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날
나는 내 심령 속으로 깊이 들어가
구석 구석
어릴 적 기억들을 뒤진다
그러다 아주 끔찍한 기억을 하나 꺼내
퍼렇게 돋은 곰팡이를 툭툭 털고
주물럭거리다가 결심한다
버려야겠다
한 불쌍한 녀인이
나는 슬퍼
망각을 위해 이 시를 쓴다
못 볼거 많이도 보았다
술좌석에서
으르렁대며 접시 날리는 놈
깔근 깔근 깔다구 같이 시비 거는 놈
울고 불고 신세 타령하는 놈
허파에 바람 들어 히히 닥닥 거리는 놈
제자랑 장광설 시큰하게 풍기는 놈
술좌석에 올라가 광증나
비츨 거리며 춤추는 놈
흥에 겨워 코 하모니까 부는 놈
자정에 술 마시고 집에 와
거나하게 취해서 바람벽에 기대고
자는 마누라 깨워
춤추라고 윽박지르며 노래하는 놈
히 히 허 허
이거 참, 기가 차
그런데 술 마시고 집에 와 마누라 줴 패는 놈,
놈이라 하기엔 좀 거북하다
개굴창의 퀘퀘한 전설 같아서
내 소꿉 친구
말똥이 아버지였으니
말똥이 아버지는 평소
참 인자하고 인정사정 있는 분이시다
내가 말똥이와 놀게 되면
개 눈깔 사탕도
엿 가락도 쌀로 바꾸어 주고
짜개 바지 달랑 나온 것을
까서 술안주 하겠다고
칼 꺼내는 능글능글 시늉도 하고
수염이 더부룩해
겨울엔 고드름 달고 다니다가 따서
우리에게 얼음 사탕이라고 먹으라
롱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술을 보면 쪽을 못 춘다
소포집 지나다가
발이 안 떨어져 들어가
외상 술 둬 냥 쪽 따고
소금 한 알 달래서 입에 넣어
쩝쩝 빨며 나온다
그런데 술만 잔뜩 취하면
말똥이 아버지는 말똥이 어머니를 팬다
패는 장면은
너무나 처참하다
내가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보았대니깐
원인을 모르게
말똥이 아버지가 말똥이 어머니
끄데기를 잡고
온 삿자리에 끌고 굴리며
발로 짓 밟고 차며
면상을 후려 쳤대니깐
말똥이 엄마가 엉엉 울었지만
인정사정 없이 때렸다니깐
말동이가 말리려 달려 들다가
주머구에 얼굴 맞고 넘어져
코가 깨져
코피가 줄줄 났대니깐
나는 질겁해
도망쳐 나왔대니깐
말똥이 엄마는
언제나 얼굴에 퍼런 멍이 들어
머리칼 한 광주리가 되여
얼굴을 못 들고 다녔대니깐
그러나
말똥이 아버지는 술이 깨면
언제 그랬느냐 듯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걸 보았대니깐
아, 술 술 술
도깨비 술
내 이 기억을
심기가 불편해
영원히 망각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도
텔레비에서 가끔
가정 폭력 기사를 본다
에이 –
참, !
2020,4,14 서울에서
옥 피리
지평선 넘어 고향에서 새여 나오는
청아한 하늘빛 옥 피리 가락
가슴을 간간히 메아리쳐 주는
고요한 떨림 소리
두메의 푸른 산 정기
아지랑이에 가물거려 오고
시내의 은 구슬 소리
귀청 맑게 들려오네
쪽빛 광막한 허공에
가늘고 길게 어리여
향수를 감겨 주는
절절한 음향 …
동년의 꿈에 붙은
호랑나비도 날아 오고
물새들의 울음소리
초록색 동화를 그려주네
외 나무 다리 걸어
산야를 나오는 행객의 그림자
다시 가지 못한
이 길의 애절한 향수
가슴 절인
눈물이
안개에 떠가는
옥 피리소리
흐른 세월도 피리소리로 남았네
고향 무정도 피리소리로 남았네
살아온 굽이굽이도 피리소리로 남았네
가장 소중한 심중의 가락 옥 피리소리
피리소리를 가만히 짜면
쓰고 달콤한 물이 뚝뚝
석양을 먹어
령롱거리네
평생을 살아 남은 건
청 옥 빛 궁글은 소리
아,
옥 피리소리 옥 피리소리
2018,12,21 서울에서
한 그루 나무의 독백
나는 보잘것없는 한 그루 나무요
내가 사는 것이 나만 사는 것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 불편이 되지 않기를
다독이며 조심스레 살아가오
나의 그늘에 치여 살고 있는
나약한 풀들을 보아도 불안하지만
다행이요, 바람깃에 새물거리는 웃음도 귀엽지만
풀꽃 피워 향기를 뿜을 땐 나도 기쁘오
허기영 지나가는 할망구가 내 그늘에 들어
부채질할 땐 서늘한 푸른 바람 내리고 싶소
목동이 소 고삐를 내 허리에 맬 땐
괴롭지만 네가 살아 있어 그런게 아니겠소
아가씨가 끌고 가는 곱살한 강아지가
뒷다리 하나 들고 오줌을 갈겨 놓을 땐
악취가 진동해 기절 할 것 같지만
내가 표적이 되는 것도 가치가 아니겠소
해가 적도로 넘어 갈 땐 햇살도 귀하오
나는 나의 그늘을 털어 놓소
이웃에게 따스한 햇살을 더 많이 주고 싶어서요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요
내 이름은 나무요
나는 그저 나무로 살아가오
2020,6,1 서울에서
후기; 이 시는 상관물 나무의 독백으로 쓴 나의 자화상이다
내가 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불편이 되지
않기를, 내가 사는 것이 남에게 유익하기를 념원하는
는 시다, 은둔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나 곱게 늙으려고
나도 웃기는 놈이지?
나 곱게 늙으려고
꽃가게서 장미꽃 한 송이 샀다
서울 거리에 받혀 들고 걸으니
저 넝감 보래, 체내 애들이 킥킥 입을 가리고
째그러진 눈으로 웃는다
로망들어 바람기 냤느냔 듯
허, 허 모르는 소리
집에 와서 꽃병에 꼽고
자나 깨나 요리 조리 유심히 바라본다
하기야 누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내가 장미꽃을 닮아 곱게 늙으려고
아무리 닮으려고 애써도 닮지를 못하겠다
섧도록 실망하고 몇 일을 무심히 내버려 뒀다
어느 날 엉겁결에 바라보니
고 꽃이 되려 날 닮아 간다
샘초롬히 해사하게 시들며
제가 먼저 늙고 있다, 에이 참
늙은 장미가 일러 주는 말
-꽃은 필 때 열렬하게 피고
질 때는 고아하게 지지요
아, 그래야지
눈물 꿰인 가시는 운명처럼 감추고
아름다운 추억만 떠 올리며
나도 너처럼 곱게 늙어야지
늙는 법 깨달기가 왜 이리 힘들었더냐
장미야 –
2020,6,1 서울에서
은거의 창가에서
창 밖의 세상을 내다 봅니다
락타처럼 모가지 길게 올려 들고
점점 낯설어가는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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