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쉼’의 대상이 아닐까요? 저는 ‘쉼’을 주제로 스마트폰 틀에 하루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상징화시켜 그립니다.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팔이 없어요. 노동자도, 화가도 팔이 없어야 쉴 수 있어요.”      — 경제적으로 해방이 되셨나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빌어먹고 있다’는 표현을 썼어요.       “너무 가난해 그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진짜 빌어먹고 살더라도 붓은 계속 잡고 싶어요.”      곁에 있던 박성남씨가 대견스레 한마디 던졌다.       “진흥이는 할아버지의 붕어빵입니다. 박수근의 DNA가 그대로 있어요. 박수근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묵묵히 그 길을 가다 보면 응답이 있고 열매를 맺을 겁니다. 저는 아들이 이미 ‘대가’라고 마음속에 선포를 했어요.”⊙       =================================   서민의 화가 박수근 (朴壽根)  "하느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 주옵소서" - 박수근의 12세 무렵 소망 - 박수근 선생은 이름없고 가난한 서민의 삶을 소재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자 일생을 바친 화가입니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선묘를 이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부각시키고, 서양화 기법을 통해 우리 민족적 정서를 거친 화강암과 같은 재질감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한국적인 미의 전형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그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서민화가이자 20세기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박수근 미술관              화가 박수근의 작품  *...시장의 여인들 1961년-가로 62.4㎝, 세로 24.9㎝(변형 15호)   화폭에 여인 12명이 있는 이 작품은 박수근 특유의 거칠거칠한 화강암 질감이 잘 살아 있는 작품으로 박수근 그림 중 인물이 가장 많이 등장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후반 작품인 ‘빨래터’는 다른 작품에 비해 색상이 화사하고 이미지가 선명하다. 흰 무명 저고리를 입은 여인들과 함께 분홍 노랑 파랑 등 파스텔톤 색상의 저고리를 입은 여인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옆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에 사는 80대 소장인이 박 화백 생전에 직접 선물로 받아 50여 년간 간직해 온 것이다. 이 작품은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나물캐는 여인들 (1940년대)    *...맷돌질하는 여인 (1940년대 후반)    시장          
3    [노벨문학상과 시인] - 력사를 "시적인 론문"으로 쓴 시인... 댓글:  조회:4088  추천:0  2017-11-06
  출생 1911. 6. 30, 제정 러시아 리투아니아 샤테이니아이 국적 폴란드/미국 요약 체슬라브 밀로즈. 폴란드 태생 미국 시인.작가·번역가·비평가.   198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토목기사의 아들로 당시 폴란드 영토였던 빌노(빌니우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쳤다. 21세 때 첫 시집 〈얼어붙은 시간의 시 Poemat o czasie zastygłym〉를 발표했다. 그는 이 무렵 21세의 나이에 사회주의자이자 시인 단체의 지도자였는데 그 단체는 절박한 세계의 재앙을 예견한다는 뜻에서 '격변설지지자'(Catastrophist)라는 이름을 지녔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시기에는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정복할 수 없는 노래 Piesn niepodlegla〉(1942)와 같은 수많은 작품을 비밀리에 쓰고 편집·번역했다. 시집 〈구원 Ocalenie〉(1945)은 공산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책에 속했다. 새 정부는 그를 외교관직에 임명하는 보상을 해주었다. 워싱턴 D. C.의 폴란드 대사관 문화담당관과 파리의 폴란드 대사관 문화담당 제1서기관을 지낸 뒤, 1951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9년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으며 1970년에는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는 본래 시인이었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은 공산주의에 순응한 많은 폴란드 지성인을 비판한 평론집 〈사로잡힌 마음 Zniewolony umysł〉(1955)이다. 그의 시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를 주제로 고전적인 문체를 쓴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1918년에서 1950년대의 폴란드 역사를 시로 결합한 〈시적인 논문 Traktat poetycki〉(1957)이 있다. 자서전으로는 〈조국 Rodzinna Europa〉(1959)·〈개인의 의무 Prywatne obowiazki〉(1972)가 있으며, 소설 〈이사 계곡 Dolina Issy〉(1955)·〈폴란드 문학사〉(1969), 시집 〈겨울 종(鐘) Bells in Winter〉(1978) 등 여러 권의 시선집과 폴란드어 번역성서가 있다. =======================   ​       Miłosz's final resting place: Skałka Roman Catholic Church, Kraków   *그가 마지막으로 휴식하고 있는 장소... 단지 무덤이나 유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참 멋진 표현이다.         Skalka, Krakow's Oldest Shrine.    Skalka, Krakow's Oldest Shrine(크라쿠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           ​ ​ ​ =======================         세상 끝날의 노래                                                          세상 끝나는 날   벌 한 마리 클로버꽃 주위를 돌고   어부는 빛나는 그물을 깁는다   행복한 돌고래, 바다 속에 뛰어들고   어린 참새들 처마 끝 홈통에서 논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뱀은 황금색 옷을 입고 있다.     세상 끝나는 날   여자들은 우산 쓰고 들길을 걷고   주정꾼은 잔디밭 가에서 존다   채소 장수들 거리에서 외치고   노란 돛배는 섬에 다가간다   바이얼린의 목소리는 공중에 남아   별 빛나는 밤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천둥 번개를 기다린 자들은 실망한다   조짐과 천사장의 나팔소리 기다린 자들은   세상의 끝 지금 진행중임을 믿지 않는다   해와 달 머리 위에 있는 한   땅벌이 장미꽃을 방문하는 한   장미빛 아이들이 태어나는 한   아무도 지금 진행중임을 믿지 않는다.     다만, 예언자가 되고 싶었던,   그러나 너무 바빠 되지 못한, 한 백발 노인이   토마도 줄기 엮으며 계속 중얼거린다   세상의 끝 달리 없을 걸   세상의 끝 달리 없을 걸.                 * 체슬라브 밀로즈         헌시獻詩   /체슬라브 밀로즈  내 능력으로 구원하지 못한 그대  내 말에 귀 기울이시라.  이 단순한 말씀을 이해하시라. 차마 또 한 말씀이 부끄러우니.  내 맹서하노니, 내게 마술같은 말장난이 없음을  구름이나 나무처럼 침묵으로 나 그대에게 입을 여느니.  나에게 힘을 준 것이 그대에게 죽음을 주었느니.  그대는 구세대의 작별을 신세대의 시작으로  증오의 감정을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맹목의 힘을 완성된 형체로 착각하였지.  여기 얕은 폴란드의 강의 골짜기가 있다. 그리고 커다란 다리가  흰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여기 깨어진 도시가 있다.  내가 그대와 대화를 하는 동안  바람이 갈매기의 비명을 그대 무덤에 던지고 있다.  국가나 국민을  구하지 못하는 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개된 거짓말과의 야합,  곧 참수당할 주정뱅이의 노래,  대학 이학년 여학생의 독서물.  알지 못한 채 좋은 시를 원했고,  시의 건전한 목적을 늦게나마 찾게 된  이것, 오직 이것에만 나는 구원을 찾는다.  새가 되어 날아 온 死者를 먹이기 위해  그들은 조와 양귀비를 뿌리곤 하였으나  나는 한때 여기 지상에 살았던 그대에게  다시는 우리를 찾아오지 못하게  이 책을 여기 두노라.  ======================== 박영구 ‘회상’ 준비 아직 일 년은 준비 기간이 필요 하겠어 늦어도 내일은 한 세기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위대한 책을 쓰기 시작할거야 태양은 바른 자와 사악한 자 위에 똑 같이 떠오르고 봄과 가을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반복될 것이며 촉촉한 잡목 숲엔 개똥찌바귀가 진흙으로 안을 발라 집을 짓고 여우들은 그들의 여우같은 삶을 익혀가겠지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첨부해야 할 게 있어. 그것은: 온갖 목소리로  욕의 합창을 하며 얼어붙은 평원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군대들.  골목 모퉁이에서 거대하게 다가오는 대포 탱크; 저물 무렵  감시탑과 철조망의 캠프로 돌아가는 저 행렬  아냐, 내일은 안 되겠어. 한 5년이나 십년쯤 있어야겠어. 나는 아직도 어머니들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여인의 몸에서 난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어. 그는 거친 군화의 발길질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지; 불이 붙은 채 달리고, 타오르는 거친 화염에 화상을 입고; 불도저가 그를 진흙 구덩이에 밀어 넣어버리지. 여인의 아들, 곰 인형을 끌어안은. 엑스타시에서 잉태된 그.   아직, 나는 말하는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침착하게. ///체슬라브 밀로즈 /임혜신 옮김 .................................................................................................................................... 체슬라브 밀로즈는 시는 폐허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스스로를 사실주의 시인이라고도 불렀는데, 인간의 잔혹성에 너무 화가 나서 진상을 침착하게 시로 쓸 수 없다고 울분하고 있는 이 시는 그 두 가지 면모를 다 보여준다. 십년은 있어야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반어를 통해 그는 전쟁과 학살의 잔인성에 겹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더욱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폐허 위에 쓰여진 시가 빛나는 것은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희망과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임혜신   2004.8.14 체슬라브 밀로즈,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사망 동유럽문학 | 세계문학       1980 체슬라브 밀로즈, 노벨문학상 수상 노벨문학상 | 동유럽문학 | 세계문학  
2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문학상과 우표... 댓글:  조회:4857  추천:0  2017-11-06
  작년 미국의 팝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Nobel Prizes in Literature)을 수상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영역을 넓혀 놓으며 화제를 낳았다. 극작가나 소설가, 시인에 국한이 되었던 문학의 영역이 점차 퓨전화되는 경향을넘어 문학으로 끌어 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 ​ 지금까지 수집한 노벨문학상을 수상자들의 우표 중 수상자 자국(출신국)에서 발행한 우표들 중 대표로 한 장씩만 소개해 본다. 전부 조사를 마치지 않았지만 80% 정도는 자국에서 우표로 발행한 듯 하다. ​ 아직까지 수집하지 못한 우표들이 많지만 앞으로 시간도 많으므로  꾸준한 관심으로 수집할 계획이다. ​ ​ ★ - 자국 발행 안됨   ​ㆍ2016년 밥 딜런(Bob Dylan, 1941~ 미국 -가수)  ★ ​ ​ㆍ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ksijevitj, 1948~ 벨라루스 신문기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 ​ㆍ2014년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 1945~ 프랑스 소설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 ​ ㆍ2013년 앨리스 먼로 토마(Alice Munro, 1931~ 캐나다 소설가) 디어 라이프, 런어웨이 ​ ㆍ2012년 모옌(Mo Yan, 1955~ 중국-소설가) 붉은 수수밭,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 개구리 ​ ​ㆍ2011년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Tranströmer, 1931~ 스웨덴-시인) 창문들 그리고 돌들, 발트해 ​ ㆍ2010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페루-소설가)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녹색의 집 ​ ㆍ2009년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 1953~ 독일-소설가) 저지대, 우울한 탱고, 마음짐승 ​ ㆍ2008년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 1940~ 프랑스-소설가) 조서, 사막, 대홍수,                                     ​황금물고기  ★ ​ ㆍ2007년: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1919~2013 영국-소설가) 풀잎은 노래한다, 런던스케치,                                      ​다섯째 아이 ​ ㆍ2006년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6~ 터키-소설가) 고요한 집,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 ​ ㆍ2005년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 1930~2008 영국-극작가) 축하, 과거 일들의 회상, 베니스의 열정 ​ ㆍ2004년 엘프레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 1946~ 오스트리아-소설가) 피아노 치는 여자, 욕망, 탐욕 ​ ㆍ2003년 존 맥스웰 쿳시(J. M. Coetzee, 1940~ 남아공-소설가, 비평가) 추락, 슬로우 맨, 불명예 ​ ㆍ2002년 임레 케르테스(Imre Kertész, 1929~2016 헝가리-소설가) 좌절, 청산, 운명 ​ ㆍ2001년 비디아다르 네이폴(V. S. Naipaul, 1932~ 영국-소설가) 거인의 도시, 흉내, 도착의 수수께끼 ​ ㆍ2000년 가오싱젠(Gao Xingjian, 1940~ 프랑스(중국)-소설가, 극작가) 영산(靈山), 버스정류장,                                ​산해경전, 저승 ​ ㆍ1999년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2015 독일-소설가) 양철북, 개들의 시절, 고양이와 쥐 ​ ​ㆍ1998년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1922~2010 포르투갈-소설가) 수도원의 비망록,                                        ​눈먼자들의 도시 ​ ㆍ1997년 다리오 포(Dario Fo, 1926~2016 이탈리아-극작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 ​ ㆍ1996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 폴란드-시인) 끝과 시작,                                                  ​예티를 부르며 ​ ​ ㆍ1995년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1939~2013 아일랜드-시인)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 ㆍ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 1935~ 일본-소설가) 개인적 체험, 동시대 게임 ​ ㆍ1993년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 미국-소설가) 재즈, 솔로몬의 노래, 가장 푸른 눈 ​ ㆍ1992년 데렉 월컷(Derek Walcott, 1930~ 세인트루시아-시인) 오메로스, 푸른 밤에, 바닷말, 또 다른 삶 ​ ​ ㆍ1991년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 1923~2014 남아공-소설가) 보호주의자, 7월의 사람들 ​ ​ ㆍ1990년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914~1998 멕시코-시인) 격렬한 계절, 동쪽 비탈길, 태양의 돌   ㆍ1989년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é Cela, 1916~2002 스페인-소설가) 파스쿠알 두아르테 일가,                                             라 까띠라 ㆍ1988년 나기브 마푸즈(Naguib Mahfouz, 1911~2006 이집트-소설가) 도적과 개들, 광기의 속삭임   ㆍ1987년 요세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 1940~1996 미국-시인, 수필가) 연설 한 토막,                                               ​하나도 채 못되는   ㆍ1986년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1934~나이지리아-시인, 극작가) 사자와 보석, 해설자들   ㆍ1985년 클로드 시몽(Claude Simon, 1913~2005 프랑스-소설가) 사기꾼, 바람, 팔라스  ★ ㆍ1984년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1986 체코슬로바키아-시인) 프라하의 봄   ㆍ1983년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11~1993 영국-소설가) 파리 대왕, 성인의식 ㆍ1982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2014 콜롬비아-소설가,                                                               ​사회비평가)- '백년동안의 고독' ㆍ1981년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 불가리아-소설가, 수필가) 군중과 권력,                                            ​허무희곡, 현혹' ㆍ1980년 체슬라브 밀로즈(Czeslaw Milosz, 11911~2004 폴란드, 미국-시인) 대낮의 등불,                                            ​이시의 계곡, 극한시간   ㆍ1979년 오디세우스 엘리티스(Odysseus Elytis, 1911~1996 그리스-시인) 방향, 제1의 태양   ㆍ1978년 아이작 싱어(Isaac Bashevis Singer, 1904~1991 미국-소설가) 고레이의 사탄 ㆍ1977년 비센테 알렉산드레(Vicente Aleixandre, 1898~1984 스페인-시인) 파괴, 대지의 정열, 영역 ​ ​ ㆍ1976년 솔 벨로(Saul Bellow, 1915~2005 미국-소설가) 허조그, 새믈러씨의 혹성, 희생자 ㆍ1975년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1896~1981 이탈리아-시인) 오징어의 뼈, 기회 ​                                              폭풍과 기타 ​ ​ ㆍ1974년 하리 마르틴손(Harry Martinson, 1904~1978 스웨덴-소설가, 시인) 아니아라, 길,                                        ​케이프여 안녕 ​ ​ ㆍ1974년 에이빈 욘손(Eyvind Johnson, 1900~1976 스웨덴-소설가) 해변의 파도 ​ ​ ㆍ1973년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 1912~1990 호주-소설가) 행복의 골짜기, 인간의 나무,                                        ​폭풍의 눈 ​ ㆍ1972년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1985 독일-소설가)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기차는 늦지 않았다' ​ ㆍ1971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 칠레-시인) 지상의 주소, 세계의 종말 ​ ㆍ1970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xandr Solzhenitsyn, 1918~2008 소련-소설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 ​ ㆍ1969년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아일랜드-소설가, 극작가)                                        ​고도를 기다리며, 몰로이 ​ ㆍ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일본-소설가) 설국, 고도, 이즈의 무희 ​ ㆍ1967년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Miguel Angel Asturias, 1899~1974 과테말라-소설가)                                                       대통령 각하, 강풍, 과테말라의 전설집' ​ ㆍ1966년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Shmuel Agnon, 1888~1970 이스라엘-소설가) 출가 ​ ㆍ1966년 넬리 작스(Nelly Sachs, 1891~1970 스웨덴-시인) 이상향으로의 행진, 피란과 방황,                                 ​모래 속의 미소 ​ ​ ㆍ1965년 미하일 솔로호프(Mikhail Sholokhov, 1905~1984 소련-소설가) 인간의 운명, 고요한 돈강 ​ ​ ㆍ1964년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프랑스-철학가, 극작가 수상거부)                                         ​벽, 파리떼, 자유에의 길, 구토 ​ ​ ㆍ1963년 게오르게 세페리스(Giorgos Seferis, 1971 그리스-시인) 분기점, 항해일지, 신화사, 연습장 ​ ​ ㆍ1962년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 미국-소설가)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불만의 거울 ​ ​ ㆍ1961년 이보 안드리치(Ivo Andric, 1892~1975 유고슬라비아-시인) 흑해로부터, 불안,                                        ​드리나강의 다리 ​ ​ ㆍ1960년 생-종 페르스(Saint-John Perse, 1887~1975 프랑스-시인) 원정, 연대기 ​ ㆍ1959년 살바토레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 1901~1968 이탈리아-시인, 소설가)                                               ​시인과 정치, 인생은 꿈이 아니다 ​ ​ ㆍ1958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 소련-소설가, 극작가 수상거부)                                                   ​닥터 지바고, 성루 위에서 ​ ​ ㆍ1957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소설가, 극작가) 이방인, 페스트, 정의인, 오해 ​ ㆍ1956년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1881~1958 스페인-시인) 머나먼 정원, 엘레지,                                                  ​돌과 하늘, 프라테로와 나 ​ ㆍ1955년 할도르 락스네스(Halldór Laxness, 1902~1998)아이슬란드-소설가) 독립한 민중,                                            ​아이슬란드의 종 ​ ​ ㆍ1954년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미국-소설가)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 ​ ㆍ1953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영국-정치가) 제2차대전 회고록 ​ ​ ㆍ1952년 프랑수아 모리아크(François Mauriac, 1885~1970 프랑스-시인, 소설가, 극작가)                                                ​테레즈 데케루, 파리새 여자 ​ ​ ㆍ1951년 페르 라게르크비스트(Pär Lagerkvist, 1891~1974 스웨덴-시인) 바라바, 고민, 혼돈,                                                   ​마음의 노래, 싸우는 영혼 ​ ㆍ1950년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철학자) 권위와 개인,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믿는다 ​ ​ ㆍ1949년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 미국-소설가) 우화, 자동차 도둑 ​ ​ ㆍ1948년 T.S.엘리엇(T.S. Eliot, 1888~1965 영국-시인) 황무지, 4개의 4중주 ​ ​ ㆍ1947년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 프랑스-소설가, 수필가) 좁은 문, 이자벨, 지상의 양식 ​ ​ ㆍ1946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스위스-소설가, 시인)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황야의 이리 ​ ㆍ1945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1889~1967 칠레-시인) 비수 ​ ​ ㆍ1944년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Johannes V. Jensen, 1873~1950 덴마크-소설가) 긴 여행, 후지산 ​ ​ ㆍ1939년 프란스 에밀 실란페(Frans Eemil Sillanpää, 1888~1964 핀란드-소설가) 삶과 태양,                                                ​온순한 유산, 젊었을 때 잠들다 ​ ​ ㆍ1938년 펄 벅(Pearl Buck, 1892~1973 미국-소설가) 대지, 서태후, 액자, 동풍 서풍, 어머니의 초상,                           ​아들들 ​ ㆍ1937년 로제 마르탱뒤가르(Roger Martin du Gard, 1881~1958 프랑스-소설가) 생성, 장 바롱,                                               ​티보가의 사람들 ​ ​ ㆍ1936년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 미국-극작가) 모든 신의 자식들은 날개를 가졌다,                                 ​털보 원숭이 ​ ​ ㆍ1934년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 이탈리아-극작가) 담배, 술, 여자,                                            ​쾌락의 기쁨, 나만이 옳다 ​ ​ ㆍ1933년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Ivan Bunin, 1870~1953 러시아-소설가) 마을, 메마른 골짜기 ​ ㆍ1932년 존 골즈워디(John Galsworthy, 1867~1933 영국-소설가) 재산가, 구지, 셋집, 은수저,                                    ​백조의 노래 ​ ​ ㆍ1931년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Erik Axel Karlfeldt , 1864~1931 스웨덴-시인) 프리돌린의 노래,                                                    ​황무지와 사랑의 노래 ​ ​ ㆍ1930년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 1885~1951 미국-소설가) 메이 스트리트, 배빗,                                            ​애로스미스, 엘머 갠트리 ​ ​ ㆍ1929년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독일-소설가) 마의 산, 대공전하, 꼬마 프리데만 씨,                                 ​거룩한 죄인 ​ ​ ㆍ1928년 시그리드 운세트(Sigrid Undset, 1882~1949 노르웨이-소설가) 십자가,                                            ​크리스틴 라브란스다터,  주부 ​ ​ ㆍ1927년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95~1941 프랑스-철학자) 웃음, 창조적 신화,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 ​ ㆍ1926년 그라치아 델레다(Grazia Deledda, 1871~1936 이탈리아-소설가) 종병의 질, 코지마,                                            ​엘리아스 포르톨루 ​ ​ ㆍ1925년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아일랜드-극자가) 홀아비의 집, 캔디다,                                          ​운명의 사람, 악마의 제자 ​ ​ ㆍ1924년 브와디스와프 레이몬드(Wladyslaw Reymont, 1867~1925 폴란드-소설가) 약속의 땅,                                                     ​사기꾼, 농민 ​ ​ ㆍ1923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아일랜드-시인) 마신의 방황,                                                    ​갈대 사이로 부는 바람 ​ ​ ㆍ1922년 하신토 베나벤테 이 마르티네스(Jacinto Benavente, 1866~1954 스페인-극작가) 지명인,                                                                    ​사모님, 조작된 이해 ​ ㆍ1921년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 프랑스-소설가) 황금시집, 붉은 백합,                                        ​실베스트로 보나르의 죄 ​ ​ ㆍ1920년 크누트 함순(Knut Hamsun, 1859~1952 노르웨이-소설가) 굶주림, 신비, 처녀지,                                      ​제국의 문턱에서, 투쟁생활 ​ ㆍ1919년 카를 슈피텔러(Carl Spitteler, 1845~1924 스위스-시인, 소설가)   ㆍ1917년 헨리크 폰토피단(Henrik Pontoppidan, 1857~1943 덴마크-소설가) 약속된 땅, 운종은 페어,                                           ​사자의 왕국 ★   ㆍ1917년 카를 겔레루프(Karl Gjellerup, 1857~1919 덴마크-소설가) ★ ​ ​ ㆍ1916년 베르네르 폰 헤이덴스탐(Verner von Heidenstam, 1859~1940 스웨덴-시인)                                                        ​순례와 편력의 세월, 한스 알리에누스 ​ ​ ㆍ1915년 로맹롤랑(Romain Rolland, 1866~1944 프랑스-소설가) 장 크리스토프, 내면의 여로,                                ​매혹된 영혼 ​ ​ ㆍ1913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인도-시인, 철학자) 기탄잘리,                                                   ​들꽃, 신월, 원정, 암실의 왕 ​ ​ ㆍ1912년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 독일-극자가) 한넬리의 승천,                                                       ​마부 헨셜, 가련한 하이리히 ​ ​ ㆍ1911년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 벨기에-극작가) 파랑새, 발렌 왕녀,                                               페레아스와, 꽃의 지혜 ​ ​ ㆍ1910년 폴 요한 루디빅 하이제(Paul Heyse, 1830~1914 독일-시인, 소설가, 극작가) 아라비아타,                                                     ​가르다호 단편집 ​ ​ ㆍ1909년 셀마 라게를뢰프(Selma Lagerlöf, 1858~1940 스웨덴-소설가) 닐스의 신기한 여행,                                            ​나의 유년 시절 추억 ​ ㆍ1908년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Rudolf Eucken, 1846~1926 독일-철학자) 대사상과의 인생관,                                                           ​정신생활의 통일성 ​ ㆍ1907년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 영국-시인, 소설가) 정글북, 꺼져버린 불빛,                                            바로 그런 이야기들 ​ ​ ㆍ1906년 조수에 카르두치(Giosuè Carducci, 1835~1907 이탈리아-시인) 레비아 그라비아,                                            ​악마송가, 신가집, 의고시집 ​ ㆍ1905년 헨릭 시엔키에비츠(Henryk Sienkiewicz, 1846~1916 폴란드-소설가) 퀘바디스,                                                ​등대지기, 정복자 바르텍, 대홍수 ​ ​ ㆍ1904년 프레데리크 미스트랄(Frédéric Mistral, 1830~1914 프랑스-시인) ​ ㆍ1904년 호세 에체가라이 이 에이자기레(José Echegaray, 1832~1916 스페인-극작가)                                                                   ​광인인가 성인인가, 위대한 갈레오토  ★ ​ ​ ㆍ1903년 비욘스제른 비외르손(Bjørnstjerne Bjørnson, 1832~1910 노르웨이-시인, 소설가, 극작가)                                                  ​행운아, 파산 ​ ​ ㆍ1902년 크리스티안 마티아스 테오도오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 독일-역사가)                                                                           ​로마 연대학 ​ ​ ㆍ1901년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 1839~1907 프랑스-시인) 스탕스와 시, 정의, 정복     [출처]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우표  
1    [노벨문학상과 시인]젊은이들속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시인... 댓글:  조회:3431  추천:0  2017-11-06
  출생 1911. 11. 2, 크레타 이라클리온 사망 1996. 3. 18, 그리스 아테네 국적 그리스 요약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그리스 시인. Odysseas Elyes라고도 씀. 원래의 성(姓)은 Alepoudhelis.   197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크레타의 부유한 알레푸델리스 가문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아테네에서 보냈다. 아테네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특히 시인 폴 엘뤼아르에게 매료되어 1930년대에 그리스의 전위 잡지 〈네아 그라마타 Nea Grammata〉에 시를 발표하면서, 법학공부를 포기하고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네아 그라마타〉는 1963년 그리스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세페리아데스 등이 속해 있던 '30년대 세대'라는 영향력있는 문학파의 동인지였다. 그는 자신의 글과 가업이던 비누제조업을 분리시키기 위해 원래의 성 대신 엘리티스라는 필명을 썼다. 그의 초기 시들은 초현실주의 색채와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그의 첫 시집 〈방향 Prosanatolismoi〉(1940)과 두 번째 시집 〈최초의 것 태양 Elios oprotos〉(1943)에서 햇빛 찬란한 그리스의 풍경과 반짝이는 에게 해에 대한 사랑을 그렸다. 1941년 나치 독일의 그리스 점령 당시 그는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에 대항하는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시 〈알바니아 전쟁에서 실종된 육군 소위를 위한 영웅 애가 Asma hhrniko kai penthimo gia ton chameno anthypolochago ths Alvanias〉(1945)는 자유를 위한 송가가 되었고, 그는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음유시인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뒤 거의 15년 동안 글을 발표하지 않다가, 휘트먼의 〈자아의 노래 Song of Myself〉를 연상시키는 장시 〈가치가 있다 To Axion Esti〉로 1959년 문단에 복귀했다. 자주 해외여행을 했으며, 1967년 그리스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4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살기도 했다. 후기 작품으로는 〈최고의 태양 Ho Hēlios ho hēliatoras〉(1971)·〈의붓자식 Ta eterothal〉(1974)·〈마리아 네펠레 Maria Nephele〉(1978)·〈작은 뱃사람 Ho milkros nautilos〉(1986)·〈옥소페트라의 애가 Ta elegeia tes oxpetras〉(1991) 등이 있다. =======================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오디세아스 엘리티스의 초상화가 새겨진 부조 직업 시인 국적 그리스 수상내역 노벨 문학상 (1979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그리스어: Οδυσσέας Ελύτης, 1911년 11월 2일 ~ 1996년 3월 18일)는 그리스의 시인으로, 그리스의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7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